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Numbers: 11이란 숫자의 의미

지난 두 글에 걸쳐 심판(상과 벌, 옳고 그름을 나누는 것)과 분리를 뜻하는 ‘11’에 대해 성경의 모든 ’11장’을 통해 살펴봤습니다(모세오경과 역사서의 11장, 예언서와 신약의 11장). 오늘은 ‘11’이 등장하는 성경 구절들을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eleven’이란 단어는 성경 전체에 43번 등장합니다. 맨 처음 등장하는 구절은 창세기 32장 22절입니다.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창 32:21-24).’ 하나님은 31장 3절에서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고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에 기회를 보던 야곱이 식솔들과 함께 도망치자 라반은 그를 추격하지만, 하나님이 꿈에 경고하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라반이 떠나고 야곱은 마하나임(천사들의 두 군대)도 목격하건만(32장),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말에 두려워 얍복강터에서 밤을 지새우다 식솔들을 먼저 건너보내고 홀로 남습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11’이란 수가 처음 등장하는데 그렇게 식솔들과 분리돼 홀로 남은 야곱은 밤새 한 사람과 씨름하고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받은 후 본인도 강을 건넙니다.

그다음 11이 나오는 구절은 창세기 37장 6절에서 자신의 곡식 단에 형제들의 곡식 단이 절하는 꿈을 꿨던 요셉이 9절에,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창 37:9)’는 부분입니다. 이 두 번째 꿈은 그러잖아도 그를 시기하고 미워하던 형제들의 분노를 사서 요셉이 가족들과 분리되어 노예로 팔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또한 그들의 구원자가 되는 결과를 가져온 사건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임종 전 아들들을 축복할 때 “이러한 복들이 요셉의 머리, 형제들과 분리된(separate) 자의 정수리 위에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창 49:26).

출애굽기에 4번 나오는 ‘eleven’에 관련된 구절은 모두 성막을 덮는 막 곧 휘장에 관련된 구절로, 특별히 그 두 번째 휘장인 염소 털의 휘장을 열한 폭으로 만들라고 누누이 강조합니다(출 26:7-8, 출 36:14-15). 성막의 휘장은 4겹인데 맨 안쪽은 가늘게 꼰 베 실로 된 천(흰색, 청색, 자색, 홍색으로 물들인 베 실을 꼰 10폭), 그다음은 염소 털(11폭), 그다음은 붉은 물을 들인 숫양의 가죽, 그리고 맨 바깥쪽은 해달의 가죽입니다.

신명기엔 ‘11’이 두 번 나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신명기 1장 2절과 3절에 연이어 나옵니다.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나(신 1:2-3).’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율법을 받았던 호렙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11일이면 되는 길을 불평과 불신앙 때문에 장장 40년째 되는 11월에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사사기엔 ‘11’이 3번 나오는데 흥미롭게도 모두 은 ‘1,100세겔(‘Eleven’ hundred)’에 관련된 구절입니다. 사사기의 대표적인 우상숭배의 시조인 미가가 어머니한테서 훔쳤다가 돌려준 돈이 은 1,100인데 미가의 어머니는 그중 일부를 아들에게 다시 주어 우상을 제작하게 합니다. 또한 데릴라가 삼손을 팔아넘기고 받은 돈의 액수가 은 1,100세겔입니다(삿 16:5; 17:2-3).

왕상하에 나오는 11에 관련된 구절은 5개입니다. 왕상에서는 솔로몬이 직위 4년째 되든 해 둘째 달에 성전 기초를 놓고 그 후 7년이 흐른 직위 11년째 되든 해 8월 성전을 완성한 기록입니다(왕상 6:37-38). 왕하에 나오는 11년에 대한 기록 4개 중 1개는 아합의 아들 요람 직위 11년째 되든  아하시야가 유다에서 통치하기 시작했다는 구절(왕하 9:29)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아하시야는 유다 왕 여호람과 아합왕의 딸 아달리야가 결혼해서 얻은 아들로, 하나님 앞에 등불로 남겨둔 다윗의 혈통과 우상숭배로 버리신 이스라엘 집이 통혼해서 나온 첫 후손입니다. 그랬던 아하시야가 통치 1년 만에 사고로 죽자 왕후였던 아달리야는 왕하 11장에서 왕족의 씨를 모두 없애고 반역을 일으켜 왕위에 올라 6년간 통치하다 죽임당합니다. 또 한결같은 우상숭배로 앗시리아에게 멸망한 이스라엘처럼 유다도 결국 우상숭배로 바빌론에게 멸망하는데 그즈음에 통치했던 여호아김과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둘 다 예루살렘에서 11년간 통치했습니다(왕하 23:36; 24:18; 25:2) 역대하와 예레미야에 나오는 11에 대한 기록도 마지막 왕들과 예루살렘의 함락에 대한 기록들입니다(대하 36:5, 11;렘 1:3, 39:2, 52:1, 52:5).

예레미야처럼 비운의 선지자였던 에스겔은 두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말씀을 받는데, 그 예언이 임한 시점을 ‘열한째 어느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겔 26:1)’라고 합니다. 아무 수식어 없이 ‘열한째 해’로만 돼 있는 이 해는 시드기야 통치 11년째를 말하며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한 해를 뜻합니다. 시드기야는  바빌론의 억압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반발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거짓 선지자들의 말만 믿고 바빌론에 대항합니다. 그래서 비록 일부가 포로로 잡혀가고 식민지는 됐지만, 명맥은 유지하던 예루살렘을 완전히 함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렇게 언약의 땅인 예루살렘이 바빌론에게 완전히 패망한 통곡과 어둠의 때에 마귀의 예표가 되는 두로의 심판 말씀을 주신다는 것에서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봅니다. 에스겔은 두로에게 심판의 말씀을 전한 것뿐 아니라, 11년째 해 셋째 달(겔 31:1)과 일곱째 달(겔 30:20)에 사단(용)에 비유되는 이집트에 대한 심판(겔 30, 겔 31) 말씀을 번에 걸쳐 전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천년왕국 때 세워질 성전 문의 길이가 11큐빗임을 에스겔에게 보여주십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 현관에 이르러 그 문의 좌우 벽을 측량하니 너비는 이쪽도 다섯 척이요 저쪽도 다섯 척이며 두께는 문 이쪽도 세 척이요 문 저쪽도 세 척이며 그 현관의 너비는 스무 척이요 길이는 열한 척이며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고 문 벽 곁에는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이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저쪽에 있더라(겔 40:48-49)’

그 후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바빌론의 70년 포로 기간을 마치고 스룹바벨과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온 첫 무리가 성전 터를 놓지만 극심한 방해로 14년 동안 성전건축은 중단됩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에게 임하고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학 1:14)’ 다시 시작합니다. 그렇게 다시 성전 공사가 시작된 지(학 2:15) 정확히 5개월 됐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고, 그는 계시록 6장에 나오는 것 같은 환상을 보며 구원자로 오실 왕에 대해 예언합니다. 이렇게 스가랴 1장에서 6장까지 펼쳐지는 8가지의 환상은 ‘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슥1:7)’임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신약으로 넘어와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11’ 관련 구절은 3개인데, 그중 두 개는 포도원에 일꾼들을 들여보낸 집주인의 비유로, 그가 마지막 열한 시각에도 일꾼들을 찾아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들도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들과 같은 품삯을 주는 부분입니다(마 20:6, 9).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그분을 만나 뵈려고 갈릴리에 있는 한 산으로 향하는 11명 제자에 대한 기록이(마 28:16) 나오는데 그들은 거기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는 명령을 받습니다.

마가복음엔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 16:14)’에서 한번 나옵니다.

누가복음엔 무덤에 갔던 여자들과 엠마오로 가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게 된 사람들이 열한 제자에게 와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는 소식을 전하는 부분입니다(눅 24:9, 33). 마태는 유다의 왕으로(사자) 오신 예수님, 마가는 섬기는 종으로(소) 오신 예수님, 누가는 사람의 아들로(사람) 오신 예수님, 요한복음은 하나님으로(독수리) 오신 예수님의 관점에서 쓰인 책입니다. 그래서인지 ‘11’ 관련 구절을 모두 뽑아 읽어 보았을 때 요한복음엔 ‘11’이 들어간 구절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3복음서에 나오는 11 관련 구절들을 누가, 마가, 마태, 순으로 거꾸로 읽어보면 예수님 부활 이후의 사건이 일어났던 순서대로 적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엔 ‘11’이 두 번 나오는데 한 번은 예수님 승천 이후 가룟 유다의 빈 자리를 메꾸자는 사도 베드로의 제의로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들어가니라( 1:26)’ 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방언하는 제자들에게 무리가 술에 했다고 비웃자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일을 너희로 알게 것이니 말에 귀를 기울이라( 2:14)’ 일은 예언된 말씀의 성취임을 설교하는 부분입니다.

이상이, 레위인이 상속받은 도시들 중 열한 번째 되는 도시, 광야에서 각 지파가 여호와께 헌물을 드릴 때 열한 번째로 드린 지파, 새 예루살렘 성의 기초석 중 열한 번째 보석 등등의 기타 구절들을 제외한 성경에 나오는 ‘11’에 대한 43구절들에 대한 요약입니다.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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