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9장 원어/영어 분석 연구(1)

다음 내용은 히브리서 9장 1-14절까지입니다.

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9장 1절은 8장 후반부에서부터 이어지는 내용인데, 여기서도 원어에는 없는 ‘언약’이란 단어가 삽입됐습니다. 본절에 ‘예법’으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 ‘dikaióma(디카요마)’는 ‘법령(ordinances)’을 의미하는데 특별히 ‘하나님께서 의롭다는 선고를 내리셨을 때, 범죄자를 회복시켜 새 삶을 살게 해주시는 사면, 또는 의로운 행실’을 뜻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신약에 총 10번 나오는 이 단어는 영어로는 ‘ordinances (규례, 법령), righteousness (의), judgment (심판)’ 등의 다양한 의미로 번역됐습니다(하나님의 완전수 중 하나인 10에 대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본절엔 ‘디카요마’의 파생어인 ‘dikaiōmata(디카요마타)’가 쓰였는데 신약에 총 5번 나오며, 역시 규례, 예법, 의, 심판 등등의 다양한 의미로 번역됩니다. ‘예법, 법령’ 등을 의미하는 단어가 하나님의 법과 은혜를 뜻하는 5번 나온다는 것이 성경의 묘미입니다(5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즉 진실로(men) 처음 것에도 섬기는 규례(법령)들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기에(Eiche)”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예비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 ‘kataskeuazó(카타스큐아드조)’는 ‘준비하다, 예비하다’란 의미인데 ‘짓다, 만들다, 준비하다, 예비하다’ 등의 뜻으로 쓰입니다. 신약에 총 11번 나오는 이 단어는 침례 요한이 외친 ‘주의 길을 예비하라’에도 쓰였고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였더라’는 구절에도 쓰이는데 대부분 ‘예비, 준비’로 번역됩니다(심판, 나눔을 의미하는 11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장막’으로 번역된 헬라어 ‘skēnē(스케네)’는 본절에서는 ‘성막’으로 번역하는 게 맞습니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히브리어 8장 2절 분석에 적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절에서 특이한 부분은 성소에 있는 기구들 중에는 등잔대(출 25:31-37)와 진설병 상(출 25:23-30)과 분향단(출 30:1-10)이 있는데, 분향단에 대한 부분이 빠져 있다는 것이고, 진설병과 진설병이 올려져 있던 상을 따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소’로 번역된 ‘Hagia(하기아)’는 ‘거룩(Holy)’을 뜻하며 신약에 총 14번 나옵니다(구원을 의미하는 14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올리겠습니다). ‘성스럽다, 거룩하다, 하나님에 의해 구분되다’란 의미의 ‘hagios(하기오스)’란 어원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참고로 성소는 영어로 ‘Holy Place’이며 지성소는 ‘Holy of Holies 혹은 Most Holy’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막이 예비되었는데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던 첫째 곳은 성소라 불렸으나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지성소는 헬라어로 ‘Hagia hagiōn(Holy of Holies)’입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던 휘장은 ‘katapetasma(카타페타스마)’인데 신약에 6번 나옵니다(6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이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찢기신 육신(flesh)에 비유되기도 하는데(히 10:20), 그래서 신약에 인간, 즉 육신을 뜻하는 6번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성막은 지성소라 불렸으니”

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본절은 신약의 서신서 중 가장 논란이 많은 구절에 해당합니다. 앞서 2절에서도 잠깐 나눴듯이 성소에는 분향단(개역개정은 향단, 흠정역은 분향 제단으로 씀)이 있어야 하는데 분향단에 대한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그리고 정작 언약궤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지성소에는(출 26:33-34), ‘분향단 혹은 향로’로 번역되는 ‘thumiatérion(뚜미애테이리온)’이란 기구가 나옵니다. 신약에 유일하게 한 번 나오는 이 단어는 ‘향을 드리는 기구’란 뜻이기에 ‘분향단’이란 해석과 ‘향로’라는 해석 모두 허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 성경이든 한어 성경이든 이 단어를 ‘altar of incense(분향 제단)’로 번역한 성경도 있고 ‘censer(향로)’로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두 진영 다 팽팽히 자기 주장이 옳다고 하지만, 이 논란에 대한 제 결론은 ‘분향 제단이 맞다’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막 안에 담겨 있었다고 나오는 기구는-그게 성소에 속했든, 지성소에 속했든-분향 제단이지 향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본절에 등장하는 ‘금으로 된 향을 드리는 기구’가 분향단이 아니라고 한다면 모세의 성막에서 분향단을 증발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분향단(분향 제단)’은 성막에 속한 주요 기구 중 하나로 출애굽기와 레위기에도 나오지만, ‘향로’는 번제단의 불을 넣어 향을 올리기 위해 제사장뿐만 아니라 레위인들도 갖고 있던 물건입니다. 아론 자손의 제사장 직분에 반역해서 일어났던 고라와 그 무리도 모두 자기 향로를 갖고 있었습니다(민 16:6). 또한 모세의 성막 시대 때는 놋으로 된 향로를 썼지(민 16:39) 그 어디에도 금으로 된 향로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킹제임스 영어 성경에서 향로를 뜻하는 ‘censer’를 검색한 후 나오는 모든 구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다못해 속죄절에 아론이 휘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던 향로도 그냥 ‘a censer(레 16:12)’라고 하지 ‘금향로’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금향로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솔로몬의 성전 때입니다(왕상 7:50; 대하 4:22). 하지만 본절은 첫 성막, 즉 1절에서 말한 세상에 속한 성막인 모세의 성막에 대한 서술입니다. 물론 모세의 성막도 금향로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지만 분향 제단에 쓰기 위해 대제사장만이 쓰는 금향로가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금향로’란 표현이 모세의 성막에선 안 나온다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지성소 안에 있던 ‘금으로 된 향을 드리는 기구’가 ‘금으로 된 분향단’일 수밖에 없습니다.

금 분향 제단에 대해 나오는 부분은 출 30장 1절에서 5절인데 분향 제단은 출 25장에 나오는 언약궤처럼 딸린 부속품이 없습니다. 25장에 보면 금으로 된 진설병 상에는 그릇이며 숟가락등의 딸린 부속품이 있었습니다(출 25:29). 등잔대도 집게와 불똥 그릇 등의 딸린 부속품이 있었고(출 25:38), 출 27장에 나오는 번제단에는 재를 담는 통, 부삽, 고기 다는 고리 등등의 여러 부속품이 있었습니다(출 27:3). 즉, 성막의 기구 중 딸린 부속품이 없던 것은 언약궤와 분향 제단 뿐입니다.

또한 출애굽기의 성막과 그 안의 기구들을 짓는 장면에서는 향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하다못해 딸린 부속품으로도 나오지 않습니다. 향로는 사람에게 속했던 물건이지 성막에 속했던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라 일당들도 자기의 향로를 갖고 나오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지만 이상한 불을 올리다 죽은 아론의 아들들도 자기 향로로 이상한 불을 올리다 죽었다고 나옵니다(민 16:17-18, 38; 레 10:1).
솔로몬의 왕궁에서 금향로가 나오는 부분도 다른 성전 기구들의 부속품들과 문에 박힌 돌쩌귀들과 같이 나오지(왕상 7:50) 금 제단과 같이 등장하지 않으니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금향로[gold(golden까지 포함) censer]를 영어 킹제임스에서 찾아봤더니 총 4번 나왔습니다(세상, 창조물을 의미하는 4에 대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본절에서 ‘금 분향단’으로 번역했어야 하는 것을 금향로로 잘못 번역한 걸 빼면 3번이 됩니다(왕상 7:50, 대하 4:22, 계 8:3). 이 3구절을 읽어보면 금향로는 아무나 갖고 있는 게 아닌 모두 왕국과 하늘 왕국의 대제사장에게만 속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금 분향단[gold(golden까지 포함) altar of incense]’은 몇 번 나오나 찾아보게 됐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4번 나왔는데 본절에 잘못 번역된 걸 더하면 모두 5번이 되는 셈입니다(출 39:38, 40:5; 대상 28:18, 본절, 계 8:3). 5란 숫자는 특별히 성막과 깊은 연관이 있는 숫자로 은혜의 법을 의미합니다(5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성소에 속해 있던 ‘금 분향단’이 성경 전체에 5번 나온다는 게 성경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증명합니다. 또한 이러한 발견은 본절의 ‘향을 드리는 기구’가 ‘분향단이 맞다’는 것에 대한 확증이기도 합니다. 번역가들의 실수로 금향로가 4번, 금 분향단도 4번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된 것이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은 왕과 왕국에 연결된 금향로를 3번, 성막에 연결된 금 분향단을 5번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궁금한 내용이나 어떤 단어의 바로 된 뜻을 알고 싶을 때, 그 단어를 성경 전체에서 검색해서 따라 나오는 구절들을 모두 읽는 작업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성경이 정의하는 그 단어의 의미가 깨달아지고 알고 싶었던 성경의 내용이 확실해져서 그로 인해 얻은 유익은 말할 수 없습니다. 한 단어를 성경 전체에서 검색해서 따라 나오는 모든 구절을 읽는 작업을 하다 보면 덤으로 얻어지는 혜택은 숫자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수천 년간 수십 명의 기자들에 의해 기록된 성경인데, 그 단어와 어울리는 횟수만큼 등장한다는 것에 번번이 놀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그 단어가 등장하는 수만 보고도 대충 어떤 의미인지 가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이 정의하는 보리와 밀의 정확한 뜻과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성경 전체에서 찾아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보리가 등장하는 숫자와 밀이 등장하는 숫자만으로도 보리가 밀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찬찬히 모든 구절을 살펴보는 가운데 큰 유익을 얻었던 적이 있습니다(이 발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이런 경이로움 때문에 한동안 숫자를 탐구해서 알게 된 것들을 기회될 때마다 올렸었는데, 3이나 7처럼 너무도 명료하고 내용이 방대한 숫자는 올리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미처 올리지 못한 나머지 숫자에 대해서도 발견하거나 공부한 것들을 올리겠습니다.

본절에 나오는 ‘thumiatérion(뚜미애스테이리온)’이 ‘분향단’이냐 ‘향로’냐 보다 더 큰 문제는, 히브리 기자가 언약궤만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지성소에 이 기구가 있었다고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히브리서 기자의 단순한 실수로 치부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해석은 너무도 게으르고 무성의한 해석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에 단순한 ‘실수’란 없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실수처럼 여겨지는 부분에 깊은 영적인 진리가 담겨 있음을 번번이 발견했었습니다. 더구나 히브리서 기자가 모세의 성막과 기구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어서 잘못 썼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선시대 명문가 선비가 차례 상차림을 몰라서 잘못 썼다고 하는 것보다 더 어불성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세는 히브리서 기자가 왜 분향단이 지성소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가에 대해 성경 전체를 꼼꼼히 훑어보며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까지도 다시 찾아보며 연구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그런 과정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 주석가들의 여러 의견이 있지만 제가 발견한 위의 내용들과 가장 부합하는 내용을 추려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애굽기에 꽤 분명하게 나와 있을 뿐만 아니라 필로(Philo) 와 요세푸스(Josephus)에 적혀있는 구절들을 통해서도 성소에는 등잔대, 진설병 상, 그리고 분향대(분향 제단) 3가지의 성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성소와 분향대(분향 제단)를 연결한 특별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연관을 속죄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출애굽기 30장 6절에서 모세는 분향단을 “before the veil that is by the ark of the testimony, before the mercy seat that is over the testimony;(증거궤 옆에 있는 휘장 앞쪽에, 증거 위에 있는 긍휼의 자리 앞쪽에)” 놓으란 특별한 지시를 받는다. 출애굽기 40장 5절(또 금으로 된 분향 제단을 증거 궤 앞에 두고)에도 비슷한 지시를 받는다. 속죄절에 분향단(분향 제단)을 속죄하는 것과 지성소를 속죄하는 것에는 가장 뚜렷한 연관이 있음을 모세오경과 미쉬나에서 볼 수 있다(출 30:10; 레 16:17-18). 또한 왕상 6장 22절에 나오는 내소에 있던 금을 입힌 제단의 존재는 분향 제단과 지성소에 대한 가장 확실한 연결점이 된다(엘리옷 주석에서 해당 부분 발췌:Elliott’s Commentary for English Readers).’

이상이 주석에서 발췌한 부분입니다. 본절이 왜 분향단(alter of incense)이 맞는지에 대한 보충 설명은 여길 눌러 확인해 보시길 바라고 본절의 다른 부분으로 넘어갑니다.

본절에서 ‘사면을 금으로 싼’으로 번역된 헬라어 문구는 ‘perikekalymmenēn(having been covered arond) pantothen(in every part) chrysiō(with gold)’입니다. 즉 ‘모든 부분에 금을 돌아가며 입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언약궤는 사면이 아닙니다. 바닥도 있고 덮는 금 덮개(뚜껑)도(כַּפֹּרֶת kapōreṯ: mercy seat) 있었기 때문에 원어에 충실하게 ‘모든 부분’으로 번역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히브리 기자는 언약궤 안에 담겨 있던 3가지의 물건을 언급하는데,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출 16:33-34)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민 17:10-11), 그리고 언약의 돌판들(출 25:16)을 넣게 됩니다. 하지만 왕국 시대에 와서는 언약의 돌판 외에는 모두 유실됩니다(왕상 8:9).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금 분항단, 그리고 모든 부분에 금을 돌아가며 입힌 언약궤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본절에 ‘속죄소’로 번역된 헬라어 ‘hilastérion(힐라스테이리온)’은 ‘죄로 인한 하나님의 분노를 달래는(진무하는) 곳’으로 특히 언약궤의 덮개(뚜껑)를 가리킵니다. 영어로는 ‘mercy seat(긍휼의 자리)’ 또는 ‘atonement cover(속죄 덮개)’라고 합니다.

그리고 ‘덮는 영광의 그룹들’에서 ‘덮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kataskiazó(카타스키아드조)’는 그림자나 구름 같은 것이 어떤 것 위에 드리우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영어로는 ‘overshadowing’입니다.

그리고 ‘낱낱이’로 번역된 헬라어 ‘meros(메로스)’는 ‘한 부분, 한 몫, 분깃, 부분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영광의 그룹들이 긍휼의 자리(속죄 덮개) 그 위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에 관한 부분은 얘기할 수 없노라.”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본절에 ‘예비하였으니’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 ‘kataskeuazó(카타스큐아드조)’는 2절에도 나온 단어인데, ‘준비하다, 예비하다’란 의미로 ‘짓다, 만들다, 준비하다, 예비하다’등으로 쓰입니다. 신약에 총 11번 나오는 이 단어는 침례 요한이 외친 ‘주의 길을 예비하라’에도 쓰였고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였더라’는 구절에도 쓰이는데 대부분 ‘예비, 준비’로 번역됩니다.

또한 ‘항상’으로 번역된 ‘dia(디아)’는 ‘~을 통해, ~탓에, ~덕에, ~때문에’를 의미하는 단어인데 왜 ‘항상’으로 번역한건지 의문입니다(이 단어는 신약에 총 669번 나오는데 단어를 클릭하면 이 단어가 들어간 모든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섬기는 예식’으로 번역된 헬라어 ‘latreias(라트라이아스)’는 ‘latreia(라트리아)’의 복수형인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service) 즉, 예배/경배(worship)’를 의미합니다.

‘예식을 행하고’에서 ‘행하고’로 번역된 ‘epitelountes(에피텔룬테스)’는 ‘완수하다, 완성하다, 이뤄지다, 성취하다, 끝마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어원 ‘epiteleó(에피텔레오)’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본절에서 빠진 단어들을 넣고 원어에 충실히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한(de) 진실로(men) 이러한 것들이 예비되었기에 첫째 성막 안에 들어간 모든(pantos) 제사장들을 통해(dia) 하나님을 섬기는 일들이 이뤄지지만”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본절에 ‘오직’이란 단어는 원어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홀로’란 의미의 ‘monos‘가 때로는 ‘오직’으로 번역되기 때문에 넣은 건가 싶었는데 보니까 ‘홀로’란 단어도 있어서 잘못 덧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허물’로 번역된 헬라어 ‘agnoēmatōn(애그노이마톤)’은 ‘몰라서 지은 죄, 어리석어서 지은 죄, 부지 중에 지은 죄’를 의미하는 ‘agnoéma(에그노에이마)’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둘째 성막 안에는(eis) 대제사장만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신과 백성의 모르고 지은 죄로 인해(hyper)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보이신 것은’으로 번역된 헬라어 ‘dēlountos(딜룬토스)’는 ‘분명하게 하다, 선포하다, 계시하다, 보여주다, 명료하다’란 의미의 ‘déloó(데이루)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본절에 빠져 있는 헬라어 ‘eti(에티)’는 ‘아직도, 계속해서’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본절에 ‘아직’으로 번역된 헬라어 ‘mepo(메포)’는 ‘아직은’이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으로 성령께서 분명하게 하신 것은 첫 성막이 계속 서 있는 동안에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본절은 특별히 묘하게 잘못 번역되어 있습니다. 일단 ‘장막’이란 단어는 딴에는 구절의 뜻을 명확하게 하겠다고 번역가들이 삽입한 것인데 오히려 뜻을 흐립니다. 원어로는 ‘이는’입니다. 그리고 ‘이는’이란 뜻은 앞에서 말했던 내용, 즉 7-8절의 전체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지 ‘성막’을 특정해서 가르키는 게 아닙니다.

‘현재까지의’란 문구는 ‘kairon(카이론) ton(톤) enestēkota(에네스티코타)’입니다. 여기서 ‘때 혹은 계절’을 의미하는 ‘kairos(카이로스)’는 ‘기회라는 의미에서의 시간’입니다. ‘적합한 때, 시기적절, 절호의 기회(때), 마땅한 때’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 신약에 86번 쓰이며 주로 하나님의 주권으로 정해진 어떤 시간, 계절로 쓰입니다. 그리고 ‘enestēkota(에네스티코타)’란 ‘~안에 놓다, 가깝다, 이르렀다, 존재하는’이란 의미로 한국어 성경으로는 ‘현재’로 많이 번역된 ‘enistémi(에니스테이미)’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enistémi(에니스테이미)’란 어원은 신약에 총 7번 나옵니다. 따라서 이런 중요한 두 단어를 ‘현재까지’라고만 번역하는 것은 충분치 않고, ‘다가온 때, 가까이 이른 때’라고 번역하는 것이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

‘비유’로 번역된 ‘parabole(파라볼레이)’에서 영어의 ‘parable’이 왔습니다. 주님이 주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는데, 그때마다 쓰인 단어로 신약에 총 50번 나오는데, ‘비유하다, 비교하다, 유사하다’란 의미로 ‘직유(두 가지의 유사한 인상을 직접 대응시켜서 설명하는 것으로 영어로는 simile)’로도 쓰입니다(50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hētis) 예물과(dōra) 희생제물(thysiai) 둘 다(te) 드렸어도 양심에(syneidēsin) 관한 한 섬기는 자를 완전하게 할 수는(dynamenai) 없다는 것()에 대한 직유이니

다시 한번 설명하자면, 7-8절에서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 번, 그것도 피 없이는 지성소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은 성령께서 첫 성막이 서 있는 동안에는 아직은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신 것으로 이는 예물과 희생제물로는 도저히 섬기는 자의 양심을 완전하게 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한 직유라는 것입니다.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원어에는 본절에 나오는 ‘이런 것’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기에 제외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으로 번역된 헬라어 ‘brōmasin(브로마신) kai(카이) pomasin(포마신)’은 ‘음식과 음료’입니다.

‘예법’으로 번역된 ‘dikaiōmata‘는 1절에서 설명했던 ‘dikaióma(디카요마)’의 파생어로 ‘법령(ordinances)’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의롭다는 선고를 내리셨을 때, 범죄자를 회복시켜 새 삶을 살게 해주는 사면, 또는 의로운 행실’을 뜻하기도 하기에 영어로는 ‘ordinances (규례, 법령), righteousness (의), judgment (심판)’등 다양한 의미로 번역됐습니다.

‘육체’로 번역된 ‘sarkos(사르코스)’는 ‘고기 육(flesh)’을 뜻하는 단어로 육신을 의미합니다.

‘개혁할 때까지’로 번역된 헬라어는 ‘개혁’을 의미하는 ‘diorthōseōs(디오또세오스)’와 ‘때(카이로스)’를 의미하는 ‘kairou(카이루)’와 ‘~까지’를 의미하는 ‘mechri(메크리)’입니다. 따라서 ‘개혁의 때까지’입니다. ‘맡겨 둔 것’으로 번역된 ‘epikeimena(에피카이미나)’는 신약에 7번 나오는 ‘epikeimai(에피카이마히)’란 어원에서 파생한 단어로 ‘밀다, 누르다, 짓눌리다, 강요당하다, 촉구하다’ 등의 의미이기에 잘 된 번역은 아닙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직(monon) 개혁의 때까지 음식과 음료와 여러 가지 씻는 것으로 짓누르던 육신에 속한 규례(법령)들이라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장래’로 번역한 ‘genomenōn(게노메논)’은 ‘다가온(having come)’이란 의미로 현재에 일어난 일을 얘기하고 있는데 ‘장래’란 번역은 잘못된 것입니다. ‘대제사장으로 오사’에서 ‘오사’로 번역된 헬라어 ‘paragenomenos(파라게노메노스)’는 ‘등장하다, 도착하다, 오다, 나타나다’를 의미하는 ‘paraginomai(파라기노마이)’라는 원어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더 크고’로 번역된 헬라어 ‘meizonos(메이조노스)’는 신약에 3번 등장하는데, ‘거대하다, 웅장하다, 크다, 위대하다’란 의미의 ‘megas(메가스)’란 어원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모두 히브리서에서만 3번 나오는데(히 6:13, 16; 본절) 하나님이나 사람에 연관이 되어 쓰였기 때문에 ‘더 크고’ 보다는 ‘더 위대한’이 나은 번역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단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de) 다가온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인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tautēs) 창조에(ktiseōs) 속하지 않은 더 위대하고 더 완전한 성막에 의해 나타나셨으니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7장 27절에도 적었듯이 ‘단번에’로 번역된 헬라어 ‘ephapax(에파팩스)’는 영어로 ‘once for all’이란 의미로 신약에 5번 나옵니다(은혜를 뜻하는 숫자 5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길 바랍니다). 이 표현은 한국어에는 없는 표현이라서 ‘단번에, 단 한 번에’라는 반쪽짜리 번역이 된 거 같습니다. 그러나 ‘once for all’이란 표현은 글자 그대로, ‘단 한 번에 다(모두)’란 뜻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란 의미입니다.

‘속죄’로 번역된 ‘lytrōsin(리트로신)’은 ‘대속(ransoming), 구원/구속(redemption)’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lutrósis(루트로시스)’란 어원에서 파생한 단어로 신약에 3번 나옵니다. 특히 빚 때문에 갇혔거나 노예로 팔린 사람들을 빚을 대신 갚아주고 풀려나 자유를 얻게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에 의한 것이 아니며 자기 피를 통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성소에 들어가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heuramenos)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뿌려’로 번역된 ‘rhantizousa(란티조사)’는 ‘뿌리다’를 의미하는 ‘rhantizó(란티조)에서 파생한 단어로 ‘뿌려짐(sprinking)’이란 의미입니다. ‘부정한 자에게’로 번역된 헬라어 ‘kekoinōmenous(케코이노메노스)’는 ‘부정하게 됐던 자들(those having been defiled)입니다. ‘거룩하게 하거든’으로 번역된 ‘hagiazei(하기아제이)’는 ‘거룩하게 만들다, 거룩하게 구별하다, 거룩하게 구분하다’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본절에 빠져 있는 단어들을 모두 넣고 문법과 원어에 맞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Ei) 황소와 염소의 피 그리고 암송아지의 재의 뿌려짐 때문에(gar) 육신이(sarkos) 정결해져서(pros katharotēta) 부정하게 됐던 자들이 거룩하게 구별된다면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흠 없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 ‘amomos(아모모스)’는 ‘청렴결백한, 흠 없는, 잘못이나 실수가 없는’이란 의미입니다. ‘죽은 행실에서’로 번역된 문구는 ‘apo(from) nekrōn(dead) ergōn(works)’. 직역하면 ‘죽은 행위들로 부터’입니다.

본절의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로 번역된 문구는 ‘eis(in order) to latreuein(to serve)’란 의미입니다. 즉, ‘섬길 수 있게 하다’이기에 본절의 번역은 괜한 부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하나님께 흠 없이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얼마나 더 죽은 행위들로부터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겠느냐

9장의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1-14절까지만 올리고 후편으로 15-28절을 올리겠습니다.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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