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을 향한 다윗, 사울, 백성의 맹세

오늘은 한나와 입다의 서원에 이어 성경에 나오는 맹세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자의 반 타의 반 가장 많은 맹세의 대상이 된 사람은-총 3번-요나단이 아닐까 합니다. 아버지 사울과 달리 요나단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처단한 다윗을 처음 본 순간부터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던 인물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삼상 18:3-4)’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시기로 번번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고 요나단을 찾아와 도움을 청합니다. 요나단은 아버지가 그럴 리 없다면서도 정말 그게 사실로 밝혀지면 다윗이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윗에게,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인자함을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삼상 20:14-17)”.

그렇게 요나단의 도움으로 사울 손에서 도망쳤던 다윗은 세월이 흘러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요나단을 생각해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거둡니다. 또한 사울이 생전 기브온 사람들에게 행했던 악행 때문에 이스라엘에 3년 연속 가뭄이 들자 사울 자손 중에서 7명을 넘겨주어 죽이도록 허락할 때도,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삼하 21:7)” 넘겨주지 않습니다. ‘대대로 이스라엘의 종이 된 기브온의 역전’에도 썼듯이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기브온 사람들을 살려주겠다고 한 맹세로 기브온 사람들은 영원히 이스라엘에 접목되고 유구한 성경 역사 곳곳에서 쓰임 받습니다. 삼하 21장의 기록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기브온 사람들이 서로에게 했던 맹세를 기억하시고 직접 지켜주신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에게 한 맹세는 당사자들의 노력과 의지로 당대에만 지켜지고 끝난 게 아니란 점입니다. ‘요나단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다윗의 집과 맹세’를 한 탓인지, 하나님은 직접 대대로 수천 년에 걸쳐 그들 집안의 맹세를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말년에 악을 행하고 이방의 수많은 여인과 함께 우상 숭배하자 나라를 빼앗아 다른 이에게 주겠다고 하십니다. 단 다윗을 보아서 솔로몬이 아닌 그 아들의 때에 그렇게 할 것이고,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왕상 11:13)”라고 하시는데 다름 아닌 사울의 집이 속해 있던 베냐민 지파입니다. 이렇게 북 왕국과 남 왕국을 나누시면서 유다 지파에게 베냐민을 주어 메시아 왕국의 그림자가 되는 다윗 왕국을 함께 지속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물리적인 왕국이 없어지고 난 후에도 유다 지파의 혈통으로 오신 예수님이 가져오신 복음의 빛을 베냐민 지파인 바울이 온 민족과 온 땅에 널리 전파하게 하십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바울)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소리가 온 땅퍼졌고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롬 10:18)’.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구약에서 다윗을 핍박했던 사울처럼 신약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사울(바울)에게 그 구원의 십자가의 남은 고난을 채우도록 하십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남은 고난그의 몸된 교회위하여 내 육체채우노라(골 1:24)’. 놀랍게도 신구약을 통해 한결같이 흐르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구약의 물리적인 왕국에서만이 아닌 신약의 영적인 하늘의 왕국에서도 효력을 내어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영원히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나단을 끼고 일어나게 되는 또 다른 맹세에 대한 기록은 사울과 백성들 간의 것으로 사무엘 상 14장에 나옵니다. 사울이 왕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침공으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모두 숨어 지내는 상황에서 요나단은 하나님을 의지해 무기 든 시종 한 명만 데리고 블레셋 부대에 침투하고 하나님이 요나단 손에 블레셋을 넘겨주사 파죽지세로 쓰러지게 합니다. 블레셋 진영에서 들려오는 소란함과 땅의 흔들림으로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사울은 블레셋 군대를 추격하며 무찌르는데,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삼상 14:24)’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허세 가득한 맹세를 합니다.  그 덕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랜 시간 싸우다가 기진한 백성들은 배고픔을 참지 못해 탈취한 가축들을 피째 잡아먹고, 아버지의 이런 맹세를 듣지 못했던 요나단은 지팡이 끝에 꿀을 조금 찍어 먹습니다.

결국 이 일로 블레셋 사람들을 계속 추격할지 말지를 묻는 사울의 질문에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사울은 누구에게 죄가 있어 이런 일이 생긴 건지 가리겠다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그가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너희는 저쪽에 있으라 나와 내 아들 요나단은 이쪽에 있으리라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삼상 14:39-40)’합니다.

결국 제비로 백성들이 아닌 사울과 요나단이 뽑히고, 사울과 요나단 사이에 다시 제비를 뽑자 요나단이 뽑히게 됩니다. 사울이 ‘네가 한 일을 이실직고하라’고 하자 요나단은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인데 죽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합니다. 이에 사울이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삼상 14:44-45)’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울은 결국 블레셋 사람들을 마저 추격하는 걸 포기하고 돌아가 버립니다. 그리하여 요나단의 목숨을 지키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던 백성들은 하나님께 했던 맹세를 지킨 것이 되지만 오히려 죽이겠다고 맹세했던 사울은 지키지 못한 것이 됩니다. 맹세와 서원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땐 사울이 설사 요나단이라도 반드시 죽이겠다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해놓고(삼상 14:39) 요나단을 살려둔 것이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확실치 않았었습니다. 요나단은 당연히 죽을 일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울이 쓸데없는 맹세를 백성에게 하게 해서 불러온 죄악인 걸 알지만, 잘잘못을 떠나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지키지 못한 것이니 어떻게 해석해야 좋은지 헷갈렸던 겁니다.

이와 같은 맹세가 ‘맹세와 서원의 차이’에서도 설명한 레위기 5장의 헛된 맹세의 좋은 예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입술로 맹세하여(oath)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하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말하여 맹세한(oath) 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레 5:4-6)”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순종하지도 않았던 사울은 이처럼 지키지도 못할 쓸데없는 맹세를 함부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남발하는데, 이럴 땐 그런 맹세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허물에 대해 알게 됐다면 레위기 5장에 따라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렸어야 합니다. 더구나 그런 헛된 맹세로 배고픔을 참지 못한 백성들이 피째 먹는 죄를 범하게 했으니 더욱 왕으로서 백성을 잘못 이끈 책임을 속죄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을 젖히고 자신이 대신 하나님께 번제를 올릴 정도로 하나님 법에 무지했거나 혹은 무시하는 심령을 지녔던 사울은(삼상 13장) 이때도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맹세는 고려도 하지 않은 채, 오직 단호한 백성들의 기세에 눌려 아무 일 없었던 듯 스르륵 돌아가고 맙니다.

Published by tnb4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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