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장 원어/영어 분석

1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본절에 나오는 ‘지팡이’는 헬라어로 ‘rhabdos(라브도스)’며, 문맥에 따라 ‘막대(rod), 지팡이(staff), 또는 훌(scepter)’로 번역합니다. 신약에 총 12번 나오는데(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는 1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막대(rod)’로 번역된 건 6번(고전 4:21; 히 9:4; 계 2:27, 본절: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막대로 번역했고 다른 성경들은 지팡이로 번역했습니다, 12:5, 19:15), ‘지팡이(staff)’로 번역된 게 4번(마 10:10; 막 6:8; 눅 9:3; 히 11:21), 그리고 ‘훌(scepter)’로 번역한 건 2번입니다(히 1:8(2)).

‘갈대’로 번역한 헬라어 ‘Kalamos(칼라모스)’도 신약에 12번 나오는데(마 11:7, 12:20, 27:29, 30, 48; 막 15:19, 36; 눅 7:24; 요3 1:13; 계 11:1, 21:15, 16), 성경 전체에서 ‘갈대(reed)’를 찾게 되면 총 44번 나옵니다. 이 44구절을 읽다 보면 의외의 정보를 얻게 되는데, 첫째, 갈대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갈대는 이스라엘(왕상 14:15), 그리고 에굽에(왕하 18:21; 사36:6; 겔 29:6) 비유됐습니다. 하나님은 특히 에굽을 ‘상한 갈대 지팡이’라고 하십니다. 즉 사람의 눈에는 철통같아 보이는 에굽이란 나라의 통치권은 하나님 앞에서는 상한 갈대 지팡이처럼 덧없고 부질없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의 조상들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그들을 강 너머로 흩으시리니 그들이 아세라 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음이니라(왕상 14:15)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왕하 18:21)”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사 36:6)”

“애굽의 모든 주민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하였느니라(겔 29:6-7)”

둘째, 줄자처럼 하나님의 성전과 유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을 재는데 사용됩니다(겔 40:3, 5(3), 6(2), 7(3), 8, 41:8, 42:16(3), 17(2), 18(2), 19(2), 20, 45:1, 48:8; 계 11:1, 21:15, 16).

“나를 데리시고 거기에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 있더니(겔 40:3)”

여기서 ‘측량하는 장대’로 번역한 단어가 ‘measuring reed’인데, 히브리어로는 ‘qaneh(콰네)’입니다. 구약에 총 62번 나오는 단어로 ‘줄기, 갈대’를 의미하며 특히 성소에 있는 금 등잔대의 7줄기에 쓰인 중요한 단어입니다(단어를 누르시면 그 단어가 등장하는 모든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측량하는 갈대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도성에 있는 성전 벽부터 성전 모든 구석구석을 재게 하십니다(겔 40장, 41장, 42장). 또한 기업으로 받을 땅에서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구별해서 재도록 하시는데(겔 45:1), 이 땅은 성소가 있을 곳이며 성소에서 수종 드는 제사장들의 집과 레위 사람들 그리고 왕이 거주할 도성입니다(겔 45장). 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은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 또는 ‘막대 같은 갈대’로 성전을 재게 하시고 예루살렘 도성을 재게 하십니다(계 11:1, 21:15, 16).

셋째, 예수님의 왕권(훌)을 조롱하는 데 쓰였습니다(마27:29, 30; 48; 마15:19, 36). 로마 병사들은 가시관을 왕관처럼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훌처럼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희롱합니다(마27:29, 30; 막15:19). 그리고 신 포도주를 해면에 적셔서 갈대에 꿰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마시게 하려 합니다(마27:48; 막15:36). 

즉 ‘지팡이 같은 갈대’란 한 나라의 통치권을 의미하며 그 성읍의 크기를 정의하는 데 쓰입니다. 따라서 요한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성전과 성전 뜰에 있는 번제단만 측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경배하고 있는 자들도 측량하는데, 신약의 교회는 성도들의 몸이기 때문입니다(고전 3:16-17).

2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는 표현은 부드럽게 의역한 것이고 헬라어 ‘ekballo(엑발로)’는, ‘내던지다, 내버리다, 퇴출하다, 제거하다, 추방하다’ 등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더러운 영을 내쫓으실 때도 쓰인 단어입니다. 즉 성전의 안마당은 번제단이 있기에 성전의 영역이지만 성전에 속하지 않는 바깥마당부터는 민족들(나라들)에게 줘서 내버렸다는 것입니다. 본절엔 ‘이방인’으로 되어 있지만 그냥 ‘민족 또는 나라를 뜻하는 ‘ethnos(에뜨노스)’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아닌 나라들은 모두 이방 나라이긴 합니다. 이들이 그 거룩한 도성을 42달 동안 짓밟을 것인데, 42달이란 표현은 성경 전체에서 두 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본절과 13장 5절에서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해 비방하며 그의 이름과 그의 성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는 구절입니다. 따라서 11장 2절과 13장 5절은 짝이 되는 구절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42달은 3년 반이란 시기인데 요한계시록엔, 3년 반의 시기가 여러 군데 나오지만 불미스러운 3년 반의 시기는 42달처럼 달수로 표시합니다(후 3년 반). 이에 비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가운데의 시기는 두 증인의 1,260일, 그리고 사내 아이를 나은 여자를 보호하시는 1,260일처럼 날수로(전 3년 반) 표시합니다. 1,260일이란 표현도 역시 두 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계 11:2, 12:6).

따라서 2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 이것은 민족들에게(나라들에게) 줬으니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3절부터 6절까지는 연결되는 구절이기에 함께 다룹니다.

3절에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라고 되어 있지만 권세는 삽입된 단어이고 원어로는 ‘내가 나의 두 증인을 주리니(dōsō)’입니다. 본절에 나오는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간 예언하는 두 증인이 과연 누굴까 성경을 상고하며 굉장히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번에 요한계시록을 쓰면서 다시 한번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묵상하고 고민해 보았지만, 결국 예전에 막연히 내렸던 것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12장에 나오는 한때, 두때, 반때와도 연결되는 ‘묵시’에 관한 것이기에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따라서 다른 타당성 있는 몇 가지 가능성도 함께 열거하겠습니다.

첫 번째 대상자들은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이들은 성경 인물 중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졌던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히 9:27)”라고 말씀하고 있기에 거기에서 예외가 됐던 에녹과 엘리야가 와서 증언하다가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후 삼일 반 만에 부활하는 게 아닐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엘리야는 특히 예언 사역을 시작하면서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는 능력을 보여줬었기에 에녹과 엘리야일 거란 추론입니다.

두 번째 대상자들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본절에 나오는 두 증인이 이들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그들이 행하는 기적이 모세(물이 피로 변하게 하고)와 엘리야(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는)가 성경에서 행했던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에게 나타나 주님의 죽으심과 예루살렘에서 성취하셔야 할 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던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대상자들은 엘리야와 요한입니다. 엘리야는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라고 예언된 선지자입니다. 물론 초림의 예수님은 세례(침례) 요한이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왔던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17). 그렇지만 초림 때 부분적으로만 성취됐던 이 예언이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엘리야가 직접 나타나 증언하는 걸로 온전히 성취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기자인 요한은 10장 11절에서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언어와 왕들 앞에서 다시 증언해야 할 것’이란 말씀을 듣습니다. 따라서 이 요한이 말씀 그대로 다시 와서 증언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예전에 했었습니다.

성경은 독특한 언어의 유희가 있는 책입니다. 예를 들면 구약의 요나는 이방 나라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욥바’에서 배를 타고 도망치는데, 신약의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욥바’에서 만나 복음을 전합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시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마 16:17)’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베드로를 ‘바요나’, 즉 ‘요나의 아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예 몇 가지만 더 들자면, 예수님을 3번 부인하고 현장을 도망쳤던 시몬 베드로와 그 현장에 우연히 있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또 다른 시몬의 기록이 3번(마 27:32; 막 15:21; 눅 23:26) 나옵니다(숫자 3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유다’는 형제들을 구원하게 될 요셉을 팔아넘기는데, 신약에선 그런 유다의 혈통인 요셉에게서 태어난 예수를 또 다른 ‘유다’가 팔아넘깁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여로보암 2세 때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데 그가 예언했던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마지막 왕인 ‘호세아’ 통치 9년째에 일어납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초림 때에는 엘리야의 영으로 온 요한이란 한 사람이 곧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했다면 재림 때에는 엘리야와 요한(사도 요한), 두 사람이 재림의 예수님에 대해 예언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요한은 한번이 아닌 두 번이나 죽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순교로 장엄한 죽음을 맞았던 11 제자들과는 달리 밧모섬에 홀로 유배됩니다. 그랬던 그가 결국 거기서 늙어 죽었더라는 얘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요한에 대해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특이한 기록을 남깁니다. 바로 그가 죽지 않을 거란 소문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어떻게 죽게 될 것인지 예언해 주신 예수님께 그럼 요한은 어찌 되는 거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가 머물 것을 내가 원할지라도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요 21:22)’고 대답하십니다. 그 바람에 제자들 사이에선 ‘그 제자는 죽지 않을 것이다’란 소문이 돕니다. 물론 이 소문에 대해 요한은 ‘죽지 않을 거라고 얘기하신 것까진 아니고 그냥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그를 살아 있게 한다고 한들 베드로야,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냐?’고 말씀하셨던 거라는 부연 설명을 합니다. 그렇지만 밧모섬에 갇혔다가 늙어 죽은 것으로 알려진 요한이 실은 죽지 않고 엘리야가 승천했던 것처럼 ‘이리 올라오라’는 소리를 듣고 하늘로 올라간 4장에서 이미 승천한 것이며, 승천했던 엘리야가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여호람에게 편지를 보냈듯이(역대하 21장), 요한도 승천한 후 7교회에게 편지를 보냈던 거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됐거나 이 두 증인은 그 당시 땅에 살고 있던 인간들이 아닌 하늘로부터 보내진 초자연적인 인물들이며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계 11:4)’입니다. 여기서 촛대는 등잔대와 같은 단어입니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요한계시록 1장 12절 분석에 적었으니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의하면 등잔대(촛대)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7등잔대(촛대)는 그 당시에 있던 일곱 교회를 상징합니다(계 1:20). 그런데 스가랴의 환상에서는 등잔대(촛대)가 하나인데 요한계시록 11장 4절에는 두 개가 나옵니다. 즉, 스가랴 때에는 구약의 교회인 이스라엘 하나였다면(행 7:38) 요한계시록에는 구약과 신약의 교회를 상징하는 두 촛대(등잔대)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두 감람나무가 기름 부음을 받은 두 사람을(슥 4:14) 의미한다면 두 촛대(등잔대)는 엘리야가 구약의 교회인 이스라엘의(행 7:38) 대표로, 요한이 신약 교회를 대표로 온 것임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마지막 때에 와서 아직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증언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계시록을 읽으면서 10장 11절의 내용 때문에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 중 한 사람은 요한일 것 같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글로 정리하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시 생각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연구 과정에서 덧붙여진 여러 생각은 오히려 엘리야와 요한이 바로 그 두 증인이란 확신에 다다르게 했습니다.

성경에서 감람나무를 찾게 되면 총 25번 나오는데, 18번은 단수이고(신 24:20, 삿 9:8, 9, 왕상 6:23, 31, 32, 33, 시 52:8, 사17:6, 24:13, 렘 11:16, 호 14:6, 학 2:19; 롬 11:17, 24) 7번은 복수입니다(신 6:11, 28:40, 대상 27:28, 암 4:9, 슥 4:3, 11, 본절). 이중 본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구절은 아무래도 스가랴서에 나옵니다. 스가랴에는 두 감람나무와 한 등잔대(촛대)의 환상이 나옵니다. 배경을 잠깐 설명하자면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멸망한 후 70년 포로기가 지나자 왕가의 후손이었던 스룹바벨이 1차 포로 귀환을 이끌게 됩니다. 이들은 고레스의 칙령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예루살렘에 돌아오지만, 대적들의 모함과 방해로 성전의 터만 놓고 18년 동안 공사가 중단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 예언의 말씀으로 이들을 책망하고 격려하시는데, 스가랴의 5번째 환상이 바로 두 감람나무와 한 등잔대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환상을 통해 스룹바벨을 격려하시며 네가 반드시 성전을 지을 것이란 약속과 이는 ‘힘도 아니요, 능도 아닌 오직 나의 영(슥 4:6)’으로 될 것이란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두 감람나무 환상의 의미를 묻는 스가랴에게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슥 4:14)”라는 답을 주시는데 그 당시에는 성전 건축을 완공할 왕가의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상징합니다. 또한 스가랴에게 주셨던 환상이 성전 건축을 완성하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이었던 것처럼, 본절에 등장하는 두 감람나무와 두 등잔대(촛대) 역시 성전 건축이 완성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성전은 성도들의 몸입니다. 11장 1절에서 보듯이, 요한은 성전과 제단만 재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경배하고 있는 사람들도 잽니다. 두 증인은 증언을 마칠 즈음에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3일 반만에 부활 승천하며, 이때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죽는 환란 성도들도 함께 부활 승천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11장 마지막 절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비로소 열리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3절에서 6절을 직역하고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한 내가 나의 두 증인을 주리니, 엘리야와 요한이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를 촉구하며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이스라엘 교회와 신약 교회의 대표라.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들의 원수를 삼켜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이처럼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갖고 하늘을 닫아 예언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갖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라.

7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두 증인이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죽입니다. 본절에 짐승으로 번역된 헬라어 ‘thérion(떼리온)’은 ‘들짐승’을 의미하며 신약에 46번 나오지만, 단 한 번도 제물에 쓰이는 정결한 짐승을 의미한 적이 없습니다(막 1:13; 행 11:6, 28:4, 5; 딛 1:12; 히 12:20; 약 3:7; 계 6:8, 11:7, 13:1, 2, 3, 4(2), 11, 12(2), 14(2), 15(3), 17, 18; 14:9, 11, 15:2, 16:2, 10, 13, 17:3, 7, 8(2), 11, 12, 13, 16, 17, 18:2, 19:19, 20, 20:4, 10).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곳에서는 7번 밖에 나오지 않으며 나머지 39번은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thérion(떼리온)’이 제일 먼저 나오는 부분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들짐승도 같이 있었다는 부분인데(막 1:13) 이 내용은 마가복음에서만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본 보자기 환상에서 부정한 짐승들을 먹으라고 하는 장면과(행 11:6), 바울의 손을 물었던 독사를 성경은 특별히 ‘짐승(thérion)’으로 표기합니다(행 28:4-5). 또한 바울은 그레데인들에 대해 항상 거짓말쟁이요 악한 짐승이요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고 합니다(딛 1:12). 요한계시록에서는 4번째 봉인이 열리는 6장에 처음 등장하는데,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은 탈색한 말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부분입니다(계 6:8). 그 후에는 모두 대환란 때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쓰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4 생물을 들짐승과 같은 ‘beast’란 단어로 번역했다는 것입니다. 이 생물들은 원어로는 ‘zóon(준)’이며 ‘생명이 있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zóon(준)’은 신약에 23번 나오는데 계시록에서만 20번 등장하며 모두 보좌 앞에 있는 4 생물에게 쓰입니다. 원어로 보다시피 ‘생명이 있는 존재’란 단어와 ‘들짐승’이란 단어는 완전히 다른 단어이며 둘 다 ‘동물’을 의미한다 해도 의미가 확연히 다릅니다. 따라서 ‘zóon(준)’이 등장하는 구절들을 다른 영어 성경은 ‘짐승(beast)’이 아닌 ‘생물(a living creatrue)로 번역했습니다.

따라서 7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증언을 다 마치게 되었을 때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이며

8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9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8절부터 10절은 연결되는 구절이기에 함께 다루겠습니다.

본절에 의하면 두 증인이 증언한 곳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 즉, 예루살렘 성이었습니다. 그 시체가 그 큰 성의 길 위에 있는데 그 성은 영적으로 소돔이요, 에굽이기도 하며 그들의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엔 무슬림 서원이 있고 예루살렘엔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이 섞여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두 증인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회개를 촉구하다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내린 여러 재앙으로 그동안 괴로움을 당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보며 기뻐서 서로에게 예물을 보냅니다. 여기서 ‘예물’로 번역한 ‘dóron(도론)’은 ‘선물 또는 예물’을 뜻하는 단어로 신약에 총 19번 나오는데, 대부분 제사 때 드리는 예물에 쓰입니다.

따라서 8절에서 10절까지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의 시체가 그 큰 도시의 길 위에 있으리니 영적으로 소돔과 에굽으로 불리는 곳이며 그들의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데라 백성들과 족속과 언어들과 민족들(나라들)이 그들의 시체를 사흘 반 동안 쳐다보며 그들의 시체를 무덤에 두지 못하게 하리로다 또한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고통을 주었으므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그들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11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1절부터 12절도 연결되는 구절이기에 함께 다룹니다.

그렇지만 삼 일 반 후에 그들이 살아나 두 발로 일어서자 지켜보던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라고 번역된 ‘생기’는 ‘pneuma(프뉴마) zōēs(조에즈)’ 즉 ‘생명의 영(spirit of life)’입니다. 이 표현은 성경에 딱 두 번 밖에 나오지 않는데 본절과 로마서 8장 2절입니다(증언 및 증인을 의미하는 숫자 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영’을 의미하는 ‘pneuma(프뉴마)’는 문맥에 따라서 사람의 영, 성령, 바람 등으로 번역되는데, 본절과 로마서 8장 2절에 나오는 ‘생명의 영’은 같은 단어입니다. 따라서 두 증인에게로 들어간 생명의 영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주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늘로부터 ‘이리로 올라오라’는 큰 음성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이에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쳐다봅니다.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은 요한이 4장에서도 들은 음성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도 두 증인과 요한을 연결 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11절에서 12절을 직역하고 그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이 그들 안으로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그들을 지켜보던 자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더라. 그리고 그들이 ‘이리로 올라오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큰 음성을 하늘로부터 들으니, 그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고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바라보더라.

13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14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13절과 14절도 연결되는 구절이기에 함께 다룹니다.

두 증인이 부활 승천할 때에도 역시 큰 지진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진’으로 번역한 ‘seismos(자이즈모스)’는 신약에 총 14번 나오는데, 모든 구절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흔드시는 영적 진동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마 8:24, 24:7, 27:54, 28:2; 막 13:8; 눅 21:11; 행 16:26; 계 6:12, 계 8:5, 본절(2), 19; 16:18(2)). 본절에 쓰인 것처럼 ‘큰 지진(a great earthquake)’이란 표현은 총 5번 나오고(마 28:2, 행 16:26; 계 6:12, 본절; 계 16:18), 복수인 ‘큰 지진들(great earthquakes)’는 누가복음 21장 11절에 한번 나옵니다.

지진은 마지막 때의 징조입니다(마 24:7; 막 13:8; 눅 21:11).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숨을 거두셨을 때와 부활하신 후에 땅이 진동하고(seió)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습니다(마 27:51-54).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는 ‘큰 지진’이 났었고(마 28:2),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옥에 갇혀 찬송할 때도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었습니다(행 16:26). 6째 인이 열렸을 때도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졌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었는데(계 6:12) 본절에서 두 증인이 삼일 반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갈 때도 ‘큰 지진’이 납니다. 그리고 7째 천사가 대접을 공중에 쏟을 때 ‘되었다’라는 말씀과 함께 ‘큰 지진’이 나는데, 그 지진은 전무후무한 ‘큰 지진’이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계 16:18). 이 지진으로 큰 성 바벨론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며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게 되는데 각 섬과 산도 없어집니다(계 16:19-20).

본절의 지진으로는 성의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으로 죽은 사람이 7000명입니다. 그런데 본절에 제대로 번역이 안된 특이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바로 ‘이름들’을 뜻하는 ‘onomata(오노마타)’입니다. 복수형인 이 단어는 신약에 총 11번 등장하는데(상과 벌, 나눔과 분리를 의미하는 11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모든 구절을 읽다 보면, 어딘가에 기록된 이름들을 뜻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onomata(오노마타)’가 처음 쓰인 구절은 예수님이 택하신 12제자들의 이름이 나열되는 부분입니다(마 10:2).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에게 천둥의 아들들이란 이름을 지어주신 부분과(막 3:17),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70 제자들에게 ‘너희의 이름들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기뻐하라(눅 10:20)’고 하신 부분, 그리고 바울이 동역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말한 부분에도(빌 4:3) 나옵니다. 이외에는 모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데, 죽은 교회인 사데 교회에서조차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이름들이’ 있어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겠다고 하신 부분과(계 3:4-5) 본절의 7000 이름입니다. 여기까지만 읽는다면 이 지진으로 죽었다는 7000명은 엘리야의 시대 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을 남겨두셨던 것처럼 환란 성도들의 이름인가란 생각마저 듭니다. 그렇지만 이 단어는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의 머리들 위에 적혀 있던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에도 쓰이며(계 13:1),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로 가득한 짐승을 탄 여자에게도 쓰입니다(계 17:3). 나머지는 새 예루살렘에 있는 12문에 기록된 12지파의 이름들(계 21:12(2))과 12 기초석에 적힌 어린양의 12사도의 이름들입니다(게 21:14). 따라서 13절에서 지진으로 죽은 7000명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기록한 이름들로 십일조처럼 대표성을 띠는 자들입니다. 마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복했던 첫 성 여리고를 진멸하라고 하셨던 이유가 첫 열매로 받으시는 것이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이들은 심판의 첫 열매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졌음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본절에서 성의 십분의 일이 무너졌다고 한 부분은 지진으로 죽은 7000명을 십일조로 취하셨다는 걸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이에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 부분은 두 증인의 부활과 특정 7000명의 죽음을 목격한 이스라엘이 뒤늦게 그들의 증언을 받아들여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켰다고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왜냐면 나머지 사람들은 네 천사가 풀려나서 사람의 삼분의 일을 죽이는 재앙을 일으킬 때에도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게 9:15-21). 따라서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며 일어나는 사건들을 시간 별로 나열한다면 11장 1-13절의 내용은 첫째 화가 나오는 9장 1-14절과 둘째 화가 시작되는 9장 15-21절 사이에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나중에 요한계시록 분석을 끝내게 되면 사건 순서 도표를 만들어 올릴 생각입니다. 이로써 둘째 화가 지나가게 되고 이제 셋째 화가 속히 이릅니다.

따라서 13절에서 14절을 직역하고 그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각에 큰 지진이 나서 그 도시의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그 지진으로 죽게 된 남자들의 이름이 칠천이니 심판의 첫 열매들이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며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더라. 둘째 화는 지나갔으며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오는도다.

15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5절에서 17절도 연결되는 구절이기에 함께 다룹니다.

이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나서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이라고 합니다. 15절의 ‘세세토록’은 ‘aiōnas(아히오나스) tōn(톤) aiōnōn(아히오논)’으로 ‘이 시공간의 시공간’ 즉 ‘세세대대(ages to ages, the ages of the ages)’란 의미입니다. 전에도 썼지만 이 시공간은 주님이 재림하셔서 천 년간 통치하시는 기간이 끝난 후에는 모두 사라지고 영원 세계로 가게 될 것입니다(계 20-22장).

16절에 24장로가 ‘엎드려’ 경배하는 부분에서 ‘엎드려’로 번역한 헬라어 ‘piptó(핍토)’는 ‘넘어지다, 떨어지다, 쓰러지다’란 뜻으로 ‘엎드려’ 보다는 좀 더 과격한 표현입니다. 즉, 본절은 24 장로들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으로 앉았던 자리에서 앞으로 쓰러져(넘어져)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배’로 번역한 헬라어 ‘proskuneó(프로스큐네오)’는 ‘경외심을 나타내다, 무릎 꿇다,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다, 경배하다’란 의미입니다.

17절에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로 번역한 부분은 헬라어로는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신 분”입니다. 영어 킹제임스에는 ‘앞으로 오실 이’란 표현도 나오지만, 다른 번역본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계시록 1장 4절과 8절, 그리고 4장 8절에도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데 ‘전능하신 이’라는 명칭과 늘 함께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에 묶이지 않으시고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시는 분이기에 전능하십니다.

‘전능하신 이’란 표현은 히브리어로 ‘שַׁדַּי(샤다이)’이고 헬라어로는 ‘pantokratór(판토크레토어)’입니다. 영어로는 주로 ‘Almighty’로 번역했는데 구약에 48번 신약에 10번 쓰여서 총 58번 나옵니다(해당 구절들을 모두 읽기 원하시는 분들은 글자를 누르면 모든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Almighty”는 창세기 17장 1절에 처음 등장하는데 99세의 노인인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약속하시며 할례의 언약을 주셨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만나 주십니다. ‘Almighty’가 등장하는 구절들을 살펴보면 축복과 번성의 약속으로 만나주실 때도 있고 심판과 진멸의 권능으로 나타나실 때도 있습니다. 욥기에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데 31번이나 나옵니다.

따라서 15절에서 17절을 직역하고 그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 소리를 내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있어 이르되, 이 세상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그분게서 세세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왕좌에 앉아 있던 스물네 장로가 앞으로 쓰러져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이르되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에게 우리가 감사를 드리니 주께서 친히 주의 큰 권능을 취하시고 통치하셨기 때문이나이다.

18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9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18절은 직역하면 “나라들(민족들)이 분노하였고 주의 진노가 이르렀으니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고 주의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작든지 크든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상(보상)을 주시며 땅을 멸하는 자들은 멸하실 때라.”입니다. 하나님은 잠언 13장 13절에서 말씀을 멸시하는 자들은 멸망하겠으나 하나님의 명령(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상(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주의 종은 하나님의 심판(판단, 판결)으로 경고받고 그것들을 지킬 때 큰 상(보상)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시 19:11).

본절에 나오는 ‘땅을 멸하는 자들’의 의미를 알아보려고 성경에서 땅을 멸한다(destroy the earth)는 표현을 찾아보니, 본절과 창세기 9장 11절, 두 곳에만 등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겠다고 언약을 세우시는 부분이란 걸 발견했을 때 계시록 12장에 나오는 홍수가 떠올랐습니다. 계시록 12장에서 용은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고 입에서 홍수를(flood) 토해냅니다. 이때 땅이 용이 내뱉은 홍수를 삼켜 여자를 돕습니다(계 12:15-16). 따라서 본절에서 ‘땅을 멸하는 자들’이란 12장에 나오는 사단과 그 무리를 향한 말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언약하신 일을 범한 것이고 이제 그와 그 추종자들을 멸할 때가 왔습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발생합니다.

     ‘번개와 우레와 음성’은 요한계시록에 총 4번 나옵니다(계 4:5, 8:5, 본절, 16:18). 여기에 ‘지진’까지 더해진 것은 (계 8:5, 본절, 16:18) 3번입니다. 그리고 ‘번개와 우레와 음성과 지진’과 더불어 우박까지 포함된 구절은 본절과 계시록 16장 18-21절, 2번입니다. ‘번개와 우레와 음성과 지진’이 의미하는 것은 계시록 4장 5절 분석8장 5절 분석에 적었으니, 링크를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우박(hail)은 하나님이 심판을 집행하실 때 등장하는 단골 무기입니다. 성경에 총 37번 나오는 우박은 하나님의 곳간에 있는 것으로 고난의 때와 전투와 전쟁의 날에 대비해서 남겨두신 것입니다(욥 38:22-24). 하나님은 어둠을 자신의 은밀한 처소로 삼으시고 구름을 천막 삼으시며 번개를 화살로 삼으시고 우박들과 숯불들은 그분의 음성입니다(시 18:11-14). 불과 우박과 눈과 수증기와 폭풍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데 쓰이며(시 148:8), 특히 우박은 에굽을 심판했을 때와 기브온을 치러 올라온 이방 왕들을 여호수아가 멸할 때 쓰였습니다(출 9-10장, 수 10:11). 우박은 심판의 때에 쏟아지는 것이며 마지막 때인 아마겟돈 전쟁 때도 쓰입니다(사 28:2, 17, 30:30, 32:19; 겔 13:11, 13, 38:22; 학 2:17). 이 중에서도 본절에 나오는 것과 같은 ‘큰 우박(great hail)’이란 표현은 성경에 총 6번 나옵니다(수 10:11; 겔 13:11, 13, 38:22; 계 11:19, 16:21).  

따라서 18절에서 19절을 직역하고 그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라들(민족들)이 분노하였고 주의 진노가 이르렀으니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고 주의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작든지 크든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상(보상)을 주시며 땅을 멸하는 사단 마귀들을 멸하실 때라.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천사들과 천상의 생물들의 소리와 부활과 전쟁에 의한 심판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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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요한계시록 11장 원어/영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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