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6장 원어/영어 분석

1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본절에 ‘내가 보매’로 번역한 ‘horaó(호라오)’는 ‘내가 주의 깊게 지켜봤더니’란 뜻입니다. ‘인’, ‘봉인’, ‘봉인하다’의 풀이는 요한계시록 5장 1절 분석에 자세히 풀어놓았으니 여길 눌러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본절에 ‘그 때에’란 단어는 삽입이 된 것이고 원어를 직역하면 “내가 그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여시는 걸 지켜보는데 4 생물 중 하나가 천둥과 같은 소리로 ‘오라’ 말하는 걸 들었노라”입니다.

신약에 12번 등장하는 ‘우렛소리(bronté:브론테이)’는 ‘번개’처럼 영적 존재들의 ‘음성’을 뜻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렛소리’는 주님이 요한과 야고보에게 지어준 별명(우레의 아들)이기도 했고(막 3:17) 하늘에서부터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이기도 했으며(요 12:29), 하나님의 보좌와(본절) 하늘의 성전 안에 있는 언약궤가 보일 때 나는 소리이며(계 11:19), 네 생물의 음성이기도 합니다(6:1). 또한, 제단 곁에 섰던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 땅에 쏟을 때(계 8:5)와 예수 그리스도가 천사로 현현했을 때 같이 말하던 7 우레이며(10:3, 4(2)), 어린 양과 시온산에 서 있는 144,000명이 하프(거문고)를 타며 부르는 새 노래의 소리이기도 합니다(계 14:2). 또한 일곱째 천사가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보좌로부터 나서 ‘되었다’라고 할 때도 우렛소리가 있고(계 16:18), 천상의 무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며 경배할 때 내는 소리이기도 합니다(계 19:6).

본절에 ‘생물’로 번역한 ‘zóon(준)’은 신약에 23번 나오는데 계시록에서만 20번 나오며 ‘생명이 있는 존재’ 즉, ‘생물’로 번역하는 게 맞습니다. 이 네 생물은 에스겔에게도 나타났던 생물들로 그룹(cherub, cherubim)입니다(겔 1:10-14). 에스겔이 본 그룹은 사람, 사자, 소, 독수리의 얼굴을 가진 4 생물이었으며 이들도 번개처럼 오고 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룹(cherub)을 찾으면 총 95번 나오는데, 이들에 대한 주요 구절들을 살펴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에덴동산의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창 3:24). 하나님은 언약궤를 만들 때 순금으로 속죄소(긍휼의 자리)를 만들되 그룹 둘을 양 끝에 하나씩 서로 마주 보게 만들고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하게 하셨으며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게 하셨습니다(출 25:17-20). 하나님은 언약궤 위에 있는 속죄소(긍휼의 자리)의 두 그룹들 사이에서 모세와 말씀하셨습니다(민 7:89). 솔로몬의 성전에는 금칠한 올리브 나무로 만든 두 그룹이 서로 날개를 맞대고 내소에 서 있었고(왕상 6:23-28) 성전 벽과 문들에도 그룹들을 조각해 넣었습니다(왕상 6:29, 32). 또한 성전 뜰에는 놋으로 받침 수레 10개를 만들었는데 거기에도 사자와 소와 그룹들의 모양을 새겨 넣었습니다(왕상 7:29, 36). 성경은 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룹들 사이에서 거하시는 분임을 여러 번 얘기하는데 총 6번 나옵니다( 삼상 4:4; 삼하 6:2; 왕하 19:15; 대상 13:6; 시 80:1; 사 37:16). 하나님은 그룹을 타고 나시며 바람(영)의 날개 위에 계신 분이십니다(삼하 22:11; 시 18:10).

이 그룹들은 세상의 창조물을 대표하기도 하는데, 사자가 맹수라면(길들여지지 않은 동물들) 소는 가축(사람에게 길들여진 동물들), 사람, 그리고 독수리는 공중에 나는 새들을 대표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늘과 땅의 모든 창조물이 이 4개의 영적 생물로 압축된 것입니다. 이 그룹은 4복음서의 상징이기도 한데, 마태복음은 사자의 왕권을 담고 있고 마가복음은 여호와의 종되신 예수님을 나타내며 소와 같은 힘과 인내의 섬김을, 누가복음은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는 인성을 담고 있으며, 요한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독수리와 같은 높은 영광과 권세를 담고 있습니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눌러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1절 내용을 직역해서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어린 양이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된 의와 사랑으로 봉인된 일곱 인 중에 하나를 여시는 걸 지켜보는데, 4 생물 중 하나가 천둥과 같은 소리로 ‘오라’ 말하는 게 들렸노라

2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본절에 ‘보라!(idou:behold)’란 단어가 빠져있습니다. 계시록 6장에 나오는 4개의 말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해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목적은 성경 자체가 사전이기에 어떤 단어나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자료를 참고하는 게 아니라 성경 안에서 성경이 정의하는 뜻을 살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흰 말(white horse)’이 등장하는 구절들을 살펴보면 구약에 3번(스가랴) 신약에 3번인데(계시록), 복수로도 3번(슥 6:3, 6, 계 19:14), 단수로도 3번(슥 1:8; 계 6:2, 19:11) 나옵니다.

관련구절들을 모두 살펴보면, ‘흰 말들’은 스가랴 선지자가 본 4개의 병거 중 셋째 병거를 끄는 말들이고(슥 6:3), 이들은 하늘의 4 영으로 온 땅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중입니다(슥 6:5). 개역개정은 이 부분을 ‘4 바람’이라고 번역했는데 원어와 킹제임스 영어 성경도 ‘4 영들(ruach:sprit)’로 번역했습니다. 흰 말들은 북쪽 땅으로 나가는 검은 말들을 뒤쫓아 가는데(슥 6:6)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하나님의 영을 쉬게 합니다(슥 6:8). 또한 ‘흰 말들(white horses)’은 희고 깨끗한 새마포 옷을 입고 심판의 주님을 쫓아 내려오는 하늘의 군대, 즉 성도들이 탄 말입니다(계 19:14). 그리고 단수로 나오는 ‘흰 말(white horse)’은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이들(슥 1:10)’ 중 하나이며 심판의 주로 오시는 ‘하나님의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타신 말입니다(계 19:11-13).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 19:11-13)

본절에 이 흰 말을 탄 자는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갔다고 나옵니다. 먼저 성경에서 ‘활(qesheth:히, toxon:헬)’을 찾게 되면 구약에 76번 나오고 신약엔 본절에 딱 한 번 나와서 총 77번입니다. 이중 본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며 곤고 당하는 걸 보시고 목자들에게 노하십니다. 이때 만군의 여호와가 유다 족속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할 것이며 모퉁잇돌과 못, 싸우는 활과 모든 군림하는(면류관의 의미?) 자들(직역)이 유다에서 나와서 용사처럼 원수를 밟을 것이라고 하십니다(슥 10:3-5). 또한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며 사악한 자에게 매일 분노하시는 분인데, 만일 그가 돌이키지 않는다면 칼을 갈고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다고 경고하십니다(시 7:11-12). 그리고 하나님은 활 쏘는 자를 바벨론에 소집하실 것이며 활 당기는 자가 사면으로 진을 쳐서 피하는 자가 없게 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해 교만하게 행했던 대로 갚아주시겠다고 하십니다(렘 50:29).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용맹함을 기리는 ‘활의 노래‘를 지어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도록 명합니다(삼하 1:18).

‘면류관’으로 번역한 헬라어 ‘stephanos(스테파노스)’는 ‘머리에 쓰는 둥그런 관’을 의미하며 총 18번 나옵니다. 성경엔 영적인 7개의 관이 나오는데, 영광(영화)의 관(잠4:9, 16:31; 사 28:5, 62:3, 렘 13:18, 벧전 5:4), 교만의 관(사 28:1, 28:3), 썩지 않는 관(고전 9:25-26), 기쁨의 관(살전 2:19), 의의 관(딤후 4:8), 생명의 관(약 1:12; 계 2:10), 그리고 바울은 복음으로 얻은 형제들을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빌 4:1)이라고 합니다. 본절에 있는 면류관은 어떤 관인지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면류관(stephanos)의 의미 차체가 승리, 통치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비추어 인을 여는 과정을 분석해 보면 하나님이 심판의 때에 어떻게 말씀대로 모두 성취하실 것인가를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2절을 위 구절들에 비추어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에 내가 보니, 보라, 흰 말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전쟁의 준마와 같으시며 사악한 자에게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그에게 싸우는 활과 왕권이 있으니 용사처럼 원수를 밟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해 교만하게 행했던 대로 갚아 줄 것이라

3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가 두 번째 인을 여실 때 두 번째 생물이 오라’ 말하는 소리가 들리고”

4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성경에서 ‘붉은 말(red horse)’를 찾게 되면 4번 나오는데 스가랴에서 3번, 계시록에서 한번 나옵니다(슥 1:8(2), 6:2; 본절). 관련 구절들을 살펴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스가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그 뒤에 다른 말들을 거느리고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데(슥 1:8), 이들은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것(슥 1:10)’입니다. 붉은 말들은 또한 4개의 병거 중 첫째 병거를 끌었고(슥 6:2) 이들은 하늘의 4 영으로 온 땅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중입니다(슥 6:5).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는 직역 하면 ‘땅에서 화평을 가져가도록(labein) 허락되었고(edothē)’입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4-36)”고 말씀하셨습니다.

본절에 나오는 ‘큰 칼’은 ‘machaira(마카이라) megalē(메갈레이)’입니다. 영어로 하면 “great sword”인데, 이 표현은 신약에서는 본절이 유일하고 구약에서는 이사야서에 한 번 나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great and strong sword)’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사 27:1)

따라서 4절을 직역하고 풀어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른 붉은 말이 나가는데 그 위에 앉으신 이는 땅에서 화평을 가져가도록 허락되어 그들이 서로 죽이게 될 것이며 그가 리워야단을 벌하고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일 큰 칼을 받았더라

5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5절과 6절은 연결이 되어 있는 구절들이라 함께 다루겠습니다.

성경에서 ‘검은 말(black horse)’를 찾게 되면 3번 나오는데 스가랴에서 2번, 그리고 본절입니다(슥 6:2, 6:6, 본절). 검은 말들은 4개의 병거 중 둘째 병거를 끌었고(슥 6:2) 이들은 하늘의 4 영으로 온 땅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중입니다(슥 6:5). 검은 말들은 북쪽 땅으로 나가고 흰 말들이 뒤쫓는데(슥 6:6)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하나님의 영을 쉬게 합니다(슥 6:8).

검은 말을 탄 자의 손에는 ‘저울’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저울’로 번역한 ‘zugos(주고스)’는 ‘멍에’, 영어로는 ‘yoke’입니다. 헬라어 ‘zugos(주고스)’는 신약에 총 6번 나오는데, 본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멍에(yoke)’로 번역됐습니다(단어를 누르면 모든 해당 구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멍에’가 5절에서 ‘저울’로 번역된 이유는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라고 나오는 6절 때문입니다. 곡식을 달아서 계산하는 것 같은 뉘앙스니까, 어차피 멍에도 수평으로 된 막대기를 소 두 마리에 함께 씌우는 모양이 ‘저울’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그렇게 번역한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zugos(주고스)’는 ‘멍에’이며, ‘함께 멍에지지 말라’는 뜻의 ‘heterozugeó(헤테로주게오)’와 ‘함께 멍에를 진 동료’란 뜻의 ‘suzugos(수주고스)’까지 포함하면 ‘멍에’관련 구절은 신약에 총 8번 나오는 게 됩니다(재생 및 새창조를 뜻하는 8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멍에’ 관련 구절들 중 본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구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 30)’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겠느냐(고후 6:14)고 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릴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고 합니다. 또한 빌립보서 교인들에게는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나와 함께 복음에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도우라(빌 4:3)’고 부탁합니다.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이 아니라 ‘내가 네 생물 가운데 ‘음성과 같은(hōs phōnēn)’ 말소리를(legousan) 들으니’입니다.

‘데나리온(dénarion)’은 로마 시대 때 쓰던 은 동전으로 일반 노동자의 하루치 보수에 해당하는데 신약에 총 16번 등장합니다(하나님의 아이덴티티 또는 사랑을 의미하는 16에 대한 의미는 요한계시록 1장(2)에 좀 더 적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6개의 구절들 중 본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데나리온은 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았던 종이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해 주지 않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그다음엔 포도원 품꾼의 천국 비유에서 나옵니다. 하루 한 데나리온을 약속받고 각각 다른 시각에 일꾼들이 포도원에 들어가 일합니다. 그런데 맨 끝에 들어와서 한 시간만 일한 사람들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마 20:2, 9, 10, 13). 베다니에서 한 여자가 깨뜨린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은 300데나리온의 가치였습니다(막 14:5; 요 12:5).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초대받아 가시게 되는데 거기서 어떤 여자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며 자기 머리털로 닦고 입 맞추고 향유를 붓습니다. 이에 정죄하는 마음을 갖는 시몬에게 주님은 500데나리온 빚진 자와 50데나리온 빚진 자의 예를 드십니다. 둘 다 빚을 탕감받았지만 더 많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한다는 점을 비유로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눅 7:41). 예수님은 율법에 대해 묻는 척하면서 올무를 놓으려는 율법 학자에게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대로 가서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누가 내 이웃이냐고 묻고 주님은 강도를 만난 한 사람을 못 본 척 지나가 버린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적극적으로 도와준 사마리아인의 예를 드십니다. 비유에 나온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에 데리고 가서 돌보아 준 후에 그다음 날 주막 주인에게 그 사람을 돌봐 주는 비용으로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아주겠다‘고 약속합니다(눅 10:30-35).

‘감람유’로 번역한 ‘elaion(엘라욘)’은 신약에 총 11번 나옵니다(심판 및 분리를 의미하는 11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이 ‘감람유’는 10처녀 비유에서 슬기로운 5처녀는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지만 어리석은 5처녀는 기름은 가져가지 않고 등만 가져갔다는 부분에 나옵니다(마 25:3, 4, 8). 이 기름은 우리 몸에 내재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미합니다(이 조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laion(엘라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을 때도 쓰였고(막 6:13), 강도를 만난 사람을 구해준 사마리아인이 상처에 부어주기도 한 것이며(눅 10:34) 하나님이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께 부어주신 ‘즐거움의 기름'(히 1:9)입니다. 교회의 장로들을 청해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함을 받을 것입니다(약 5:14).

성경에서 밀과 보리의 차이가 궁금해서 밀(wheat)이 나오는 모든 52개 구절과 보리(barley)가 나오는 모든 35개 구절을 풀어봤던 적이 있습니다. 이때 내린 결론은 보리(Barley)는 교회이고 밀(Wheat)은 이스라엘이란 것이었습니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신약 성도들(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을 말하는 것이고 ‘이스라엘’이란 의미는 혈통적 이스라엘 민족으로 환란기를 통해 주님께 돌아오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수많은 다른 민족들도 환란을 통과하며 구원을 얻게 됩니다. 즉, 보리(Barley)가 환란 전 휴거(부활)라면 밀(wheat)은 환란 성도들입니다(이때 얻은 조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Norten이란 성경 학자는 보리, 밀, 과일 추수를 3가지의 영적 추수에 비유하는데 요약해서 적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추수인 보리는 껍질이 매우 연하고 얇기 때문에 바람으로 까불립니다. 이는 오순절에 바람처럼 임한 성령으로 태어난 교회를 떠올리게 합니다(행 2:1-2). 부활의 순서로 보자면 교회는 보리가 맨 처음 추수되듯이 맨 처음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밀은 껍질이 두껍고 딱딱하기에 껍질과 알맹이를 나누려면 타작해야 합니다. 타작이란 단어가 ‘tribulum(환란)’이란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환란기간 동안 유대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데(계 7:9-14), 이 시기에 추수될 144,000명의 이스라엘 12지파를 “하나님과 어린양께 첫열매(계14:4) 된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이들은 타작한 후 얻어지는 밀 추수의 첫열매인 것입니다. 보리가 교회를 상징하고 밀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은 보리와 밀의 모양에서도 나타납니다. 보리는 ‘겸손’을 상징하듯이 머리를 숙이고 있지만, 밀은 꼿꼿합니다. 신명기 31장 27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반역함과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부활하고 난 후 환란기 동안 믿게 된 사람들은 타작이 상징하듯이 믿음 안에서 죽어 추수되는 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가을에 있는 과일 추수는 믿지 않는 자들에 해당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들이 받을 심판에 대한 기록이 생생히 적혀 있습니다(계 14:15-20).’

‘포도주’로 번역한 ‘oinos(오이노스)’는 신약에 총 34번 나옵니다. 포도주는 주로 ‘피’에 비유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비유에서는(마 9:17(3); 막 2:22(4); 5:37(2), 38)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 흘리실 새 언약의 피(눅 22:20)로 비유됐습니다(이 비유에 대해 받았었던 조명은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당한 사람의 상처에 부어준 것이며(눅 10:34)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첫 번째 기적이기도 합니다(요 2:3(2), 9, 10(2); 4:46). 서신서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술에 취하지 말고 다만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실질적인 술의 의미로 쓰였고(엡 5:18; 딤전 3:8; 딛 2:3), 계시록에서는 본절을 제외하고 모두 심판의 대상인 바벨론이 마신 ‘음행과 진노의 포도주(계 14:8, 10, 16:19, 17:2, 18:3, 13, 19:1)로 나옵니다.

따라서 5절과 6절은 이어지는 내용이기 때문에 함께 봐야 하며 보리와 밀이 함께 멍에를 매고(짝이 되고) 포도주와 감람유가 함께 멍에를 맸다는(짝이 된) 의미입니다. 진정한 땅의 심판은(마지막 7대접의 심판) 밀 추수까지(환란 성도들) 땅에서 다 거둬들이신 후에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5-6절을 직역하고 그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 그가 세 번째 인을 여실 때 셋째 생물이 오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노라 이에 내가 보니, 보라, 검은 말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그가 손에 온유하며 겸손한 그리스도의 종들이 함께 맬 멍에를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가운데 음성과 같은 말소리를 들으니 이르되 교회와 이스라엘이 3대 1로(지난 2000년간 구원을 얻은 신약 성도와 마지막 7년 환란을 통과하며 구원을 얻을 이스라엘 및 환란 성도들의 비율) 영생을 얻으리니 성령으로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 받은 자들은 해치지 말라 하더라

7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넷째 인을 여실 때 넷째 생물이 오라’ 말하는 소리가 들리니”

8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청황색’으로 번역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chlóros(클로로스)’는 ‘연두색 또는 잿빛’이라고 합니다. 신약에 총 4번 나오는데, 5병2어의 기적 때 ‘푸른(막 6:39)’ 잔디 위에 100명에서 50명씩 떼지어 사람들을 앉게 했을 때와, 본절, 그리고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의 삼분의 일, 수목의 삼분의 일, 그리고 각종 ‘푸른(계 8:7)’ 풀도 타버렸다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무저갱에서 올라온 전갈에게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계 9:4) 각종 수목은 해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만 해하라고 한 부분에 나옵니다. 따라서 ‘chlóros(클로로스)’가 쓰인 구절들을 살펴보면, ‘색이 바랜, 색이 가신’이란 의미란 생각이 듭니다. 요즘 산불이 나는 이유도 마른 풀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것처럼, ‘각종 푸른 풀(계 8:7)’이 타버렸다는 부분은 ‘각종 색이 바랜 풀, 즉 마른 풀’은 다 타버렸다는 의미였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좀 엉뚱할 수도 있지만 색을 빼는 데 쓰는 표백제도 클로락스(chlorox)라고 하는 걸 봤을 때 ‘chlóros(클로로스)’는 ‘색이 빠진(탈색)’, 또는 ‘잿빛’이란 의미가 맞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탈색된’ 말을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고 ‘음부’가 그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 죽였다고 하면서 ‘사망과 음부’가 의인화되었습니다. 성경엔 이처럼 사망과 음부가 의인화된 구절들이 몇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셀라)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누으리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yir·‘êm(직역) 그들을 목양할) 것이라 정직한(올바른:upright)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시 49:12-14)

이 구절은 두 목자에 의해 목양되는 두 무리의 양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섬뜩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이지만 양무리를 도둑질하고 멸망시키려고 오는 강도요 도둑인 ‘삯꾼 목자’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요 10:1-17). 또한 스가랴서에도 ‘우상 목자(idol shepherd)’에 대한 심판의 구절이 나옵니다(슥 11:17). 사망과 음부(히브리어로는 스올, 헬라어로는 하데스)가 의인화된 또 다른 구절은 이사야서 14장에 나오는데, 바벨론 왕이 받을 심판에 대한 말씀 후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향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도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이르기를 네가 넘어져 있은즉 올라와서 우리를 베어 버릴 자 없다 하는도다 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직역하면, ‘스올이 저 밑에서 네가 오는 것으로 말미암아 소동하며 널 만나려고 깨었으니(일어났으니)‘)…(사 14:8-9)“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호세아와 신약의 바울은 사망과 음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호 13:1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4-55)

이 사망과 음부는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 죽입니다. 이와 비슷한 심판의 표현을 담고 있는 구절들을 성경에서 찾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4:21)”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후에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전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과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측은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렘 14:12, 21:7)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계 6:8)’로 죽이겠다는 표현과 ‘네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겔 14:21)’을 비교해 보면, ‘사망’은 특별히 전염병에 의한 사망을 뜻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계 6:8)’과 ‘칼과 기근과 전염병, 그리고 바벨론의 느부가넷살 왕(렘 14:12, 21:7)’으로 죽이는 구절과 비교할 때 땅의 짐승들은 느부가넷살 왕과 같은 적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짐승처럼 말입니다.

‘땅의 짐승들’에서 ‘짐승들’은 thérion(떼리온)’인데 특별히 야생 동물들을 뜻하기에 ‘들짐승들(wild beasts)’로 번역해야 합니다. 신약에 총 46번 나오는데 많은 구절 그냥 ‘짐승’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땅의 짐승들은 정말 짐승들일 수도 있고 악령들과 악인들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wild beast(s)’가 나오는 이사야서 13장과 34장을 읽어보면 이들이 영적인 동물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영어 킹제임스를 제외한 다른 성경들은 이 영적인 동물들을 동물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무난한 동물들의 이름들로 탈바꿈해버렸지만 히브리 원어로도 일반 동물들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단에게 40일간 시험받으셨을 때 마가복음에만 유일하게 사단뿐만 아니라 ‘들짐승들(thérion)’도 함께 있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막 1:13). 바울은 그레데인들을 일컬어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들(thérion)’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딛 1:12)’라고 합니다.

따라서 8절을 직역하고 그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에 내가 보니, 보라, 탈색된 말이 나오는데 그 위에 앉은 이의 이름은 사망이며 음부가 그를 따르더라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땅의 4분의 1을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과 악한 영적 짐승들과 악인들로 죽일 권한을 주셨더라”

9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주님께서 처음 4개의 인을 열어 이제 땅(세상)에서 일어날 악의 심판과 성도들의 구원을 예고편처럼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셨다면 다섯 번째 인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지난 2000년간 이날만을 기다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성도들의 모습을 하늘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특히 말씀의 단수형은 성경에 총 49번 나옵니다. 두 번의 7이 상징하듯이, 성령의 완전함을 뜻하는 7의 증인, 7의 증거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 쓰인 곳은 삼상 9장 27절로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너에게 보여주겠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구약에 4번 나오는데 주로 예언의 말씀이 선지자들에게 임했을 때 쓰였습니다(삼상 9:27; 왕상 12:22; 대상 17:3; 잠 30:5). 이에 비해 신약에 45번 나오는 “word of God”은 하나님의 예언 및 구약의 말씀으로도 쓰이지만 대부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쓰입니다(막 7:13; 눅 3:2, 4:4, 5:1, 8:11, 21, 11:28; 요 10:35; 행 4:31; 6:2, 7, 8:14, 11:1, 12:24, 13:5, 7, 44, 46; 17:13; 18:11; 19:20; 롬 9:6; 10:17; 고전 14:36; 고후 2:17, 4:2; 엡 6:17; 골 1:25; 살전 2:13(2); 딤전 4:5; 딤후 2:9; 딛 2:5; 히 4:12, 6:5, 11:3, 13:7; 벧전 1:23; 벧후 3:5; 요일 2:14; 계 1:2, 9; 6:9; 19:13; 20:4).

‘증거’로 번역한 ‘marturia(마르투리아)’는 ‘증언, 증인, 증거’를 모두 뜻하는 단어로 신약에 총 37번 나옵니다. ‘marturia(마르투리아)’가 쓰인 37구절들을 모두 살펴보면 대부분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으며, 성도들에게 쓰였을 때는 ‘믿음의 증거’인 그들 안에 있는 ‘말씀(예수 그리스도) 또는 성령’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marturia:증거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9-10)”

요한도 계시록 1장 9절에서 나는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증거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marturia)‘로 말미암아 밧모섬에 갇혔다고 합니다. 같은 단어가 나오는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나 용이 땅으로 쫓겨나는 장면이 나오는 데 이어지는 10절과 11절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marturia) 말씀으로써(직역:자기들의 증거인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 12:10-11)

또한 요한에게 어린 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을 보여주던 천사는 요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marturia)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marturia)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계 19:9-10)

그리고 ‘영혼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혼들(psychas)’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복음)과 증거(성령)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 이 땅에서 죽임당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유대인들 및 이방인들)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때가 와서 새 몸을 입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인 이 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습니다. 이 ‘제단’은 ‘thusiastérion(뚜씨이애스테이뤼온)’인데 신약에 총 23번 나오며 여기서는 번제단(altar)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의 혼이 왜 제단 아래(hupokató(후포카토)) 있었는가에 대한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과 증언으로 죽임을 당한 이들의 삶이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졌음을 나타내는 것(롬 12:1)’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무저갱, 음부, 게헨나의 차이‘란 글에 적었듯이 이들이 있는 낙원의 위치가 성전 아래쪽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9절을 직역하고 뜻을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 그가 다섯 번째 인을 여실 때에 내가 보니 제단 아래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과 그들이 가진 증거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혼들이 있어

10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불러 이르되’로 번역한 ‘ekraxan(에크락산)’은 ‘부르짖다’란 뜻입니다. 본절에 있는 ‘대주재여’는 원어에는 없는 삽입된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는 분이며 원수 갚음은 내게 있으니 스스로 갚지 말고 내게 맡기라고 하십니다(롬 12:19-21. 때문에 이들은 이제 재림의 때가 문 앞에 다가온 것을 보고 힘껏 외쳐 부르는 것입니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오 거룩하고 참되신 주여, 주께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피를 갚아 주지 않으시는 게 언제까지이니까 하니

11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두루마기’로 번역한 ‘stolé(스톨레이)’는 팔이 있는 긴 옷으로 영어로는 ‘robe’입니다. 성경엔 여러 종류의 다양한 ‘옷’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나오지만 한국어 번역엔 대부분 그냥 ‘옷’으로 뭉뚱그려 번역했습니다. 영어는 그나마 구분해서 번역한다고 했지만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지 않고 뒤섞여 번역한 부분이 꽤 있습니다.

먼저 신약에 ‘stolé(스톨레이)’가 나오는 9구절을 살펴보면, 이 옷은 제사장이나 서기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입었던 옷입니다(막 12:38; 눅 20:46).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당시 무덤 안 우편에 앉아 있던 청년이 입고 있던 ‘흰 옷’이 ‘흰 stolé(robe)’입니다(막 16:5-7). 이 옷은 또한 돌아온 탕자를 기쁘게 맞이하신 아버지가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힌’ 부분에서 나오며(눅 15:22) 본절에 복음과 그리스도의 증거(증언)로 말미암아 죽임 당한 성도들이 받습니다. 그리고 7장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는데, 이들이 입은 옷이 ‘흰 stolé(robe)’입니다(계 7:9, 13, 14). 또한 자기 ‘두루마기(stolé(robe))’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그들이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서 생명나무로 나아가며 문들을 통해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22:14).

킹제임스 영어 성경 전체에서 팔이 있는 긴 ‘robe’을 찾게 되면 37번 나오는데 발까지 내려오는 긴 ‘robe’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입었으며(출 28장, 29장, 39장, 대상 15:27), 왕이 입었습니다(삼상 18:4, 24:4, 11; 왕상 22:10, 30; 대하 18:9, 29; 욘 3:6). 또한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입으실 옷이며(사 22:21), 신랑과 신부가 치장하듯이 성도들이 입을 의의 옷입니다(사 61:10).

본절에 나오는 ‘동무 종들(fellowservant)’이란 표현은 신약에서만 총 10번(하나님의 완전수 1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나오는데(마 18:28, 29, 31, 33, 24:49; 골 1:7, 4:7, 본절, 계 19:10, 22:9) 말 그대로 같은 위치에 있는 동료 종들이란 의미입니다. 헬라어로는 ‘sundoulos(순둘로스)’인데 사도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잘 알고 있었으며 구약에서도 모세 및 선지자들을 ‘여호와의 종’으로 표현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3번 나오는 ‘fellowservants(동료 종들)’이란 표현은 본절에 지난 2000년간 죽임을 당한 성도들이 ‘동무 종들’의 수가 채워지기까지 기다리는 장면, 그리고 요한이 나팔 및 대접의 심판을 집행하던 7천사 중 한명에게 거듭 절하려고 하자 나는 너와 같은 ‘동무 종’이니 내게 경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하는 부분에 쓰입니다(계 19:10, 22:9). 즉 하나님 교회의 완전해진 성도들이 마지막 때 심판을 집행하는 7천사들임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요한 계시록 1장 10절에서 주님은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일곱 교회의 사자’로 번역된 단어는 도로 천사를 의미하는 ‘aggelos(엔겔로스)’입니다. 즉 ‘일곱 별의 비밀’, 곧 ‘일곱 교회의 천사들의 비밀’이라고 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천사의 몸으로 주님과 영원히 살게 될 것이 곧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주님이 직접 부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두개인들에게도 말씀하신 부분이기도 합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와서는 7형제가 모두 자식 없이 죽는 바람에 그 형제들과 모두 결혼했던 여자가 있다면 부활 후에는 7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고 묻습니다. 이들의 황당한 질문에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29-30절)”

바울 역시 부활의 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것이 ‘비밀’임을 밝힙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47-53)”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며(엡 5:25-33) 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몸이기도 한(엡 4:15-16; 엡 5:23) 이 ‘미스테리’는 비유가 아닌 실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가 남편과 아내 관계이면서도 부부이기에 한 몸이 되는 것을 에베소서 5장 23-33절까지 설명하면서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2)”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삼위일체의 하나님만큼 현재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래야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미스테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11절을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분께서 제사장 왕족인 그들에게 각각 신랑과 신부가 치장하듯이 입을 의의 옷을 주시며 이르시되 완전하게 된 하나님 교회의 천사들의 수가 찰 때까지 조금만 더 안식하며 있으라고 말씀하시더라

12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12절에서 14절 전반부는 다 연결이 되어 있기에 함께 다루겠습니다.

‘지진’으로 번역한 ‘seismos(자이즈모스)’는 신약에 총 14번 나오는데, 모든 구절들을 살펴보면 앞서 다뤘던 ‘번개’나 ‘천둥소리’처럼 하나님이 흔드시는 영적 진동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마 8:24, 24:7, 27:54, 28:2; 막 13:8; 눅 21:11; 행 16:26; 본절, 계 8:5, 11:13(2), 19; 16:18(2)). 본절에 쓰인 것처럼 ‘큰 지진(a great earthquake)’이란 표현은 총 5번 나오고(마 28:2, 행 16:26; 본절, 계 11:13; 계 16:18), 복수인 ‘큰 지진들(great earthquakes)’는 누가복음 21장 11절에 한번 나옵니다.

지진은 마지막 때의 징조이며(마 24:7; 막 13:8; 눅 21: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숨을 거두셨을 때와 부활하신 후에는 땅이 진동하고(seió)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습니다(마 27:51-54).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는 ‘큰 지진’이 났었고(마 28:2),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옥에 갇혀 찬송할 때도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었습니다(행 16:26). 또한 7째 인이 열린 후 천사가 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을 때도 지진이 나며(계 8:5), 죽었던 두 증인이 삼일 반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갈 때도 ‘큰 지진’이 나서 성의 십분의 일이 무너져 7000명이 죽습니다(계 11:13(2)).

하나님은 ‘내가 아직 한 번 더 하늘들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고 모든 민족들을 진동시킬 것인데 모든 민족들의 바라는 바가 이르고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채울 것’이라고 하십니다(학 2:6-7). 히브리서에서도 ‘내가 아직 한 번 더 땅뿐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할 것이며 이는 흔들리는 것들을 이동시켜 마치 만들어진 것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 남게 하려 함이라(히 12:26-28)’고 하십니다. 계시록 11장에서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면서,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일 때 지진이 납니다(계 11:19). 그리고 7째 천사가 대접을 공중에 쏟을 때 ‘되었다’라는 말씀과 함께 ‘큰 지진’이 나는데, 그 지진은 전무후무한 ‘큰 지진’이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계 16:18). 이 지진으로 큰 성 바벨론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며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게 되는데 각 섬과 산도 없어집니다(계 16:19-20).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란 표현은 의역이고 직역은 ‘해가 털로 만든 베옷처럼 검게 되고’입니다. 토종 유대인들은 머리나 몸에 난 털이 동양인이나 중동인들처럼 검습니다. ‘검은 털(black hair)’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4번 나오는데 본절과, 나병이 나았는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으로 검은 털이 났는지 안 났는지를 보라는 구절과(레 13:31, 37), 주님이 걱정해봤자 네 머리털 하나도 희거나 검게 못 한다(마 5:36)고 하신 구절입니다. 베옷은 누군가 죽었을 때 사별로 인한 슬픔과 상실을 나타내기 위해 입었고 나를 낮추고 혼을 괴롭게 하는 회개를 할 때도 입었습니다. 성경에서 ‘해’를 찾아보면, 주님과 하나님 및 성도들에 대한 비유에도 쓰이지만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일월성신’으로 섬기며 우상숭배 한 기록들도 있습니다(신 4:19, 17:3; 렘 8:2; 겔 8:16). 따라서 본절에서 ‘해가 털로 만든 베옷처럼 검게 됐다’는 표현은 일월성신의 우상숭배에 대한 심판과 회개를 나타낸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해가 검게 되고 달이 피처럼 되는 장면은 마지막 심판이 임하는 ‘진노의 날’을 묘사하는 장면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는 날에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사 13:10). 에굽의 바로 왕에 빗댄 나일강의 용 사단을 심판할 때도 ‘너를 불 끄듯 하여 하늘을 가리고 해와 달과 별을 어둡게 하고 빛을 내지 못하게 해서 모든 밝은 빛을 네 위에서 어둡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겔 32:2-8). 또한 여호와의 날(주의 날)이 이르렀을 때 심판의 주님과 함께 오는 강한 백성(하늘의 군대인 성도들(계 19:14))로 인해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둘 것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욜 2:1-10).

이때에 하나님은 심판의 골짜기에서 민족들을 다 심판 하시는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둘 것이며(욜 3:15) 그날에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땅이 떨고 모든 사람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며 애곡할 것이니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는 곤고한 날이 이르러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이 캄캄할 것이라고 하십니다(암 8:8-10; 렘 15:9). 예수님도 그때에 예루살렘에 큰 환난이 있겠으니 창세로부터 전무후무한 환난이라 그날들을 감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육체가 없기에 택하신 자들을 위해 그날들을 감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환난과 함께 즉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에 족속들이 통곡하며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시면서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마 24:21-32; 막 13:24-28; 눅 21:25-31).

이처럼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 열매처럼 땅에 떨어지는 것’은 주님이 왕 중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재림하시면서 ‘하늘의 권능들’, 즉 공중에 권세 잡은 사단 마귀와 그를 쫓는 악한 영들이(엡 2:2, 6:12) 땅으로 쫓겨나게 되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계 12장). 성경에서 별을 뜻하는 astér(에스테어)는 신약에 24번 나오는데 복수로는 13번, 단수로는 11번 나옵니다. 단수로 쓰였을 때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되어 쓰였으며(마 2:2, 7, 9, 10; 고전 15:41(2); 본절, 계 8:10, 11, 9:1, 22:16), 복수로 쓰였을 때는 주로 천사들(타락한 천사든 좋은 천사든)로 쓰였습니다(마 24:29; 막 13:25; 고전 15:41; 유 1:13; 계 1:16, 20(2), 2:1, 3:1, 6:13, 8:12, 12:1, 4).

14 절에 ‘두루마리’는 ‘biblion(비블리온)’인데 파피루스 종이로 둘둘 말린 책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총 34번 쓰였는데 마태복음 19장 7절과 마가복음 10장 4절에서 모세가 너희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주라고 했던 부분과 본절에서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려 떠나갔다는 부분에 쓰인 것 외에는 ‘책’으로 번역됐습니다. 요한은 이 책을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명령을 받습니다(계 1:11).

‘말리는 것 같이’는 ‘helissó(헬리쏘)’인데, 둘둘 마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에 딱 두 번 나오는 표현인데, 본절과 히브리서 1장 12절에서 하늘을 ‘베일처럼(peribolaion) 말아 버릴(helissó: 말다, 접다) 것이요 망토(himation)와 같이 바꿀(갈아입힐) 것이지만 하나님은 동일하시고 그분의 햇수는 끝이 없으리이다(직역)’에 쓰입니다.

‘떠나가고’는 ‘apochórizó(아파코리조)’인데, ‘분리되다, 반으로 나뉘다’란 뜻입니다. 신약에 딱 두 번 나오는데, 본절과 사도행전 15장 39절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크게 다툰 후 서로 갈라섰을 때 쓰였습니다. 따라서 직역하면 ‘하늘은 두루마리 책이 말리는 것처럼 분리되고’입니다. 이 구절은 이사야서 34장 4절에 비추면 좀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하늘의 모든 천체는 융해되고 하늘들은 두루마리같이 함께 말리리니 그 모든 천체가 포도나무에서 잎사귀가 떨어지는 것 같이 떨어지고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가 떨어지는 것 같이 떨어지리라(직역:사 34:4)”.

성경에 의하면 하늘은 삼천층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천층이 공기권(대기층)이라면 2천층은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우주이고 3천층은 하나님의 낙원이 있는 곳입니다(고후 12:2). 그런데 여기서 하늘이 두루마리 책이 말리는 것처럼 분리되며 별들이 땅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공중권세 잡은 영적 존재들이 땅으로 떨어지면서 하늘들이 먼저 회복되고 거룩하게 되어 땅과 분리되었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년왕국 때 땅도 회복될 것이며 후에는 땅과 하늘이 모두 거룩해진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는 것입니다(영혼육과 삼천층과 모세의 성막을 비교 분석한 글과 그림을 올린 게 있으니 그 내용에 대해서는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12절에서 14절의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 내가 보니 여섯 번째 인을 여실 때에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시니 하나님의 집을 영광으로 채울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이 일어났고 땅에 살아 있는 성도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이 변화하여 공중으로 채어 올라 갔더라(고전 15:52; 살전 4:14-17). 이에 하늘은 두루마리 책이 말리는 것처럼 거룩하게 분리되어 공중에 권세잡은 사단 마귀와 그를 쫓는 악한 영들이 땅으로 떨어지니라.

14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14절 후반부에서 17절까지 다 연결이 되어 있기에 함께 다루겠습니다. 본절부터는 공중에 권세 잡은 사단 마귀와 그를 쫓는 악한 영들이 땅으로 떨어진 후의 일을 다루고 있기에 땅과 바다에 큰 화가 있게 됩니다. 이는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크게 분내어 내려갔기 때문입니다(계 12장 7-12).

먼저 17절에 나오는 ‘큰 날(The great day)’이란 표현부터 다루자면, 이 표현은 본절을 포함해서 성경에 총 7번 나옵니다(하나님의 완전 수 7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 구절들을 모두 가져와 본절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엮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7-39)”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 1: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1-32).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는데 선지자 엘리야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할 것이라고 하시며 돌이키지 않는다면 저주로 땅을 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말 4:5-6). 이 부분은 예수님의 초림 때 부분 성취된 말씀이지만 7년 환란 때 첫 3년 반 동안 2증인을 보내시면서 완전히 성취됩니다(계 11장). 이때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이요 남은 자 중에서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욜 2:31-32).

이날은 일곱 천사들 중 첫째 천사가 공중에서 영존하는 복음을 땅의 모든 민족에게 전하는 날이며(계 14:6-7) 둘째 천사는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합니다(계 14:8). 셋째 천사는 짐승의 표를 받지 말 것을 경고하며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성령이 이르시되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라고 합니다(계 14장:9-13). 이어지는 구절에서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구름 위에 앉은 인자 같은 이가 땅의 곡식을 거두시는데, 이 부분이 환란기 동안 주님께 돌아오고 믿음을 지킨 환란 성도들이 하늘로 거둬지는 장면입니다(계 14:14-16). 이후 다른 천사가 나와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고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져 피가 1600 스타디온에 퍼지는 장면이 바로 본절에 나오는(17절) ‘진노의 큰 날’로 넘어가는 장면입니다.

이어지는 계시록 15장과 16장은 7천사의 마지막 7대접 재앙이 나옵니다. 이때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자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됩니다. 그러자,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오는데 이들은 귀신의 영입니다. 이들이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읍니다(계 16:14). 이때 주님이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공중에 있던 주님이 땅으로 성도들과 함께 심판하러 내려오시는 부분이며(계 16:15) 세 영이 아마겟돈으로 왕들을 모아 전쟁을 준비합니다(계 16:16).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습 1:14-18)

다시 요약하면, 보리는 6째 봉인을 여시자마자 부활 및 휴거하고 밀이 익어 추수할 수 있을 때까지 환란의 시기가 있다가 그들도 거둬지고 난 후에는(계 14장:9-13; 15:1-4) 본격적인 7대접의 심판이(계 15장5-8, 16장) 땅에 쏟아집니다. 이는 가을에 추수하는 과일들만 땅에 남아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는 날이며(계 14:17-20) 바벨론이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는 날입니다(계 16:19). 이때 7째 천사가 맨 마지막 심판인 대접을 공중에 쏟자 ‘되었다’라는 말씀과 함께 ‘큰 지진’이 나는데, 그 지진은 전무후무한 ‘큰 지진’이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계 16:18). 이 지진으로 큰 성 바벨론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며 각 섬과 산도 없어진다고 나오는데(계 16:19-20) 바로 이 부분이 본절(14절 후반부)에서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겨진다고 한 부분과 연결이 됩니다.

따라서 본절의 계시록 6장 14절 후반부부터는 환란 성도들까지도 모두 땅에서 거둬지고 세상에 남게 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강한 자들’ 즉 사단과 악한 영들이 받는 심판을 다룹니다. 15절에서 이들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는 장면은 이사야서 2장 17-21절에 좀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사 2:17-21)

16절에서 이들이 산들과 바위에게 우리 위에 떨어져 하나님의 얼굴과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릴 가리라고 하는 장면은 호세아 10장 8절과 누가복음 23장에도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호 10: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눅 23:28-30)

따라서 14-17절까지 풀어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마귀와 그를 쫓는 악한 영들이 땅으로 내쫓기었기에 땅과 바다에 큰 화가 있으리니 이는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크게 분내어 내려갔기 때문이라. 그러나 엘리야가 와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리니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이요 남은 자 중에서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이라. 이들을 공중의 구름 위에 앉으신 주님이 거둬 올릴 것이요 하늘에 있는 군대들, 그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강한 백성이 백마를 타고 주님과 함께 땅에서 싸우리라. 그가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으로 그 더러운 영이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모은 만국을 치며 맹렬한 진노의 포두주 틀을 밟으리라. 이때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피해 악인들과 강한 자들은 산과 바위 밑에 숨지만 하나님이 땅을 전무후무로 진동하여 큰 성 바벨론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져 각 섬과 산도 없어지리라. 그 심판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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