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다 보면 자연히 숫자에 예민해지게 됩니다. 어떤 단어의 의미와 어울리는 숫자만큼 그 단어가 성경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번번이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되면서 떠오르는 단어가 있으면 성경에 몇 번 나오는지를 직접 찾아보고 숫자를 적어놓는 버릇이 생겼었습니다. 그렇게 수년 전 ‘시온(zion)’이란 단어를 성경에서 찾아보게 됐었고 성경 전체에 ‘153번’ 나온다는 걸 알고 놀라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요한 계시록 12장에 대한 내용을 쓰다가 시온에 대해 이런 비슷한 발견을 한 사람이 또 있을 것 같아 검색해 보니 152번 나온다는 내용만 있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제가 찾아본 킹제임스 영어성경에서는 153번 등장합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링크를 걸어놓으니 여길 눌러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어찌 됐거나 그 사실을 처음 발견했을 때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여겨졌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7제자들은 갈릴리(디베랴) 바다에서 밤새 물고기 잡는 데 혈안이 되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그런 제자들을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 찾아오십니다(요 21:2). 그리고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하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지경이었고 그제야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이란 걸 깨닫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그렇게 육지로 끌어올린 물고기를 세는데, 큰 물고기가 153개나 있었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즉 어떤 손실이나 놓침도 없이 온전하게 잡아 올린 것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내가 너희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막 1:17). 요한복음 21장에서 11제자가 아닌(가롯 유다는 죽고 아직 맛디아를 뽑기 전이기에) 7제자가 등장했던 것도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153마리의 ‘큰 고기’가 상징하는 것은 성령의 수인 7제자 또는 7교회를 통해 얻게 될 영적 자녀들을 상징하는 것이며 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시온(성경 전체에 153번 등장하는)’이 낳게 되는 사내아이, 즉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한 민족의 탄생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오늘은 153이란 숫자의 의미와 144에 대해서도 적으려고 합니다. 먼저 153입니다.
153이란 숫자는 각각의 숫자를 3승한 후 더해도 153이 나오는 매우 특이한 숫자입니다(13 + 53 + 33 = 153). 또한 1부터 5까지의 계승을 더한 합이며(1! + 2! + 3! + 4! + 5! = 153), 1부터 17까지의 숫자를 모두 더한 합이기도 합니다. 또한 삼각형을 만드는 숫자입니다(3, 6, 9…153). 부활 승리를 의미하는 17은 7번째 소수이기도 합니다(17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7번째 소수인 17을 1부터 17까지 다 더한 수가 153인데, 7 제자가 예수님의 명령을 쫓아 잡아 올린 물고기의 수 역시 153인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내가 너희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17).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이 되는 권세(요 1:12)”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뜻의 히브리어 ‘bə·nê(베네) hā·’ĕ·lō·hîm(하엘로힘)’은 구약에 총 7번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숫자로 환산하면 153이란 값이 나온다는 것입니다(히브리어와 헬라어는 알파벳마다 고윳값이 있어서 어느 단어든 숫자로 환산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정확히 153으로 환산되는 단어 중에는 ‘유월절(Ha Pesach)’과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Ani YHVH Elohikah)’가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 8장 17절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 즉 ‘공동 상속자(joint-heirs)’라고 나오는데, 이 ‘synklēronomoi(싱크레로노모이)’란 단어의 값은 1071, 곧 ‘153 X 7’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물(ktisis θεοῦ)’은 1224(8 X 153)로 환산되며, ‘물고기들(ἰχθύες)’이란 단어도 1224(8 X 153)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물(τὸ δίκτυον)’도 1224(8 X 153)로 환산됩니다.

다음은 144에 대한 내용입니다. 요한 계시록 7장에서는 이스라엘의 12 지파에서 12,000명씩 총 144,000명이 이마에 인침을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들은 환란 성도에 해당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특정 기간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게 됩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신약 교회의 예표인 에녹은 홍수 이전에 하나님께서 옮기셨지만 노아와 노아의 가족은 방주로 보호하시며 홍수의 심판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이때 지은 방주의 규격은 300 규빗, 50 규빗, 30 규빗(창 6:15)인데, 총 450,000 규빗의 공간이 됩니다. 노아의 가족과 수많은 짐승을 심판의 물에서 보호해 주고 구원해 준 이 공간은 은혜의 수 5의 5승에 144를 곱한 숫자입니다(55 X 144 = 450,000).
성경에서 ‘144(hundred forty four)’를 찾아보게 되면 총 5번 나옵니다. 신약에서는 4번 모두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며(계 7:4, 14:1, 3, 21:17), 구약에서는 사단이 일으킨 시험으로 엄청난 환란을 통과하고 승리하게 되는 욥에게 유일하게 한번 쓰입니다(욥 42:16). 욥이 환란을 겪은 후에도 140년을 더 살고 4대째까지 자손들을 보았다는 부분입니다. “After this lived Job an hundred and forty years, and saw his sons, and his sons’ sons, even four generations(욥 42:16).
신약에 나오는 ‘144(hundred forty four)’는 마지막 때에 인침을 받는 144,000명에 관한 3 구절에서 나오고 나머지 한번은 예루살렘의 성벽을 잰 수가 144 규빗이란 부분에서 나옵니다(계 21:17). 지난번 글에 적었듯이, 환란 전에 부활 및 휴거하는 성도들이 성전을 이룬다면, 환란 성도들은 예루살렘의 성벽을 이룬다는 것을 아가서 8장 8~10절을 통해 조명 받았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요한계시록 12장에 적었으니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환란 성도들을 상징하는 새 예루살렘의 성벽을 잰 수가 144 규빗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오히려 이런 조명을 확증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환란 성도들은 계시록 14장 1절과 3절에서 새 노래를 부릅니다. 이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있고 하프를 타며 새 노래를 부르는데 다윗이 지은 시편 144편에도 이와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시요 그의 종 다윗을 그 해하려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니이다(시 144:9-10)“
다윗의 노래처럼 우릴 구원해 주실 주님 안에서 우린 영원히 안식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심판한 홍수로부터 정처 없이 떠돌던 노아의 방주는 7째달 17일째 되는 날 아라랏 산에 이르러 쉼을(rested) 얻습니다(창 8:4). 이 구절에서 처음 등장하는 ‘쉼을 얻다’란 히브리어 ‘nuach(누아크)’는 구약에 총 67번 나오는데, 단어의 값이 ‘144’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