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1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18, 21)’

오늘은 위 구절이 글자 그대로 삶에 일어났던 지극히 사적인 지난 얘기를 쓰려고 합니다. 저는 고 1 때 미국에 오게 됐는데 제 기억으로는 아마도 고 2 끝 무렵에서 고 3 시작 학기 즈음 되는 어느 시점에 매우 강렬하면서도 선명해서 도저히 잊히지 않는 예수님 관련 꿈을 처음 꾸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번 이어지게 된 꿈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1.꿈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서 놀란 나는 porch 쪽으로 달려가서 바닥까지 내려오는 넓고 큰 sliding door(유리문)를 통해 집 뒤를 내다보았다. 보니 우리 집 뒤에 있던 작은 집은 폭격으로 날아가 흔적도 없이 움푹 파진 땅 밖에 없고 우리 집 벽에도 파편들이 튄 것이 보였다. 집 외벽에 박혀있는 파편들을 보며 굉장히 공포스럽고 음산한 분위기에 휩싸여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때 갑자기 예수님이 심판하러 오신다는 음성이 들렸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워 하늘을 보니 멀리 작은 구름이 보이고 희미한 사람들의 무리가 보였다. 나는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에 말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감을 느끼며 무릎에 힘이 빠져 털썩 꿇어앉으며, ‘이제 난 죽었다!! 왜 내가 예수를 믿지 않았지?’라고 한탄하며 절절한 후회에 몸서리치다 깨어났다.

깨고 보니 꿈이었고 깬 후에도 그 절박함과 공포와 후회의 감정이 한동안 생생하게 나를 휘감고 있었지만, 그저 꿈이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 당시엔 과학이나 수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거나 가치를 두기 거부하던 때여서 꿈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대학 시절 다시 두 개의 잊히지 않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중 한 개를 꾸게 된 배경을 적자면 그 당시 집에서 한국 신문을 구독했었는데 어느 날 기사에 한국에서 휴거가 일어난다며 특정 집단이 전철 같은 데서 전단지를 뿌리고 다닌다는 내용을 읽게 됐습니다. ‘휴거’라는 생소한 단어에 속으로 ‘휴거가 뭐지?’하는데 보니 그 옆에 부연 설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휴거란- 성도들의 공중들림’. ‘공중들림은 또 뭐지?’ 싶었지만 더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며칠 후, 다음과 같은 생생하고도 강렬한 꿈을 꾸게 됐습니다.

2. 꿈에, 어머니와 함께 친조카를 (당시 4살) 학교에 데려다주려고 기찻길 위를 걷는데 (왼쪽에 어머니, 오른쪽에 조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사위가 갑자기 칠흑같이 어두워지더니 작고 검은 형태로만 보이는 엄청난 무리의 네발 달린 수많은 짐승들이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사방에서 떼를 지어 굉장한 소리와 속력으로 땅에서부터 하늘로 솟구치며 올라갔다. 나는 너무도 무섭고 놀라운 그 광경에 두렵고 황망해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그때, ‘죄지은 사람들은 하늘로 끌어 올려 영혼까지 파멸시킨다. 하지만 너는 아직 하나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 땅에 남아 공부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잠에서 깨어났다.

깨고 나서도 생생한 그 느낌과 공포와 충격에 넋이 나갔지만, 곧 ‘휴우~ 또 꿈이었네. 정말 다행이다. 첫 번째 꿈은 영락없이 죽는 꿈이었는데 이번 꿈엔 그래도 죽지는 않나 보네?’라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반년쯤 지난 어느 날 세 번째 꿈을 꾸게 됐습니다. 배경 설명을 하자면 대학 등록금 및 생활비 마련차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가운데 다른 여러 문제가 겹치자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었던 때였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이렇게 아침을 맞았다는 게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도 두어 번 꿨었던 강렬하고도 잊히지 않는 꿈들은 가끔 뇌리에서 되살아나 심령을 뒤흔들었었기에 신의 존재 여부와 나와의 관계, 이 세상과 사후 문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교회를 다니시게 됐었지만, 자식들은 기타 다른 종교들을 각자 알아서 믿는 상황이었고 특정 종교가 없던 저는 꿈 때문에 성경을 읽어보려는 시도를 몇 번 하다 포기한 뒤 불교나 티벳 수도승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어 보며 나름대로 인간의 운명과 신과의 관계, 영혼과 생명의 발생과 육신이 소멸한 후의 영혼의 거취 등을 그럴싸하게 머릿속에 짜놓은 상태였던 어느 날 다음과 같은 꿈을 꿨습니다.

3. 꿈에, 침대에 이불을 덮고 앉아,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지?’라고 물으며 고민하는 모습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으로 보였다. 그러다 이제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눕는 내 모습을 보는데, ‘너는 신과 가까웠다.’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러면서 가슴에서 무언가 새어 나가는 듯한 슬프고 아련한 느낌과 위에서 무언가 나를 당기는 듯한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나면서, 천상에서 어떤 죄를 짓고 그 벌로 이 세상에 태어나 고생 중이란 깨달음이 막연히 왔다.

세 번째 꿈은 처음 두 번의 꿈만큼 강렬하고 생생하진 않았었기에 덮어두기가 더 쉬웠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 후 1년쯤 후에 누가 미국에도 절이 있다며 구경 한번 가보자고 해서 별생각 없이 방문하고 난 며칠 후 꿈을 꿨을 때입니다.

4. 꿈에, 일인용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 그 때 TV 화면에 아나운서가 나와서, “여러분! 지금 관세음보살이 동굴 안에서 발견됐습니다!”라고 말했고 사람들이 우르르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여기선 TV 화면만 크게 보이는 관점으로 변했다) 온통 까만 화면 속으로 갑자기 두 손을 모은 하얀 석고상의 머리 부분이 (옆얼굴) 물 위로 떠 올랐다. 소파에 앉아 그 화면을 보던 나는 “어? 관세음보살이 성모 마리아상하고 똑같이 생겼네?”라고 의아해하며 혼자 중얼거렸고 화면 속의 사람들은 그 상을 물에서 건져 올렸다. 건져낸 후 사람들이 두 팔로 치켜 올려들고 있는 것을 보니 몸 전체가 있는 상이 아니고 머리 부분만 있는 상이었는데 동굴 밖으로 옮기려다가 그만 떨어트려 깨져버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깨졌다고 아우성대기 시작했고 그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꿈에선 관세음보살이 마리아상이랑 똑같게 생겨서 신기해했었지만 깨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상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잠깐 성당에 다니셨을 때 미사가 지루했던 내가 밖에 나와 혼자 놀다가 올려다보던 그 성모마리아상이 분명했습니다. 그제서야 처음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에 한번 갔다 왔다고 아주 어릴 적에 봤었던 성모마리아상까지 꿈에 나타나다니. 그렇지만 그렇다고 뭘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세월은 흘러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주로 이사하게 됐는데 그곳은 예전 살던 곳과는 달리 만나는 사람마다 교회 나오라고 전도하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마음은 그럴수록 완악해져서 교회로 전도하려는 사람들을 벌레 보듯 했고 ‘나는 예수 꿈을 4번이나 꿨어도 교회 안 갑니다’며 농담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예수를 믿느니 차라리 단군을 믿겠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순간순간 아무래도 성경을 한 번은 읽어봐야 할 거 같다는 말할 수 없는 부담이 다시 엄습해왔고 일단 읽어보고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이 한 번씩 솟구치는 날이면 누군가로부터 받았는지도 알 수 없는 성경책을 펼쳐 들고 소설책 읽듯이 첫 장부터 읽으려는 시도를 하다가 몇 장 못 가서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부분에서 도저히 진도를 못 나가고 그만두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꾹 참고 어찌 어찌해서 출애굽기의 중간 부분까지 간신히 갔다가 거기서 성경 읽기를 포기했습니다.

다른 창세기의 내용도 기가 막혔지만, 특히 하나님의 축복과 부르심을 받았다는 아브라함이나 야곱이 보여주는 말할 수 없는 비겁한 행동과 거짓말은 하나님의 공의와 안목을 의심케 했고 그런 상태로 출애굽기까지 참고 어렵게 넘어갔을 때 나오는 내용은 더 믿어지지가 않아서 그만 읽어도 되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했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10번이나 되는 재앙을 이집트에 내리는 것을 직접 보고 또 홍해가 갈라져서 건넜을 뿐 아니라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받았다고 나오는 데, 상식상 그런 걸 직접 보고 경험했다는 민족이 조금 있다 불평하고, 조금 있다 따지고, 모세가 잠깐 산에 올라 갔다고 금새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이 말이 되려면 그런 기적들을 봤다는 게 사실이 아니거나 민족 전체가 집단으로 치매를 앓고 있거나 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두 번째 이유 보다는 첫 번째 이유가 훨 말이 된다고 판단이 되어 결국 성경의 내용을 알려던 걸 포기하고 그보다 훨씬 수월한 작업인 내가 꾼 꿈들이 얼마나 허황되고 고로 신경 쓸 가치가 없는 가를 스스로에게 확신시키는 분석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1.일단 내가 꾸었던 의미심장한 4가지의 꿈은 모두 예수나 기독교에 관한 꿈이 아니다. 세 번째의 꿈을 보자면 천상에서 죄를 짓고 이 세상에 태어나 고생 중이라는 생각이 들며 깼었는데 그것은 분명히 내가 갖고 있던 윤회나 불교 적인 개념에서 온 것이니 어떤 특정 종교와 연결 짓기엔 일관성이 없다.

2. 일단 가장 처음 꿨던 꿈을 살펴보자. 구름 위에 예수라니. 얼마나 우습고 유치한가. 산신령이나 손오공도 아니고 예수가 웬 구름을 타고 다니나. 이것은 크면서 흔히 보아왔던 동화나 전설에 나오는 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고 서양의 종교인 예수에게 동양의 전설에나 나오는 구름 타고 다니는 모습이 접목된 것만 보아도 신빙성이 없다.

3. 두 번째 꿈 역시 확연하게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꿈에 들린 음성에는 분명, ‘죄를 지은 사람은’이라고 했는데, 정작 하늘로 솟구치며 올라간 무리들은 네발 달린 짐승들이었다. 이런 오류가 있기 마련인 게 꿈인데 그런 것들에 마음을 두고 신경 쓸 필요가 대체 뭐 있나.

4. 세 번째 꿈은 다시 말하건대 아예 예수나 기독교 꿈도 아니고 네 번째 꿈에서도 절에 갔다 온 후에 꾼 것이니 그 여파로 관세음보살이 꿈에 나왔던 것일 테니 이상할 것 하나 없고 더구나 여기에도 불일치가 있으니 막상 사람들이 건져 올린 건 성모 마리아상. 그러니 이것 역시 오류. 끝!

이렇게 머릿속에 구미에 맞도록 싹 정리시키고 나니 잠시 혼란스러웠던 마음도 산뜻해지고 홀가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교회에 나와보라고 꾸준히 전도하던 한 분에게 그 예의, ‘예수 꿈만 네 번, 교회 안 가요.’를 던지다, ‘아, 세 번째 꿈은 예수 꿈도 아니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꿈 얘기를 자기에게 해보라고 권했고 그때 남에게는 처음으로 그 꿈들의 내용을 얘기했는데 다 듣고 나더니, ‘당신의 네 가지 꿈은 모두 예수의 꿈입니다.’라는 가히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잘 정돈해 놓았던 ‘꿈같은 건 신경 쓰지 말아야 할 가장 첫 번째 이유’로 세워져 있던 사고가 삐꺼덕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얼른 어떻게 천상에서 죄를 짓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게 불교가 아닌 기독교 적인 개념이냐고 반문했고 그는 성경에 보면 우리는 모두 죄를 짓고 이 땅에 태어난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원죄를 지었고 그 이후로 우리는 낙원에서 쫓겨나 모두 죄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때까지 ‘죄’ 하면 ‘업’을 떠올렸던 저는 그야말로 할 말을 잃었었습니다. 4가지의 꿈들이 다 기독교적인 꿈이라는 새로운 사실에 크게 흔들린 저는, 실은 성경의 내용이나 알고 싶어서 성경책 읽는 시도를 몇 번이나 했었지만 누가 누굴 낳고 누가 누굴 낳고에서 번번이 포기하고 말았다고 얘기했더니 그는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져 있단 말을 해줬습니다. 그러면서 구약은 읽기 어려우나 신약은 읽기가 훨씬 수월할 거라며 예수님 오신 후부터의 이야기가 적혀있는 신약부터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분과의 대화로 마음이 움직인 저는 함께 교회에 나가보겠다고 약속하고 배우자를 설득해 예배에 참석하게 됐는데, 작은 교회의 나이 많은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들판의 꽃들도 입히시고 하늘을 나는 새들도 스스로 수고하지 않아도 먹이신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렇기에 우리도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하나님은 우리처럼 Pets’ Mart (애완용 동물 가게)에서 먹이를 사 먹이는 그런 분이 아니시라고 하는데 갑자기 자연의 모든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먹고 거할 곳을 찾아 평화로이 살아가는 모습이 떠오르며 뜨거운, 지금 생각하면 회심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때까지 머리 속에 신과 인간과 생명과 소멸과 운명과 윤회의 정의를 내려놓고 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감히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말 할 수 없이 죄송스럽고 턱없이 느껴져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설교로 크게 감동받은 저는 성경에 두 부분이 있고 신약이 읽기 훨씬 수월하대니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는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해 이제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신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마태, 마가, 누가, 요한까지 참고 읽어나가던 저는 네 번이나 반복되는 비슷한 내용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쓸 내용이 없으면 장장 4번을 우려먹나 싶었고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들의 연속 속에 결국 신약 읽기를 도중하차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세상적인 생각으로 중학교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삼국지 같은 영웅전이나 무협지처럼 생각하고 성경을 읽어가던 저에게 예수라는 인물과 12제자들의 행각은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삼국지의 유비를 사람들은 덕장이라고 하는데 그에겐 너무도 용맹하고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부하들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삼국지를 읽는 어린 저의 눈엔 유비 밑에 있는 부하들이 유비보다 훨씬 나은 인물들로 느껴졌습니다. 유비는 우유부단하고 겁도 많은데다 특출난 게 없어 보이는데 훌륭한 제자들이 그를 위해 충성하고 삼국지의 저자는 그를 좋게만 묘사하고 있는 반면에 조조는 딱히 더 나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지혜로운 것 같은데 너무 나쁘게만 서술하는 편파적인 책이란 생각을 하며, ‘유비가 덕장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닌 바로 인덕이었구나.’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라는 인물은 자신을 구세주라고 믿으며 당나귀를 타고 다니던 과대망상 돈키호테의 모델이 됐던 게 분명해 보였고 그 부하들은 한결같이 지리멸렬한 게 총명하지도-별로 어려운 것 같지도 않은 비유를 항상 못 알아들어서 따로 설명해줘야 하고, 용감하지도 못해 충성스럽지도 않으니-그토록 따라다니든 예수가 잡히니 모두 도망가버리는, 그런 부하들을 한 명도 아니고 한결같이 열두 명이나 뽑은 예수라는 인물조차 한심하게 여겨졌고 그중 한 명은 자신을 팔아넘기기까지 하니 이 무슨 희한한 내용인가 싶었습니다. 자신도 못 구하고 사람 볼 줄도 모르는 인물이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고 구세주? 더구나 그렇게 죽은 예수가 부활했다고 서술하는 부분은 더 희안한 것이 제자들도 그의 모습을 미처 못 알아봤다는 부분까지 나오니 기가 막혀서, ‘아니,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딴 사람이 사기 치는 것이었을 테니?’ 싶어지는 내용을 네 번 반복해 읽자니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어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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