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와 레마,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

회개 후회 돌아옴의 차이‘에 이어 오늘은 로고스(λόγος)와 레마(ῥῆμα)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신약성경은 두 단어 모두 큰 구별 없이, 말 혹은 말씀으로 번역합니다. 그렇기에 원어로 보지 않는 한 어떤 구절이 로고스이고 어떤 구절이 레마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신약에 331번 등장하는 로고스가 말, 말씀, 이야기, 진술 등을 뜻하는 광범위하고도 포괄적인 단어라면 70번 등장하는 레마는 ‘발언’을 뜻하는 구어(口語)입니다. 로고스의 숫자를 더하게 되면 7이(3+3+1) 나오고 레마는 70이 됩니다(하나님의 완전수 7과 7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일부가 ‘로고스’는 성경에 적힌 일반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레마’는 내게 주는 특별하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계시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레마를 통해 성령의 권능이 강력하게 역사하며 주님을 영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교회를 미혹하며 혼탁 시킵니다. 몇 년 전 이런 주장을 하며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던 사람이 가는 곳마다 파탄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레마와 로고스가 들어간 모든 구절을 뽑아 비교 분석하였고 레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성경이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임을 발견했었습니다.

물론 70번 나오는 레마 구절들을 읽다 보면 레마엔 로고스와는 다른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어떤 힘과 능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레마가 나오는 몇 유명 구절 중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레마) 살 것이라(마 4:4)’, ‘주의 말씀(레마)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져(눅 5:5)’, ‘내 말이(레마)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레마)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6)’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로고스가 나오는 331구절을 읽어보지 않기에 오는 착각일 뿐입니다. 로고스 구절들을 모두 읽어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로고스든 레마든 살아 움직이는 능력의 말씀임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런 오해는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어원을 무시한 탓일 것입니다. 여러 형태의 말(로고스) 중에서도 특별히 레마는 구어(口語)를 뜻하며 여러 사람 앞에서의 공식적인 ‘발언’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정도 차이를 갖고 로고스가 성경에 적힌 문자라면 레마는 살아서 움직이는 ‘로고스’, ‘성령으로 변화 받은 능력 있는 영의 언어’라고 까지 비약하는 건 미혹하는 영의 역사일 뿐입니다.

단 레마에 대해 연구하다 얻은 유익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마태복음 12장 36절 부분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레마)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로고스) 받으리니(마 12:36)”입니다. 이 구절을 그냥 ‘말’의 의미로 읽으면 보통 부담되는 구절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실없고 무익한 말을 많이 하나요. 영어로 직역하면 ‘하릴없는(idle)’인데, 이처럼 마음에도 없고 일없이 괜히 한 말까지도 심판 날에 심문받아야 한다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레마’가 ‘발언’을 뜻한다는 걸 알자 이해가 됐습니다. 이 구절은 공식적으로 쓸데없는 발언 혹은 증언을 하는 경우이지 일상적인 경우를 말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역시 주님께서 말씀하신 다음 구절에서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레마) 확증하게 하라(마 18:15-16)”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주님이 말씀하신 마태복음 12장 36절엔 레마와 로고스가 같이 쓰였다는 것입니다. 두 원어를 넣어서 36절과 37절을 직역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하릴없는 레마(말)를 하든지 심판 날에 그것에 대해 로고스(심문으로 번역됨)를 줘야 하리라. 네 로고스(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로고스(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입니다. 즉, 사람들 앞에서(주로 공식적인) 하릴없는 발언이나 증언을 한 사람은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서 그것에 대해 말해야(변론 혹은 보고) 할 것입니다. 그 말에 따라 의롭다 함을 받을 수도 있고 정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레마만 특별한 계시의 말씀인 것처럼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는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레마)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 3:2)”라는 침례 요한에게 말씀이 임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에 대한 다른 두 구절엔 레마가 아닌 로고스가 쓰입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로고스)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 10:35).” 한국어 번역이 이렇게 되어서 어감이 약간 다르게 느껴집니다. 영어로는 “If he called them gods, unto whom the word of God came, and the scripture cannot be broken;(요 10:35).” 누가복음 3장 2절은 “Annas and Caiaphas being the high priests, the word of God came unto John the son of Zacharias in the wilderness.” 입니다. 두 구절의 밑줄 친 표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인데 예수님이 시편을 인용하신 구절은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말씀’을 오히려 로고스로 썼고, 침례 요한 부분은 레마로 쓰였습니다. 또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고전 14:36)”며 따진 구절도 ‘로고스’가 쓰입니다. 영어로는 “What? came the word of God out from you? or came it unto you only?” 직역하면, “무엇이라? 너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나왔더냐? 아니면 너에게만 그것이 임했더냐?”입니다.

레마(ῥῆμα)와 로고스(λόγος)의 차이가 어떤 신비나 능력에 있지 않고 그저 상황에 맞게 쓰인 것뿐이란 걸 증명하는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두 단어가 한 구절에 같은 용도로 쓰인 경우를 보는 걸 겁니다. 다음은 그런 경우의 몇 구절입니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레마)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로고스)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요 12:48).” 즉, 예수님의 그 당시 발언 혹은 증언을(레마) 받지 않았던 사람들은 곧 예수님이 한 그 말이(로고스) 그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을(레마) 할 때에 성령이 말씀(로고스)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 10:42-44).” 이 구절에서 보면 오히려 레마는 베드로의 증언(발언)이었고 로고스는 그 내용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레마)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로고스)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6-19).” 로고스를 폄하하고 레마를 신비롭고 영화롭게 하려는 사람들은 아마도 엡 6:16-18절까지만 인용할 것 같습니다. 이 두 구절만 보면 마치 레마가 특별한 것 같지만 이어지는 19절까지 보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는 말씀으로는 ‘로고스’가 쓰였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하고 빼고 뜻을 왜곡하는 일은 단 에덴동산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마지막 예로,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레마)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로고스)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히 12:18-19).” 이 구절에서도 레마와 로고스는 같은 의미지만 상황에 맞춰 쓰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우리가 잘 아는 “하나님의 말씀은(로고스)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란 구절은 레마가 아닌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는 그냥 흰 종이에 검은 글씨이고(그들의 말대로), 레마는 살아있는 로고스로서 능력 있는 말씀이란 주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지 잘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또한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로고스)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4).”에서도 청년들 안에 거한 로고스(말씀)로 흉악한 자를 이겼다고 하지 레마로 이겼다고 하지 않습니다. ‘로고스’는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요 1:1, 14)’을 칭하는 표현이기도 한데 이렇게 로고스를 무시하는 생각과 궤변이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이지 깊이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렇다고 ‘레마가 로고스보다 한 수 아래다’란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로고스는 살아 있는 말씀, 능력의 말씀이 아니라는 주장에 반론을 제시하다 보니 로고스에 치중해서 글을 쓴 것뿐입니다. 로고스든 레마든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면 능력 있고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저 허공에 흩어지는 말일 뿐입니다. 어떤 레마를 하든지 심판 날에 로고스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늘 깨어 기억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대하길 간구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Published by tnb4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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