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의 덧붙임: 열 처녀의 비유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이란 글이 의도치 않게 3편의 긴 시리즈가 됐기에, 코멘트에 대한 답은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등불과 기름의 참된 의미‘에 대한 같은 내용의 코멘트를 3분이나 하셔서, 여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쓰라는 하나님의 음성인가 보다 싶어졌습니다. 바로 이 열 처녀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의 유대인에 대한 비유라는 해석입니다. 저도 그런 해석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예수님의 지상 재림이란 한 시점에 맞춰 풀고, 이 상황도 결혼한 상태(혼인 언약에서부터 결혼식과 결혼 잔치 및 부부로서의 삶)의 긴 기간 중 특별히 ‘결혼 잔치’ 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본다면, 결혼 잔치에 해당하는 천년왕국으로 들어가는 유대인으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그러나 제가 쓴 글의 포인트는, 여태껏 있던 기름이 떨어진 것처럼 설교하고 또 그렇게만 알았던 이 비유가 놀랍게도 한 그룹은 처음부터 기름이 없었고, 한 그룹은 처음부터 기름(성령)을 그릇(몸)에 가진 상태로 신랑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 신랑을 기다리다가 신랑의 오심이 지체되자 잠들게 되고, 신랑이 온다는 음성에 깨어 기름이 있던 5명은 신랑과 함께 결혼(marriage:결혼식, 결혼 잔치, 결혼한 상태를 총괄하는 단어)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 비유가 천년왕국 때 유대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예수님의 초림 이후 재림 전 휴거하기까지의 교회에 적용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요한 계시록이 쓰이던 당시엔 수많은 교회가 있었지만, 계시록이 쓰이기 전에도 있었고, 그 당시에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하나님 교회의 대표성을 띤 7 교회에 특별히 편지가 보내졌습니다. 이렇듯, 열 처녀에 대한 비유도 구세주가 오시리란 약속이 주어졌던 때부터(구약의 예언서들) 예수님이 오셨던 당시(신약), 그리고 앞으로 재림하는 때까지의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갖고 있었지만 정작 믿지는 않아서 성령을 못 받는 그룹과 ‘율법과 선지자들(구약)’이 증거한 예수님을 믿어 성령을 받아 다시 오실 신랑과 결혼하는 그룹을 비교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결혼 풍습은 신랑 쪽에서 지참금이나 선물을 갖고 신붓집에 와서 혼인 약속을 한 뒤 일단 아버지 집에 돌아가 신부가 지낼 곳을 마련합니다. 이 작업은 신랑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하는데, 몇 달에서 일 년이 넘게 걸리기에 정확한 날짜는 모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4)’고 하시면서 그러나 그날과 때는 아버지만 아신다(마 24:36,막 13:32)고 하십니다.

그렇게 신부 있을 곳이 마련되면 신랑은 결혼식 및 결혼 잔치가 준비된 아버지 집을 떠나 신부를 데려오려고 길을 떠납니다. 그때 신랑과 친구들 일행은 무리 지어 긴 행렬로 가는데 앞서간 일행들이 신랑이 옴을 소리쳐 알리고 신랑 오기만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신부는 들러리와 함께 신랑 맞을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이 행렬은 주로 밤에 이뤄졌다는데 한국 풍습에 함이 들어오는 모습을 연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계시록 19:6-9절에도 ‘marriage supper of lamb’ 즉, ‘결혼식 저녁(오후) 만찬’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그래서 신부 측은 신랑이 데리러 오면 언제든 갈 수 있게 늘 등불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신랑 행렬을 맞이한 신부 행렬은 결혼 잔치가 준비된 신랑 집으로 모두 행렬하고, 간단한 결혼 예식 후 신랑과 신부는 잔치가 진행되는 7일 동안 방에 들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7일째 되는 날 손님들 앞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7일이 교회의 휴거와 지상에서의 환란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램프를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가고, 기다리고 하는 열 처녀의 상황이 결혼 잔치 보다는 신부를 데리러 오는 신랑을 맞으러 가는 상황에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려가지 못하게 해서 신랑 없이 신부를 찾아 나섰던 아브라함의 종 일행은 리브가가 결혼 요청에 응하자 바로 그녀와 그녀의 일행들(유모와 여자 종들-창 24:59. 창 24:61)을 데리고 떠납니다. 그러다 우연히 들에 나와 있던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게 되어 사라의 장막으로 데려갑니다.

또한 예수님은 천사들과 함께 공중에 재림하실 때 예수님 혼자만 오시는 게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먼저 죽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오시고 그때까지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공중으로 채여 올라가 그들과 하나 되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4-17)’

그렇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신부방 아이들에 비유(마 9:15, 막 2:19, 눅 5:34)하신 겁니다. ‘신부방 아이들(Sons of bride-chamber)은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올 때 신랑과 행렬하는 신랑의 친구 및 일행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들이야말로 교회의 기초석이 되는 사람들인데(‘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계 21:14’), 그들이 교회가 아니고 신부가 아니라서 신부방 아이들에 비유하셨던 게 아니라 신랑이신 예수님이 함께 데려오신다는(살전 4:14) 의미에서 신부방 아이들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고전12:28)’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1-15)’

이처럼 예수님과 결혼하는 신부인 교회는, 필요와 상황에 따라 신부방 아이들이나 신부 행렬로도 비유될 수 있기에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약속이 주어진 이후부터 재림하시기까지의 총괄적인 기간에 맞춰 10 처녀의 비유를 본다면 이 10 처녀 중 ‘지혜’란 단수로 불리는 5 처녀는 말씀을 마음 가운데 믿어 성령을 받은 교회란 그룹에 해당하는 비유로 저에겐 조명됐었습니다.

Published by tnb4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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