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본절은 원어에는 있는데 번역하지 않고 뺀 주요 단어가 여럿 있습니다. 먼저, 요한계시록에서만 총 4번 나오는 ‘알파와 오메가’란 표현입니다(계1:8; 1:11, 21:6, 22:13). 또한 ‘그 처음과 그 마지막(ho prōtos kai ho eschatos)’이란 표현도 빠져 있습니다. 이 표현은 8절에 ‘알파와 오메가’와 같이 나왔던 ‘시작과 끝(archē kai telos)’이란 표현과는 또 다릅니다. ‘시작과 끝(the beginning and the ending)’은 계시록에서만 총 3번 나오며(계1:8, 21:6, 22:13), ‘그 처음과 그 마지막(the first and the last)’이란 표현은 계시록에서만 4번 나옵니다(본절, 계 1:17, 2:8, 22:13). 영어로는 정관사 ‘the’가 ‘시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에 모두 붙지만 헬라어로는 ‘시작과 끝’엔 붙지 않고 ‘처음과 마지막’에만 붙습니다.
이번에 요한계시록을 쓰며 성경에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이 몇 번 나오는지 찾아보았더니 총 16번이었습니다. 구약에 12번 나왔고 신약엔 정관사가 붙은 ‘그 처음과 그 마지막’이 계시록에만 4번 나옵니다. 구약에 12번 등장하는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은 모두 왕(9번) 또는 하나님 자신을(3번) 수식한 단어였습니다(대상 29:29; 대하 9:29, 12:15, 16:11, 20:34, 25:26, 26:22, 28:26, 35:27; 사 41:4, 44:6, 48:12). 참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이 구약에서는 ‘왕 또는 하나님’에게만 쓰였는데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뜻하는 12번 등장하기 때문입니다(1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쓰였는데, 세상 및 창조물을 뜻하는 4번 등장하니 말입니다(4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알다시피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온 한줄기 강은 넷으로 나뉘어 온 땅을 적시며 생물이 번성할 수 있는 물을 공급해 주었습니다(창 2:10).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4 복음서로 나뉘어 영혼육을 살리는 성령의 생수로 이 세상 가운데 흐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가 지어졌고(히 1:2) 그분은 모든 만물을 붙들고(이끄시고) 계시며(히 1:3),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되 하늘과 땅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모든 권세와 만물이 다 그를 위해 창조됐다고 증거합니다(골 1:16).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고 하시는데 흥미롭게도 16은 통상 ‘사랑’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6에 대해 자세히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연구해서 나름 그 뜻을 적어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하나님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의미하는 것처럼 제겐 여겨집니다. 이번에 하나님과 왕에게만 쓰이는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이 성경에 총 16번 나온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일컫는 명칭을 성경에서 모두 찾으면 16개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명칭들을 모두 적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 엘로힘(창 2:4-25)”, “아도나이 여호와(창 15:2, 8)”, “여호와 이레(창 22:8-14)”, “여호와 라파(출 15:26)”, “여호와 닛시(출 17:15)”, “여호와 엘로헤카(출 20:2, 5, 7)”, “여호와 메카디쉬켐(출 31:13; 레 20:8, 21:8)”, “여호와 샬롬(삿 6:24)”, “여호와 치키뉴(렘 23:6)”, “여호와 싸바오스(삼상 1:3 이후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엔 245번 나옴)”, “여호와 삼마(겔 48:35)”, “여호와 엘리온(시 7:17, 47:2, 97:9)”, “여호와 로히(시 23:1)”, “여호와 호시뉴(시 95:6)”, “여호와 엘로히뉴(시 99:5, 8, 9)”, “여호와 엘로하이(슥 14:5)”
본절에 빠져 있는 세 번째 단어는 ‘천사 혹은 메신저’를 뜻하는 ‘aggelos(앵겔로스)’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 총 176번이나 나오는데 대부분 ‘하나님의 메신저인 천사’를 뜻합니다. ‘두루마리’로 번역한 ‘biblion(비블리온)’은 파피루스 종이로 둘둘 말린 책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총 34번 쓰였는데 마태복음 19장 7절과 마가복음 10장 4절에서 모세가 너희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주라고 했던 부분과 요한계시록 6장 14절에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려 떠나갔다는 부분에 쓰인 것 외에는 ‘책’으로 번역됐습니다. 요한은 이 책을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명령을 받는데, 이 일곱 교회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입니다.
‘에베소’는 성경에 총 17번 등장합니다(부활 승리를 의미하는 숫자 17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견해는 갈리는데 ‘바람직하다, 호감이 가다, 갖고 싶을 만하다’를 의미하는 ‘desirable’이라고도 하고 ‘허용되다’를 의미하는 ‘permitted’라고도 합니다. ‘서머나’는 요한계시록에 두 번 등장하며 뜻은 “몰약”입니다(증인 및 증거를 의미하는 2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몰약(myrrh)”이란 단어도 전체 성경에 16번 나오는데 나오는 구절들을 읽어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이 깊은 단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버가모’ 역시 요한계시록에서만 두 번 등장하는데 ‘결혼으로 하나 되다’란 의미입니다. ‘두아디라’는 성경에 4번 등장하는데 ‘희생 헌물’이란 뜻이 있습니다. 빌립보에서 바울 일행을 맞아들였던 자색 옷감 장사였던 루디아가 두아디라 출신입니다(행 16:14). ‘사데’도 요한계시록에서만 3번 등장하는데 공교롭게도 이름의 의미도 3가지 견해로 나뉩니다. ‘기쁨의 왕’, ‘남겨진(머무는) 것’, ‘탈출하는 자들’이란 견해입니다. ‘빌아델비아’는 요한계시록에서만 2번 등장하며 이름의 의미는 ‘형제 사랑’입니다. ‘라오디게아’는 성경에 6번 등장하며 의미는 ‘사람들이 통치하다, 사람들이 심판하다’란 의미입니다(인간의 수 6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본절에 빠져 있는 단어들이 여럿 있어서 넣고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그 처음과 그 마지막이라. 네가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 곧 에베소와 서머나와 버가모와 두아디라와 사데와 필라델피아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라는 말씀이라“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여기 나오는 “촛대”는 구약의 ‘등잔대’와 같은 단어입니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으로는 “candlestick”, 다른 영어버전으로는 “lampstand”라고 하는데 성경 전체에 총 43구절에 걸쳐 53번 등장합니다(출 25:31(2), 25:32(2), 25:33, 25:34, 25:35, 26:35, 30:27, 31:8, 35:14, 37:17(2), 37:18(2), 37:19, 37:20, 39:37, 40:4, 40:24; 레 24:4; 민 3:31, 4:9, 8:2, 8:3, 8:4(2); 왕상 7:49; 왕후 4:10; 대상 28:15(5); 대하 4:7, 4:20, 13:11; 렘 52:19; 단 5:5; 슥 4:2, 4:11; 마 5:15; 막 4:21; 눅 8:16; 눅 11:33; 히 9:2; 계1:12, 1:13, 1:20(2), 2:1, 2:5, 11:4). 모세의 성막에는 7가지의 등불로 뻗어나가는 등잔대가 한 개였습니다(출 25장). 그랬다가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왼쪽에 5개 오른쪽에 5개 모두 10개의 등잔대가(왕상 7:49) 등장합니다(하나님의 완전수 10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등잔대마다 7가지의 등불이 있었으니 70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완전수 7과 7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게 요한계시록에 와서는 일곱 교회를 뜻하는 일곱 등잔대로 처음 등장하는 것입니다(계1:20). 일곱 가지로 뻗어나가는 등잔대가 일곱이 있으니 49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알다시피 49란 수는 희년으로 이어지는 50과 깊은 연관이 있는 7번의 안식년을 뜻하는 안식의 완전수이기도 합니다(50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곱 촛대(등잔대)’란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만 4구절에 걸쳐 5번(은혜의 수 5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등장합니다(계1:12, 1:13, 1:20(2), 2:1).
그러니까 요한은 “등 뒤에서 자신에게 말하는 음성을 보려고 몸을 돌이켰는데, 돌이키자 하나님께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교회인 7등잔대를 본 것“입니다.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촛대 사이에’로 번역했지만 직역은 ‘그 촛대들(등잔대들) 가운데(mesō)’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인 일곱 등잔대가 둘러서 있는 그 중심에 인자 같은 분이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출 3:2). 여호와는 시온과 예루살렘 한가운데 계시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로서 그들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고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분입니다(습 3:17). 주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마 18:20)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은 거룩함을 입은 형제요 자녀들인 교회의 중심에서(가운데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며 찬송하시는 분이십니다(히 2:10-13).
“인자 같은 이”란 표현은 다니엘서에 2번 요한계시록에 2번 총 4번 나옵니다(단 7:13, 10:16; 본절, 계 14:14). 모든 관련 구절을 읽어보면, 하나님이시면서도 우릴 위해 성육신하셨으며 죄와 사망을 멸하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심판의 주요, 만왕의 왕으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본절 외에 관련 구절을 모두 가져오면 다음과 같으니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그가 이런 말로 내게 이를 때에 내가 곧 얼굴을 땅에 향하고 말문이 막혔더니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서 있는 자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주여 이 환상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단 10:14-16)”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계 14:14-16)”
‘발에 끌리는 옷’은 의역이고, ‘발까지 내려온 긴 옷’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옷은 성경에 왕이나(왕상 22장) 대제사장들이(출 28장) 입었던 ‘robe’을 뜻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왕이며 대제사장이신 분이십니다(히 5장-7장; 딤전 6:15; 계17:14, 19:16).
‘가슴에 금띠를 띠고’에서 ‘띠’로 번역된 ‘zóné(조네이)’는 ‘허리띠’ 즉 ‘belt’를 의미하며 신약에 총 8번 나옵니다(8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허리띠는 우리의 옷을 단정히 잡아주고 성실히 일할 수 있도록 동여매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왕으로 오실 우리 주님은 공의와 성실로 허리를 동여매는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신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1-5)”
따라서 13절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완전한 교회 가운데 계시더라. 이제 우리의 왕이요 대제사장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는 가슴을 공의와 성실의 순수함(금)으로 동이셨더라“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란 표현은 다니엘서 7장 9절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표현입니다.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9:9-10, 13-14)”
‘그의 눈은 불꽃 같고’에서 ‘불꽃’은 헬라어로 ‘phlox(플록스)’인데 신약에 총 7번 나옵니다. 관련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면 이 불은 다름 아닌 심판의 불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눅 16:24; 행 7:30; 살후 1:8; 히 1:7; 계1:14, 2:18, 19:12). 때문에 관련구절 중 하나인 사도행전 7장 30절에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이란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에굽에게 정하신 준비기간이 다 되었을 때 에굽을 영원한 불못에 멸하시려고 모세에게 심판의 주로 나타나셨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4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본절에서도 우리는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13절에 나오는 ‘인자’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성자 하나님에 대한 것인데, 14절에서 만나게 되는 그분에 대한 묘사를 다니엘서에 비춰보면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3분의 독립적인 분이면서도 한 분인 하나님을 언젠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알듯이 내가 그분을 아는 날이 곧 오기를 소망해 봅니다(고전 13:12).
따라서 본절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곧 성부 하나님이시며 성자 하나님이시니 심판의 주시라”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본절의 ‘풀무불’은 ‘kaminos(카미노스)’인데 ‘용광로(furnace) 혹은 가마(kiln)’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본절을 제외한 신약에 4번 쓰인 구절들을 모두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 13:41-42)”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마 13:49-50)”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계 9:1-2)”
요한계시록 9장 2절에 ‘화덕’으로 번역한 단어가 도로 ‘kaminos(카미노스)’입니다. 이 단어가 쓰인 모든 구절을 읽어보면, ‘풀무불’은 다름 아닌 심판의 불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본절에 ‘단련한’으로 번역한 헬라어 ‘pepyrōmenēs(페피로메니스)’는 ‘불타는, 빛나는, 정제된’이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주석’으로 번역된 광물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영어로는 ‘tin’이었습니다. ‘chalkolibanon(칼콜리바논)’이 어쩌다가 ‘tin’에 해당하는 한국말로 번역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영어로는 ‘brass, copper, bronze’ 등으로 쓰이는데, 특히 ‘chalkolibanon(칼콜리바논)’은 ‘광택이 나는 놋쇠(fine brass) 또는 구리(fine bronze)’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예전에 성경에 나오는 광물의 뜻을 알고 싶어서 각 광물에 대한 구절을 모두 뽑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내린 결론은 ‘놋쇠(brass)’는 ‘죄의 심판’을 의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때 얻었던 금, 은, 놋쇠, 철 등에 대한 조명도 관련 구절들과 함께 적어보겠습니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에서 ‘많은 물’이란 표현은 성경에 14번 나옵니다(민 24:7; 삼하 22:17; 시 18:16, 29:3, 93:4; 아 8:7; 사 17:13; 렘 51:13; 겔 19:10, 43:2; 계1:15, 14:2, 17:1, 19:6). 관련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면, ‘많은 물’이란 ‘여러 나라(many nations)’를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음성은 많은 나라들의 소리와 같았다’란 의미는 마치 오순절 때 성령이 강림하자 제자들이 15나라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행 2:9-11).
따라서 본절은 “그의 발은 죄를 심판하는 불이며 그의 음성은 여러 나라의 말소리와 같으니“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15절은 주님께서 발로 용(뱀), 즉 마귀와 원수들을 짓밟으시며 심판하실 채비로 오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시 91:13; 사 63:3). 특히 여기 나오는 주님의 놋쇠 발은 솔로몬의 성전에 있던 두 개의 놋기둥(야긴과 보아스)에 상응합니다(왕상 7:13-21). 솔로몬의 성전은 다름 아닌 주님과 부활한 성도들의 몸에 대한 그림자로 주신 것입니다. 이 조명에 대한 매우 유익한 외부 자료는 링크를 걸어놓았으니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하나님의 ‘오른손’은 구원을 이루시는 능력의 손, 권능의 손을 의미하며 원수를 쳐부수는 승리와 공의의 손이기도 합니다(출 15:6, 15:12; 시 16:11, 17:7, 18:35, 20:6, 21:8, 44:3, 45:4, 60:5, 98:1, 108:6; 사 41:10, 48:13, 62:8).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사자)”라고 20절에 이미 그 의미가 해석되어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이란 의미는 칼의 양면이 날카롭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칼은 칼등이 있고 칼날이 있지만 양면이 다 날이 선 칼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내 입에서 나가는 순간, 내게도 향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설교할 때나 말씀을 묵상할 때 남에게 주는 말씀으로 생각하며 준비할 수 있겠지만 그 말씀은 나를 먼저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는 걸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distomos(디스토모스)’란 단어는 신약에 총 3번 나오는데(부활 및 영적 완전함을 의미하는 3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본절에 나오는 구절을 제외한 나머지 구절들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계 2:12)”
즉,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란 의미는 ‘그의 입에서 활력이 있고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말씀이 나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절에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는 직역 하면 ‘해가 힘있게 빛나는 것 같더라’입니다. “해처럼 빛난다”는 표현은 성경에 총 3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마 13:43, 17:2; 본절). 그런데 특히 마태복음 13장 43절에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신 말씀의 전 구절인 13장 41-42절은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는 내용입니다. 이 구절은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하신 후 그 부분을 설명해 주신 구절인데 공교롭게 본절에 나오는 내용과 그 전 구절인 15절에 나온 내용과 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비교표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말라기 4장 1-3절을 통해서도 요한계시록 1장 13-16절에 대한 조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4:1-3)” 즉, 이 구절들에서도 용광로 불과 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1장 13-16절의 묵시에 대한 이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완전하게(7) 된 교회의 천사들(의로운 성도들)과 함께 원수들을 심판하시고 세상의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때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발가벗겨진 것처럼 만물이 그의 눈앞에 드러나게 될 것이며 악인들은 심판의 불에 지푸라기처럼 탈 것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공의로운 해로 나타나 치유하실 것이며 의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주님과 함께 악인들을 밟을 것이니 악인들은 이들 발바닥 밑에 재와 같을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7 교회의 천사’ 혹은 ‘7 교회의 사자’가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완전해진 성도들을 의미하는가?’는 다음 구절에도 조명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계 22:8-9)” 여기서 “함께 된 종“은 헬라어로 ‘sundoulos(순둘로스)’이며 ‘동료 종들(fellowservants)’이란 뜻으로 신약에 총 10번 나옵니다(마 18:28, 18:29, 18:31, 18:33, 24:49, 골 1:7, 4:7; 계 5:11, 19:10, 22:9). 사도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잘 알고 있었으며 구약에서도 모세 및 선지자들을 ‘여호와의 종’으로 표현합니다. 즉, 요한에게 이 모든 걸 보여주던 7천사 중 한 명은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책의)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같은 동료 종일 뿐이니 내게 경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한 것입니다.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죽은 자처럼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지는 것은 하나님의 두려운 임재와 영광과 능력 앞에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니엘도 하나님과 주님을 환상 가운데 뵈었을 때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단 9:15-19). 에스겔도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과 그룹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을 목격하게 됐을 때 번번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겔 1:28, 3:23, 43:3, 44:4).
저는 천국 간증 같은 건 듣지 않습니다. 성경에 이미 다 기록되어 있는데, 또 다른 간증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12월에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 거니까 회개해야 한다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는 한 여자가 있는데 그 사람의 기도 안 차는 천국 간증을 한 번 들어보라며 누가 보내줘서 5분 정도 듣고 만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간증을 한 것인데, 그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며 ‘아멘 아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 여성은 자기가 주님을 만나 와인을 마시며 러브샷을 하고 함께 춤을 췄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주님이 잠수함 같은 걸 타고 자기한테 바닷속 영적 세계를 보여줬다면서 그걸 자세하게 묘사하는 부분에서 더 이상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듣지 않았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길 하는 여자와, 또 그런 얘기를 믿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지자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미혹되는 사람들이 안타까웠습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었다면 결코 미혹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처음엔 이 여성이 꾸며낸 얘기, 즉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더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라 정말 ‘광명(빛)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고후 11:14)’에게 이끌려 바닷속 환영까지 보고 온 것이구나 싶어지자 섬뜩했습니다. 성경은 사단을 물속에 있는 용(시 74:13, 사 27:1, 겔 29:3)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 성경으로 이 구절들을 찾아보니 다행히 시편과 이사야는 ‘용’으로 제대로 번역했는데, 에스겔 29장 3절은 ‘악어’라고 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단어도 같은 ‘용’입니다. 이러한 구절들을 처음 읽었을 때 한국 민속 설화에 나오는 바닷속 용궁에 있는 용왕에 대한 얘기가 떠올라 신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마 24:24)”이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심판하러 오신 주님 앞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마 7:22)”라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향한 주님의 반응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2)”입니다. 7장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많은 은사나 이적을 행하는 능력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교만하게 하여 더 죄만 짓게 할 뿐입니다(이 부분에 대한 더 자세한 조명은 ‘유리하는 별들‘이란 글에 적어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이 분명하고도 간단명료하게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순종을 못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 “열매를 통해 그들을 알 것”이라고 하시면서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7장, 12장). 성경에 나오는 열매는 성령의 9가지 열매입니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런 열매는 오직 말씀과 기도로 나의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자기 부인하며 날마다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는 내 안에 사는 신앙의 몸부림과 순종 없이는 맺어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드러나는 은사 때문에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이며 “나는 주께 속한 자다”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주님은 열매 맺지 못한 나무는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마 7:19; 눅 3:9). 마지막 시대에 온 세상을 시험하러 오는(계 3:10) 미혹으로부터 나를 지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마음으로 읽어 영적인 감각을 단련시켜(히 5:14) 분별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본절의 다른 부분들은(오른손, 그 처음과 그 마지막) 이미 앞에서 설명했기에 넘어갑니다.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살아 있는 자’란 표현은 ‘ho Zōn(The Living One)’입니다. 성경에 ‘살아계신 하나님(The Living God)’이란 표현이 몇 번 나오나 찾아봤더니 총 30번이었는데 구약에 15번 신약에 15번 나온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30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세세토록’은 ‘aiōnas(아히오나스) tōn(톤) aiōnōn(아히오논)’으로 ‘이 시공간의 시공간’ 즉 ‘세세대대(ages to ages, the ages of the ages)’란 의미입니다. 전에도 썼지만 이 시공간은 주님이 재림하셔서 천 년간 통치하시는 기간이 끝난 후에는 모두 사라지고 영원 세계로 가게 될 것입니다(계 20-22장). ‘음부’로 번역한 ‘hadés(헤이디스)’는 총 10번 나옵니다(완전수 1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관련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면 ‘hadés(헤이디스)’는 죽은자들의 혼이 있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마 11:23, 16:18; 눅 10:15, 16:23; 행 2:27, 2:31; 본절, 계 6:8, 20:13, 20:14). 영어로는 ‘hadés(헤이디스)’와 똑같이 ‘hell’로 번역했지만 ‘geenna(게헨나)’란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 12번 나오는데(마 5:22, 5:29, 5:30, 10:28, 18:9, 23:15, 23:33; 막 9:43, 9:45, 9:47; 눅 12:5; 약 3:6) 모두 읽어보면, 특별히 악인들이 던져지는 마지막 심판의 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역시 영어로는 ‘hell’로 번역했지만 ‘tartaroó(타르타루)’란 곳이 있는데, 여긴 타락한 천사들이 심판의 때까지 갇혀있는 어둠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벧후 2:4).
따라서 이 3가지 장소를 모두 종합해 보면 ‘hadés(하데스)’란 곳이 심판의 때까지 사람들의 혼이 있는 장소라면(성도들은 예외), ‘tartaroó(타르타루)’는 심판의 때까지 타락한 천사들이 갇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천년 왕국이 끝난 후에 있을 백보좌 심판에서 모든 죽은자들이 다시 일어나 심판을 받게 될 것인데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 그리고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 및 사망과 지옥까지(hadés:하데스) 모두 불과 유황 못(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모든 불법이 멸하여지는 이 ‘불못’이 바로 ‘게헨나’라고 생각합니다(계 20:9-15). 이 조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천국과 지옥(무저갱, 음부, 게헨나)의 차이:영혼은 불멸인가?“란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제목을 누르면 바로 연결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분이십니다. 성경 전체에서 열쇠는 8번 밖에(새로운 시작 및 새 창조를 뜻하는 8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나오지 않습니다(삿 3:25; 사 22:22; 마 16:19; 눅 11:52; 계 1:18, 3:7, 9:1, 20:1). 그중 본절에 대한 관련 구절들만 몇 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사 22:22)”
이 구절은 이사야 22장 20-25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에 대한 예언 중에 있습니다. 이 예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요한계시록 3장 7절에서 내가 그 예언의 성취임을 밝히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 3:7-8)”
다윗의 열쇠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는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능히 닫을 사람이 없는 열린 문을 두셨을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6장에 말씀하신 것처럼 천국의 열쇠까지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8-19절)”
그렇기에 ‘죽은 자들의 혼’이 심판받는 날까지 있어야 하는 ‘음부(hadés:하데스)’의 권세는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며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혼은 ‘음부(hadés:하데스)’에 있는 게 아니라 주님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도 약속하셨던 것처럼 ‘paradeisos(파라디소스)’즉, ‘하나님의 동산’인 ‘paradise(파라다이스)’에 있습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 3번 나오는데 바울도 혹은 그가 말했던 것처럼 그가 아는 어떤 사람도 영안에서 방문했던 곳이기도 합니다(눅 23:43; 고후 12:4; 계 2:7).
주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로 요한계시록 9장과 20장에서 ‘무저갱’을 열고 또 닫으시는데(계 9:1-11; 계 20:1-3) 이 ‘무저갱’은 도로 타락한 천사들을 가둔 ‘tartaroó(타르타루)’가 아닐까 합니다. 이 무저갱을 열자 마치 ‘kaminos(카미노스:풀무불, 심판의 불)’와 같은 연기가 그 구덩이에서 솟아 올라오는데 주님은 이 무저갱을 열어 갇혀있던 온갖 영적 존재들을 내보내시고(계 9장), 계시록 20장에서는 옛 뱀, 마귀, 사탄이라 불리는 용을 잡아 천 년 동안 그곳에 결박하십니다. 하지만 이 마귀는 천년이 찼을 때 옥에서 풀려나와 다시 반역을 꾀하게 되고 결국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계 20:7-10).
따라서 본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나는 죽임을 당했지만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해 영원히 사는 자라 내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으니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말 그대로 “네가 본 것들과(본 일들과) 지금 있는 것들과(지금 있는 일들과) 이후에 있게 될 것들을(이후에 있을 일들을) 적으라“고 하십니다.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20절은 일곱 별의 의미가 무엇이고 일곱 금 촛대가 무엇인지를 풀어주신 구절입니다. 특별히 ‘일곱 별의 비밀’, 즉 ‘일곱 교회의 천사들의(개역개정에 ‘사자’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와 영어로는 ‘angel’입니다) 비밀’이라고 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천사의 몸으로 주님과 영원히 살게 될 것이 곧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주님이 직접 부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두개인들에게도 말씀하신 부분이기도 합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와서는 7형제가 모두 자식 없이 죽는 바람에 그 형제들과 모두 결혼했던 여자가 있다면 부활 후에는 7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고 묻습니다. 이들의 황당한 질문에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29-30절)”
바울 역시 부활의 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것이 ‘비밀’임을 밝힙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47-53)”
본절에 ‘비밀’로 쓰인 헬라어 ‘mustérion(무스테이리온)’은 영어로는 ‘mystery(미스테리)’입니다. 신약에 총 28번 나오는데(28은 4×7 즉, 세상과 하늘의 곱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단어가 쓰인 구절들을 일일이 읽어보면 하나님의 왕국, 부활의 몸 및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해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구절을 읽어보는 것도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마 13:11; 막 4:11; 눅 8:10; 롬 11:25, 16:25; 고전 2:1, 2:7, 4:1, 13:2, 14:2, 15:51; 엡 1:9, 3:3, 3:4, 3:9, 5:32, 6:19; 골 1:26, 1:27, 2:2, 4:3, 살후 2:7; 딤전 3:9, 3:16; 계 1:20).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며(엡 5:25-33) 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몸이기도 한(엡 4:15-16; 엡 5:23) 이 ‘미스테리’는 비유가 아닌 실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가 남편과 아내 관계이면서도 부부이기에 한 몸이 되는 것을 에베소서 5장 23-33절까지 설명하면서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2)”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삼위일체의 하나님만큼 현재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래야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미스테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네가 본 것은 공의로 교회와 함께 원수를 쳐부수며 승리로 구원을 이룰 내 능력의 손에 있는 완전하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의로운 성도)에 대한 비밀이라”
이상 요한계시록 1장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