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을 속여 죽게 한 늙은 선지자 2

앞 글에‘에서 적었듯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닥쳤던 너무하게만 느껴지던 죽음이 어느 정도 해결된 후 계속 성경을 읽어가던 어느 날 또 다른 부분이 풀어졌습니다. 바로 사람의 속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은 늙은 선지자가 속이는 걸 아시겠지만 한낱 인간인 하나님의 사람이 무슨 수로 알겠냐는 거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같이 갈 수 없다는 그에게 늙은 선지자가 거짓말하는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왕상13:18).” 성경을 여러 번 통독하기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밑줄 친 부분의 한 단어에 어느 날 ‘어!’하며 놀라게 됐습니다. 예언서 및 신구약을 보면 선지자들에겐 말씀이 직접 임하지, 천사를 통해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받지 않습니다. 선지자 혹은 대언자로 불리는 이유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이상을 직접 본 후 그 내용을 남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선지자나 대언자란 명칭이 붙은 이들은 ‘여호와가 이렇게 이르노니’, ‘주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이상이니라’ 등등으로 말하고 성경도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니’ 등등으로 표현합니다. 천사가 와서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는 경우는 일반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일인데 성경엔 이런 경우도 여러 번 있습니다. 단 천사가 선지자에게 말씀을 전하게 한 경우가 역대상에서 딱 한 번 나오긴 합니다. 바로 다윗이 인구조사 한 일로 천사가 직접 나타나 사람들을 멸할 때, 나단에게 다윗에게로 가서 말하라고 명령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그때도 선지자 나단은 ‘천사가 그러라고 하더라’가 아닌 ‘여호와의 이름’으로 다윗에게 말합니다(대상 21:18-19). 그런데 이 늙은 선지자는 자길 선지자라고 소개하고 성경도 ‘벧엘에 있던 한 늙은 선지자’로 칭하는대도, ‘천사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일러줬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누군가에게 말을 전할 때, ‘어느 누가 그러는데 누군가한테서 그렇게 들었대’라며 소문내는 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았음이 은연중에 드러난 부분이었기에 하나님의 사람이 조금만 정신 차리고 있었더라면 이상히 여겼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그를 믿고 따라가고 늙은 선지자에게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는,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왕상 13:20)’라며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바로 된 경우로 서술합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사람이 이렇게 속아 넘어가게 된 것은 되돌아가는 길을 멈추고 쉬었을 때부터 이미 긴장 상태를 놓친 탓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말씀을 전하라고만 한 게 아니라 거기서는 빵도 물도 먹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로 그곳 모든 게 주께 부정하며 그러므로 버리셨음을 강조하신 것 같습니다. 마치 주님이 하나님 나라와 회개를 선포하도록 제자들을 내보내셨을 때,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는 곳은 떠나면서 그 발의 먼지까지 떨어버려 심판의 증거로 삼으라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막 6:11, 마 10:14). 또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직질하리라(마 10:16-17)’고 주의를 시키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그곳을 떠나 유다 땅을 다시 밟을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말고 사람을 삼가야 했습니다. ‘빵도 물도 먹지 않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은 채’ 유다 땅을 다시 밟을 때까지는 임무를 완수한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악하고 위험한 적진에 있는 상태였기에 서둘러 돌아갔다면 속임 당할 기회조차 없었을 겁니다. 세상 전쟁에서도 적진에서 임무를 수행한 군인은 위험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서둘러서 귀환하지 절대 적진에서 시간 끌지 않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살벌하고 위험한 영적 전쟁터에서 잠시라도 영적인 긴장과 민감함을 놓친다는 건 곧 실족하고 미혹되는 위험 상황에 놓이는 것입니다.

혹시 유다부터 벧엘까지 와서 긴장 속에 임무 수행하고 바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어 잠시 쉬었던 건가? 싶어서 그 당시 북이스라엘과 유다 지도를 찬찬히 살펴보았었습니다. 그랬더니 벧엘은 북이스라엘의 최남단 위치였고 유다의 경계선까지 그리 멀지 않은 약 2-3마일 정도였습니다. 즉, 걸어서 약 45분에서 1시간이면 되는 짧은 거리였다는 게 좀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북이스라엘 영토를 살아서 재빨리 떠나지 못했던 그는 사명으로 잠시 왔던 타향에서 객사하고 묻힘으로 조상의 묘실에는 들지 못합니다(왕상 13:22).

한편 이런 결과를 초래한 늙은 선지자는 속이는 마귀 노릇을 한 탓에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거짓 선지자’로 불리고 그렇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성경에 의거한 조금 다른 관점을 제시하자면 이렇습니다. 저는 여기엔 뚜렷한 선과 악(하나님의 사람과 거짓 선지자)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악한 세상을 살다간 연약한 두 선지자의 믿음의 여정과 결말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 속엔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사람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명령을 끝까지 이행하지 못한 채 이름없이 사라진 한 선지자와 예전엔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었지만(성경은 그를 늙은 선지자라고 하지 거짓 선지자라고 하진 않기에),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졌다가 일련의 사건으로 믿음을 회복하게 된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한 무덤에 장사 되어 묻히고 보존되는 같은 결말을 맞습니다.

처음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들은 늙은 선지자는 아마도 옛 생각에 어떡하든 교제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거나 직접 인도함 받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이렇듯 하나님보다 사람을 찾고 간접적으로라도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 염원으로 서둘러 뒤쫓아갔지만, 단호히 거절당하자, 상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자기 열망을 채우기 위해 서슴없이 하나님을 팔아 거짓말합니다. 그가 왜 더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옙니다. 그랬던 그에게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전달했던 심판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사람이 길에서 죽습니다. 그러자 그는 진심으로 애통해하며 시신을 가져와 자기 무덤에 묻고 아들들에게 특별한 당부를 합니다.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자기의 묘실에 두고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그를 위하여 슬피 우니라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그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왕상 13:29-32)”

‘…내 형제여 하며…슬피 우니라…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한때 자기 유익만을 구하며 거짓을 일삼고 죄 가운데 머물다가 하나님과 멀어졌던 늙은 선지자는 이 같은 눈물의 회개와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뤄질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과 늙은 선지자 얘기를 읽을 때 우린 대부분 하나님의 사람과 결부 시켜 교훈을 얻습니다. 하지만 믿음 생활하다 보면 오히려 늙은 선지자 같아질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늙은 선지자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있음이, 오늘 같은 악한 시대를 살아야 하는 연약한 우리에게 경고가 되고-우리도 자칫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고 누군가에게 마귀 노릇 할 수 있기에-또한 큰 은혜도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게 된 그는 뼈가 벧엘 제단에 불살라지는 최악의 결실을 볼 뻔했지만, 하나님의 사람과 한 무덤에 묻힌 덕에 뼈가 보존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속아 사명을 다 마치지 못한 하나님의 사람도 비록 고향에 있는 조상의 묘에 묻히는 최상의 결말은 얻지 못했어도 늙은 선지자의 무덤에 잘 장사 되어 묻히고 보존됩니다.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이르되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왕하 23:16-20)’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