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선 ‘기드론’이란 지명이 11번 나오는데 이 11구절에 대한 요약 및 설명을 지난 두 글에 나눠 썼었습니다(기드론 시내를 건넌 다윗과 예수님, 기드론 시내에서 있은 일).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숫자는 여럿이지만 11이란 수는 ‘심판’을 의미하는 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심판’하면 무조건 죽음이나 어떤 처벌만 생각해서 안 좋게 느껴지지만 ‘심판:judge’의 바른 의미는 옳고 그름을 가리고 그에 따른 합당한 상과 벌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같은 심판이 누군가에겐 보상을, 누군가에겐 손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11은 선과 악을 나누고, 상과 벌로 나누는 ‘나뉨’을 뜻하고 있음을 성경 읽는 중에 깨달았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묵상하고 탐구하다 보면 자연히 ‘수’에 대한 개념도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언젠가 성경을 통독하다 민수기 11장 1절에 이르렀을 때 ‘백성이 불평하니 주(여호와)께서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니라. 주(여호와)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분노하사 그들 가운데 주(여호와)의 불이 붙게 하시고 진영의 맨 끝 부분에 있던 자들을 소멸시키시매’로 시작해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민수기는 영어로 ‘Numbers’라고 불리는 책인데 10장을 읽을 때만 해도 모세의 진영이 머물고 나아갈 때 따른 행군 방식을 자세히 서술하다 끝납니다. 그런데 11장으로 넘어가자마자 갑자기 ‘그리고 사람들이 불평하니 주께서 진노하사 그들 가운데 주의 불이 붙어 진영 가장자리에 있던 그들을 살랐다’는 내용이 나와 더욱더 그랬던 거 같습니다. 이 구절을 개역개정으로 적으려니까 번역이 마치 사람들이 아닌 진영 끝자락에 불이 붙었다는 것처럼 읽혀서 흠정역으로 적었습니다. 어찌 됐거나 이 민수기 11장은, 1절에 다베라에서 사람들이 여호와를 원망하다가 불의 심판을 받는 것으로 시작해서 먹을 건 만나밖에 없다고 울며 고기를 달라고 불평하다가 34절에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탐욕 가운데 하나님의 진노로 큰 재앙이 임해 심판받는 거로 끝납니다.
하지만 민 11장엔 이런 심판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모세가 임무의 막중함을 호소하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이스라엘을 치리하고 심판할 70인의 장로를 세우는 기록도 포함돼 있습니다.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민 11:14-17)’
그렇게 민수기 11장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고 성경을 통독해 나가다가 신약의 히브리서 11장에 이르렀을 때, 모든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그들이 받은 고난과 믿음의 증거와 보상을 다루는 걸 발견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민 11:39-40).’ 즉, 구약의 민 11장이 악인에 대한 심판을 다루고 있었다면 신약의 히 11장은 의인이(믿음의 사람) 받는 심판(보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여겨졌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돼서 성경의 각 11장을 쭉 읽어보게 됐었는데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지 사람이 될 수 없음을 느끼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에 모세 5경에 나오는 11장들을 간략히 적자면, 창세기 11장은 바벨탑 사건과 그런 도발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였던 세상 언어가 여럿으로 나뉘는 거로 시작합니다. 그런 반면에 노아의 세 아들 중에서도 특별히 믿음 라인의 시조가 되는 셈 자녀들의 이름이 쭉 나열되다가 마침내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처음으로 등장하며 끝납니다. 출애굽기 11장은 하나님의 진노로 내려질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을 앞둔 이집트와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도리어 은, 금패물을 얻어 나올 이스라엘 민족을 다루고 있습니다. 레위기 11장은 이스라엘이 먹을 수 있는 육지 및 바다, 공중의 모든 정한 것과 먹거나 사체를 만지면 안 되는 부정한 것들에 대한 나눔과 자세한 규례를 담고 있습니다. 민수기 11장은 앞부분에서 이미 다뤘습니다. 신명기 11장은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행하셨던 심판과 고라의 반역, 그리고 함께 산채로 땅에 삼켜진 르우벤 자손들을 상기시키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키면 받게 될 복과 불순종할 경우 받게 될 저주가 나옵니다.
역사서로 넘어가서 여호수아 11장은 하솔 왕 야빈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북쪽 산간지방과 그 주변 가나안 모든 왕과 연합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허락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하여 가나안 땅 곳곳의 성읍들을 진멸한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수 11:22-23)’라고 끝맺습니다. 사사기 11장은 ‘한나와 입다의 서원’에도 적었지만, 하나님을 힘입어 쳐들어온 암몬을 물리친 입다가 한 서원과 그 서원을 이행한 그와 외동딸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흥미롭게도 사사기 다음 책인 사무엘상 11장도 암몬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오는 거로 시작합니다. 그 전 10장에서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 받았던 사울이 성공적으로 암몬을 치고 승리하여 사무엘이 백성들과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화목제를 드리매 모든 사람이 크게 기뻐하는 거로 끝맺습니다. 사무엘하 11장은 전쟁에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다윗으로 시작해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한 다윗이 결국 우리아를 죽게 만들고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 11:27)’로 끝맺습니다.
열왕기상 11장도 11에 걸맞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절에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왕상 11:1-2)’로 시작해서 결국 그 여인들에 의해 말년에 우상숭배합니다. 그런 그에게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시는 심판의 구절이 왕상 11:11절에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대적할 사람들을 일으키시는 장면과 40년을 다스린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로 오르는 것(왕상 11:43)으로 끝맺습니다. 열왕기하 11장은 남왕국 역사 중 유일한 여자의 통치를 담고 있습니다. 아하시야의 모친인 아달랴가 반란을 일으켜 왕족들을 죽이고 6년간 통치하는 거로 시작해서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요아스 왕자를 여호와 전에 숨겨 양육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 후 7년째 됐을 때 제사장 여호야다는 그동안 숨겨 왔던 요아스를 사람들에게 보이고 호위병들과 함께 아달랴를 죽이고 왕정을 복귀시킵니다. 이렇게 7살 된 왕을 보좌에 앉힘으로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 중이 평온해진 기록으로 끝맺습니다.
역대상 11장은 사울이 죽은 후 드디어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보고…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전에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대상11:1-2)’라고 하며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 거로 시작합니다. 또한 다윗이 훗날 ‘다윗성’으로 불릴 시온산 성을 여브스 족속에게서 뺏는 장면과 흥미롭게도 11절부터는 다윗과 함께했던 용사들의 수효와 이름 및 간단한 업적 소개가 시작됩니다.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수효가 이러하니라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은 삼십 명의 우두머리라 그가 창을 들어 한꺼번에 삼백 명을 죽였고(대상 11:11)’라고 시작하는 기록은 모든 51명 용사의 이름이 일일이 나열된 47절로 끝맺습니다. 왕상 11:11이 솔로몬의 우상숭배에 대한 심판으로 나라가 나뉠 거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담고 있다면, 대상 11:11은 히브리서 11장처럼 다윗과 동고동락했던 용사들의 이름과 업적을 보상(심판)으로 나열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과연 우연일 수 있을까요?
역대하 11장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로보암이 반역함으로 나라가 나뉘게 되자 르호보암이 군대를 모아 여로보암을 치러 올라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대하11:4)’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을 전해 들은 르호보암은 되돌아오고 북이스라엘에 있던 제사장과 레위인들, 또 각 지파의 사람들이 남 왕국으로 망명해 르호보암을 돕는(대하 11:13-17) 내용이 나옵니다. 끝으로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행하여 그의 모든 아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온 땅 모든 견고한 성읍에 흩어져 살게 하고 양식을 후히 주고 아내를 많이 구하여 주었더라(대하 11:23)’라고 마칩니다. 역사서의 마지막인 느헤미야 11장은 성벽을 건축한 후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 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 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느 11:1)’한 기록으로 시작해서 예루살렘에 거한 지도자들의 이름과 그 족보와 자손의 수효와 간단한 설명으로 끝맺습니다. 이처럼 11장엔 놀랍게도 한결같이 정죄의 심판, 나눔, 혹은 보상의 심판을 다루고 있으며 믿음의 용사들의 이름과 수효가 열거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상이 모세 5경에서 역사서까지 나오는 11장 내용을 간략히 추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