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7절기:무교절과 그리스도

오늘은 유교절 1편유월절 2편에 이어 두 번째 절기인 무교절에 관해 쓰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유월절 희생물을 양과 염소 떼 혹은 소 떼에서 취하여 드리되 “그것과 아울러 누룩 있는 빵을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누룩 없는 빵 곧 고난의 빵을 그것과 아울러 먹을지니라. 이는 네가 이집트 땅에서 급히 나왔기 때문이니 이로써 네 평생 동안 네가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신 16:3)”고 하십니다. 이처럼 누룩 없는 빵 즉, 무교병은 고난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무교병(unleavened bread)이 들어간 구절들을 모두 뽑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제일 처음 등장한 곳은 롯이 소돔에 나타난 천사들을 대접했을 때였습니다(창 19:3). 이 점은 무교병의 성경적 의미를 생각할 때 참 흥미롭습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도시, 곧 하늘에서 내릴 심판의 불로 멸망할 도시에서 롯은 고통당했음을 성경은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들을 뒤엎으심으로 정죄하사 재가 되게 하여 그 뒤에 경건치 아니하게 살 자들에게 본보기로 삼으셨으며 사악한 자들의 더러운 행실로 인해 괴로움을 받던 의로운 롯을 건져 내셨으니 (이는 저 의로운 사람이 그들 가운데 거하며 그들의 불법 행위를 보고 들으면서 날마다 자기의 의로운 혼을 괴롭게 하였기 때문이니라.)(벧후 2:6-8).”

비록 화려한 문명 속에서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롯의 혼은 억눌리고 괴로웠습니다. 이 같은 영적 현실을 반영하듯이 그는 천사들과 함께 그 죄악 된 도시에서 누룩 없는 ‘순수하고 진실한(고전 5:8)’ 고난의 빵을 먹습니다. 이에 비해 세상과 분리되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도시를 바라며 장막에 거했던 아브라함이(히 11:9, 16) 앞서 천사들에게 대접했던 빵에는 (창 18:6) ‘unleavened(누룩 없는)’란 수식어가 없습니다. 이것은 롯처럼 암울한 상황이 아닌 영적 풍요로움과 감사함 가운데 나누는 화평의 식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교병(누룩 있는 빵)은 풍요와 감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화평 헌물의 감사 제물에는 유교병을 올렸으며(레 7:13), 봄 추수의 끝을 기념하는 오순절에도 누룩 넣은 빵 두 덩이를 올렸습니다(레 23:17).

하지만 누룩은 여호와께 드리는 최상급 헌물인 번제물에는 넣으면 안됐습니다(레2:11; 7:12; 8:2; 민 6:15). 누룩은 위선, 부패, 악독 및 거짓 교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눅 12:1; 고전5:7-8; 갈 5:9). 하나님은 유월절과 무교절 기간엔 죄를 상징하는 누룩을 아예 집에서 모두 없애라고 하십니다. “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누룩 있는 것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니(출 12:19).” 따라서 유대인들은 지금도 유월절을 앞두고 집에서 누룩을 제거하기 위해 말끔히 대청소한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유월절을 앞두고 누룩을 제거하시기 위해 ‘아버지의 집(성전)’을 청소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유월절이 가까이 오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사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는 가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이것들을 여기서 가져가고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시니(요 2:13-16).” 이러한 구절들은 우리의 몸이 곧 성전인(고전 3:16)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흠 없고 점 없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의 몸(고전 3:16)과 우리의 삶은 고난당한 그리스도의 몸처럼 ‘순수하고 진실한(고전 5:8)’ 누룩 없는 빵이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고난, 순수, 진실을 상징하는 무교병(히:Matzah)은 구멍이 뚫리고 줄무늬가 있는 크래커 모양과 비슷합니다.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Matzah 사진 하나를 첨부하고 싶었지만, 저작권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 아쉬운 대로 직접 만들어 구운 사진을 올립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기념 만찬 때 이처럼 생긴 matzah 3개를 담은 그릇에서 중간에 있는(두 번째) matzah를 반으로 쪼개(break), 그 반쪽을 하얀 천에 감아 집 어딘가에 감춰놓는다고 합니다. 이 숨겨진 반쪽은 afikomen(헬: 앞으로 올 자, 디저트)라고 하는데 만찬이 끝나면 아이들에게 찾도록 합니다. 그리고 ‘afikomen’을 찾은 아이는 선물을 받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그 반쪽을 쪼개어 나눠 먹는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matzah 3개를 먹는 전통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비유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부, 성자, 성령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이처럼 구멍이 뚫리고(pierced) 줄이 간(striped)  두 번째 matzah가 조각났다는 것도 우리의 허물로 찔리고(pierced) 채찍에 맞아 찟기신(striped) 예수님의 몸과 제비뽑기로 나눠진 예수님의 옷을 생각나게 합니다(사 53:4-5, 마 27:35). 그리고 하얀 천에 싸여 숨겨진 matzah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는 몸이 3일간 세마포에 싸여 무덤에 감춰졌던 것과 찾았을 때 받는 선물은 주님을 영접했을 때 선물로 성령을 받는 걸 떠오르게 합니다(엡 4:7-8). 이런 놀라운 풍습이 있음에도 아직도 유대인들에겐 모세의 얼굴을 덮었던 천이 걷히지 않아 주님을 모른다는 게 안타깝습니다(고후 3:13-14).

유월절 만찬 때 ‘afikomen’을 아이들이 다 함께 나눠 먹는 것처럼 주님은 유월절 만찬에서 matzah(무교병) 하나를 취한 뒤 감사 기도를 올리시고 쪼개어(broke) 제자들에게 나눠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준 내 몸이라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눅 22:19)”고 하십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가 절대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도록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인 자신의 몸을 직접 주셨습니다. 죄가 없는 주님이 우리 죄를 제거하시려고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요일 3:5),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고 죄가 되신 것입니다(고후 5:21).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는 누룩 없는 자들인즉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으로도 말며 오직 순수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빵으로 하자(고전 5:7-8)”고 우리에게 촉구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살피며 사악함의 묵은 누룩을 성령께 의지해 태워버리고 순수하고 진실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걸으며 성결로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요일 1:9)”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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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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