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는 명분을 붙이기 좋아하고 또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싶어 하는 선한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정하신 뜻을 안다면 대놓고 거스르지는 않을 거로 생각하지만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이것은 마치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면 자연히 나타나게 되는 결과나 자연의 법칙처럼 정해진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정해졌던 것은 아닙니다)을 헤아리는 영분별을 갖는 길은 성경을 깊이 탐구하고 말씀을 귀히 여기며 마음에 두고 믿으면 자연히 생기는 감각입니다. ‘젖을 사용하는 자마다 갓난아이이므로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의 것이니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여 자기 감각들을 단련시킴으로 선악을 분별하느니라(히 5:13-14).’

좋은 예로 예레미야는 유다 사람들에게 바벨론이 함락하러 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받아들이지 않으면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니 저항하지 말라는 매국노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선지자들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원한 도시이고 하나님이 지키실 것이기에 바벨론에게 넘어가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웠을 것이지만 사람은 믿고 싶은 걸 믿고 이왕이면 좋은 말 듣길 원하지 책망이나 어려움을 당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의 말보다는 다른 선지자들의 말이 믿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이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상고했었다면 지금 현 상황에서 과연 누구 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말씀으로 지금 상황을 바로 분별하려면 먼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그룹을 정직한 믿음 안에서 돌아볼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 왜냐면, 성경엔 우리가 걸어갈 여러 신앙생활의 모양에 따라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 이미 다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미리 보는 역사라고 할 정도로 적어놓은 그대로 지금 현시대에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자가진단을 제대로 못 하면 적혀있는 답인데도 오답을 붙잡고 헛된 안심을 하거나 괜한 불안에 떨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된 자가진단을 하려 해도 결국 성경을 읽어야 검진할 수 있으니, 결국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질문입니다.

만일 그 당시 유다가 영적으로 타락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자신들의 현주소를 말씀에 비추어 인식했더라면, 모세를 통해 미리 경고하신 신명기 말씀이 현실로 닥치고 있음을 깨달았을 겁니다. 하나님은 이미 수백 년 전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한 채 계속 죄 가운데 머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신명기 28장 15-52절에 미리 써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중엔 알지도 못하던 먼 나라가 들이닥쳐 포로로 잡아갈 것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네가 자녀를 낳을지라도 그들이 포로가 되므로 네게 있지 못할 것이며” (신 28:36, 41)

그렇게 시대를 분별하고 말씀을 분별할 수 있었더라면 예레미야가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걸 깨닫고 그의 조언대로 조용히 죄의 결과로 오는 정해진 벌칙을 받아들였을 겁니다. 이런 걸 보면 하나님께서 왜 다윗에게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 합한 자’는 영어로 ‘A man after my own heart’, 직역하면, 내 마음과 닮은(맞는) 사람, 혹은 내 마음을 쫓는(따르는)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저는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 왜 다윗이 저항 한번 안 하고 서둘러 도망부터 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의 군대는 용맹스럽고 충성스러웠으며 그 수로도 압살롬에 비하면 상대가 안 됐을 텐데 싸워보지도 않고 수도를 버리고 망명까지 한 게 영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여러 번 읽는 가운데 깨달아졌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로 인해 범죄한 일로 나단이 전달했던 하나님의 책망을 기억하고 가슴에 새겨뒀던 것입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삼후 12:10-11)  이 구절에서 밑줄 친 부분이 영어로는 ‘…I will raise up evil against thee out of thine own house, and I will take thy wives before thine eyes, and give them unto thy neighbour, and he shall lie with thy wives in the sight of this sun.’인데 ‘out of thine own house’ 즉, ‘내가 너의 집으로부터(네 집안에서) 너를 대적해 악을 일으키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사단과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일컫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이웃에게 네 아내들을 줄 터이니 ‘그’가 네 아내들과 온 이스라엘이 보는 가운데 백주에 동침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한국어 성경엔 이 부분을 ‘이웃들’, ‘그 사람들’ 복수로 번역해서 압살롬을 말한다는 게 바로 와 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어 성경엔 ‘이웃’, ‘그’라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이웃’이라는 의미는 ‘너 아닌 다른 사람’입니다. 사울이 반복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도 사무엘은 하나님이 네 ‘이웃(다윗)’에게 왕국을 넘겼다(삼상 15:28)고 말합니다.

다윗이 이런 경고를 받고 세월이 흐른 후에 압살롬이 반역을 준비하는 부분에서 사무엘 기자는 삼하 15장 7절에 희한한 단어를 넣어놓습니다. ‘And it came to pass after forty years, that Absalom said unto the king, I pray thee, let me go and pay my vow, which I have vowed unto the LORD, in Hebron.’ 바로 ‘40년이 지나게 된 후에 압살롬이 왕에게 말하기를..’이란 부분입니다. 열왕기와 역대기에 보면 다윗은 유다와 이스라엘에서 총 40년 통치했다고 분명히 나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킬 때 ‘40년이 지나게 된 후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처음 이 단어가 눈에 들어왔을 때 이게 맞게 된 건가 싶어서 원어를 찾아보았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도 분명히 ‘40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번역본들은 40년 통치하고 죽은 다윗인데, 압살롬의 반역은 아무리 못해도 그 몇 년 전이 분명하니 이건 분명 에러다 싶었는지 ‘4년 후에’로 고쳐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가 들어가 있는 이유는 분명 어떤 기한 혹은 때가 찼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조명받았었습니다. 40은 성경에서 어떤 기간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왕자로 40년, 미디안으로 망명한 채 40년, 또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불러낸 후 광야에서 40년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단에게 40일간 시험받으셨고, 부활하신 후 40일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승천하십니다(40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그 구절의 ’40년’을 수식하는 앞부분의 ‘and it came to pass after’는 히브리어로 ‘웨이히 미퀘스’로 미퀘스는 다른 구절에서는 대부분 ‘과정’ 또는 ‘끝’으로 번역하고 웨이히는 ‘되었다’ 입니다. 즉, ’40년(과정이 되니)이 끝나니’라는 의미는 다윗의 왕권 40년이 아닌, 그의 인생 가운데 어떤 시작점에서부터 40년의 끝이 이르렀음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사람의 생각으로 말이 안 된다 싶어 바꿔놓았다는 게 아쉽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때가 차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이뤄지고 있음을 직감했고 말없이 자리를 내어주고 온갖 수모와 치욕을 감수하며 떠나버렸고 압살롬은 나단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셨던 치욕적인 예언의 말씀을 성취합니다(이 부분에 대한 흥미로운 조명은 ‘이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이란 인물은 여러 면에서 제게 놀라움을 주는 인물이지만, 이런 면에서 더욱 도전됐습니다. 저에게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보여주셨던 압살롬과 같은 일이 제 삶에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얼마나 발버둥 치며 그 일을 막아보고 피하려 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그때는 말씀을 몰라서 더 그러기도 했지만, 나중에 말씀을 통해 다윗의 이런 면들이 깨달아졌을 때, 괜히 다윗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말씀의 성취를 위해 어떤 치욕도 감수하는 다윗이기에 ‘내 마음에 합한 자(내 마음을 쫓는, 따르는 자)’라고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제 삶에 또 일어난다면, 그때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판단에 순응하여 말없이 나를 내어 맡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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