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 8:6)’

이 구절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데리고 와 예수님을 시험하는 유명한 사건 가운데 펼쳐집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는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님’은 어찌 말하겠냐고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허리를 굽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땅에 쓰십니다. 영어 구절에는 ‘as though he heard them not’, ‘마치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으시는 것처럼’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부분에서 예수님은 과연 그때 무엇을 땅에 적으셨던 것일까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 대해 성경을 뒤져보며 집중적으로 묵상해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근데 이틀 전 소그룹 성경 공부를 하는 가운데 어떤 분이 이 구절을 들어 예수님이 땅에 무엇을 쓰셨던 거 같냐는 질문을 하셨었습니다.

저는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어떤 심판의 말씀(심판하면 무조건 ‘벌’을 생각하기 쉬운데 ‘심판(judge)’은 법이나 법칙에 따른 옳고 그름을 가리고, 상과 벌을 가리는 것으로 경기를 보는 심판이나 법정에서의 판사와 같습니다)이지 않을까 싶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성경에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적은 기록은 제가 찾아본 바로는 세 번 밖에 나오지 않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직접 손가락으로 돌판에 쓰셔서 모세에게 주셨던 십계명이고(출 31:18; 신 9:10), 두 번째는 바벨론의 마지막 왕인 벨사살 왕이 예루살렘에서 털어왔던 성전 기구들을 꺼내와서 귀족 1000명들과 왕후와 후궁들과 함께 술을 따라 먹고 마실 때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즉 ‘세어보니 끝이 나고 달아보니 부족하여 나뉘었구나’는 심판의 말씀을 쓰셨던 때이고(단 5:25), 세 번째는 간음한 여자를 바리새인들이 끌고 왔을 때 예수님이 땅에 무언가 쓰셨던 때였기에 아마도 심판의 말씀(판단의 법)이 아니었을까 한다고 했습니다(부활 및 영적 완전수 3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그중 한 분이 자신은 미처 그런 부분까지는 몰랐지만, 이 부분에 대해 나름 많이 생각했었는데 간음한 여인을 데려왔던 것이니 아마도 산상수훈 말씀 중 하나인 마음에 음욕을 품은 자마다 간음한 자라는 말씀을 쓰지 않으셨을까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이 찔려서 미처 돌을 던지지 못하고 돌아선 거 같대서,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모두 집에 돌아간 후 혼자 남았을 때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전에도 특별히 땅에다 쓰신 의미를 알 수 있을까 싶어서 성경을 뒤져보다 그만둔 적도 있었는데, 생각 가운데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말씀이 떠오르기에 찾아보니 우연찮게도 산상수훈이 기록되어 있는 마태복음 5장 18절에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아, 정말 산에서 선포하셨던 산상수훈의 말씀을 땅에 적으셨던 것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이번엔 음행한 여인이 끌려오는 내용이 담긴 요한복음 8장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1절과 2절에 불필요해 보이는 1절의 구절이 들어가 있다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Jesus went unto the mount of Olives.(1절) And early in the morning he came again into the temple, and all the people came unto him; and he sat down, and taught them(2절)’ ‘예수께서 감람산으로 가셨느니라. 그리고 아침 일찍 그가 다시 오셔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시니 모든 사람이 그에게로 나아오고 그가 앉아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감람산으로 가셨었다는 구절이 굳이 들어가 있을 이유가 없어 보여서 그 전 장인 7장 내용을 다시 훑어봐도 거기서부터 연결되는 어떤 내용이 있어서 8장 1절이 들어가야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산상수훈’이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이라면 모세의 율법으로 간음한 여인에 대해 예수님을 시험한 사건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이라는 게 기억났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마태복음 5장의 시작도 어떤 산에 오르셨다고 시작해서 ‘sermon on the mount’라고 불리는 새 법에 대한 가르침을 선포하셨었고 요한복음 8장은 특별히 들어갈 이유가 없는대도 감람산에 오르셨었다고 시작됩니다.  아, 이 두 복음서가 이 부분에서 서로 짝이 되는 부분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던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율법 학자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끌고 나타나서는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런 여인은 돌로 치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어찌하겠냐고 하자 6절에 예수께서는 그들의 말이 안 들리시는 것처럼 묵묵히 허리를 굽혀 땅에 무언가를 쓰십니다. 그러자 그들이 어떡하겠냐고 계속해서 물어보고 예수님은 몸을 일으키셔서 ‘너희 가운데 죄가 없는 자들이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후 8절에 다시 허리를 굽히시며 땅에 무언가를 쓰십니다. 그러자 9절에 양심에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씩 돌을 두고 떠나게 되고 여자 혼자 남습니다.

성경에 어떤 것이 두 번 반복해서 나오는 것은 ‘중요하니 주목하라’ 혹은 ‘증인’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성경을 읽는 가운데 깨달았었습니다(이 부분은 ‘이름을 두 번 부르심‘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한 번이 아닌 두 번 땅에 무언가를 쓰셨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자, 그렇다면 처음엔 간음한 여인을 데려온 자들이 모세의 율법을 거론하니 모세의 율법(옛 법)인 ‘간음하지 말라’를 땅에 쓰신 후 일어나셔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고 선포하신 후 다시 앉으사 새 법인 ‘그러나 음욕을 마음에 품은 자마다 간음한 자니라’를 쓰셨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증인과 나눔을 의미하는 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왜냐면 마태복음 5장 27절에 보면 예수님이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말을 옛적부터 들었을 것이다’고 하신 후 28절에 ‘그러나 나는 누구든지 여인을 보고 음욕을 마음 가운데 품었던 자는 이미 음행했다고 너에게 말하느니라’고 하시는 게 두 구절에 걸쳐 나뉘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두 번째 글 때문에 결국 정죄하던 사람들이 찔림을 받아 떠났던 걸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두 번 땅에 말씀을(율법과 성령의 법) 적으셨다는 부분이 깨달아지자, 구약에 두 번 나오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산에서 적은 모세의 율법과 바벨론 왕궁의 벽에 적은 ‘세어보니 끝이 나고 달아보니 부족하여 나뉘었다’가 예수님의 쓰신 메시지들과 묘하게 어우러진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맨 처음 쓰였던 모세의 율법은 그 율법에 비추어 사람들이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을 찾도록 주셨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율법은 쏘는 마귀에 의해 죄의 권능으로 쓰이며(롬 6:23) 자신들을 의인으로 가장한 무리가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정죄하고 옭아매는 도구로 쓰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마음의 죄까지 드러내어 다루는 산상수훈이란 하늘의 법을 마태복음에서 선포하셨던 것인데 이것을 요한복음에서 땅에 쓰심으로서 로마서 3장 23절의 말씀처럼 ‘모두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하니라(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즉 함량 미달이 안 될 사람이 없음을 알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모든 율법을 대신 성취하심으로 구약 시대의 끝을 미리 알리셨던 것입니다. ‘세어보니 끝이 나고 달아보니 부족하여 나뉘었다’, 즉 ‘이제는 때가 차 율법의 시대가 끝이 나고 모든 인간이 부족함으로 판명 났으므로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게 되었다’로 풀이할 수도 있다고 생각됐습니다. (물론 이 예언은 바벨론이 메데와 바사에게 멸망 당하여 둘로 나뉘게 되는 거로 당대에 일차적으로 성취된 말씀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말 놀라웠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였던 두 번째의 말씀, ‘세어보니 끝이 나고 달아보니 부족하여 둘로 나뉘었다’로 말미암아 마귀를 예표하는 바벨론 왕이 심판 받아 멸망했고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신 말씀으로 율법에 의하면 영락없이 죽어야 했던 여인이  정죄할 자들이 없어져 구원을 얻었고 쏘는 마귀는 힘을 잃고 멸망당합니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 정말 역설적인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아닌 그보다 더한 성령의 법으로 재니 오히려 모두 정죄에서 벗어나게 되고(롬 8:1-2) 성도들을 참소하던 마귀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내쫓김을 당하니(눅 10:18) 말입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계 12:9-10).’   

그렇지만 정죄할 사람들이 없어져 홀로 남은 여인에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을 테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요 8:11)’고 하십니다. 율법 아래 죄인이었던 우리가 성령의 법이 옴으로 도리어 정죄함에서 자유롭게 됐을 때 죄를 다시는 짓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일 3:5-6).’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그분이 성취하신 십자가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은 죄의 권능인 사망에서 풀려나 영생을 누리는 큰 구원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3:9).’ 크신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에 다시 한번 영광과 존귀를 올립니다.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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