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구름 같이’에서 ‘같이’는 번역자들이 비유라고 생각해서 덧붙진 단어입니다. 직역하면 ‘수많은 증인들의 구름이 우릴 둘러싸고 있다’입니다. 성경은 어떤 내용이 만일 비유라면 비유에 맞는 ‘~같이, ~처럼’이란 부사를 넣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비유도 은유도 아닙니다. 킹제임스 영어성경에서 ‘cloud’를 찾으면 147번 나오는데 대부분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이 있고 구약에서도 광야 기간 동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이들을 인도했던 기록이 나옵니다. 변화산에서도 빛난 구름이 3명의 제자를 덮었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마 17:50; 막 9:7; 눅 9:34-35). 주님이 재림하실 때도 하늘의 구름들과 오십니다(마 24:30, 26:64; 막 13:26, 14:62; 눅 21:27).
‘얽매이기 쉬운’으로 번역한 ‘euperistaton(유페리스타톤)은 ‘쉽게 에워싸는’이란 뜻으로 ‘앞으로 나갈 수 없게끔 주위로 빼곡히 둘러싸인 상태’를 의미하는 ‘euperistatos(유페리스타토스)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벗어 버리고’로 번역한 ‘apotithémi(애파티때이미)’는 ‘벗다, 옆으로 치워놓다, 내려놓다’등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또한 ‘경주를 하며’로 번역한 헬라어 ‘trechōmen(트레코멘) agōna(아고나)’는 ‘경주를 달려야 하리라(should run a race)’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우릴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증인의 구름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우리를 쉽게 얽어매는(에워싸는)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 앞에 놓인 경주를 달려야 하리라”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본절은 흠정역이 원어와 문법에 맞게 잘 번역했기에 가져옵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보좌) 오른편에(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본절에 빠진 단어가 있는데 원어에는 그냥 ‘너희가’가 아니라 ‘너희의 혼들이(psychais hymōn)’입니다. ‘피곤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kamēte(카메이테)’는 ‘지치다’란 의미이고 ‘낙심’으로 번역된 헬라어 ‘ekluó(에클류)’는 ‘기절하다’란 뜻으로 ‘기진하다’를 의미합니다.
‘거역’으로 번역된 헬라어 ‘antilogia(안틸로기아)’는 ‘거부하다, 반박하다, 반대하다, 반역하다’란 의미입니다. ‘생각하라’로 번역한 헬라어 ‘analogizomai(애날로기드조마이)’는 ‘분석하다, 계산하다, 고려하다’란 뜻으로 본절에 딱 한 번 등장합니다. ‘분석’을 의미하는 영어 ‘analyze(에널라이즈)’가 여기서 파생한 단어이기에 그냥 생각하라는 정도는 아닙니다.
본절은 단어 번역뿐만 아니라 특히 문법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일일이 설명하기엔 너무 길어질 것 같고 따로 설명하지 않은 단어들은 번역한 단어 옆에 가로 처리로 넣겠습니다.
“그분이(ton:the One) 자기를 향한(hypo) 죄인들의 거역을 어떻게(toiautēn) 견디어 내셨는지를(인내하셨는지를) 분석하라 이는(hina) 너희 혼들이 지치고 기진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gar)”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위 번역 그대로 괜찮습니다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권하는 것 같이’로 번역한 헬라어 ‘dialegomai(다이얼레고마이)’는 ‘논의하다, 연설하다, 설교하다’란 뜻으로 특히 특정 종교 및 생활 방식을 남이 받아들이도록 전하는 것, 즉, 설파 또는 역설을 의미합니다. ‘권면’으로 번역한 헬라어 ‘paraklésis(파라클레이시스)’는 ‘격려, 위로’를 뜻하며 ‘훈계 및 권고’로 쓰입니다.
여기서 ‘징계’로 번역한 헬라어 ‘paideia(파이다이아)’는 ‘훈육 또는 징계’란 뜻인데, ‘아이를 훈련시키고 교육시키며 키워내는 모든 과정’을 의미하기에 훈육이 적합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어로는 ‘훈육’하면 딱히 ‘징계’의 의미까지 포함한 느낌은 아닙니다. 하지만, 영어만 해도 ‘discipline’이란 단어엔 헬라어처럼, ‘훈육 안에 징계’의 의미가 있습니다.
‘경히 여기다’로 번역한 헬라어 ‘oligoreo(올리고레오)’는 ‘멸시하다, 가벼이 여기다’란 의미입니다. 본절에 ‘낙심’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3절의 ‘eklyou(에클류)’와 같은 단어로 ‘faint’ 즉, ‘기절하다, 기진하다’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들들에게 하듯 너희에게 설파한 훈계(권고) 또한 너희가 잊었도다, 이르시되, 내 아들아, 너는 주의 훈육(징계)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분께 책망 받을 때에 기진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본절에 ‘징계’로 쓰인 단어 역시 5절의 ‘훈육 또는 징계’를 뜻하는 ‘paideia(파이다이아)’입니다. 번역에 빠진 접속사를 넣고 문법에 맞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훈육(징계)하실 뿐만 아니라(de)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느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는 번역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원어를 직역하면 ‘훈육(징계)을 인내하라(참으라)’입니다. 본절은 문법도 잘못되어 있습니다. ‘훈육’을 ‘징계’로 번역해도 상관없지만, 다른 부분이 잘못 번역이 되어 있어 원어대로 고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아들들처럼 대우하시니 훈육을(징계를) 인내하라(참으라) 아버지가 훈육하지(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징계는 다 받는 것이다’라고만 하면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본절에 빠져 있는 단어가 있는데 ‘동역자, 동참하는 사람, 참여하는 사람, 나누는 사람, 참가자’ 등을 뜻하는 ‘metochos(메토코스)’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 총 6번 나오는데 히브리서에서만 5번 쓰입니다(원어를 누르면 나오는 모든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절을 빠진 단어들을 넣고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de) 모두가(pantes) 참여하는 훈육이(징계가) 만일 너희에게 없다면 너희는 사생아들이요 아들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징계하여도’로 번역한 헬라어 ‘paideutas(파이듀타스)’는 ‘선생님, 트레이너(훈련시키는 사람), 훈육 또는 징계하는 사람’을 뜻하는 명사입니다. 영어로는 ‘trainer, discipliner’ 하면 그만일 텐데 한국어에는 적합한 단어가 없습니다. 아쉬우나마 ‘훈계자’로 쓰려고 합니다. ‘모든 영’에서 ‘모든’은 삽입이 된 단어이고 대신 ‘영’이 복수인 ‘영들’입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실로(men) 그렇다면(eita) 우리에게 육신의 아버지들이 훈계자로(징계자로) 있었어도(eichomen) 그들을 공경했거늘,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잠시’는 ‘oligas(올리가스) hēmeras(헤이메라스)’인데 직역하면 ‘며칠간’입니다. ‘뜻대로’라고 번역한 헬라어 ‘dokoun(도쿤)’은 ‘의견대로, 보이는 대로, 생각대로’란 뜻입니다.
따라서 본절을 빠진 단어들을 넣고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실로(men) 그들은 며칠간 자기 의견대로(보이는 대로) 우리를 훈계하였지만(징계하였지만) 그분은 우리 유익을 위해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시키고자 하심이라(eis)“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무릇’으로 번역한 헬라어는 ‘모든’을 의미하는 ‘pasa(파사)’입니다. ‘즐거워 보이다’로 번역한 헬라어 ‘dokei(도케이) charas(카라스)’는 ‘기쁘게 보이다(seems of joy)’란 뜻입니다. ‘연단 받은’으로 번역한 헬라어 ‘gegymnasmenois(게짐내스메노이스)’는 헬라어 어원 ‘gumnazó(굼내드조)’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운동하다, 연마하다, 단련하다’란 의미인데 특히 벌거벗거나 최소부위만 가린 채 트레이닝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스포츠인들은 주로 이런 극심한 방식으로 힘써 트레이닝에 몰두했다고 하는데, gymnasium(Gym:체육관)이 여기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의와 평강의 열매’보다는 ‘의의 화평한 열매(peaceable fruit of righteouness)’가 더 문법에 맞습니다. 그리고 ‘맺느니라’로 번역한 헬라어 ‘apodidōsin(아포디오신)’은 ‘~내다, 생산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자들은’이 아니라 주어는 ‘징계(훈육)’이기에 ‘자들에게(tois:to those)’가 문법상 맞습니다.
따라서 본절을 빠진 단어들을 넣고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de) 모든 징계는(훈육은) 그 당시에는 기쁘게 보이지 않고 슬프게 보이지만 이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단련된) 자들에게는 의의 화평한 열매를 내느니라(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본절은 흠정역 번역이 더 맞기에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늘어진(pareimenas)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본절에 ‘길’은 ‘trochias(트로키아스)’ 즉, 복수형입니다. ‘어그러지다’로 번역한 ‘ektrepó(엑트레포)’로 ‘길에서 벗어나다, 돌아서다, 어그러지다, 뼈가 어긋나다, 피하다’란 의미입니다. ‘저는 다리로’라고 번역한 헬라어 ‘to(토) chōlon(콜론)’은 ‘절름발이(the lame)’란 명사입니다. 또한 본절에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단어 중엔 ‘그뿐만 아니라(de:however)’와 ‘도리어(mallon:rather)’란 단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본절을 빠진 단어들을 넣고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의 발을 위해 곧은 길들을 만들지니 이는(hina) 절름발이가 어그러지지(어긋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고침을 받게(낫게) 하려 함이라“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본절에서 ‘사람’은 삽입된 단어입니다. 또한 ‘따르라’로 번역한 ‘diōkete(디오케테)’는 ‘쫓다, 추격하다, 박해하다, 핍박하다’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단어이지 그냥 ‘따라가는(follow)’ 정도가 아닙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두와 더불어 화평과 거룩을 추구하라(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 하리라“
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본절 번역에 빠져있는 헬라어 ‘episkopountes(에피코폰테스)’는 ‘관찰하다, 주의 깊게 살피다, 감독하다, 보살피다’란 뜻입니다.
따라서 본절을 빠진 단어를 넣고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는지 주의 깊게 살펴서 쓴 뿌리가 돋아나 너희를 괴롭게 하고 이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여“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한 그릇 음식’으로 번역된 헬라어 ‘brōseōs(브로세오스) mias(미아스)’는 ‘한 끼(one meal)’를 의미합니다. ‘망령된’으로 번역한 헬라어 ‘bebélos(베베일로스)’는 ‘부적절하고 불온한 태도’를 의미하는데 성경에서는 주로 ‘세속적인(worldly)’으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음행하는 자나 한 끼를 위해 자기의 장자권을 판 에서처럼 세속적인 사람이 없도록 하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이어받으려고’로 번역한 헬라어 ‘klēronomēsai(클레이로노메이세이)’는 ‘상속받다’이며, 이 단어 앞에 ‘원하다’란 의미의 ‘thelōn(뗄론)’이 있는데 본절에는 빠져있습니다.
‘버린 바가 되어’라고 번역한 헬라어는 ‘거절당하다’란 뜻의 ‘apedokimasthē(아페도키마스떼)’입니다. ‘회개할 기회’로 번역한 헬라어 ‘metanoias(메타노이아스) topon(토폰)’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metanoias(메타노이아스)’는 신약에 총 22번 나오는데 모두 ‘회개’로 번역됐고, ‘topon(토폰)’은 대부분 ‘장소, 곳, 자리’를 의미하지만 ‘기회’를 의미하기도 해서 그렇게 번역한 구절들도 여럿입니다. ‘얻지 못했다’로 번역한 헬라어 ‘ouch(우크) heuren(헤우렌)’은 ‘못 찾았다’입니다.
따라서 본절을 빠진 단어를 넣고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 후에 그가 복을 상속받기 원하였지만 거절당했으며 그것을 눈물로 구했지만 회개의 기회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gar)”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본절에 ‘산’은 원어엔 없지만 삽입된 것입니다. ‘침침함’으로 번역한 헬라어 ‘zophō(조포)’는 ‘어둡다, 암울하다’란 의미인데, 특별히 느낄 수 있는 종말론적인(apoclyptic) 어둠, 즉 지옥의 암울함을 뜻합니다. 성경에 총 5번 나오는데 단어를 눌러 모든 구절을 살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라 판단됩니다. 이 단어는 열 가지 재앙 중 9번째 재앙인 ‘어둠의 재앙’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출애굽기 10장 21절에 애굽 땅에 임했던 흑암은 ‘느껴질 수 있는’ 혹은 ‘만져질 수 있는’ 어둠이었다고(darknesss which may be felt) 성경은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원어로는 본절에 있지만 한국어 문법상 다음 구절로 갈 수밖에 없었던 단어는 ‘다다르다, 이르렀다’를 의미하는 ‘proselēlythate(프로셀레이라이따테)’와 ‘아니다’를 의미하는 ‘Ou(우)’입니다.
본절을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은 어둠과 흑암과(캄캄함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구하였으니’로 번역한 헬라어 ‘parētēsanto(파레이테이산토)’는 ‘피하다, 간곡히 거절또는 거부하다, 핑계 대다, 변명하다, 양해를 구하다’를 뜻하는 ‘paraiteomai(파라이테오마이)’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팔의 소리와 말씀하시는 음성에 이른 것이 아니니라 그것들을 들은 자들은 자기들에게 더는 말씀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거부했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들어가면’으로 번역한 헬라어 ‘thigē(띠게이)’는 ‘만지다, 닿다, 손을 대다’를 의미입니다.
문장에 빠진 단어들을 모두 넣고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짐승이라도 그 산에 닿게 되면 돌로 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gar)“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본절 그대로 좋습니다.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본절에 ‘이른 곳은’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18절의 ‘다다르다, 이르렀다’를 의미하는 ‘proselēlythate(프로셀레이라이따테)’입니다. 이 단어 역시 원어로는 본절에 있지만 한국어 문법상 다다음 구절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이처럼 있지도 않은 단어를 넣어야 합니다.
따라서 한국어 문법에 맞게 다시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들과“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기록된’으로 번역한 헬라어 ‘apogegrammenōn(아포게그램메논)’은 ‘등록되다, 기재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라고 번역했는데 그렇게 하면 교회와 장자들의 모임이 별개인 것 같습니다. 문법상 바로 된 번역은 ‘장자들의 교회 모임’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영어로는 ‘firstborn’인 헬라어 ‘prototokos(프로토토코스)’를 한국어로 표현하기가 참 애매합니다. 이 단어는 ‘맏이, 맏배’를 모두 포함하는 단어인데, 한국어에는 사람과 동물의 ‘처음 난 것’을 모두 포함해서 일컬을 수 있는 한 단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쉬우나마 ‘첫째들’이라고 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모임’으로 번역한 헬라어 ‘panēgyrei(파네이가이레이)’는 성경에 딱 한 번 등장하는 단어로 ‘축제 또는 집회’를 의미합니다. 특히 종교적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광장 같은 곳에 모여 축하하는 집회(assembly)를 말합니다. ‘만민’으로 번역된 헬라어 ‘pantōn(팬톤)’은 ‘모든, 모두’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에 기재된(등록된) 첫째들(맏이들)의 교회 집회(축제)와 모두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위 번역 그대로도 괜찮지만 문법에 좀 더 맞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과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들을 말하는 뿌린 피에 이르렀느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본절에 ‘경고’로 번역된 헬라어 chrématizó(크레이마티드조)’는 특별히 신적 경고를 뜻하며 주로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나 주의를 받았다’로 쓰입니다. 영어로는 ‘warned(경고하다/받다)’ 혹은 ‘admonished(충고하다/받다, 주의를 주다/받다, 훈계하다/받다)’로 번역됐습니다. 본절에 이 단어가 두 번 등장하는 것처럼 번역됐지만(땅에서 경고하고 하늘에서 경고한 것처럼) 이해를 돕기 위해 넣은 것이지 원어엔 한 번만 나옵니다.
‘거역’으로 번역한 헬라어 ‘paraitēsēsthe(파레이테이세이스떼)’는 19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두렵다며 더는 자기들에게 말씀하시지 말라고 간곡히 거부했다(거절했다)로 쓰인 ‘paraiteomai(파라이테오마이)’란 원어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19절의 이스라엘이 했던 것처럼 말씀 듣기를 거부하지 말라는 것과 연결선상에 있는 구절입니다.
‘피하지 못하였다’로 번역된 헬라어 ‘ouk(우크) exephygon(엑세파이곤)’은 ‘도망치지 못했다’입니다. ‘배반’으로 번역한 헬라어 ‘apostrephomenoi(아포스트레포메노이)’는 ‘돌아서다’란 의미입니다. 또한 본절 번역에 빠져 있는 ‘poly(폴리) mallon(말론)’은 영어로는 ‘much more’ 즉, ‘훨씬 더, 더욱더’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삼가 말씀하시는 분을 거부하지 말라 훈계하신(경고하신) 이를 거절했던 그들이 땅에서 도망치지 못하였다면 하늘로부터 그분에게서 돌아서는 우리는 훨씬 더하니라“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진동’으로 번역한 헬라어 ‘saleuó(살레우오)’는 ‘뒤흔들다, 흔들다, 무너트리다’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본절에 빠진 단어를 넣고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때에는 그분의 음성이 땅을 뒤흔들었지만 이제는 그분께서 약속하여 이르시되, 아직(Eti) 한 번 더 내가 땅뿐만 아니라 하늘도 뒤흔들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본절에 빠져 있는 헬라어 ‘dēloi(데일로이)’는 ‘보여주다, 나타내다, 드러내다, 선포하다’란 의미입니다. ‘영존’으로 번역된 헬라어 ‘meinē(메이네이)’는 ‘남다, 머물다’란 의미입니다. ‘만드신 것들이’로 잘못 번역된 헬라어 ‘hōs(호스) pepoiēmenōn(포포이에이메논)’은 ‘~처럼(as), ~같이(like), 마치 ~처럼(as if)’를 의미하는 ‘hōs(호스)’와 ‘만들어진’을 의미하는 ‘pepoiēmenōn(포포이에이메논)’입니다. 원어대로 직역하면 ‘마치 만들어진 것처럼’입니다.
‘변동’으로 번역한 헬라어 ‘metathesis(메타띠이씨쓰)’로 성경에 딱 3번밖에 나오지 않는데(단어를 누르면 3구절 모두 볼 수 있습니다) ‘metatithemi(메타티떼미)’라는 어원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옮기다, 바꾸다, 떠나다’로 번역되며 에녹이 옮겨진 히브리서 11장 5절에도 등장합니다. 따라서 ‘옮기다, 이동하다’로 번역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아직 한 번 더’가 나타내는 바는 흔들리는 것들을 이동시켜 마치 만들어진 것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 남게 하려 함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경건함’으로 번역한 헬라어 ‘eulabeia(율라베이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기쁘시게’로 번역한 ‘euarestós(유아레스토스)’는 ‘받으실만한, 흡족한’이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는 왕국을 받을 우리에겐 은혜가 있으니 이것으로 우리가 경외심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이 받으실만하게(흡족하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본절을 빠진 단어들을 넣고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