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로 이스라엘의 종이 된 기브온의 역전

성경을 읽다 보면, 그래서 잘했단 건지 못했다는 건지 아리송한 부분이 나와서 마음 한쪽이 찜찜할 때가 있습니다. 더구나 성경을 집중해서 진지하게 정독했던 이유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원하시는 바를 알아서 혹여라도 말씀을 몰라 하나님께 잘못하거나 미혹 당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거였기에 뚜렷이 잘잘못을 모르겠으면 신경이 쓰였습니다.

여호수아와 기브온 사람들의 사건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7 족속을 남김없이 진멸하랬는데 여호수아는 그중 한 족속인 기브온 사람들의 거짓말에 속아 안 죽이겠다고 언약을 맺고 뒤늦게야 속은 것을 압니다. 하지만 자기가 약속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살려두고 대신 성전에서 물 깃고 나무 패는 종들로 씁니다. 더구나 수 9장 14절에 보면 여호와께 묻지도 않고 그렇게 했다고 나와서 더욱 여호수아가 잘못한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0장에서 기브온 소식을 들은 다른 족속들이 화가나 기브온으로 쳐들어오자 그들을 구출하려고 떠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다’고 하시며 우박으로 크게 도륙하시고 잔당들을 모두 해치울 때까지 해가 하늘에서 멈추는 역대 미문의 사건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큰 구원으로 기브온 사람들을 구원하시니 여호수아가 잘못한 건 아닌가 보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됐습니다.

그러나 사시기로 넘어가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거주민들을 진멸하지 않고 싸우기를 포기한 채 더불어 살 게 된 것과 그게 어떻게 올무가 됐는지가 나옵니다. 2장 후반부와 3장 시작 부분에 걸쳐,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여호수아 손에 넘겨주지 않고 속히 쫓아내지 않은 채 남겨둔 이유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고 순종하는지 ‘시험하려(삿 2:22, 삿 3:1, 삿3:4)한 것이라고 무려 3번에 걸쳐 나옵니다. 더구나 3장 6절과 7절엔 이스라엘이 이방인들과 결혼해서 살며 그들의 신을 섬기고 자기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악을 행했다고 나와서, 역시 기브온 일은 여호수아가 잘못한 거라고 다시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성경 통독을 하던 중 삼하 21장에 이르러 하나님이 다윗의 때에 3년이나 기근을 보내시고 그 이유를 묻자 이스라엘이 살려주기로 맹세했던 기브온 사람들을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한 열심으로 죽인 탓이란 하나님의 답을 듣습니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어떻게 너희에게 속죄해야지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해 복을 빌겠느냐’고까지 묻는 충격적인 내용을 접했습니다. 이 장면이 놀라움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첫째, 진멸해야 했던 족속인데 여호수아가 속아서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살려줬다고만 생각했던 민족 때문에 하나님이 이처럼 진노하신다는 것. 둘째, 히브리서 7장에 멜기세댁과 예수님을 비교하며 멜기세댁이 아브라함을 축복했고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일조를 드린 부분을 설명할 때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히 7:7)’고 했던 구절이 기억난 탓입니다.

저는 영어로 성경을 읽어서 이 부분이 크게 인상에 남았는데 요즘 와서 글로 정리하며 한국말로 쓰다 보니 삼하 21장 3절이 ‘복을 빌겠냐’이고 히브리서 7장 7절은 ‘축복을 받는다’로 번역돼서 한국분들에겐 그다지 마음에 안 와닿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두 구절은 영어로 둘 다 ‘bless’ 즉 축복입니다. “…wherewith shall I make the atonement, that ye may bless the inheritance of the LORD(삼 21:3)” “And without all contradiction the less is blessed of the better.(히 7:7)”

그때까지 기브온 사람들은 멸망해야 됐는데 거짓말로 목숨을 구한 대가로 ‘저주받아(수 9:23)’ 대를 이어 종으로 성전에서 물 깃고 나무 패는 일을 한 거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다윗이 어떡하면 이스라엘을 축복해 주겠냐고 묻고 속죄받으려고 요구대로 사울 자손 중 일곱을 넘겨 죽게 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니 놀라웠습니다. 마치 세상눈에는 보잘것없는 야곱이 이집트 왕인 바로를 도리어 축복하는 장면이 창세기에 나오듯이 기브온 사람들의 영적 신분이 재조명되자, 여호수아가 잘못한 게 아니었다고 다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이 완전히 깔끔히 정리된 건 그 후로도 계속 몇 번 더 통독하는 과정에서 성경 전체를 뚫고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심과 인내와 긍휼이 눈에 들어오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또 읽었었기에, 잘잘못을 바로 알고 싶었고 도리어 그런 마음의 필터가 하나님의 온전한 마음을 보지 못하게 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닫습니다.

처음엔 기브온 사람들의 ‘거짓말’, ‘속임’, ‘저주’, ‘종’, 여호수아의 ‘여호와께 묻지도 않고’, ‘자기가 맹세했다고’ 등등의 단어들만 보였었다면 차차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 여리고 아이 행한 일을 듣고 (수 9:3)’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심히 먼 나라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소문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수 9:9)’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으로 말미암아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었더라(수 9:19-21)’ 등의 구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왜 우릴 속였냐고 질책하며 그로 인해 너희가 저주받아 종이 될 거라는 여호수아의 말에도 기브온 사람들은, ‘…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수 9:24-25)’고 답합니다.

즉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하실 일에 대한 말씀이 분명히 들리므로 오는 심한 두려움으로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목숨을 구하려고 왔던 것이고 이스라엘 또한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했다는 게 보였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소문은 가나안 전체에 퍼졌을 텐데 오직 기브온 주민들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고 나아옵니다. 그때 차라리 이실직고했다면 여리고성에서 라합을 구해주시고, 이스라엘의 사악한 왕이었던 아합의 가증스러운 회개에도 심판을 미뤄주셨던 하나님은, 기브온 사람들도 용서해주시고 기꺼이 구원해 주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인들도 고백하듯이 아직은 ‘우리 하나님’이 아닌 ‘이스라엘의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으로만 알았던 기브온 사람들이기에, 그 심판의 소리를 분명히 듣게 해주신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긍휼까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렇기에 두려움에 살려고 거짓말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기에도 이집트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의 남아들은 낳는 즉시 모두 죽이라고 히브리 산파들에게 명령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명을 어기며 살려뒀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바로에게 산파들은 히브리 여자들이 건강해서 가기도 전에 벌써 아이를 낳아 죽일 기회가 없었다고 거짓말합니다. 그때 거짓말한 산파들을 하나님은 꾸짖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그들 집안을 흥왕케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출 1:20-21).

또한 가축은 물론 물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진멸해야 하는 여리고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창녀였던 라합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첩자들을 숨겨주고, 쫓아온 자들이 다른 데로 가게끔 거짓말까지 했어도,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살려주신 것뿐만 아니라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엄청난 복까지 더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풍성하심이 기브온 사람들에게도 보였습니다. 그제야 특별히 선택받은 레위 사람들 아니면 감히 하나님 성전에서 일할 수 없건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이스라엘의 종이 된 덕에 평생 하나님 성전에서 일하며 지낼 수 있는 큰 영적 축복을 받았다는 게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더구나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이 행군하여 셋째 날에 그들의 여러 성읍들에 이르렀으니 그들의 성읍들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수 9:17)’라며 기브온이 3개의 위성도시를 가진 큰 도시였다고 기록합니다. 더 나아가 10장 2절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고 증거합니다. 즉 약하고 보잘것없어서가 아니라 도리어 강하고 큼에도 자신들보다 더 크고 강하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했기에 항복하고 기꺼이 종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멸망의 자식이요 진노의 그릇이었으나, 여호수아(여호수아는 히브리 발음으로 헬라어인 예수와 같은 이름입니다)와 언약을 맺음으로 이스라엘에 접목되어 도리어 성전에서 일하게 된 기브온 사람들은 예수님과 맺은 새 언약에 의해 구원받는 신약의 이방인을 예표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그 후로도 계속 명맥을 이어, 다윗의 용사 30명 중 한 사람으로 쓰이고(대상 12:4),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해 끌려간 지 70년이 지난 후에도 다시 돌아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합니다(느 3:7, 7:25).

성경을 여러 번 정독하면서 하나님의 바로 된 성품과 마음이 읽히기 전까지는 같은 이방인이라도 룻, 라합, 기브온 사람들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피신한 사람들과 그냥 이스라엘이 전쟁하길 포기해서 더불어 살 게 된 이방 민족과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옳고 그름의 잣대로만 따져서 누군가를 속이고 거짓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동기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마터면 살려고 혹은 살리려고 하는 거짓말과 죽이려고 모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속이는 거짓말의 차이도 구분 못 할 뻔했습니다. 그리하여 정작 인간은 진흙임을 아시면서도 그런 사람을 생각하시며 속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으로는 못 볼 뻔한 것입니다.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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