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0장 원어/영어 분석 연구(2)

다음 내용은 히브리서 10장 21절에서 39절까지입니다.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위 구절 그대로 괜찮습니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맑은’으로 번역된 헬라어 ‘katharos(카따로스)’는 ‘깨끗하다’는 뜻으로 ‘깨끗하다, 순수하다, 때 묻지 않았다, 순결하다, 바르다’는 의미입니다. ‘참 마음’에서 ‘참’으로 번역된 헬라어 ‘aléthinos(알레이띠노스)’는 ‘참, 진실, 진짜, 진심’이란 의미입니다. ‘완전한 믿음’에서 ‘완전’으로 번역된 헬라어 ‘plérophoria(플레이로포리아)’는 ‘꽉 찬 보증, 확신, 자신’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에서 벗어났고 몸은 순수한(깨끗한) 물로 씻겼으니 믿음의 꽉 찬 보증 안에서(충만한 확신 안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미쁘시니’로 번역된 헬라어 ‘pistos(피스토스)’는 ‘신실하다, 신뢰할 수 있다, 믿을 만하다’는 의미입니다. ‘도리’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은 homologia(호모로기아)’입니다. 앞선 히브리서 3장 1절에 쓰인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에서 ‘믿는 도리’로 쓰인 단어입니다. 동의하다, 고백하다, 자백하다’는 의미로 특히 신앙고백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움직이지 말며’로 번역된 헬라어 ‘aklinés(아크리네스)’는 ‘굽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결단을 못 내리고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흔들림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신실하시니 우리는 흔들림 없이 소망의 고백을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본절에 ‘돌아보아’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은 ‘katanoeó(카타노에오)’입니다. ‘숙지하다, 고려하다, 분별하다’는 의미인데, ‘생각을 집중해서 고정한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대제사장이시며 사도이신 예수를 깊이(주의 깊게) 생각하라’에서도 쓰인 단어입니다. 본절에 ‘선행’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름답다, 선하다, 고귀하다’란 뜻의 ‘kalos(칼로스)’와 ‘일, 행위’를 뜻하는 ‘ergon(에르곤)’입니다. ‘ergon(에르곤)’은 단수이지만, 문맥에 따라 영어로는 복수로도 자주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본절에 ‘격려하며’로 번역된 헬라어 ‘paroxusmos(파록수스모스)’는 일반적인 격려와는 다른 단어입니다. ‘자극하다, 분발시키다, 흥미나 관심을 불러일으키다’란 의미며 ‘도발하다, (화나 짜증을) 유발하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신약에 딱 두 번 나오는데, 본절과 사도행전 15장 39절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크게 다툰 후 갈라섰을 때 쓰인 단어입니다. 한번은 좋은 의미로 한번은 나쁜 의미로 쓰였으니 이 단어야 말로 숫자 2가 갖는 ‘나눔’의 의미를 잘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숫자 2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본절은 그냥 성도가 서로를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고, 성도가 서로 주의 깊게 관찰하여 사랑과 선한 일에 이르도록 다투듯이 격렬하게 자극하란 의미입니다. 마치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 뒤쳐지는 사람들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급박하고 강렬하게 다그치며 따라오게 하거나 안되면 부축해서라도 뛰는 그림을 그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구절은 그냥 느긋하게 ‘좋은 게 좋은 거지’하는 구절이 아닌 단어의 특성상 긴장감과 급박함이 도는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로 숙지하여 사랑과 선한 일에 이르도록(eis) 자극하되(분발시키되)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 ‘episunagógé(에피순네고게이)’는 ‘함께 모이는 것, 집회, 집합, 모임’이란 뜻입니다. ‘폐하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egkataleipó(에그카탈리포)’는 ‘(좋은 의미에서) 남겨두다, 혹은 (나쁜 의미에서) 저버리다’란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들’로 번역된 헬라어는 ‘tisin(티신)’은 ‘일부(some)’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습관’으로 번역된 헬라어 ‘ethos(에또스)’는 ‘관례, 관습, 풍습, 습관’이란 뜻인데 주로 율법에 따른 관례를 뜻합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몇몇의(일부의) 관례(습관)처럼 우리의 집회(함께 모이는 일)를 저버리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날이 다가옴을 볼수록 더욱더 그리하자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주님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 오늘 오신다고 해도 전혀 뜻밖이지 않을 시기이기에 주님의 군사로 모여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훈련장으로 모이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본절에 ‘진리를 아는 지식’으로 되어 있는데 원어로 직역하면 그냥 ‘진리의 지식’입니다. ‘짐짓’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hekousiós(헤쿠시오스)’인데, ‘자발적으로, 기꺼이,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짐짓’이란 단어로는 뜻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습니다. 영어로는 ‘willingly’라고 하고 신약에 두 번 쓰였는데, 본절과 배드로전서 5장 2절입니다. 역시 악한 일을 할 때와 선한 일을 할 때 쓰였기에 ‘나눔, 분리’라는 의미를 갖는 2의 특성에 맞습니다. 그 해당 부분을 1절부터 6절까지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밷전 5장 1-6절)”

즉 교회의 장로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칠 때 마지 못해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발적으로 기꺼이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또 더러운 이득을 위해서도 아니요,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하는) 자세도 아니요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면 목자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영광의 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즘 이단 교주들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 그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 이적을 행하며 성도들을 착취하고 군림했던 것을 볼 때,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입장이기에 말씀을 쫓아 다시 허리띠를 동여매고 발에 신을 신고 지팡이를 듭니다.

또한 젊은이들은 하나님이 교회에 세우신 질서에 따라 장로들에게 순종하며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니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면 때가 될 때 높여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본절에 ‘속죄하는 제사’로 번역된 부분은 원어로는 ‘peri(페리) hamartiōn(하마르션) thysia(띠씨아)’ 즉, ‘죄들을 위한 희생 제물’입니다. 즉, 그런 고의적인 죄를 속죄할 수 있는 희생제물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리의 지식을 받은 후에 우리가 자발적으로 기꺼이 죄를 지으면 이상 죄들을 위한 희생 제물이 남아 있지 않으니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오직’으로 번역된 헬라어 ‘de(데)’는 ‘그러나, 이제, 그리고, 하지만’이란 의미입니다. ‘무서운’으로 번역된 헬라어 ‘phoberos(포베로스)’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공포와 두려움’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기다리는 것’으로 번역된 헬라어 ‘ekdoché(엑도케이)’는 판사로부터 내려질 심판이 피고인에게 선고되기까지의 기다림, 즉 대기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맹렬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zelos(제일로스)’는 ‘열심, 뜨거움, 열정, 질투’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 신약에 16번 나옵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그런 자들이(tis)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끔찍하게 두려운 심판과 대적들을 삼키게 될 맹렬한 불이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모세의 법을 폐한 자’에서 ‘폐한’으로 번역한 헬라어 원어는 ‘atheteó(애떼테오)’입니다. ‘파기하다, 무시하다, 무효화시키다, 멸시하다’ 등의 의미로 쓰이는데, 본절은 법적인 계약 관계를 얘기하고 있기에 ‘파기하다’로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자든지(tis) 모세의 법을 파기하면 두세 증인으로 인해 긍휼 없이(chōris) 죽었거늘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로 번역된 헬라어 ‘koinos(코이노스)’는 원래 ‘평범하다, 보통이다’를 뜻하는 단어지만, 히브리인들은 ‘불경스럽다, 부정하다, 모독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마치 프랑스어의 ‘마담’이란 단어가 결혼한 여성을 높여 부르는 ‘부인’이란 단어지만 한국에 들어와서는 다방 주인을 일컫는 명칭으로 사용되면서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koinos(코이노스)’란 단어는 신약에 14번 나오는데, 대부분 부정하다, 불경하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을 평범한 것으로,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것으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불경이고 부정하게 대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욕되게’로 번역된 헬라어 ‘enubrizó(에누브리조)’는 ‘모독하다, 모욕하다’는 의미입니다. ‘무겁겠느냐’로 번역된 헬라어 ‘cheirón(카이론)’은 ‘더 형편없는, 더 나쁜, 더 심한’이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히 구별한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평범하게) 여기며 은혜의 (성령) 모독한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심할지 너희는 생각해 보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본절에서 고칠 부분은 딱 한 자입니다. ‘말씀하신 것을’로 번역된 부분은 ‘말씀하신 분을(ton eiponta)’로 번역하는 게 맞습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분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빠져 들어가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empiptó(엠핍토)’는 ‘던져지다, 빠지다, 떨어지다’란 의미입니다. ‘무서울진저’는 27절에도 쓰인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공포와 두려움’을 의미하는 ‘phoberos(포베로스)’입니다. 본절 번역은 흠정역이 더 나아서 가져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로다”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본절에 ‘전날에’로 번역된 헬라어는 ‘proteron(포로테론) hēmeras(히메라스)’는 ‘지나간 날들’ 혹은 ‘지난 날들’이란 의미입니다.

‘빛을 받은 후에’에서 ‘빛’으로 번역된 헬라어 phótizó(포티조)는 ‘빛나다, 빛을 내다, 빛을 주다’란 의미이지만 어떤 사건이나 미스터리를 ‘밝혀내다(고전 4:5; 엡 3:9; 딤후 1:10)’는 의미로 쓰이며 살아 있는 성경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얻다, 깨우쳐지다, 조명 받다(요 1:9; 히 6:4, 10:32; 엡 3:9; 시 118:130; 삿 13:8; 왕하 12:2, 17:27; 엡 1:18)”란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10장을 번역하며 보니 적어도 흠정역은 같은 단어가 쓰였던 히 6장 4절은 그냥 ‘빛을 받고’로 번역했었지만 본절만큼은 ‘조명을 받은 뒤에’로 번역했음을 알게 됐습니다.

‘고난’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고난, 고통‘을 뜻하는 pathéma(패띠마)입니다. ‘싸움’으로 번역된 헬라어 ‘athlésis(애뜰리시스)’는 ‘대회, 시합, 경쟁’을 의미하는 ‘contest’란 뜻입니다. 특히 고난과 시험으로 씨름하며 싸우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운동 경기(영국에서는 육상 경기)를 뜻하는 영어 ‘athletics’와 운동선수를 뜻하는 ‘athlete’이 여기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생각하라’로 번역된 헬라어 ‘anamimnéskó(아나밈네스코)’는 ‘상기시키다, 기억나게 하다’란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call to remembrance(KJV)’인데 ‘기억을 불러일으키다’는 의미는 그냥 기억이 나는 정도가 아닌 의지적인 노력을 포함하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de) 너희가 조명을 받은 뒤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냈던 지난 날들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라(상기시키라, 기억해내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혹은’으로 번역된 헬라어 ‘touto(투토)’는 ‘this’ 즉, ‘이것, 이렇게’란 의미입니다. ‘환난’으로 번역된 헬라어 ‘thlipsis(뜨립시스)’는 ‘고난, 어려움, 환난’을 뜻하는 단어인데 영어로는 ‘tribulation’이며 ‘persecution, affliction, distress’로도 쓰입니다. 앞선 32절에 ‘고난’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고난, 고통‘을 뜻하는 pathéma(패띠마)와는 다른 단어입니다.

‘이런 형편에 있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houtōs(후토스) anastrephomenōn(아나스트레포메논)’은 직역하면 ‘이와 같은 것을 지나가고 있는’이란 의미입니다. ‘사귀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koinónos(코이노노스)’는 영어로는 ‘sharer, partner, companion’인데, 즉 ‘함께 나누는 사람, 공유자, 동반자’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렇게 진정코(men) 비방뿐만 아니라(te:both) 환난에 의해서도 구경거리가 되고 이렇게 지금은(de) 이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자들의 동역자가(동반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갇힌 자’로 번역된 헬라어 ‘desmios(데스미이오스)’는 ‘묶인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이란 의미로 영어로는 ‘prisoner’입니다. ‘빼앗기는’으로 번역한 헬라어 ‘harpagé(하르파게이)’는 ‘약탈, 강탈, 노략’이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는 것뿐만 아니라(te:both) 너희 소유를 약탈당하는 것도 기쁘게 받아들인 것은(prosedexasthe) 너희 스스로가(heautous) 더 낫고 영구한 소유를 가진 줄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위 번역 그대로도 좋습니다. 본절에 ‘담대함’으로 번역된 헬라어 ‘parrésia(파레이시아)’는 ‘언어의 자유, 자신감, 담대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담대함을(확신) 버리지 말라 이것이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위 번역 그대로도 괜찮고 흠정역 번역도 괜찮습니다. 흠정역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뒤에 그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하니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위 번역 그대로도 괜찮지만, ‘아주, 매우’라는 의미의 ‘hoson(호손)’이 빠져 있습니다. 그 단어까지 넣어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뒤로 물러가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hupostolé(후포스톨레이)’는 ‘실망시키다, 뒷걸음치다, 움츠려들다’란 의미입니다. ‘내 마음’에서 ‘마음’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숨 또는 혼’을 의미하는 ‘psuché(프수케이)입니다. 빠져 있는 단어까지 넣어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de)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혼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본절에 ‘영혼’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숨 또는 혼’을 의미하는 ‘psuché(프수케이)입니다. ‘구원함’으로 번역된 헬라어 ‘peripoiésis(페리이포이에이시스)’는 ‘보존하다, 지키다, 획득하다, 소유하다’란 의미입니다.

그러나(de)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에 이르는 자들이 아닌 믿음으로 혼을 보존하는(지키는) 자들이니라.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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