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론 시내를 건넌 다윗과 예수님

God of Numbers:40이란 숫자의 의미’에 쓴 것처럼, 성경에서 특정 숫자를 검색한 후 모든 해당 구절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경이 정의하는 숫자의 의미를 알게 되고 큰 유익을 얻습니다. 그렇듯이, 특정 장소나 지명이 나오는 구절도 성경에서 모두 찾아 읽어보면 말할 수 없이 유익하고 은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 들었던 교회 설교에서, 이방 나라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욥바에서 배를 타고 도망친 요나와 이방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욥바로 찾아오자 이방인을 배타하는 유대인이었지만 성령께 순종해서 복음을 전한 베드로가 비교됐었습니다. 그때도 다시 한번 실존 인물들과 지명을 끼고 일어나는 성경의 언어유희에 감탄했었습니다. 왜냐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마 16:17)’라고 하시며 베드로를 ‘요나의 아들(바요나)’로 부르셨던 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 몇 가지만 더 들자면, 예수님을 3번 부인하고 현장을 도망쳤던 시몬 베드로와 그 현장에 우연히 있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또 다른 시몬의 기록이 3번(마 27:32; 막 15:21; 눅 23:26) 나옵니다(숫자 3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구약에서 유다는 형제들을 구원하게 될 요셉을 팔아넘기는데, 신약에선 그런 유다의 혈통인 요셉에게서 태어난 온 인류를 구원할 예수를 또 다른 유다가 팔아넘깁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여로보암 2세 때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가장 위대한 예언자인데 그가 예언했던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마지막 왕인 호세아 통치 9년째에 일어납니다.

이처럼 성경을 읽다 알게 된 흥미로운 ‘word play’는 기회 될 때마다 조금씩 더 쓰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성경에서 찾아본 지명 중 ‘기드론(Kidron)’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배신당하시던 밤의 기록은 모든 4복음서에 비교적 상세히 나오고, 특히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눅 22:44) 간절히 기도하신 장면은 너무도 유명합니다(숫자 4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겟세마네(마 26:36, 막 14:32) 혹은 감람산(눅 22:39)으로만 적혀 있는 3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엔,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요 18:1)’라고 되어 있습니다. 굳이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셨다고 명시한 점이 흥미로워서 성경에서 기드론을 모두 찾아봤었습니다. 그랬더니 신약에서는 요한복음에서 유일하게 한번, 구약에서는 10번 나와서 총 11번 나왔습니다. 이렇게 기드론이란 지명이 들어간 성경의 11구절들을 모두 찬찬히 읽어보다 알게 된 놀라운 사실과 은혜를 나눕니다(나눔과 심판을 의미하는 11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기드론이 성경에 제일 처음 나오는 곳은 삼하 15장 23절입니다. 다윗이 마귀(적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압살롬의 역모로 도망칠 때 기드론 시내를 건너 광야 길로 나갔다는 부분입니다.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삼하 15:23)’. 그렇게 기드론 시내를 건넌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삼하 15:30)’라고 나오는데, 예수님도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이 위치한 감람산으로 올라가실 때 이처럼 고민하고 놀라시고 슬퍼하시며 나아가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마 26:37-38)’,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막 14:32-33)’,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눅 22:39-41)’.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압살롬에게 쫓겨가던 다윗도 예수님처럼 거기서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 15:31).’ 여기서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다윗이 기도한 대상인 아히도벨은 후에 목매달아 자살하는데(삼하 17:23) 바로 그 장소에서 주님을 키스로 배반해 넘겼던 유다도 목매달아 자살한다는(마 27:5) 것입니다. 다윗은 그 당시의 일을 시편 41편에 쓰는데 특히 아히도벨을 염두에 둔 ‘내가 신뢰하여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41:9)’라는 구절을 주님은 가룟 유다에게 인용하시며, 이는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요 13:18)’,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마 26:21-23)’,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마 26:50).’ 배신당해 넘기 우시던 밤에 주님은 가룟 유다를 ‘친구여’라고 부르십니다. 왜 갑자기 그렇게 부르시는 건지, 상황에도 안 맞는 것 같아 궁금했었는데,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란 시편 말씀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상이 요한복음에만 명시된 기드론 시내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찾아가다 성경에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드론에 대한 나머지 구절은 ‘다음 글‘에 적겠습니다.

Published by tnb4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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