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1)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5)

요한복음 1장 1-5절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은 요한복음의 첫 시작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며 창세기의 첫 창조 사역에서 감춰져 있던 예수님의 존재가 바로 말씀이요 빛이었음을 조명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창세기 1장 1-5절 말씀을 요한복음 1장 1-5절 말씀에 비춰 디테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을 때 구약이 문제집이라면 신약이 답안지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수많은 미스터리한 구절들을 신약이 조명하고 있고 실제인 신약을 통해 그림자인 구약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직도 신약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유대교는 당연히 질문만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답은 이미 주어졌는데 인정하려 들지 않고, 질문들만 가득한 문제집을 읽고 또 읽으니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구약은 이미 지나간 것이기에 자세히 알 필요도 없고, 연구할 필요도 없으며, 신약만 배우고 외우면 된다는 생각도 오산입니다. 답안지의 답을 외우고 있다면 당연히 시험에서는 높은 점수를 낼 것이며 합격할 것입니다. 이처럼 신약만 붙잡아도 구원은 얻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답만 외워서 합격한 사람과, 문제를 알고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도 이해한 사람은 그 지식과 분별의 깊이에서 같을 수 없습니다.

답만 줄줄이 외운 사람들은 질문의 순서가 조금만 바뀌어도 줄줄이 틀리는 답을 적게 될 것입니다. 또한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응용도 못합니다. 이처럼 구약은 하나님이 폐하신 것이라고까지 제멋대로 떠들며 신약만 붙잡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자신들의 편협한 시각으로 성경을 왜곡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수많은 이단 병폐가 파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77%나 차지하고 있는 구약은 무시하고 23%의 신약만 탐구한다면,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우릴 충만케 하시는(엡 3:18-19)’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열쇠가 없는 자물쇠가 아무 소용이 없듯이 구약만 갖고 열쇠인 신약을 취하지 않는다면 구약은 영원히 닫혀 있을 뿐 열리지 않습니다. 바울이 얘기한 것처럼,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고후 3:14)”이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에 열쇠인 신약을 쥐고서도 열 수 있는 구약을 열지 않는다면 너무도 많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엡 3:2)”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 창세기의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1장 1-5절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천지창조의 내용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2절에 땅은 이미 있었지만,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의 물 가운데 덮여있는 상태였습니다. 2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를 운행했다고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창세기 1장 1절의 천지 창조는 혼돈과 암흑의 물 밑에 있던 땅을 재정비하고 궁창,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공간을 만드신 부분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먼저 짚고 넘어가는 이유는 성경을 무시하는 근거로 과학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적어도 수십억 년 됐다는 점을 들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천지창조의 역사를 우리가 알고 있는 24시간의 하루, 즉 7일의 역사로 생각하게 되면 현재까지 6000년의 세월밖에 흐르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땅의 나이도 6000년이 되어야 하지만, 성경을 유심히 읽어보면, 땅을 창조한 기록은 없다는 점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10절까지를 읽어보면, 땅은 이미 흑암의 물 밑에 존재하고 있었고 둘째 날에 궁창, 즉 우주공간을 만드사 물들을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시는 장면부터 펼쳐진다는 사실입니다(창 1:6-8). 그리고 셋째 날에서야 하나님은 궁창 밑에 있던 물을 한곳으로 모으시고 뭍이 드러나게 하신 후, 그 뭍을 땅이라고 부르십니다(창 1:9-10). 즉, 땅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에 땅의 나이를 천지창조 역사의 나이와 같게 봐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어찌 됐거나, 태초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 즉 비어있었으며 흑암의 깊음(물들) 밑에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십니다(창 1:2). 여기서 ‘운행하다’로 번역한 히브리어 ‘racaph(라카프)’는 구약에 딱 3번 등장하는데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품는(brood) 진동(떨림)’을 의미합니다(창 1:2; 신 32:11; 렘 23:9). 즉, 생명을 부화시키기 위한 성령 하나님의 움직임이 흑암의 깊음(물들) 위에 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3절에서 하나님은 빛을 부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 1장 1절부터 3절까지의 구절에서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의 동역을 만나게 됩니다. 1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로 “하나님”인 ‘Elohim(엘로힘)’은 항상 복수형입니다. 또한 영어로는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kjv)”인데, 성경을 지속해서 통독하던 어느 날 ‘in the beginning’이 글자 그대로, ‘비기닝 안에서(시작 안에서)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로 읽히더니,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그 시작(그 비기닝)과 그 끝이라(I am Alpha and Omega, the begining and the ending)’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계 1:8, 21:6, 22:13)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창세기 1장 1절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란 의미로 새롭게 다가오며 골로새서 1장 16절의 말씀으로까지 연결되고 이어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5-17절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이처럼 창세기 1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으며 2절은 수면 위를 운행하시던(물밑에 있는 땅을 알처럼 품은) 성령의 사역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은 말씀 안에 있던 생명의 빛으로 시작된 성자의 사역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러한 성자의 일하심을(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요한복음 1장 1-5절이 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5절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고 증거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고 지은 것이 하나도 ‘말씀’ 없이 된 것은 없었으며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고 증거합니다. 즉, 창세기 1장 3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빛이 있으라 하셔서 빛이 있었던” 것은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이 빛으로 나타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고 하셨고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라고 친히 증언하셨던 바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안에 있던 생명의 빛이 생성되자 그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요한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는 점을 조명합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어 첫째 날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가지 또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해와 달과 별은 넷째 날이 돼서야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나오는 빛과 어둠은 해와 달과 별이 주는 빛이 아닌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었던 것 뿐만 아니라 여기서 나오는 저녁과 아침의 ‘하루’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해를 기준으로 한 저녁과 아침의 하루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단 ‘저녁’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ereb(에레브)’는 ‘혼돈(caos), 무질서(disorder)’란 뜻이 있으며 ‘아침’을 의미하는 ‘boqer(보커)’는 ‘열다(open), 질서 또는 정돈하다(order)’란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저녁과 아침은 첫째 날이라’는 ‘그 혼돈과 질서는 첫째 날이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첫째 날’, ‘둘째 날’에 쓰인 ‘날’은 히브리어로 ‘Yom(욤)’인데, 항상 복수형입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문화에서는 ‘날’ 하면 하루를(Day) 의미하지만, 히브리어에는 ‘날’을 의미하는 단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첫째 날’이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첫째 날들’이란 복수형이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하루는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루’가 우리의 ‘하루’와 같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신약도 조명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베드로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라고 말하며 두 번 반복해서 증언의 형태로 하루와 천년을 비교하고 있습니다(증언 및 증인을 의미하는 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또한 모세는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시 90:4)”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밤의 한 순간”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wə·’aš·mū·rāh(워애스무라) ḇal·lā·yə·lāh(벨라얼라)”인데 ‘밤의 한 시각’이란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밤을 3등분해서 4시간씩 나눴습니다(첫 시각(First Watch), 둘째 시각(Second Watch), 셋째 시각(Third Watch)). 그런데 로마 사람들은 밤을 4등분해서 3시간씩 나눴기 때문에 신약에서는 ‘제 4 시각(the fourth watch)’도 나오는 걸 볼 수 있습니다(마 14:25).

창세기 1장의 7일 창조가 해와 달을 기준으로 한 하루가 아니라는 또 다른 증거는 창세기 2장 2-3절에 나옵니다.

창세기 2장 2-3절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세기 1장에서 창조 6일에 대한 패턴은, ‘그리고 그 저녁과 아침은 첫째 날이라(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그리고 그 저녁과 아침은 둘째 날이라(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econd day)’, ‘그리고 그 저녁과 아침은 여섯째 날이라(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ixth day)’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을 창조하신 것을 끝으로 여섯째 날이 지나고 하나님이 ‘창조 사역’에서 안식하신 제 7일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곱째 날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 저녁과 아침은 일곱째 날이라’는 마침표가 없이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던 때의 일을 재조명하며 그들이 범죄하게 된 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처음 발견했을 때 하나님의 일곱째 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 왔었습니다.

그러니까 땅의 모든 짐승들을 만드시고, 또 아담을 만드신 후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신 것을 끝으로 6일 창조의 시간은 끝나고 하나님의 안식이 시작된 제 7일의 시작점부터 지금까지 6000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6000년 역사는(그리고 앞으로 있을 천년왕국을 포함하면 7000년) 하나님의 일곱째 날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조명받았을 때 갑자기 성경에 있는 안식년과 희년의 규례(7년을 7번 센 후 49년이 되면 오는 희년(50년)), 그리고 여리고성을 7일간 하루에 한 번씩 6일을 돌다가 7일째 되던 날엔 7번 돌고 여리고성이 무너졌던 사실, 그리고 초실절에서 7주를 센 다음 날(50일)에 오는 오순절 및 요한계시록의 7봉인과 7나팔 안에 있는 7대접의 재앙으로 바벨론이 멸망한다는 사실까지 줄줄이 떠오르며 깨달음이 왔던 경험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를 보면,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바퀴씩 6일 동안 돈 후에 7일째 되는 날에는 7번을 돈 후 함성을 지르게 합니다. 이처럼 창조 7일째 되는 날이 우리 인간 역사의 시작점이며 7000년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창조 각 하루는 7000년씩이었던 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기간은 마지막 7일의 7000년으로 천년왕국까지 지나고 나면 창조 후 49,000년이 되는 셈입니다. 마치 7년의 안식년을 7번을 센 후 49년이 되면 그 다음 해에 희년(50년)을 세듯이, 하나님의 시간표는 창조 49,000년이 지나고 나면 희년(50,000년)이 되어 옛 세상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영원한 자유, 즉 희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적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시간표와 예표로 주신 것입니다. 하루가 천년같은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을 100년 살기도 힘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넷째날이 되어서야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셔서 인간에게 24시간이면 밤과 낮이 지나 ‘하루’가 된다는 미니 샘플을 주신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출 31:17)”라고 말씀하시며 그러니 너희도 엿새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은 안식일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의 하루가 우리 인간의 24시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하루를 하나님의 하루처럼 쳐서 그렇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마치 에스겔에게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일년을 하루로 쳐서 왼쪽으로 390일(실제로는 390년), 오른쪽으로 40일(실제로는 40년) 담당하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100년도 못사는 에스겔이 수백년간 지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담당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은 1년을 하루로 쳐서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희년도 마찬가지입니다. 100년도 못사는 인간에게 50년에 한 번 오는 희년은 일생에 한 번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입니다. 7년마다 오는 안식년을 7번을 세어 49년이 되는 해의 안식년(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49,000년이 되는 천년왕국) 다음해에는 희년을 세게 하셔서 모든 종들이 풀려나고 땅을 되찾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규례를 주신 것은 바로 창조 7000년의 7일이 지나 49000년이 지난 50,000년에 올 영원한 희년을 예표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창조 일곱째의 날에도 “저녁과 아침이 되어” 새창조, 거듭남, 새로운 시작의 영원한 팔일째의 아침을 맞이하기를 소망하며 마음 속에 그려봅니다(새로운 시작, 새 창조를 뜻하는 8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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