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번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6장에 덧붙인 내용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6장 6절에 ‘불가능하다’란 단어가 없다는 걸 발견하고 직역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분들을 위해 4절에 대한 설명도 더 덧붙이게 됐습니다. 6장 번역을 미리 보신 분들은 이해를 돕기 위해 교정한 부분을 밑줄 쳤으니 그 부분만이라도 한 번 더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위 번역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장 앞부분에 ‘gar(가르)’가 들어갔기 때문에 문장 끝부분이 ‘~기에, ~때문에’로 끝나야 합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니라. 그가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하였기에“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위 번역도 괜찮습니다. 본 절에 ‘해석’으로 번역된 단어는 ‘번역, 통역’을 의미하는 ‘herméneuó(허르메이뉴오)’입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브라함도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그 이름을 번역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그다음은 또한 살렘 왕이니 곧 화평의 왕이라“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본 절에 ‘족보도 없고’로 번역된 헬라어는 ‘agenealogétos(어제네알라제이토쓰)‘로 ‘족보, 계보’를 뜻하는 ‘genealogy’에 ‘없다’를 뜻하는 ‘a’가 붙은 합성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에서 ‘닮아서’로 번역된 헬라어 ‘aphōmoiōmenos(아포마이오메노쓰)’는 ‘~처럼 됐다, ~처럼 만들었다’란 의미로 영어로는 ‘having been made’입니다. 이처럼 완료형 수동태(have been ~ed)에서 have가 동명사 형태인 having으로 바뀐 경우는 이미 일어난 과거의 어떤 일이 현재나 미래의 어떤 일에 원인이 됐음을 나타낼 때 쓰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계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을 뿐만 아니라(de) 하나님의 아들처럼 된 그는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본 절에서 ‘얼마나 높은가’로 번역된 헬라어 ‘pélikos(페이리코쓰)’는 ‘얼마나 큰가, 얼마나 위대한가’란 의미입니다. 신약에 딱 두 번 쓰였는데 본 절과 갈라디아서 6장 11절에 바울이 “내 손으로 너희에게 얼마나 큰 글자들로 썼는지를 보라”라고 하는 구절입니다.
‘노략물’로 번역된 ‘akrothinion(에크로띠니온)’은 본 절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헬라어로 ‘수북이 쌓인 물건 중에 가장 좋은 것, 첫열매, 노략물중 최상품’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라’로 번역된 헬라어 ‘theōreite(떼오레이테)’란 단어는 ‘뚫어지게 보다, 살펴보다, 분별하다, 동참하다’란 의미로 신약에 12번 나옵니다(단어를 클릭하면 12구절 모두 볼 수 있고, 숫자 12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길 바랍니다). ‘theóreó(떼오레오)’라는 원어에서 파생한 이 단어는 특히 분석하려는 의도로 찬찬히 살펴보는 걸 의미하며 ‘연극’을 뜻하는 ‘theatre’도 ‘theóreó에서 온 단어입니다. 따라서 본 절의 의미는 그냥 생각해 보라는 게 아니라 성경을 펼쳐 그 부분을 눈으로 살펴보라는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가 살펴보라. 족장 아브라함조차도 그에게 노획물의 최상품 중 십분의 일을 주었고”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위 번역도 아주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실로 레위의 아들들 중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그 백성들에게, 즉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온 그들의 형제들인데도 십일조를 취해 받으라는 명령을 받았느니라”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위 번역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러나’란 접속사가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받은’에서 ‘약속’이 단수 처리가 되어 있는데, 신약에 ‘약속’이란 단수는 예수 그리스도나 성령이 그 대상일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약속들’이란 복수로 기록하는데 본 절도 헬라어 복수인 ‘epangelias(에판겔리아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영어 성경도 이 단어를 복수로 번역했다 단수로 번역했다 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약속’이란 어원이 나오는 52구절을 원어 중심으로 모두 단수와 복수로 분별해서 풀어봐야겠다 싶습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자신의 계보가(족보가) 이어지지 않은 그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거뒀고 약속들을 가진 그를 축복하였나니“
7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본 절에서 ‘논란’으로 번역된 헬라어 ‘antilogia(엔티로지아)’는 신약에 4번 쓰였는데, ‘부정하다, 반대하다, 논쟁하다, 반박하다’는 의미로, 영어로는 ‘gainsaying 또는 contradict’입니다(세상, 창조물을 의미하는 4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길 바랍니다).
‘논란의 여지 없이’로 번역된 헬라어 문장은 ‘chōris de pasēs antilogias’인데 여기서 ‘코리스’는 ‘~에서 분리된, ~상관없는, ~이 없는’이란 의미이며 ‘파시스’는 ‘모든, 각종’이란 의미입니다.
‘낮은 자’로 번역된 ‘elatton(엘라톤)’은 ‘더 적은, 더 작은, 더 가난한, 열등한’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높은 자’로 번역된 ‘kreittón(크라잇톤)’은 ‘더 강한, 더 나은, 월등한’의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온갖 반박의 여지 없이 더 작은 자가 더 나은 자에 의해 축복받느니라”
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위 번역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죽을 자들’로 번역된 헬라어 ‘apothnēskontes(에포뜨네이스콘테스)’는 영어로 ‘dying’ 즉 ‘죽어 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7장 번역에 많이 빠져 있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성경에선 ‘진실로’로 많이 번역된 ‘정말로, 참으로, 진짜로’를 의미하는 헬라어 ‘men(멘)’입니다.
이런 것들을 다 넣어서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 참으로 여기서는 죽어 가는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지만 저기서는 살아 있다고 증언된 이가 받느니라“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위 번역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원본엔 ‘and’를 의미하는 ‘kai(카이)’ 말고도 ‘as, so that, since’을 의미하는 접속사 ‘hōs(호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하다, 답하다, 명령하다’를 의미하는 ‘eipein(에이페인)’ 또한 나옵니다.
따라서 원본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또한 그렇기에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을 통해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말할 수 있도다“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위 구절을 보면 이해를 돕기 위해서인지, 아브라함이란 이름도 들어가 있고 레위란 이름도 들어가 있지만 원어에는 ‘그’라는 명칭만 나옵니다. 영어 킹제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이미’로 번역된 헬라어 ‘eti(에티이)’는 ‘아직도, 아직’이란 의미이지 ‘이미’가 아닙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직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멜기세덱이 그를 만났었을 때에 그는 아직도 그의 아버지 허리에 있었기 때문이라“
9절과 10절의 의미는 레위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아버지 허리 어딘 가에 있었을 때)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후손인 그도 아브라함을 통해 바친 거나 마찬가지란 것입니다.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본 절에서 ‘온전함’으로 번역된 헬라어 ‘teleiósis(텔리오시스)’는 성경에 두 번밖에 쓰이지 않는 단어로 ‘완성하다, 성취하다, 완벽하다, 끝마치다’란 의미로 ‘혼인의 마지막 단계인 합방(consummation)’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본 절 외에 누가복음 1장 45절에 쓰입니다.
‘그 아래에서’라고 번역된 헬라어 ‘epi(에피)’는 오히려 ‘위, 위로, 기본으로, 밑바탕으로, 근간으로’란 의미이고 ‘그’는 ‘autēs(오테스)‘로 ‘it 혹은 her’로 번역됩니다. 또한 이 구절에도 ‘정말로, 참으로, 진짜로, 진실로’를 의미하는 헬라어 ‘men(멘)’, 영어로는 ‘truly, indeed’란 단어가 있는데 번역엔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10절에 나왔던 ‘아직도, 아직’이란 의미의 헬라어 ‘eti(에티이)’도 빠져 있어서 넣고 원어에 맞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레위의 제사장 직분으로 정말(‘men(indeed)’) 성취됐다면 (백성이 그것을 근간으로 율법을 받았었느니라) 아론의 반차에 따라 부름받지 않고 아직 멜기세덱의 반차에 따르는 또다른 제사장이 일어날 필요가 무엇이겠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한 구절, 한 구절, 번역할 때는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듭니다. 한 단어, 한 단어 살펴 보고 일일이 어법을 비교하고 분석하고 문법에 맞게 재배치해서 읽어보고, 여러 의미 중에서 가장 적합한 의미를 찾아 고르고 넣어보는 작업을 하며 고심하며 번역을 마칩니다. 한 구절을 붙잡고 한시간도 넘게 작업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런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쳐 번역된 구절만 읽어보면, 그런 숨은 노력이 드러나진 않습니다. 일반 문서를 번역하는 거라면 지금 들이는 노력의 반의반도 안 할 것 같습니다. 일반 문서였으면 엉터리로 했을 거라는 게 아니라 그 정도만 해도 적당하고 의미 전달에 아무 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성경 연구를 수년간 해오면서 번번이 경험한 것은, 성경엔 어느 한 자도 그냥 있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단 한 획, 한 철자도 너무도 정교하고 오묘하게 배치되어 있음을 알기에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해 여러 번의 반복적인 확인 작업을 통해 번역하고 있습니다. 언젠간 마주하게 될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을 생각하며 나의 속중심을 살피시고 감춰진 것들을 밝히 보여 알게 하시는 성령님의 조명에 의지해 작업합니다. 전에도 성경에서 오역된 단어들을 원어 중심으로 해석해 올리는 작업을 했긴 했지만 이렇게 한 권의 모든 구절을 원어 중심으로 번역하는 일은 처음이라서, 히브리서의 다른 구절들도 그렇지만 본 절을 번역하며 다시 한번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생각과 의도를 점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자 적습니다.
본 절에 ‘바꾸다 혹은 변하다’로 번역된 두 단어는 모든 영어 성경에도 ‘change’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제사 직분이 바뀌었다’에 쓰인 헬라어는 성경에 딱 한 번 밖에 나오지 않는 ‘metatithemenēs(메타티떼메니스)’로 ‘옮기다, 교환하다, 자리를 바꾸다, 떠나다, 변하다’를 의미하는 어원인 ‘metatithemi(메타티떼미)’에서 왔습니다. 이 어원이 쓰인 구절은 성경에 6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단어를 누르시면 모든 구절을 볼 수 있고 대부분 ‘옮기다 혹은 옮겨지다’로 번역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몇 구절만 설명하자면, 사도행전 7장 16절에 에굽에서 죽은 야곱 및 조상들을 아브라함이 묻힌 묘지로 이장하기 위해 세겜 땅으로 옮겨왔을 때 쓰였고, 갈라디아서 1장 6절에 얼마나 빨리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또다른 복음으로 너희가 옮겨가는지(떠나는지) 놀라울 뿐이라는 구절에도 쓰였으며, 히브리서 11장 5절에 에녹이 이 세상에서 저 하늘로 옮겨졌을 때도 쓰인 단어입니다.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에서 쓰인 헬라어는 ‘metathesis(메타띠이씨쓰)’로 성경에 딱 3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단어를 누르면 3구절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어원은 역시 ‘metatithemi(메타티떼미)’에서 왔다고 하는데도 이 3구절은 앞에 나온 6구절과 함께 나오지 않고 따로 구분됐습니다. 그래서 ‘메타티떼미’란 어원을 쓰는 구절은 9구절이 되는 셈입니다. 어원이 같기에 뜻도 비슷해서, ‘옮기다, 바꾸다, 떠나다’로 번역되며 이 단어 역시 에녹이 옮겨진 히브리서 11장 5절에도 등장합니다.
따라서 저는 본 절에 쓰인 이 두 단어는 ‘바뀌다, 변하다’를 의미하는 ‘change’ 보다는 ‘옮기다, 이동하다’를 의미하는 ‘transfer 혹은 translate’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사장 직분이 레위의 반차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로 옮겨지게 되고 율법이 성령의 법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지, 제사장 직분에 대한 정의가 변하거나 율법 자체가 바뀐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법에서 더 나은 법, 하나님의 피로 성취된 사랑과 용서가 포함된 성령과 은혜의 법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7-18절에서 ‘나는 율법을 성취하러(완성하러) 왔지, 폐하러 온 게 아니다’고 말씀하시면서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뤄질 것이라고 하셨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5장 37-39절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지 둘 다(오래된 부대와 새 부대 둘 다) 보존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비유에 대해 조명받은 글을 2018년에 올렸으니 읽어보길 원하시는 분들은 여길 누르시면 됩니다.
또한 본 절에는 정확히 번역되어 있지는 않은데, 아마도 ‘반드시’란 단어로 번역이 되지 않았나 싶은 헬라어 단어는 ‘anagké(에네케이)’로 ‘~할 필요가 있다, 바로 해야만 한다, 불가피하다’란 의미입니다. 여기에 역시 빠져있는 ‘~이 일어나다, ~이 되다’란 의미의 ‘ginetai(지네타이)’도 넣어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히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사장 직분이 옮겨졌기에 율법 또한 불가피하게 옮겨지게 되느니라”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위 구절도 나쁘진 않습니다. 하지만 ‘말한 것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legetai(레게타이)’는 ‘~불리다, 명명되다, 칭하다’란 의미로 성경에 8번 나옵니다(새로운 시작, 거듭남 등을 의미하는 8에 대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길 바랍니다). 또한 위 구절에 빠진 것도 같고 아니면 다른 단어로 번역이 된 것도 같은 헬라어 ‘tauta(토타)’는 ‘이런 것들’이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아무도 제단에서 섬기지 않았던 또다른 지파에 속하여 이런 것들을 위해 부름받은(명명된) 분에 대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위 번역 그대로 괜찮습니다.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본 절에서 ‘별다른’으로 번역한 단어는 아마 ‘또다른’을 의미하는 ‘heteros(헤테로쓰)’를 그렇게 번역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본 절엔 ‘만일(ei)’에 해당하는 가정법 용어가 있는데 빠져 있습니다.
또한 ‘perissoteron eti(페리쏘테론 에티)’, 영어로는 ‘yet more abundant’로 번역된 헬라어 표현에 가장 적합한 한국어가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을 때 ‘더할 나위 없다’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eti(에티)’는 ‘아직, 아직도’란 의미이지만 이 단어가 쓰인 93구절을 보면 ‘더, 더 이상‘이란 의미로도 번역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eti(에티)’와 함께 쓰인 ‘perissoteron(페리쏘테론)’의 의미가 이미 ‘더욱더, 더 훌륭한, 더 많은, 더 중요한’란 뜻이기에 ‘더 이상과 더욱더’란 두 단어를 합치면, ‘더할 나위 없다’로 번역하는 게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또한 만일 멜기세댁과 같은 또다른 제사장이 따라(kata) 일어났다면 이것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한 것이니”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위 번역도 괜찮습니다. 본 절에서 ‘육신에 속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sarkinos(사르키노스)’는 ‘육신적인, 육에 속한’을 의미하는 단어로 성경에 4번 나옵니다(글자를 누르시면 4구절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육체에 속한 것을 일컫는 단어가 성경에 ‘세상, 창조물’ 등을 의미하는 ‘4번’ 나온다는 것도 성경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숫자 4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길 바랍니다.
‘한 계명의 법’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nomon entolēs(노몬 엔톨리이스)’인데, 신약에 61번 나오는 nomon(노몬)은 ‘율법’을 뜻하고 대부분 정관사 ‘the’가 붙습니다. 그리고 entolēs(엔톨리이스)는 ‘계명’을 뜻하는데, ‘명령, 계명’을 뜻하는 ‘entolé(엔톨레이)’에서 온 파생어로 신약에 9번 나오며 대부분 정관사 ‘the’가 붙고 모두 하나님의 명령을 의미할 때 쓰였습니다.
‘불멸’로 번역된 헬라어 ‘akatalytou(아카탈리투)’는 ‘akatalutos(아카탈루토스)’에서 파생한 단어로 ‘융해될 수 없는, 깨지거나 파괴될 수 없는’이란 의미입니다. 또한 ‘~이 되었다, ~대로 일어났다’를 의미하는 ‘gegonen(게고넨)’을 넣어 원어와 문법에 맞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육신에 속한 율법의 계명에 따라 되신 분이 아니요 반면에(alla) 불멸한 생명의 권능(능력)에 따른 것이라“
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본 절에서 ‘증언하기를’로 번역된 헬라어 ‘martyreitai(마르티뤠이타이)’는 신약에 딱 한 번 등장하는데 ‘증인이 되다, 증언하다’를 의미하는 ‘martureó(마르튜레오)’에서 파생한 단어로 특히 ‘그것, 그렇기에, 그렇다’를 의미하는 ‘hoti(호티)’란 단어와 함께 쓰였을 때는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으로 자신에 대해 증언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 성경 말씀은 시편 110편 4절 말씀입니다.
또한 ‘영원히’로 번역된 헬라어 ‘aiōna(아이오나)’는 어떤 긴 특정 시간대를 의미하는 aión(아히온)에서 파생한 단어인데 신약에 31번 나오며 대부분 ‘영원’으로 번역됐습니다. 그리고 ‘~하였기에, ~때문에’를 의미하는 헬라어 ‘gar(가르)’를 넣고 문법과 원어에 맞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니라는 말씀으로 증언하셨기에“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전에 있던’으로 번역된 헬라어 ‘proagó(프로아고)’는 ‘앞서 이끌다, 먼저 가다’란 의미로 ‘이전에 존재(발생)하다’란 뜻입니다. ‘연약하고’로 번역된 ‘asthenés(에스떼네스)’는 ‘힘이 없다, 약하다’란 의미로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약하고 힘이 없다, 불충분하다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폐하고’로 번역된 헬라어 ‘athetésis(아떼테이씨쓰)’는 ‘한쪽으로 치워놓다’란 의미로 ‘취소, 더 이상 효력이 없다’로 쓰이는데, 히브리서에서만 두 번 나오는 단어입니다(본 절과 히 9:26). 한국어 성경들은 이 단어를 “폐하고”로 번역했는데, 마태복음 5장 17-18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율법을 성취하러(완성하러) 왔지, 폐하러 온 게 아니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뤄질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옳은 번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구절 번역에도 ‘정말로, 참으로, 진짜로, 진실로’를 의미하는 헬라어 ‘men(멘)’, 영어로는 ‘truly, indeed’란 단어가 빠져 있습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전에 존재하던(앞서 이끌던) 계명이 약하고 무익하여 참으로(진실로) 무효하게 되니“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더 좋은 소망’이라고 해도 괜찮지만, 헬라어 ‘kreittonos(크레이토노스)’는 ‘더 낫다, 더 훌륭하다’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소망이 생기니’에서 ‘생기니’로 번역된 ‘epeisagoge(에피쎄고게이)’는 ‘~을 들여오다(bringing in), 도입하다(introduction), 수입하다(importation)’란 의미입니다. 특히 이미 있던 것 외에 더 들여온다는 뜻으로 본 절에 유일하게 등장합니다. 이 중에 ‘도입’이란 단어는 특별히 “새 법을 도입한다”에 쓰이는 단어이기에 이 구절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율법이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성취하지) 못했기에 이제(de) 더 나은 소망을 도입하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느니라”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0절과 21절은 어떤 헬라어 원본으로 보느냐에 따라 21절 문장의 앞부분이 20절 끝부분에 붙어 있기도 하고 개역개정처럼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다음은 20절에 21절의 앞부분이 붙어 있는 원본을 바탕으로 번역한 영어 성경 구절입니다. ‘None of this happened without an oath. For others became priests without an oath,(HCSB).’ 이런 차이를 제외하고 내용 자체에 큰 차이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번역하기가 쉽지는 않아서, 말이 되게 하려고 이런저런 단어를 삽입했습니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이나 NASB 같은 경우는 삽입한 단어들은 가로 안에 넣었습니다. ‘And inasmuch as not without an oath [he was made priest]:(KJV)’ ‘And inasmuch as [it was] not without an oath(NASB)’
사실 번역이 매끄러워지려면 21절에 있는 앞부분을 가져오는 게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있는대로 ‘그가 제사장으로 된 것은’이라든가 ‘그것은’이란 없는 단어를 삽입하지 않고 ‘~을 볼 때, ~란 사실에 입각할 때’란 의미의 ‘hoson(영어로는 inasmuch)’를 넣어 원어대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한 맹세 없이가 아닌 것을 볼 때“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로 번역된 헬라어는 ‘metamelēthēsetai(메타멜리띠이세타이)’로 ‘후회하다, 회개하다’란 의미의 ‘metamelomai(메타멜로마이)’에서 파생한 단어이며 ‘생각을 바꾸다’로 쓰이기도 합니다. 신약에 총 6번 나오는데, 본 절은 ‘후회하지 않는다’로 번역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롬 11:29)’란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6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길 바랍니다).
“참으로(진실로)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들이 되었으나 그는 그에게 말씀하신 분을 통해 맹세로 된 것이니 곧 주께서 맹세하셨고 후회하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영원토록 제사장이라“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본 절엔 ‘그리고(and), 또한(also), 그다음 혹은 그 후(then), 더구나(moreover), 심지어(even)’ 등을 뜻하는 ‘kai(카이)’가 나옵니다. 21절의 내용에 이어 나오는 22절 앞에 붙는 접속사로 하나씩 고려해 봤을 때 ‘then’이 맞는 것 같은데, 한국어로는 ‘그다음, 그 후’ 보다는 ‘그러고’가 적합할 거 같아 찾아보니, ‘그러고’는 ‘그리하고’의 줄임말이었습니다. ‘그리하고’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그다음에란 의미의 ‘then’과 제일 잘 어울리는 단어인 거 같아 ‘그리하고’로 썼습니다. 작업 시간을 줄이기 위해 헬라어를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원어에 맞게 번역한 단어들 옆 가로에 넣습니다.
“그리하고 예수는 훨씬(tosoutos) 더 나은(kreittonos) 언약을(diathēkēs) 따라(Kata) 보증이(engyos) 되셨느니라”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항상 있지 못함이로다’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은 ‘지속하다, 머물다, 인내하다’는 의미의 ‘paramenó(파라메노)’와 ‘~을 못하도록 막다’란 의미의 ‘kóluó(코루오)’입니다. 다른 헬라어는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번역한 단어 옆 가로에 넣었습니다.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더구나(Kai) 참으로(men) 많은(pleiones) 자들이(pleiones) 제사장들이(hiereis) 되온 것은(gegonotes) 죽음으로(thanatō) 인해(dia) 지속되지 못했기 때문이라”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문장에 빠진 ‘de(그러나, 하지만)’를 넣고 ‘영구하다, 변화가 없다’란 의미의 ‘aparabaton(아파라바톤)’을 넣고 ‘그에게 있다, 그가 가지고 있다’를 의미하는 ‘echei(에케이)’를 넣고 원어와 문법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원토록 계시기에 제사장 직분도 영구히 그분께 있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그러므로’로 번역된 ‘hothen(호뗀)’은 ‘~에서, ~이유로’란 의미인데, 24절에 나오는 영원히 제사장 직분이 그의 것임으로 인해 ~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므로’ 보다는 ‘그로 인해’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본 절에 ‘온전히’로 번역된 ‘pantelés(판텔레이쓰)’는 ‘다 완성하다, 온전하다, 완벽하다, 언제나’란 의미가 있는데 본 절과 누가복음 13장 11절에 나옵니다. ‘간구 또는 중보’를 의미하는 헬라어 ‘entugchanó(엔퉁카노)’는 “만나다, 부탁하다, 중보하다, 간구하다”란 의미로 신약에 5번 나옵니다(은혜를 뜻하는 숫자 5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로 인해 또한(kai)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나니,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시기(중보하시기) 때문이라.”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본 절에 ‘이러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toioutos(토유토스)’는 ‘이와 같은, 이처럼, 이런 류의’란 의미입니다.
‘떠나 계시고’로 번역된 헬라어 ‘kechōrismenos(케코리스메노스)’는 ‘분리하다, 따로 두다, 나누다, 떠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어원 ‘chórizó(코리조)’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악이 없고’로 번역된 헬라어 ‘akakos(아카코스)’는 ‘순수하다, 교활함이 없다, 순진하다’로 쓰이며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려는 의도조차도 없는’이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순전하다’란 표현이 이 단어에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러움이 없고’로 번역된 헬라어 ‘amiantos(아미안토스)’는 ‘더럽혀지지 않은, 오염되지 않은, 때가 타지 않은’ 등의 의미로 영어로는 성경에 ‘부정하다’로 많이 쓰이는 ‘defiled’의 반대말인 ‘undefiled’입니다. 따라서 ‘정하다’로 번역하는 게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또한(kai) 이와 같은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합당했기 때문이니(gar), 죄인들로부터 분리되셨기에 거룩하고 순전하며 정하여 하늘들보다 더 높이 되셨느니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단번에’로 번역된 헬라어 ‘ephapax(에파팩스)’는 영어로 ‘once for all’이란 의미로 신약에 5번 나옵니다(은혜를 뜻하는 숫자 5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길 바랍니다). 이 표현은 한국어에는 없는 표현이라서 ‘단번에, 단 한 번에’라는 반쪽짜리 번역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once for all’이란 표현은 글자 그대로, ‘단 한 번에 다(모두)’란 뜻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란 의미입니다.
‘드린다’로 번역된 헬라어 ‘anapheró(애나퍼로)’는 ‘들어 나르다, 들어 이끌다, 희생제물과 같은 것들을 높은 제단에 올려 드리다’란 의미로 신약의 10번 나옵니다(완전수 중 하나인 10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길 바랍니다).
‘이루셨음이라’로 번역된 헬라어 ‘epoiēsen(에포이센)’은 ‘만들다, 하다, 생산하다, 낳다, 짓다, 행동하다, 창조하다, 성취하다, ~야기하다’ 등을 의미하는 헬라어 어원 ‘poieó(포이에오)’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본 절에 가장 적합한 번역은 ‘해내셨다’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처럼 먼저는 자신들의 죄 때문에 다음은 백성의 죄 때문에 매일 희생제물을 올려드려야 할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가 자기 자신을 올려드림으로 단 한 번에 다 해내셨기 때문이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약점’으로 번역된 헬라어 ‘astheneia(에스떼니아)’는 ‘연약함, 약점’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세웠다’로 번역된 헬라어 ‘kathistémi(케띠스테이미)’는 ‘임명하다, 세우다’란 의미입니다. ‘온전하게’로 번역된 헬라어 ‘teteleiōmenon(테텔레이오메논)’은 ‘끝마치다, 완성하다, 완벽하다’란 의미의 헬라어 어원 ‘teleioó(텔리아오)’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본 절 번역에 빠져있는 ‘gar(가르)’는 대부분 ‘~기에, 때문에’를 뜻하지만, 앞에 문장과 뒤문장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며 ‘정말, 참으로, 과연’이란 indeed의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과연(gar) 율법은 대제사장으로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세우나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들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