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장 원어/영어 분석 2(계2:17-29)

1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귀 있는 자’란 표현은 신약에 총 13번 나옵니다(마 11:15, 13:9, 13:43; 막 4:9; 눅 8:8, 14:35; 본절, 계 2:11, 2:17, 2:29, 3:6, 3:13, 3:22). 이 표현이 쓰인 구절들을 보면 모두 주님과 성령이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교회에게(성도에게) 설명하실 때 ‘귀담아들으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13의 의미는 7에 대한 글에 간략히 적어놓았으니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기는’으로 번역된 ‘nikaó(니카오)’는 ‘정복, 승리, 이기다’란 뜻으로 신약에 총 28번 나옵니다(글자를 누르면 28구절을 다 볼 수 있습니다). 7×4이기에 7에 대한 의미와(7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4에 대한 의미의(4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조합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완전함이 깃든 세상’ 정도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28은 ‘영생’을 의미하는 숫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nikaó(니카오)’란 단어는 예수님 및 하나님의 말씀에 엮여서 5번 쓰였고(눅 11:22; 요 16:33; 롬 3:4; 계 5:5, 17:14), 교회(제자 및 성도)에 엮여서는 17번 쓰였으며(요일 2:13, 14; 요일 4:4, 5:4(2), 5:5; 계 2:7, 11, 17, 26, 3:5, 12, 21(2); 12:11, 15:2, 21:7), 악한 것에 엮여서는 6번 쓰였습니다(롬 12:21(2); 계 6:2(2), 계 11:7, 13:7).

늘 경험하는 것이지만, 어느 것 하나 어그러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nikaó(니카오)’란 단어가 말씀 및 예수님 관련해서 은혜와 율법의 수 5번 나오고, 교회(성도) 관련해서는 부활 승리를 의미하는 17번 나오며, 악한 것과 관련해서는 마귀의 수 6번 나오니 말입니다(각 숫자를 누르면 그 숫자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관련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고 또 숫자의 의미와 조합해 보면, 교회에게 ‘이긴다’는 의미는 ‘사단 마귀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성도들이 악을 이기고 부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추었던’으로 번역한 헬라어 어원 ‘kruptó(크룹토)’는 ‘감추다, 비밀로 두다’란 의미로 성경에 총 18번 쓰입니다. 예수님의 등불 비유(마 5:14)와 왕국 비유(마 13:35, 44절)에서도 쓰였지만 악한 종이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고(25:18, 25절), 진리가 믿지 않는 자들의 눈과 마음에서 가려졌다는(눅 18:34, 19:42)의미에도 쓰입니다. 그렇기에 이 단어는 어떤 것이 감추어진 상태, 비밀로 부쳐진 상태, 가리워진 상태에 포괄적으로 쓰입니다.

‘만나’는 성경에 총 17구절에 걸쳐 19번 나옵니다(출 16:15, 31, 33, 35(2); 민 11:6, 7, 9; 신 8:3, 16; 수 5:12(2); 느 9:20; 시 78:24; 요 6:31, 49, 58; 히 9:4; 계 2:17). 만나에 대한 관련 구절을 모두 읽어보면 만나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먹었던 음식이며 흰색에 작고 동그란 모양입니다(출 16장; 민 11:7). 밤이슬과 함께 내려앉는 것으로(민 11:9) 사람이 떡으로만(bread) 살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시려고 먹이셨던 것이며(신 8:3) 그들을 겸손케 하고(낮추시고) 시험하셔서(nasah) 결국엔(끝에 가서는) 잘되게(yatab)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신 8:16). 만나는 여호수아가 이끌던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의 묵은 곡식을 먹은 다음 날 그쳤습니다(수 5:12). 만나는 하늘의 곡식이며 떡이었고(시 78:24; 요 6:31) 말씀인 예수님 자신에 비유하시기도 했습니다(요 6:58). 만나는 모세의 성막에서 언약궤 안 금 항아리 속에 보관했었지만(히 9:4) 사라졌던 것인데(대하 5:10), 하나님은 이제 교회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본절의 ‘흰 돌’에서 ‘돌’은 작고 매끄러운 조약돌 내지 공깃돌인 ‘pséphos(프세이포스)’인데 성경에 딱 3번 쓰입니다. 본절에서 두 번 나오고 한 번은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하는 부분에서 자신도 한 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해야 되는 걸로 생각했었다고 하면서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위임 받아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 내가 찬성투표를 했다(행 26:9-10)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투표’로 번역한 단어가 ‘pséphos(프세이포스)’인데 고대 사회에서 투표할 때 썼던 돌이 바로 ‘pséphos(프세이포스)’이기 때문입니다. ‘Thayer’s Greek Lexicon’에서 ‘pséphos(프세이포스)’의 용법을 찾아보면 그 당시 법정에서 피고인에 대해 심판할 때 검은 돌을 던져 유죄를 선고했고 흰 돌을 던져 무죄를 선고했다고 합니다. 개역개정은 바울이 ‘찬성투표’를 했다고 번역했는데, 직역은 ‘그들을 대적(반대)하는(katēnenka) 투표를 했다’입니다. 즉 유죄를 확정하여 죽이라고 투표했다는 것이니 검은 돌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죄’를 확정하는 ‘흰 돌’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새 이름”이란 표현은 성경 전체에서 딱 3번 나옵니다(부활 및 영적 완전함을 뜻하는 3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본절과 나머지 두 구절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 62장 1-5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1-12)

따라서 ‘새 이름’은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서 ‘새 예루살렘’이 될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에게 주실 이름이며 받는 자밖에는 알 사람이 없다고 하셨으니 정확한 이름이야 그때 가서 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17절의 의미를 분석해서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들으라. 사단 마귀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악을 이기고 부활 승리한 자들에게는 내가 세상의 눈엔 가려진 하늘 양식 즉 진리의 말씀을 주고 무죄를 선고할 터이니 어린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 렘의 이름은 받는 자 외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18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두아디라’는 성경에 4번 등장하는데 ‘희생 헌물’이란 뜻이 있습니다. 빌립보에서 바울 일행을 맞아들였던 자색 옷감 장사였던 루디아가 두아디라 출신입니다(행 16:14). 그리고 ‘편지하라’는 그냥 ‘쓰라’는 의미의 ‘graphó(그라포)’입니다. 그러니까 계시록 1장 11절에 7 교회에 보내는 책(두루마리)에 쓰라는 지시입니다.

‘그 눈이 불꽃 같고’에서 ‘불꽃’은 헬라어로 ‘phlox(플록스)’인데 신약에 총 7번 나옵니다. 관련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면 이 불은 다름 아닌 심판의 불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눅 16:24; 행 7:30; 살후 1:8; 히 1:7; 계1:14, 2:18, 19:12). 때문에 관련구절 중 하나인 사도행전 7장 30절에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이란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에굽에게 정하신 준비기간이 다 되었을 때 에굽을 영원한 불못에 멸하시려고 모세에게 심판의 주로 나타나셨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4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본절에 ‘빛난 주석’으로 번역한 ‘chalkolibanon(칼콜리바논)’ 영어로는 ‘brass, copper, bronze’ 등으로 쓰이는데, 특히 본절은 ‘광택이 나는 놋쇠(fine brass) 또는 구리(fine bronze)’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예전에 성경에 나오는 광물의 뜻을 알고 싶어서 각 광물에 대한 구절을 모두 뽑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내린 결론은 ‘놋쇠(brass)’는 ‘죄의 심판’을 의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때 얻었던 금, 은, 놋쇠, 철 등에 대한 조명도 관련 구절들과 함께 적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단수는 성경 전체에 48번 나오는데 예수님을 일컫는 명칭이며 단 한 번도 다른 의미로 쓰인 적이 없습니다. 신약에 47번 나오며 구약엔 딱 한 번 나오는데, 개역개정은 구약에 나오는 이 구절을 ‘신들의 아들’로 번역했습니다.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단 3:25)”

이 구절은 다니엘의 3 친구가 풀무 불 가운데 던져넣음을 당했어도 불에 상함을 입지 않았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이가 이들과 함께 거닐고 있던 장면입니다. ‘Elohim’이란 단어가 문맥에 따라 ‘하나님’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신들’로 번역되기도 하기에 다른 영어 성경 조차도 이 구절은 ‘신들의 아들(sons of god)’로 번역했지만 그나마 유일하게 킹제임스 영어 성경만큼은 바른 조명으로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로 번역했습니다. “He answered and said, Lo, I see four men loose, walking in the midst of the fire, and they have no hurt; and the form of the fourth is like the Son of God(KJV).”

바른 조명으로 번역할 때 성령의 조명이 덧붙여집니다. 다니엘의 3친구가 느브가넷살 왕이 세운 금으로 된 신상에 절하는 걸 거부해서 풀무 불에 던져지지만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이가 함께 있어 풀무 불에 해를 당하지 않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세상의 왕인 사단이 우릴 해할 수 없고 둘째 사망이 권세가 없는 첫째 부활을 얻게 될 것임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계 20:4-5). 여기서 한 가지 부연설명 하자면, 첫째 사망은 원죄로 누구나 죽어야 하는 자연적인 사망이라면 둘째 사망은 불못(풀무 불에 비유되는 불지옥)에 던져지는 영원한 사망을 뜻합니다. 또한 첫째 부활이 의와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이라면 둘째 부활은 둘째 사망으로 가기 위해 일어나는 부끄러움과 수치의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1-3)

또한 느부가넷살 때 있었던 이 사건은 이차적으로는 환란기 때 짐승의 우상에 경배하지 않고 죽는 성도들이 어떻게 사망의 해를 입지 않고 예수님처럼 바로 부활하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계 11:9; 계 20:4-5). 이 부분은 나중에 해당 부분을 다룰 때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단수가 48번 나오는 것에 비해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복수는 성경 전체에 11번 나오며 천사들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창 6:2, 4; 욥 1:6, 2:1, 38:7; 요 1:12; 롬 8:14, 19; 빌 2:15; 요일 3:1, 2). 한국어 성경은 복수, 단수 번역을 소홀히 해서 이런 진리가 가려진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바르게 나눠진 관련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면, 이들은 창세기에서는 사람들의 딸들을 취하는 일로 하나님을 진노케 했었고, 욥기에서는 천지창조 때 기뻐 외쳤으며 여호와 앞에 주기적으로 정해진 날에 나타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 즉, 천사들이 되리라고 하셨으며(요 1:12) 로마서에서는 하나님의 영에 인도함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모든 피조물이 이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또한 주를 믿는 성도들은 흠이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세상의 빛들로 나타날 것이며(빌 2:15)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된 것이되 세상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이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지만 주님이 나타나실 때 이들도 주님과 같이 될 것이며 그분의 참모습 그대로 보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요일 3장 1-2).

따라서 18절의 의미를 분석해서 풀어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천사에게 쓰라 심판의 눈과 성도들과 함께 세상의 죄를 심판할 발을 가진 하나님의 독생자요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르시되

19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사업’으로 번역한 헬라어 ‘erga(에르가)’는 ‘일, 행실, 행위(work, task, deed, action)’등을 뜻하는 ‘ergon(에로곤)’의 복수형입니다. 영어로는 ‘works, deeds, actions’ 등으로 번역됐습니다. 그러니까 본절에 두 번 같은 단어가 나온 건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 번은 ‘사업’으로 한 번은 ‘행위’로 번역했습니다.

본절에 ‘많도다’로 번역한 헬라어는 ‘pleión(플라이온)’으로 ‘더 훌륭한, 더 좋은, 아주 큰, 아주 많은, 더 위대한, 더 가치 있는’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네 행위들과(일들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들(일들)이 처음 것보다 더 훌륭하니라(더 좋으니라).

20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이세벨이란 이름은 성경 전체에 총 23번 등장합니다. 시돈 왕의 딸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대거 데려와 북이스라엘을 본격적인 우상숭배의 본거지로 만든 장본인이며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학살한 여인입니다. 이런 여인의 이름이 성경에 총 23번 등장한다는 것도 흥미로운 게 23은 ‘죽음’을 뜻하는 숫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따로 더 연구했거나 확증한 바는 아직 없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성경 연구가들에 의하면 그렇다고 합니다.

본절에 ‘용납’으로 번역한 헬라어 ‘aphiémi(에피에이미)’는 ‘내버려 두다, 참다, 허용하다’란 의미입니다. ‘꾀어’로 번역한 헬라어 ‘‘planaó(플래나오)’는 ‘헤매다, 속다, 길에서 벗어나다, 길을 잃다’란 의미입니다.

행음‘으로 번역한 헬라어 ‘porneuó(포르뉴오)’는 ‘간음을 저지르다’란 의미지만 성경에서는 ‘주님을 진실하게 따르는 척하면서 부정행위를 하는 것, 즉 우상숭배’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였습니다. ‘우상의 제물’로 번역한 헬라어 ‘eidólothutos(아이돌로뚜톤)’은 우상에게 바치는 희생 제물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총 10번 나옵니다.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을 믿게 된 이방인들이 자신들처럼 율법을 지키거나 할례를 받을 필요는 없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다음 4가지를 주의하도록 했습니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고 했습니다(행 25:23-29). 반면 사도행전 25장 29절에 나오는 ‘음행‘은 헬라어로 ‘porneia(포르니아)’인데 영적인 의미보다는 육체적인 의미로서의 실질적인 ‘간음’으로 주로 쓰였습니다. 요즘에도 쓰이는 ‘포르노(porn)’란 단어가 여기에서 온 것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는 의미는 마귀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의 일에 동참하며 한 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요 6:47-58)’고 하셨을 때의 의미는 나를 믿고 나의 일에 동참하여 나와 한 몸이 되라는 의미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고 권면하는데 이 의미 역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쓰라는 걸 의미합니다.

따라서 20절의 의미는 “그러나 내가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는 자칭 선지자라고 하면서 바알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음란한 여자를 내버려 두고 있느니라 이 여자는 하나님의 종들을 가르쳐 미혹하며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악한 일에 동참하여 한 몸이 되게 하는도다“입니다.

21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기회’로 번역한 ‘chronos(크로노스)’는 ‘시간(time)’이란 뜻인데 순차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그녀에게는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본절에 쓰인 ‘음행’도 영적인 의미보다는 육체적인 의미로서의 실질적인 ‘간음’으로 주로 쓰인 ‘porneia(포르니아)’인데 단수가 아닌 ‘porneias(포르니아스)’ 즉, 복수입니다.

본절에 ‘회개’로 쓰인 헬라어는 ‘metanoeó(메타노에오)’입니다. 그냥 후회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내는 것으로 속사람이 바뀌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을 의미하며 신약에 총 34번 나옵니다(좀 더 자세한 내용은 ‘회개, 후회, 돌아옴의 차이‘에 적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또 내가 그녀에게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지만 그녀는 자기의 음행들을 회개하려 하지 않는도다

22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침상’으로 쓰인 헬라어 ‘kline(클리네이)’는 들고 다닐 수 있는 간이식 침대(예수님이 고쳐주신 병자들이 누워 있던) 내지는 옆으로 기대 누워 음식을 먹는 용도로 쓰였던 상이기에 ‘침상’으로 번역한 것은 탁월했다고 생각합니다.

‘큰 환난’이란 표현은 성경에 딱 3번 밖에 나오지 않는데, 3은 어떤 것의 성취를(이 경우엔 안 좋은) 의미합니다(좀 더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본절을 제외한 ‘큰 환난’이 쓰인 구절은 예수님이 마지막 때에 있을 일들과 징조를 설명해 주신 마태복음 24장과 계시록 7장에 나옵니다. 전체 내용을 다 가져오면 좋겠지만 너무 길 것이기에 해당 구절 외 몇 구절만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마 24:21-25)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3-17)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이 마지막 때에 있을 대환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 때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고 하셨는데, 앞서 나왔던 3 교회가 거짓 사도 즉 거짓 그리스도(니골라 당)들에게 시달리는 교회라면 4번째 교회인 두아디라는 거짓 선지자에게 시달리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마 24:24)’이란 말씀처럼 이세벨이란 거짓 선지자가 미혹했던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20절에도 나오듯이 ‘그리스도의 종들’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의 신이 숭배받고, 그리스도의 일이 아닌 세상의 일이 행해지고 있는 곳들이 꽤 있습니다. 이세벨과 같은 거짓 선자자들이 판을 치며 미혹하고 있는 이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가르침과 행위들을 따른 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마지막 때에 대환란을 통과하게 될 것임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2절의 의미를 분석해서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라 내가 그녀를 병상에 던질 것이요 또 그녀와 더불어 간음한 자들도 만약 그녀의 행위들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던 마지막 때의 대환난 속에 던지리라

23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사망’으로 번역한 헬라어 ‘thanatos(때나토스)’는 육적인 죽음 또는 영적인 죽음을 뜻하는 단어이며 불못(지옥불)의 영원한 죽음에도 쓰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신약에 총 120번 나온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창세기 6장 3절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창 6:3)”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혼:psuché, soul)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혼:psuché, soul) 능히 지옥에(geenna:게헨나, 불못)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몸뿐만 아니라 혼을 둘째 사망으로 영원히 멸하실 수 있는 분이니 두려워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죽는 것이 이미 ‘사망’인데, 본절에서 ‘사망으로 그의 자녀들을 죽이겠다’고 한 것은 원죄로 말미암아 누구나 한번은 정해진 그 죽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 후에 있을 심판(히 9:27) 즉, 둘째 사망을(계 2:11, 20:6, 14, 21:8) 얘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의미하는 ‘자녀’들은 영적인 자녀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처럼(갈 3:26), 거짓의 아비 마귀의 자녀들이 있습니다(마 13:38-42; 요 8:42-45; 요일 3:10). 요한은 ‘누구든지 의를 행하지 않는 자 또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마귀의 자녀들(요일 3:10)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의 가라지 비유에서도 주님은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세상의 끝에 천사들이 가라지를 거두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하십니다(마 13:39-43).

‘뜻과 마음’이라고 번역한 부분은 직역하면 ‘콩팥과 심장(kidney and heart)’입니다. ‘콩팥(신장)’은 헬라어로 ‘nephros(네프로스)’이며 히브리어로는 ‘kilyah(킬라)’인데 항상 복수입니다. 신약에서는 유일하게 본절에 나오지만 구약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 가끔 ‘심장(heart)’ 또는 ‘힘줄(reins)’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신장(콩팥)은 인간의 몸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어 해부할 때 맨 마지막에 꺼낼 수 있는 장기입니다. 신장은 특히 기름에 덮여 있기에 성경에서 최상품을 의미할 때 쓰이며(신 32:14), 제사법에서 하나님만이 취하시는 부분이기에 특별히 신성한 부분으로 여겨졌습니다(레 7:22-25; 삼상 2:16). 따라서 신장(콩팥)만큼은 그 기름과 함께 어떤 제사에서든지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려졌습니다. 모든 걸 다 태워서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하는 번제가 아닌 화목제(레 3장, 레 9:19), 속죄제(출 29:13; 레 4:9, 8:16, 9:10), 그리고 속건제(레 7:4)에서도 ‘콩팥’은 태웠습니다. 성경에서 신장(콩팥)은 사람의 가장 깊숙한 속마음 및 깊은 감정을 뜻하는 단어로 쓰이며(욥 19:27; 잠 23:16; 시 16:7, 73:21; 렘 12:2) 하나님이 감찰하시는 부분으로 나옵니다(렘 11:20, 17:10. 20:12; 시 7:9, 26:2, 본절).

헬라어로 ‘심장’은 ‘kardia(카르디아)’이고 히브리어로는 ‘lebab(레이밥)’인데 사람의 생각과 동일시되는 단어입니다(신 7:17; 사 14:13). 구약에서는 기쁨(시 4:7), 두려움(삼상 25:37), 용기(시 27:14), 분노(신 19:6), 슬픔(시 13:2)과 같은 감정들이 심장(heart)에서 나오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절의 ‘행위’로 번역한 단어도 ‘erga(에르가)’입니다. ‘일, 행실, 행위(work, task, deed, action)’등을 뜻하는 ‘ergon(에로곤)’의 복수형입니다. 영어로는 ‘works, deeds, actions’ 등으로 번역됐습니다. ‘갚아 주리라’로 번역한 ‘didómi(디도미)’는 ‘to give’ 즉 ‘주리라’입니다.

따라서 23절의 의미를 분석해서 원어에 맞게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 내가 의를 행하지 않는 마귀의 자녀들을 풀무 불, 즉 둘째 사망으로 멸하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속마음과 생각을 감찰하는 자인 줄 알게 되리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주리라”입니다.

24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본절에 ‘남아 있어’로 번역한 것은 오역이고, ‘그 나머지 사람들(loipois tois)’입니다. 교훈으로 번역한 헬라어 ‘didaché(디다케이)’는 ‘교리’입니다. 즉, ‘나머지 사람들(loipois tois)이 얼마가 됐든지(hosoi) 그 교리(didaché)를 취하지 않았고(ouk echousin)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겐 또 다른 짐을 지게 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깊다’로 번역한 ‘bathus(베뚜스)’는 ‘깊다’란 뜻이지만 이 단어가 쓰인 4구절을(눅 24:1, 요 4:11, 행 20:9, 본절) 살펴보면 , ‘정점’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24절을 원어에 충실하게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두아디라에 있는 자 중에 그녀의 교리를 취하지 않아서 그들이 말하는(legousin) 것처럼(hōs) 사탄의 정점을 알지 못하는 나머지 사람들이 얼마가 됐든지 내가 너희 위에(eph’) 또 다른(allo) 짐을(baros) 얹지(ballō 않으리니(ou)”

25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번역이나 의미로는 덧붙일 게 없이 구절 그대로 좋습니다. 즉, 두아디라 성도들은 이 거짓 선지자가 판치는 교회에서 미혹되지 않고 묵묵히 주님의 일을 계속하며 인내하기만 하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이기는 자’는 17절의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절에서도 ‘일’로 번역한 단어는 ‘erga(에르가)’입니다. ‘일, 행실, 행위(work, task, deed, action)’등을 뜻하는 ‘ergon(에로곤)’의 복수형입니다. 영어로는 ‘works, deeds, actions’ 등으로 번역됐습니다. ‘다스리는’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위에(over)’를 의미하는 ‘epi(에피)’입니다. ‘권세’는 ‘권한, 권위, 권세’를 의미하는 ‘exousia(엑쑤씨아)’입니다.

‘만국’으로 번역한 헬라어 어원은 ‘ethnos(에뜨노스)’인데, 성경에서 단수로 쓰였을 때는 ‘인종(race) 혹은 나라(nation)’를 뜻하고 복수로 쓰였을 때는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민족 즉, 이방(Gentiles)을 의미합니다. 특히 본절에 쓰인 파생어 ‘ethnōn(에뜨논)’은 총 46번 나오는데 그중 36번은 ‘이방 나라, 이방인’으로 번역했지만 10번은 ‘나라들, 만국’으로 번역했습니다. 특히 이 ‘ethnōn(에뜨논)’은 요한계시록에서만 6번 나오는데 단 한 번도 ‘이방’으로 번역하지 않고 ‘나라들 또는 만국’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제 생각엔 아마도 ‘이방’으로 번역하면 이스라엘에게만 주시는 말씀인 것처럼 느껴져서 ‘만국’으로 번역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회복이며 이들이 이방의 빛이 되어(사49:6) 그들을 통치하는 것입니다(사 14:2). 이 일을 교회를 통해 이뤄나가시는 것이기에(마치 룻을 통해 나오미가 잃었던 땅을 상속받고 룻과 보아스가 왕을 낳아 나오미의 신분이 회복되듯이) 그냥 ‘이방’으로 번역하는 게 오히려 맞았을 텐데 말입니다. 특히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다루고 있으며 그곳에서 통치하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제외한 ‘이방’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몸을 입고(요일 3장 1-2) 이스라엘을 도와 이방 나라들을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26절의 의미를 분석해서 원어에 맞게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단 마귀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악을 이기고 내 일들을 끝까지(마지막까지) 지켜 부활 승리한 그에게는 이방 나라들 위에 권세(권한)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철장’은 철(iron)을 뜻하는 ‘sidéros(씨데이로스)’와 ‘rhabdos(라브도스)’의 합성어입니다. 예전에 성경에 나오는 광물의 뜻을 알고 싶어서 각 광물에 대한 구절을 모두 뽑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내린 결론은 ‘철(iron)’은 ‘긍휼 없는 막강하고 완전한 통치와 심판’을 의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rhabdos(라브도스)’는 ‘막대(iron rod), 지팡이(staff), 훌(scepter)’을 의미하며 신약에 총 12번 나옵니다(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는 1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철로 된 ‘rhabdos(라브도스)’는 준엄하고 막강한 통치를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브도스’가 훌보다는 막대나 지팡이로 번역한 게 맞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스려’로 번역된 poimainó(포이마니오)란 단어 때문입니다. 이 단어는 그냥 ‘다스리는 게’ 아니라 ‘목양(act as shepherd)’을 말하며 성경에 총 11번 나옵니다(11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목자는 막대와 지팡이로 양들을 훈육(shepherd)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목자이시며 막대와 지팡이로 우릴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시 23:1-4; 요 10:11-18). 목자가 쓰는 짧고 단단한 막대기는 사나운 짐승들을 쳐 죽여 양을 보호하는 데도 쓰이고 목적지로 이동하거나 우리에 다시 넣을 때 엉뚱한 곳으로 가는 양들을 쿡쿡 찔러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게 하는 데 쓰입니다. 그런데 막대로 찔러도 말을 안 듣고 무시하는 양들이 가끔 있는데 이럴 땐 끝이 둥그렇게 구부려진 긴 지팡이로 몸을 걸어 강제로 끌고 옵니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다’란 표현에서 ‘질그릇’은 ‘skeuē(스케유) ta(타) keramika(케라미카)’인데 ‘토기장이의 그릇(potter’s vessel)’이란 의미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토기장이 그릇(potter vessel)’이란 표현을 찾아보면 본절을 포함해 딱 6번 나옵니다(사람의 수 6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나머지 5구절의 앞뒤 주요 구절들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potter’s vessel)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 2:6-12)

그가 이 나라를(앞에 구절들을 읽어보면 애굽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불순종 하며 거역을 일삼는 이스라엘)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potter’s vessel)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사 30:1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vessel potter)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렘 18:4)” 이 구절 역시 앞뒤 구절(렘 18:1-11)을 모두 읽어보시면 유익할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potter’s vessel)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유다와 예루살렘)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렘 19:11)”

토기장이(potter)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vessel),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 9:21)

따라서 27절의 의미를 분석해서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긍휼 없는 막강하고 완전한 통치와 심판으로 이방 나라들을 목양하고 훈육하리니 토기장이가 잘못된 그릇들을 부수는 것과 같이 이방 나라들을 무너뜨려 다시는 회생 못 하게 할 것이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즉, 천년 왕국에서 주님이 ‘왕들의 왕’으로 재림하셔서 새 몸을 입은 성도들과 함께 통치하실 때에는 각 나라에 여호와의 말씀과 법이 선포될 것이며 교회는 그들을 목양하고 훈육하여 하나님께 순종케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불순종하는 나라와 민족은 철퇴로 부서짐을 당할 것이니 하나님은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사 60:12)”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 통치 말기에 사단이 무저갱에서 풀려나게 되면 다시 많은 민족이 바닷가에 모래처럼 일어나 반역한다는 건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천국과 지옥(무저갱, 음부, 게헨나)의 차이:영혼은 불멸인가?‘란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8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새벽’으로 번역한 ‘próinos(프로이노스)’는 이른 아침이란 뜻인데 본절과 계 22:16절에 밖에 나오지 않으며 ‘새벽 별’이란 표현 자체도 본절과 계 22:16절에 딱 2번 나옵니다(증언 및 증인을 의미하는 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계시록 22장 16절을 읽어보면 ‘새벽 별’이란 단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계 22:16)

그런 반면에 ‘새벽 별들’이란 복수로 된 표현은 하나님이 욥에게 천지창조를 하셨을 때의 광경을 설명하실 때 딱 한 번 나옵니다. 읽어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욥 38:7)

성경에서 별을 뜻하는 astér(에스테어)는 신약에 24번 나오는데 복수로는 13번, 단수로는 11번 나옵니다. 단수로 쓰였을 때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되어 쓰였으며(마 2:2, 7, 9, 10; 고전 15:41(2); 본절, 계 8:10, 11, 9:1, 22:16), 복수로 쓰였을 때는 주로 천사들(타락한 천사든 좋은 천사든)로 쓰였습니다(마 24:29; 막 13:25; 고전 15:41; 유 1:13; 계 1:16, 20(2), 2:1, 3:1, 6:13, 8:12, 12:1, 4).

따라서 28절의 의미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또 그에게 나 자신을 주리라‘ 입니다. 즉, ‘나는 왕같은 제사장인 그의 몫이요 상속이라‘란 의미입니다. 구약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도 특히 레위인들에게는 ‘내가 너희의 분깃이요 기업이라(민 18:20)’고 하셨었습니다. 직역하면 ‘내가 너희의 몫(portion)이요 상속(inheritance)이라’ 입니다.

29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란 표현은 신약에 총 13번 나옵니다(마 11:15, 13:9, 13:43; 막 4:9; 눅 8:8, 14:35; 본절, 계 2:11, 2:17, 2:29, 3:6, 3:13, 3:22). 이 표현이 쓰인 구절들을 보면 모두 주님과 성령이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교회에게(성도에게) 설명하실 때 ‘귀담아들으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13의 의미는 7에 대한 글에 간략히 적어놓았으니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29절은 “하나님의 왕국(나라)에 대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들을지어다”란 의미입니다.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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