- 물과 피는 탄생을 뜻하는 거 같습니다. 출산과정을 보면 양수가 터지고 탯줄을 끊을 때 피가 튀더군요. 그 후 아기가 태어나죠.
- 마태복음 11장1절 부터 19절까지 요한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나오면서 요한의 사역을 중심으로 말씀을 하고 계시기에 ” 그러나 지혜는 자기 자녀들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또한 요한의 사역을 중심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눅1:17 절에 보면 요한의 사역중의 하나가 “주를 위해 예비된 한 백성을 돌아오게 하는것”임을 주의 천사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말해 줍니다. 한 백성은 교회를 지칭하는 것이므로 비록 들을귀 없던 유대인이 왕으로 오신 주님을 받아들이지 하니 하였지만, 성령의 사역으로 한 백성이 태어날 것이며 그 백성으로 말미암아 지혜는 의롭게 된다는 말로 미무리를 지으시며, 요한의 선포로 시작된 하늘의 왕국을 거부한 그 세대 사람들에게 그 다음으로 도래할 교회라는 한 백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Luke 1:17 “그가 또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그분보다 앞서 가서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불순종하는 자를 의인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며 주를 위하여 예비된 한 백성을 준비하리라, 하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에 관한 위 코멘트들을 접하며 십자가 선상에서 주님이 흘려주신 물과 피는 자연계시로 정말 탄생을 의미한 거였구나 싶습니다. 교회의 탄생. 아담이 옆구리의 갈비뼈로 하와를 얻었듯이 신랑이신 예수님이 옆구리를 찔리심으로 신부인 교회를 얻으신 거라는 진리는 이미 알았던 거지만 이렇게 옆구리로 흘리신 물과 피를 탄생의 의미로 다시 보니 참 놀랍습니다.
또한 ‘물로만이 아닌 물과 피로 오셨다(요일 5:6)’는 말씀을 구약에 비추면,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사하려고 일 년에 단 한 번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속죄일), 늘 하던 대로 물로만 손을 씻는 게 아니라 자기 속죄를 위한 수송아지 피와 민족을 위한 염소 피를 갖고 들어간 걸 들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손을 씻는 침례 요한의 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피로 오셔서 단 한 번에 모든 사람의 죄를 영원히 대속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이미 손을 씻는 물두멍의 물과 죄를 대속하는 피로 오셔서 말씀을 성취하실 것이기에 이미 다른 곳은 깨끗해졌으므로 씻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물의 의미로 오랫동안 고민했던 이유는 성경에 나오는 물에 대한 말씀이 이해된 것 같다가도 모르겠던 이유도 있지만 침례를 왜 받아야 하는지가(참고로 저는 침례교에서 영접했었기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가슴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 가운데 내가 죄인이고 스스로는 구원 얻을 수 없음을 인식했고 예수님을 삶의 구주로 모시는 영접 기도를 했는데 침례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침례는 만인들 앞에서 하는 신앙고백이고 함께 축하해주는 거고 마치 결혼식 같은 거라기에 그런가 보다 했지만, 그 정도 이유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게 크게 공감은 안 됐습니다. 마치 어떤 커플이 혼인신고를 하고 같이 살 게 되면 이미 법적인 부부이고 형편에 따라 결혼식은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는 것이니 결혼식 자체에 큰 의미는 없지 않나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계기로 물의 의미가 확실히 깨달아지자 왜 우리가 침례를(혹은 세례) 받아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과 신약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구약의 성취를 믿는 회계의 침례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던 것이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탄생, 저 하늘로의 다시 태어남을 이 땅에서 상징하는 표현이었기에 필요합니다. 즉 앞으로 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6-17:개역개정)”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히 10:1:개역개정).”
어린 시절 인형 놀이나 소꿉놀이를 할 때 종이나 다른 모형들로 실체를 흉내 냅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저 하늘에 있는 것들의 그림자이고, 성경에 주신 모든 말씀과 성경의 인물과 실제 일어난 일조차도 앞으로 있을 일들과 하늘에 있는 실체의 그림자입니다. 에스겔 1장에 나오는 그룹의 형상을 보면 4개의 생물이 나오고 그 위로 하나님이 앉아 계십니다. “생물들이 갈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겔 1:24-26:개역개정).”
또한 시편에 보면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도다 그룹을 타고 다니심이여 바람 날개를 타고 높이 솟아오르셨도다(시 18:9-10).”라고 하는데 여기서 밑줄 친 부분이 영어로는 ‘He mounted a cherub and flew’, 즉 ‘그룹을 올라타신 후 날랐다’ 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절들을 읽다가 문득 왜 언약궤는 고핫 자손들 어깨에 메도록 명령하셨고, 다윗이 언약궤를 옮길 때 수레에 실었다가 화를 당했는지가 조명됐었습니다. 이 또한 하늘의 것들에 대한 그림자로 주셨기에, 하나님께서 4개의 생물인 그룹들을 타고 나시는 것처럼 언약궤가 움직일 때에는 반드시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날라야 했던 것입니다. 동양에서 가마를 타고 다니듯이 말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1-3절:개역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