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7장 원어/영어 분석

1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이 일 후에’라고 되어 있어서 6장의 일들이 순차적으로 다 일어난 후에 7장의 일들이 펼쳐지는 것 같지만 ‘후’로 번역된 ‘meta(메타)’는 ‘함께, 더불어, 후에’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신약에 총 473번 나오는데 대부분 ‘함께(with)’로 번역합니다. 6장이 6개의 인들이 열리면서 벌어진 일들을 아주 간략하게 차례대로 나열하고 있다면 7장은 특별히 6번째 인이 열리면서 일어났었던 일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창세기 1장이 6일 창조에 대한 기사를 간략하게나마 차례대로 나열한 후에 2장은 특별히 6일째 기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 글에 다뤘듯이 6번째 봉인이 열리면서 교회는(신약 교회) 7년 환란 전에 부활 내지 휴거합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구약 성도도 교회이고 예수님이 오신 이후부터 지금까지 2000년간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신약 성도도 교회이며 7년 환란기를 통과한 후 마지막으로 추수될 환란 성도도 교회입니다. 하지만 주님께 가는 때와 방식은 다 다릅니다. 예수님이 모든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며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을 때 함께 부활한(마 27:52) 구약 성도들은 성부 하나님과 혼인한 사이입니다(겔 16:8-21; 렘 3:1-14; 사 54:5-8). 신약 성도들은 성자 예수님과 혼인한 사이인데(고후 11:2; 엡5:25-27; 계 19:7)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 휴거 및 부활하여(살전 4:17) 공중 권세 잡았던 사탄과 그를 따르던 무리가 땅으로 떨어지게 됩니다(계 12:9). 이후 사단의 무리로 인한 땅에서의 환란기가 시작될 터인데(계 12:13-17), 이 과정에서 짐승에게 절하지 않고 죽기까지 충성한 환란 성도들이 마지막으로 추수됩니다(계 14:13, 16). 이후에 주님과 함께 모든 성도들이 땅을 심판할 것이며 땅을 차지하게 될 때 마귀는 땅 밑 무저갱에 갇히고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천년인 천년왕국이 펼쳐지게 됩니다(계 16장-20장).

다 같은 곡식이라도 보리는 이른 봄에 익어 추수되고 밀은 늦봄 또는 이른 여름에 추수됩니다. 또한 보리는 탈곡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지만 밀은 탈곡 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때와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탈곡을 뜻하는 헬라어 ‘tribulum’에서 ‘환란’을 뜻하는 영어 ‘tribulation’이 파생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은 홍수가 오기 전에 데려가셨고 노아는 방주를 지은 후 홍수를 통과하게 하셨던 것처럼 모두 하나님의 성도이지만 데려가시는 방식과 때는 다릅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였던 아합의 때에도 하나님은 엘리야는 불병거를 보내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옮기셨고 엘리사는 남아서 사역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의 첫열매였던(고전 15:20) 예수님은 보리 수확 때인 초실절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어린양)의 신부이자 몸인 신약 교회는 첫열매인 주님을 따른 ‘보리’로서 환란기(탈곡) 전에 휴거 및 부활합니다(고전 15:20-23). 신약 교회가 보리이고 환란 성도가 밀이란 조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이후 밀인 환란 성도들은 탈곡 과정을(환란기) 거친 후 부활하게 됩니다.  

     본절에 4천사가 4 모퉁이에서 4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계 7:3)’ 심판을 미루는 장면입니다. 성경에서 본절처럼 ‘4’가 3번 등장하는 구절을 찾아보니 성경 전체에 3번 나왔습니다(부활 및 영적 완전함을 뜻하는 3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본절과 모두 진설병 상에 대한 구절인데(출 25:26, 37:13; 본절), 진설병 상에 대한 내용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두르고그 주위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그것을 위하여 금 고리 넷을 만들어 그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되 턱 곁에 붙이라 이는 상을 멜 채를 꿸 곳이며(출 25:23-27, 37:13)”

     “그것을 위하여 금고리 4을 만들어 4 발 위 4 모퉁이에 붙이라(출 25:26)” 성경은 진실로 단 한 글자도 그냥 의미 없이 적혀 있는 책이 아님을 수도 없이 경험했었지만 요한계시록을 쓰면서 다시 한번 놀랍니다. 성경이 진설병 상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굳이 4가 3번 들어가게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소에 진설병 상을 두게 하시고 그 위에 12개의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라(출 25:30)고 명령하셨습니다. 진설병(shewbread)을 성경에서 찾으면 18번 나오는데 히브리어는 ‘לחם הפנים (Lechem(레켐) Panim(파님)), 직역하면 ‘얼굴들의 빵(bread of faces)입니다. 즉 ‘늘 하나님 앞에 있는 얼굴들’이란 의미인데 12개인 탓에 이스라엘 자손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진설병과 12지파를 직접적으로 연결 지은 구절은 없습니다. 이에 비해 제사장이 매는 흉패와 어깨에 단 보석에는 이스라엘의 12 아들들의 이름을 새겨넣으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출 28:9, 11, 12, 21,29, 30). 그리고 대제사장이 쓰는 관 앞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긴 후 관 전면, 곧 대제사장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어찌 됐거나 모세의 성막에서 성소 안에 있던 진설병 상에 대한 구절과 요한계시록 7장 1절에서 4천사가 4모퉁이의 4바람을 잡고 있는 구절이 연결됐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이어지는 4절에서 8절까지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12,000명씩 총 144,000명이 인침을 받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이니 그들은 처녀들이니라. 이들은 어린양께서 가시는 대로 따라가는 자들이며 사람들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하나님과 어린양께 첫열매가 된 자들이더라(계 14:4).”고 하는데, 하나님 앞에 있는 12개의 얼굴을 상징하는 진설병이 이들을 예표했던 것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어 성경엔 진설병에 대해, ‘고운 가루를 가져다가 떡 12개를 구우라(레 24:5)’고 되어 있어서 이 가루가 밀인지 보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히브리어로는 ‘soleth(솔레쓰)’이며 고운 밀가루(fine wheat flour)입니다. 즉 이 144,000명은 밀 수확의 첫열매로 하나님께 봉인되어지고 올려지는 이스라엘의 12지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는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3)”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에 이어 큰 환난에서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옷을 희게 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의 셀수 없는 큰 무리들도 하나님 앞에 영원히 있게 될 얼굴들(밀로만든 진설병)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12개의 진설병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자손과 직접적인 연결을 하진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밀 수확의 첫열매만 진설병으로 만들어 올리는 게 아니라, 진설병은 매주 새롭게 만들어 상에 올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일들과 함께 4 천사가 땅의 4 모퉁이에 서서 바람이 땅이나 바다나 어떤 나무에도 불지 못하도록 4 바람을 붙잡고 있는 것을 보았노라.”

2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본절에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갖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왔다’고 하는데, 이 ‘다른 천사’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어지는 3절에서 이 천사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라고 하면서 공동체적 표현을 쓰기 때문입니다. 이런 화법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쓰시는 표현입니다(창 1:26; 11:7; 요 3:11).

또한 ‘해 돋는(rising of the Sun)’이란 표현을 성경에서 찾게 되면 총 9구절 나오는데 이 구절들을 읽어 봐도,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온 천사가 주님이신 걸 알 수 있습니다(민 2:3; 수 12:1; 시 50:1, 113:3; 사 41:25; 45:6, 59:19; 말 1:11; 막 16:2). 9구절 중 본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세의 진영에서 해 돋는 쪽에 진을 친 지파는 유다였는데 예수님은 유다지파에서 나셨습니다(민 2:3).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땅을 부르셨으며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입니다(시 50:1, 113:3). 하나님은 또한 북쪽으로부터 한 사람을 일으켰은즉 그가 올 것인데, 그가 해 돋는 곳에서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통치자들을 석회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는 것 같이 그 위에 임할 것이라고 하십니다(사 41:25). 그리고 하나님이 대적들에게 격노로 갚으시고 자기 원수들에게 보복으로 갚으실 때, 그들이 서쪽에서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해 돋는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두려워하리니 적이 홍수처럼 올 때에 여호와의 영이 군기를 들어 올려 칠 것이라고 하십니다(사 59:19). 그리고 해 돋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인들 가운데서 여호와의 이름이 크게 되며 모든 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향을 드리고 정결한 헌물을 드리리니 여호와의 이름이 이교도들 가운데서 크게 될 것이라고 만군의 여호와가 말씀하셨습니다(말 1:11). 여인들은 주님을 장사지내려고 주의 첫날 매우 이른 아침 곧 해 돋는 때에 돌무덤에 갔지만 무덤은 비어있었습니다(막 16:2).

다시 본절로 돌아가, 해 돋는 데서 올라온 천사는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하는데 성경에서 4천사를 찾게 되면 계시록에서만 7장과 9장에 총 4번 등장합니다(계 7:1, 2; 9:14, 15). 9장의 내용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계 9:13-15)”

즉 이 4천사는 사람의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천사들이지만 144,000명이 봉인되기까지 심판을 미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2절을 직역하고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니 주의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으로 된 의의 인을 갖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능을 받은 4 천사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치더라.

3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

     본절에 나오는 ‘우리 하나님의 종들(servants of our God)’이란 복수의 표현은 구약 성도들과(창 50:17; 에 5:11; 단 3:26) 신약 성도들에게(행 16:17; 벧전 2:16) 모두 쓰인 표현입니다. 이 외에도 신약 성도들을 여호와의 종들(딤후 2:24) 또는 그리스도의 종들(엡 6:6),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빌 1:1)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종들’이란 표현은 특별히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에게 쓰였습니다(왕하 9:7, 10:23; 시 134:1, 135:1).

     본절에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고 하는데 ‘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계시록 5장 분석에서 자세히 다뤘으니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마’가 나오는 구절들을 성경에서 모두 찾게 되면 총 20구절에 걸쳐 23번 나옵니다. 모든 구절을 읽어보면 흥미롭게도 이마는 ‘욕되고 부정한 이마’와 ‘영광과 권능의 이마’, 둘로 나뉩니다.

     먼저 ‘욕되고 부정한 이마’는 정결법에서 나병의 발병 여부와 얽혀 나오는 이마입니다(레 13:41-43). 그리고 노년에 교만해진 웃시야는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다가 이를 만류하는 제사장들에게 화를 내는데, 이때 이마에 나병이 발생합니다(레 13:41-43; 대하 26:19-20). 하나님을 모독하던 골리앗은 다윗이 던진 돌에 이마를 맞아 죽습니다(삼상 17:49). 하나님은 행음하는 예루살렘에게 ‘…네가 창녀의 이마를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렘 3:3)’고 말씀하시는데 요한계시록에는 땅의 임금들과 더불어 음행하고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짐승을 탄 이 여자의 이마에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계 17:5)”입니다. 또한 그 짐승은 자신에게 경배하는 사람들의 오른손에나 이마에 짐승의 이름 또는 그 이름의 수인 표를 받게 하고 그 표가 없이는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합니다(계 13:16-17, 14:9, 20:4).

‘영광과 권능의 이마’에 대한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하셔서 대제사장이 쓰는 관 앞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여호와께 성결(주께 거룩)’이라고 새기게 합니다. 그리고 관 전면, 곧 대제사장인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십니다(출 28:36-38)” 하나님은 또한 선지자였던 에스겔에게 내가 네 이마를 강하게 하여 그들의 이마를 마주 대하게 했고 네 이마를 부싯돌보다 굳은 금강석 같게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집이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모습에 놀라지 말라고 하십니다(겔 3:8-9).

하나님은 폐역한 이스라엘을 바벨론으로 심판하시던 때에도 예루살렘 성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가증한 일로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들은 건들지 말라고 하시면서 심판을 성소부터 시작하셨습니다. 본절에서도 하나님은 바벨론을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셔서(본절) 무저갱에서 나오는 황충들이 해하지 못하게 하십니다(계 9:4). 후에 이 이마에 인침을 받은 144,000명은 어린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서게 되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계14:1). 이 어린양의 종들은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을 것입니다(계 22:4).

따라서 3절을 직역하고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르되 우리가 예루살렘 성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가증한 일로 탄식하며 우는 우리 하나님 종들의 이마에 거룩한 나의 이름과 내 아버지의 이름을 적을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4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이스라엘 자손(children of Israel)’이란 표현은 구약엔 600번 넘게 나오는 표현이며 신약엔 14번 나옵니다. 바울은 이사야 10장 21-23절의 예언을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롬 9:27)” 이처럼 본절에서 인침을 받는 144,000명의 이스라엘 자손은 남은 자로 구원받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환란 성도에 해당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특정 기간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게 됩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신약 교회의 예표인 에녹은 홍수 이전에 하나님께서 옮기셨지만 노아와 노아의 가족은 방주로 보호하시며 홍수의 심판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이때 지은 방주의 규격은 300 규빗, 50 규빗, 30 규빗(창 6:15)인데, 총 450,000 규빗의 공간이 됩니다. 노아의 가족과 수많은 짐승을 심판의 물에서 보호해 주고 구원해 준 이 공간은 은혜의 수 5의 5승에 144를 곱한 숫자입니다(55 X 144 = 450,000).

성경에서 ‘144(hundred forty four)’를 찾아보게 되면 총 5번 나옵니다. 신약에서는 4번 모두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며(계 7:4, 14:1, 3, 21:17), 구약에서는 사단이 일으킨 시험으로 엄청난 환란을 통과하고 승리하게 되는 욥에게 유일하게 한번 쓰입니다(욥 42:16). 욥이 환란을 겪은 후에도 140년을 더 살고 4대째까지 자손들을 보았다는 부분입니다. “After this lived Job an hundred and forty years, and saw his sons, and his sons’ sons, even four generations(욥 42:16).

신약에 나오는 ‘144(hundred forty four)’는 마지막 때에 인침을 받는 144,000명에 관한 3 구절에서 나오고 나머지 한번은 예루살렘의 성벽을 잰 수가 144 규빗이란 부분에서 나옵니다(계 21:17). 지난번 글에 적었듯이, 환란 전에 부활 및 휴거하는 성도들이 성전을 이룬다면, 환란 성도들은 예루살렘의 성벽을 이룬다는 것을 아가서 8장 8~10절을 통해 조명 받았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요한계시록 12장에 적었으니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환란 성도들을 상징하는 새 예루살렘의 성벽을 잰 수가 144 규빗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오히려 이런 조명을 확증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환란 성도들은 계시록 14장 1절과 3절에서 새 노래를 부릅니다. 이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있고 하프를 타며 새 노래를 부르는데 다윗이 지은 시편 144편에도 이와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시요 그의 종 다윗을 그 해하려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니이다(시 144:9-10)

다윗의 노래처럼 우릴 구원해 주실 주님 안에서 우린 영원히 안식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심판한 홍수로부터 정처 없이 떠돌던 노아의 방주는 7째달 17일째 되는 날 아라랏 산에 이르러 쉼을(rested) 얻습니다(창 8:4). 이 구절에서 처음 등장하는 ‘쉼을 얻다’란 히브리어 ‘nuach(누아크)’는 구약에 총 67번 나오는데, 단어의 값이 ‘144’입니다.

따라서 4절을 직역하고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과 믿음의 의로 인침을 받은 자들의 수를 들었는데, 모든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에서 구원받을 남은 자들은 144,000명이더라. 이들의 얼굴이 영원히 하나님 앞에 있으리라

5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

인침을 받는 지파들은 유다, 르우벤, 갓, 아셀, 납달리, 므낫세, 시므온, 레위, 잇사갈, 스불론, 요셉, 그리고 베냐민입니다. 원래 출애굽 이후의 12지파는 야곱의 12아들로 가지 않고 제사장 직분을 맡은 레위가 계수에서 빠지고 두몫을 받는 요셉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대치되면서 12지파로 형성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 인침을 받는 참 이스라엘 지파에는 빠졌던 레위와 요셉의 이름이 들어가고 대신 에브라임과 단의 이름이 빠집니다.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 에브라임과 단의 이름이 제외된 이유는 우상숭배의 죄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조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9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란 표현은 신약에 총 4번(세상 및 창조물을 뜻하는 4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나옵니다(계 5:9, 본절, 11:9, 14:6). 이 4가지 표현이 나오는 구절들을 읽어보면, ‘온 세상 가운데 있는 사람들 모두’를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흰 옷’으로 번역한 ‘stolé(스톨레이)’는 팔이 있는 긴 옷으로 영어로는 ‘robe’입니다. 성경엔 여러 종류의 다양한 ‘옷’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나오지만 한국어 번역엔 대부분 그냥 ‘옷’으로 뭉뚱그려 번역했습니다. 영어는 그나마 구분해서 번역한다고 했지만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지 않고 뒤섞여 번역한 부분이 꽤 있습니다. 신약에 ‘stolé(스톨레이)’가 나오는 9구절을 살펴보면, 이 옷은 제사장이나 서기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입었던 옷입니다(막 12:38; 눅 20:46).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당시 무덤 안 우편에 앉아 있던 청년이 입고 있던 ‘흰 옷’이 ‘흰 stolé(robe)’입니다(막 16:5-7). 이 옷은 또한 돌아온 탕자를 기쁘게 맞이하신 아버지가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힌’ 부분에서 나오며(눅 15:22) 복음과 그리스도의 증거(증언)로 말미암아 죽임 당한 성도들이 받습니다(계 5:11). 그리고 본절에서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큰 무리가 입고 있는 옷이 ‘흰 stolé(robe)’입니다(계 7:9, 13, 14). 또한 자기 ‘두루마기(stolé(robe))’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그들이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서 생명나무로 나아가며 문들을 통해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22:14). 킹제임스 영어 성경 전체에서 팔이 있는 긴 ‘robe’을 찾게 되면 37번 나오는데 발까지 내려오는 긴 ‘robe’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입었으며(출 28장, 29장, 39장, 대상 15:27), 왕이 입었습니다(삼상 18:4, 24:4, 11; 왕상 22:10, 30; 대하 18:9, 29; 욘 3:6). 또한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입으실 옷이며(사 22:21), 신랑과 신부가 치장하듯이 성도들이 입을 의의 옷입니다(사 61:10).

이들은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성경에서 종려나무 또는 종려 가지가 들어간 구절들을 찾게 되면 총 35번 나옵니다. 그중 본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구절들의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종려나무가 처음 등장하는 구절은 출애굽기 15장 27절입니다. 에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수르 광야에 들어가서 3일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했고 마라에 이르렀지만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자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그에게 한 나무를 보여주시고 그걸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됩니다. 이후 이들은 엘림에 이르러 쉼을 얻는데, 거기에 물 샘 12개와 종려나무 70그루가 있어 그 물 곁에 장막을 칩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장막절(초막절)에 장막(초막)을 지을 때 사용했던 가지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장막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레 23:40)”

종려나무는 솔로몬의 성전 벽과 문, 기둥, 그리고 성전뜰 10개의 물두멍 받침대에 새겨넣었으며(왕상 6:29, 32, 35, 7:36) 에스겔의 성전 벽, 문, 그리고 기둥에도 있습니다(겔 40장-41장). 종려나무는 의인을 상징하며(시 92:12; 렘 10:5) 아가서에서는 신부의 몸에 비유됐습니다(아 7:7-8). 신약에서는 ‘종려나무 가지’가 딱 두 번 나오는데, 본절과 예수님이 유월절을 앞둔 니산 10일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을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한 기록입니다.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 12:12-13)”

따라서 9-10절을 직역하고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일들과 함께 내가 보니, 보라 세상 모든 민족, 즉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의인들이 나와 왕과 제사장이 입는 의의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만왕의 왕이시여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본절에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경배하며 하나님을 7단계로 높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찬송, 영광, 지혜, 감사, 존귀, 권능, 그리고 힘입니다.

13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14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본절에 ‘큰 환난’이란 표현은 성경에 딱 3번 밖에 나오지 않는데, 3은 어떤 것의 성취를(이 경우엔 안 좋은) 의미합니다(좀 더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본절을 제외한 ‘큰 환난’이 쓰인 구절은 예수님이 마지막 때에 있을 일들과 징조를 설명해 주신 마태복음 24장과 계시록 2장에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말씀에서 나옵니다. 전체 내용을 다 가져오면 좋겠지만 너무 길 것이기에 해당 구절 외 몇 구절만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때에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날들을 감하시리라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표적과 기사를 보여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마 24:21-25)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18-23)”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있을 대환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 때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고 하셨는데, 두아디라는 거짓 선지자에게 시달리는 교회입니다.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마 24:24)’이란 말씀처럼 이세벨이란 거짓 선지자가 미혹했던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들(계 2:20)’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의 신이 숭배받고, 그리스도의 일이 아닌 세상의 일이 행해지고 있는 곳들이 꽤 있습니다. 이세벨과 같은 거짓 선자자들이 판을 치며 미혹하고 있는 이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가르침과 행위들을 따른 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마지막 때에 대환란을 통과하게 될 것임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3-14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장로 중 하나가 대답하여 내게 말하기를 이 흰 옷’stolé(robe)’ 입은 자들이 누구이며 또 어디서 온 것이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stolé(robe)’ 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본절에 ‘장막을 치시니’로 번역한 헬라어 ‘skénoó(스케누)’는 총 5번 나오는데, ‘장막 또는 성막’이란 명사 ’skéné(스케네)’에서 온 동사형입니다. 따라서 영어 성경은 ‘거하다(dwell)’로 번역했습니다(요 1:14; 계 7:15, 12:12, 13:6, 21:3). 이 ‘skénoó(스케누)’가 쓰인 5구절은 하나님의 임재를 단계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말씀이신 예수님은 육신이 되어 ‘땅’ 가운데 홀로 스케누(성막치다, 거하다)하셨습니다(요 1:14). 두 번째 단계에서는 승천하신 ‘하늘’에서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성도들 가운데 스케누(성막치다, 거하다)하십니다(본절). 이에 하늘에서 마귀는 쫓겨나고 하늘에 스케누(성막치다, 거하다)한 자들은 즐거워할 것이지만 땅과 바다에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계 12:12). 42달 동안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받은 짐승은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고 그의 이름과 그의 성막(스케네) 곧 하늘에 스케누(성막치다, 거하다)한 자들을 비방합니다(계 13:6). 이후 천년왕국이 지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때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보좌에서 다음과 같은 큰 음성이 나옵니다.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스케누(성막치다, 거하다) 하시리라.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고통도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예전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2-4)”. 즉 세 번째 단계에서 주님은 신부인 성도들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만국 백성과 스케누(성막, 거하다)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15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그의 성전에서 밤낮 그를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라

16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본절에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하는데, 성경에서 ‘주리고 목마르다’는 표현을 찾게 되면 총 9구절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일삼을 경우 그들을 주리고 목마르게 하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신 28:48). 출애굽 때 하나님은 그들의 주림을 하늘에서 내리는 빵으로 채우셨고 목마름은 반석에서 나는 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사야서 49장은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시고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방의 빛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이 예언 중에, ‘내가 감옥에 갇힌 자들에게 나오라 하며 어둠 속에 있는 자들에게 너희 자신들을 보이라 할 것이니 그들이 길에서 먹으며 그들의 초장은 높은 곳에 있을 것’이란 내용이 나옵니다(사 49:9). 또한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하며 더위와 해가 그들을 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인도하되 물이 넘치는 샘들 곁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라(사 49:10)고 하십니다. 즉 이사야 49장의 9-10절은 본절의 말씀과 짝이 되는 말씀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18절에 흥미로운 내용이 나옵니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말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사 49:18)”

이 구절에서 ‘너’로 불리는 도성은 ‘시온 성’입니다. 즉 시온 성의 자녀들이 다 함께 모여 올 것인데, 네가 반드시 장신구를 걸치듯 그들 모두를 네 몸에 걸치며 신부가 단장하듯 몸에 두르게 될 것이란 약속입니다. 이 구절이 특별히 흥미롭고 놀랍게 여겨졌던 것은 이전 글에 쓴 ‘밀에 대한 의미’에서 신부의 몸에 대한 아가서 구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네 배꼽은 포도주가 부족하지 않은 둥근 잔 같고 네 배는 백합화로 치장한 밀단을 두른 것 같구나 Thy navel is like a round goblet, which wanteth not liquor: thy belly is like an heap of wheat set about with lilies(아 7:2)”

보리와 밀의 차이란 글에서 조명했듯이 보리가 환란 전 휴거 및 부활하는 신부라면 밀은 환란기 성도 및 이스라엘을 뜻한다고 했었는데 신부의 배가 백합화로 치장한 밀단을 두른 것 같다는 표현과 이사야 49장 18절의 표현과 절묘하게 매치했기 때문입니다. 즉, 환란 성도인 밀은 신부인 보리의 자녀들이 되며 신부는 환란 성도들을 장신구처럼 몸에 두르고 단장하듯 할 것입니다. 아가서 7장 2절과 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또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셨으며 나는 생명의 빵이요,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마 5:6; 요 6:35).

하나님은 이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본절에 나오는 ‘생명수(living water: zaó hudór)’란 표현은 성경에 총 8번 나옵니다(아 4:15; 렘 2:13, 17:13, 슥 14:8, 요 4:10, 11, 7:38, 본절). 그리고 한국어로는 같은 ‘생명수’이지만 영어와 헬라어로는 표현이 약간 다른 ‘water of life(hudór tēs zóé’)’란 표현도 4번 나와서(요 4:14; 계 21:6, 22:1, 17) 총 12번입니다(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의미하는 1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아가서에서 신랑은 신부에게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라고 합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생수의 샘인 나를 버렸다고 탄식하십니다(렘 2:13, 17:13). 스가랴는 마지막 때에 있을 일들을 다루면서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앞 바다로 절반은 뒤 바다로 흐를 것이며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럴 것이라고 합니다(슥 14:8). 또한 여호와께서 온 땅을 다스리는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한 주만 계시며 그분의 이름도 하나만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슥 14:9).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생수를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라고 하셨으며 유대인들에게도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요 4:10, 11, 14, 7:38). 그리고 주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계 21:6)”고 약속하셨고 계시록 마지막 장인 22장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이 있고(계 22:1), 성령과 신부가 오라고 하면서 듣는 자, 목마른 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고 초대합니다(계 22:17).

따라서 16-17절을 직역하고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의에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이 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어떤 뜨거운 기운도 내리쬐지 아니하리라.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목자가 되고 성령의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리니 그들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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