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은 히브리서 10장 1절에서 20절까지입니다.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본절 번역에 빠져있는 단어가 있는데, ‘갖고 있다, 잡고 있다’란 뜻의 헬라어 ‘echó(에코)’입니다. 특히 ‘손에 쥐고 있다, 옷처럼 입고 있다, 지키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본절에 ‘그림자’로 번역된 헬라어 ‘skia(스키아)’는 히브리서 8장 5절에도 나오는 단어인데 바로 번역한 것입니다. ‘skia(스키아)’는 신약에 총 7번 나오는 단어인데(숫자 7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개정개역은 히브리서 9장 24절에 나오는 ‘antitupos(안티투포스)’란 단어도 ‘그림자’로 오역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늘’로 번역된 헬라어 ‘diénekés(디에이네케스)’는 ‘지속해서, 끝까지, 끊임없이, 계속해서’란 의미입니다. ‘제사’로 번역된 헬라어 ‘thysiais(띠씨애이스)’는 ‘희생 제물’을 뜻하는 ‘thusia(뚜시아)’의 복수형입니다. ‘언제나’로 번역된 헬라어 ‘oudepote(우데포테)’는 영어로는 ‘never’, 즉, ‘결코/절대로~아니다/안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율법을 가진(echōn) 것은 다가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 일들의 형상 자체는(autēn) 아니기에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드린 것과 같은 희생제물들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단번에’로 번역된 헬라어 ‘hapax(하팍스)’는 ‘한 번, 한번은, 한 번에 다, 한 번 더’ 등을 의미합니다. ‘죄를 깨닫는 일’로 번역된 헬라어는 ‘자의식, 양심’ 등을 뜻하는 ‘syneidēsin(씨나이데이신)’과 ‘죄’의 복수인 ‘hamartiōn(하마르션)’입니다. 그래서 이 두 단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죄의식’이란 생각이 들어 그렇게 번역합니다.
‘제사’로 번역된 헬라어는 ‘prospheró(프로스퍼로)’에서 파생된 ‘prospheromenai(프로스퍼로메나이)’인데 ‘가져오다, 드리다’를 의미하며 ‘예물(헌물)이나 희생물’을 드리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섬기는 자들이 한 번에 깨끗하게(정결하게) 되어 더 이상(eti) 죄의식을 갖지(echein) 않으므로 그것들 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본절에 ‘이 제사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헬라어로는 ‘이와 같은’을 의미하는 ‘autais(오타이스)’입니다. ‘기억하게 하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anamnésis(아남네이시스)’는 ‘상기하다, 기억하다’란 뜻인데, ‘의지적으로 어떤 것이나 어떤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추모나 기념’의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들에는 해마다 죄들을 상기시키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본절에 ‘없이 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aphaireó(아파이레오)’는 ‘잘라내다, 끊어내다, 없애다, 제거하다’란 뜻으로 신약에 총 10번 나옵니다(10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대제사장 종의 귀를 잘랐을 때도 쓰인 단어이고 죄나 수치를 없애거나 제거했을 때도 쓰였는데, 해당 단어를 누르면 쓰인 모든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 못한다’로 번역된 ‘adunatos(아두나토스)’는 ‘할 수 없다, 능력이 없다, 불가능하다’는 의미인데 역시 신약에 총 10번 나옵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라(gar)”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본절은 이해를 돕기 위해 ‘주께서’ 혹은 ‘하나님이’란 주어를 넣은 것이지 원어에는 없습니다. 원어에 가깝게 번역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원어에 없는 주어는 가로 처리로 번역합니다. 여기서도 ‘제사’로 번역된 헬라어는 ‘희생 제물’을 뜻하는 ‘Thysian(띠씨안)’인데 1절과 달리 단수형이며 신약에 총 11번 나옵니다(11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예물’로 번역된 헬라어는 ‘prosphoran(프로포란)’으로 ‘예물 혹은 헌물’을 뜻하는 단수형입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이르시되, 희생 제물과 헌물은 원하지 아니하셨으나 (당신은) 나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 본절의 의미를 해석하자면 희생제물과 헌물을 원치 않으신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예비하셨다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속죄제’로 번역된 헬라어는 ‘~에 관한, ~에워싼, ~대한 모든 것’을 뜻하는 ‘peri(페리)’와 ‘죄들’을 뜻하는 ‘hamartias(하마티아스)’입니다.
‘번제’로 쓰인 헬라어 ‘Holokautōmata(홀로코우토마타)’는 ‘번제물’을 뜻하는 ‘holokautóma(홀로코토마)’의 복수형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세계 2차대전 때 6백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대학살을 영어로 ‘The Holocaust(더 홀로코스트)’라고 하는데 바로 번제물을 뜻하는 이 헬라어에서 파생된 단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 대학살이 이 단어로 불리게 된 이유는 나치의 ‘extermination camp(직역하면 몰살, 전멸, 박멸 캠프: 의역하면 강제수용소)’에서 희생자들의 시신을 통채로 무더기로 불에 태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번제물’을 뜻하는 히브리어 ‘olah(올라)’에서 온 홀로코스트란 단어보다는 종교적 색채가 없는 ‘참사, 재앙’을 뜻하는 ‘Shoʾah(쇼아)’로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은) 번제물들과 죄들에 관한 것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이에’로 번역된 ‘tote(토테)’는 ‘그래서(then), 그때(at that time)’란 의미입니다. ‘말하기를’로 번역된 헬라어 ‘eipon(아이폰)’은 과거형이기에 ‘말하였기를(I said)’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서 ‘하나님’은 삽입된 것이고 원어는 ‘sou(소우)’, 즉 ‘당신의’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때 내가 말하였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에 대해 기록된 대로 내가 당신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위에’로 번역된 헬라어 ‘anóteros(아노테로스)’는 ‘더 높은’이란 뜻이며 ‘더 높은 곳, 더 존귀한 곳’이란 의미입니다. 신약에 두 번 쓰였는데, 본절과 누가복음 14장 10절에서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는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면서, 맨 끝자리에 앉으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올라앉으라(더 윗자리로, 더 높은 자리로)’고 해서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을 거라고 하신 부분입니다.
‘주께서는’이란 주어는 삽입된 단어입니다. 본절에서 ‘제사’로 번역된 단어는 1절처럼 ‘희생 제물’의 복수형인 ‘Thysias(띠시아스)입니다. 본절에 ‘예물’로 번역된 헬라어도 복수형인 ‘prosphoras(프로스포라스)’ 입니다. ‘속죄제’로 번역된 헬라어도 6절처럼 ‘~에 관한, ~에워싼, ~대한 모든 것’을 뜻하는 ‘peri(페리)’와 ‘죄들’을 뜻하는 ‘hamartias(하마티아스)’ 두 단어입니다.
본절엔 ‘이는 다 율법에 따라 드리는 것이라’가 가로 처리되어 있는데 원어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하지 않으셨다’가 수식하는 문장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더 높은 곳에서 말씀하시기를 희생 제물들과 헌물들과 번제물들과 죄들에 관한 것들은 당신이 원하지 않으셨고 율법에 따라 드려지는 것도 당신은 기뻐하지 않으셨나이다”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본절에 ‘그 후에’로 번역된 헬라어는 7절에 나오는 ‘tote(토테)’인데, ‘그래서(then), 그때(at that time)’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로 번역된 헬라어는 ‘eirēken(아이레이켄)’으로 ‘그가 말하였다’입니다.
‘폐하심’으로 번역된 헬라어 ‘anaireó(아나이레오)’는 ‘없애다, 치우다, 제거하다’란 뜻인데 특히 ‘죽인다, 생명을 거둬가다, 끝내다, 폐지하다’란 의미로 쓰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때 그분께서 이르셨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내가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 왔나이다(hēkō:have come), 하셨으니 그분께서 첫째 것을 없애심은(폐지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본절에 쓰인 ‘단번에’는 헬라어 ‘ephapax(에파팩스)’인데 영어로는 ‘once for all’이란 의미입니다. 신약에 딱 5번 나오는데(은혜를 뜻하는 숫자 5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길 바랍니다) 모든 해당 구절을 읽어보시는 것도 유익하리라 생각됩니다(단어를 누르면 모든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한국어에는 없는 표현이라서 ‘단번에, 단 한 번에’라는 반쪽짜리 번역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once for all’이란 표현은 글자 그대로, ‘단 한 번에 다(모두)’란 뜻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란 의미입니다.
‘거룩함을 얻었노라’로 번역된 헬라어 ‘hagiazó(하기아드조)’는 ‘거룩히 구별되다’란 뜻으로 영어로는 ‘to make holy, set apart as holy, santifly’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뜻 안에서(en)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려지시는 것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고”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원어에는 ‘진실로, 정말로(truly, indeed)’란 의미의 ‘men(멘)’이 있습니다. ‘본절에 ‘없게 한다’로 번역된 ‘periaireó(페리아히레오)’는 ‘벗겨내다, 제거하다, 잘라내다’란 의미인데 특별히 사방으로 에워싼 어떤 것을 완전히 분리해서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도 신약에 딱 5번 나옵니다. ‘자주’로 번역된 헬라어 ‘pollakis(폴라키스)’는 ‘자주, 여러 번, 계속해서’란 뜻으로 ‘repeatedly(반복적으로)’란 표현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제사’로 번역된 단어도 1절처럼 ‘희생 제물’의 복수형인 ‘Thysias(띠시아스)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실로 모든(pas) 제사장이 날마다 서서 섬기며 반복해서 같은 희생 제물들을 드리되 그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분리 제거하지) 못했으나“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본절에 ‘위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huper(후퍼)’는 ‘~위에, ~너머’란 뜻으로 ‘~을 대신해, ~를 위해서, ~에 관한’이란 의미입니다. ‘제사’로 번역된 헬라어는 ‘희생 제물’을 뜻하는 ‘Thysian(띠씨안)’인데 5절처럼 단수형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직 이분은 죄들을 대신한 희생 제물을 영원히 드리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 후에’로 번역된 헬라어 ‘loipon(로이폰)’은 ‘뭔가 남겨진 것들’을 뜻하며, ‘마침내, 지금부터 계속, 그 이후로’란 의미로 쓰입니다. ‘발등상이 되게 하신다’에서 ‘되게 한다’로 번역된 헬라어 ‘tithémi(타이테이미)’는 ‘~을 놓다, 고정하다, 세우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의 발받침으로 놓이게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니라.“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본절에 ‘거룩하게 된’으로 번역된 헬라어 ‘hagiazomenous(하기에조메노스)’는 과거진행형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되는’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번의 제사’에서 ‘한 번은 오역입니다. 여기에 쓰인 ‘mia(미아)’는 ‘하나’란 의미이지 ‘한 번’이 아닙니다. 신약에 총 35번 나오니 단어를 눌러 이 단어가 쓰인 구절들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 하나의 헌물로 그분은 거룩히 구별되는 자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기 때문이라(gar)“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원어에는 개역개정의 16절 앞부분이 15절 뒷부분에 나옵니다. 아마도 번역상의 편리 때문에 15절에 나오는 뒷부분을 16절 앞쪽으로 붙인 것 같습니다. 좀 어색하더라도 그냥 원어에 있는 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한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하시니, 이후에(meta) 말씀하시기를,”
*본절에 나오는 ‘meta‘는 ‘~과 함께, ~와 같이, ~과 더불어, ~뒤따라’를 뜻하는데 특히 그 일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주로 ‘with’란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시간의 경과를 나타낼 때는 ‘after’란 의미로 쓰입니다. 14절까지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성육신하셨는가를 기록하고 있고 15절부터는 부활 사건 이후로 오신 성령께서 어떻게 증언하시는가를 다루고 있기에 본절의 ‘meta‘는 ‘이후에’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본절에도 15절의 ‘meta(메타)’가 나옵니다.
“그날들 이후에(meta) 내가 그들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라 주가 말하노라, 내 법을 그들의 마음속에 두고(넣고) 그들의 생각 속에 그것들을 내가 기록하리라”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다시’로 번역된 ‘eti(에티)’는 ‘더(more, further), 아직도(still, yet), 더 이상(any longer, anymore)’란 뜻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또 그들의 죄들과 그들의 불법들을 내가 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사하였은즉’으로 번역된 헬라어 ‘aphesis(아페시스)’는 ‘기각, 석방, 사면’을 의미하는 법정 용어입니다. 본절에 ‘다시’로 번역된 헬라어는 ‘ouketi(우케티)’는 ‘더는 없다, 더 이상 없다(no longer, no more)’란 뜻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de) 이것들의 사면이 있는 곳엔(Hopou) 더 이상 죄들에 관한(peri) 헌물은 없느니라“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피를 힘입어’에서 ‘힘입어’로 번역된 헬라어 ‘en(엔)’은 ‘~안에, ~위에, ~에, ~로 인해, ~과 함께’ 등을 의미하는 접속사입니다. ‘담력’으로 번역된 헬라어 ‘parrésia(파레이시아)’는 특별히 ‘언어(언론)의 자유(freedom of speech), 자신감(confidence)’을 뜻하며 자유롭고 솔직하게 말하며, 담대하고(boldness) 확신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얻었나니’로 번역된 헬라어 ‘Echontes(에콘테스)’는 1절의 ‘갖고 있다, 잡고 있다, 소유하다’는 뜻의 ‘echó(에코)’의 파생어입니다. 특히 ‘손에 쥐고 있거나, 옷처럼 입고 있다’는 의미이기에 ‘지녔다’고 표현하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와 함께(피로 인해) 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지녔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열어놓으신’으로 번역된 헬라어 ‘egkainizo(엥카히니드조)’는 ‘consecrate(거룩히 구분하다), dedicate(봉헌하다)’를 뜻합니다. ‘새로운’으로 번역된 헬라어 ‘prosphatos(프로스파토스)’는 ‘새로 막 죽인 희생물, 최근, 신선한, 새것’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을 곧 자기의 육체를 통과해(dia:through) 봉헌한(거룩히 드린) 새롭고(신선하고) 살아 있는(zōsan) 길이라”
*이번에 원어분석을 하면서 prosphatos(프로스파토스)’가 ‘새로 막 죽인 희생물’을 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 단어가 ‘살아 있다, 생명이 있다’는 의미의 ‘zōsan(조산)’과 함께 쓰였다는 점을 주목하게 됐었습니다. 아, 이 구절은 십자가상에서의 어린양의 희생과 영원한 부활의 생명으로 인해 휘장, 즉 그리스도의 몸을 통과해서 난 길이란 의미구나 싶었습니다. 그 참된 의미가 번역으로는 전달이 되기 어렵다는 게 아쉽습니다. 이렇게 일일이 구절을 번역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숨겨진 것들을 알아가는 걸 기쁨으로 여깁니다.
10장이 39절까지 있어서 1-20절까지 이번에 올리고 후편으로 21-39절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