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Numbers: 50이란 숫자의 의미

오늘은 은혜의 수 ‘5’에 이어서 은혜의 완전 수 ‘50’이 갖는 성령의 법에 대해 적으려고 합니다. 그전에 지난번 글에 대해 들어온 코멘트를 잠깐 소개하자면, 숫자 ‘5’가 죽음의 수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5’를 그렇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이유는 성경에 ‘다섯 번째 갈비뼈 밑을 맞고 죽었다’란 표현이 네 군데 나오기 때문입니다(삼하 2:23, 삼하 3:27, 삼하 4:6, 삼하 20:10). 모두 전쟁이나 다툼 중에 죽은 것으로 아사헬이 에브넬의 창끝에 맞아 죽으면서, 에브넬이 아사헬에 대한 복수로 요압에게 찔려 죽으면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바아나와 레갑에게 암살당하면서, 아마사가 요압에게 살해되면서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이 ‘다섯 번째 갈비뼈’로 번역한 히브리 원어 ‘hahomes’는 킹제임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배’로 번역됩니다. 대부분의 주석은 킹제임스가 ‘다섯 번째 갈비뼈’로 번역한 이 히브리 단어는 실질적인 히브리 단어 ‘5’와 관련이 없다고까지 합니다. 히브리/영어 사전인 ‘스트롱 사전’도 ‘hahomes’를 ‘chomesh’란 어원과 연결해 ‘배’로 번역합니다.

하지만 이 ‘chomesh’란 어원에 대해 읽어보면 더 쓰이지 않는 단어라고 하며 오직 위 4구절에만 쓰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성경의 다른 모든 구절에서 인간의 ‘배’를 뜻하는 히브리 어원은 ‘chomesh’가 아닌 ‘beten’입니다. 이 점이 이상해서 ‘5’를 뜻하는 히브리 원어를 찾아보자 의문이 금방 풀렸습니다. 5의 어원은 ‘chamesh’인데 ‘지금은 쓰이지 않는 배의 어원’이라는 ‘chomesh’와 모음 한 자 빼고 같습니다. 어차피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습니다. 읽는 사람이 문맥에 따라 맞다고 생각되는 모음을 넣어 이해해야 하는 언어이기에 ‘ch-m-sh’와 같은 자음들 사이에 어떤 모음을 넣느냐에  따라 다른 단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5(chamesh)’가 쓰인 구절들을 찾아보면 ‘hames’란 파생어로 표기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킹제임스가 성경이 4번 밖에 나오지 않는 ‘hahomes’를 ‘다섯-hames’과 연관 지어 번역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어찌 되었든 ‘다섯 번째 갈비뼈’ 밑은 결국 배나 옆구리 쪽을 찔렸다는 것이긴 합니다.

‘다섯 번째 갈비뼈’란 번역이 더 납득이 가지만 ‘5’란 숫자가 죽음보다는 은혜를 뜻한다는 것엔 변함이 없습니다. 마치 성경에서 ‘7’이란 수가 하나님의 완전수, 성령의 수, 교회의 수 등으로 대부분 등장하지만 ‘7 악령’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막달라 마리아에게서 몰아낸 7 귀신, 사람에게서 나갔던 악령이 자기보다 더 악한 7 악령을 데려와 그 사람의 형편이 더욱 나빠졌다는 예수님의 비유 내용 등등). 그렇다고 ‘7’이란 수를 마귀의 수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하나님의 완전수 7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5’란 수 역시 성경 전체를 훑어보면 은혜의 수요, 언약과 예배의 수란 걸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의 언약을 아브라함과 맺으실 때도 5가지의 짐승(암소, 암염소, 숫양, 산비둘기, 집비둘기)을 가져오게 하십니다(창 15:9). 이처럼 그 수에 대한 바로 된 의미를 알 때 성경에 4번 등장하는 ‘다섯 번째 갈비뼈 밑을 맞아 죽었다’란 의미가 도리어 확연해집니다(세상 및 창조물을 의미하는 4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갈비뼈는 몸의 장기를 보호하기 위한 갑옷이나 방패 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 밑을 맞아 죽었다는 것은 갈비뼈를 비껴가 급소를(장기) 찔렸다는 것입니다. 즉 은혜를 빗나가게 되면 죽는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에게 임한 것이 은혜입니다. 열 처녀 중 다섯은 성령의 은혜로 결혼식에 참석해 영생을 얻었고 다섯은 그렇지 못했습니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영적 의미와 조명은 여길 눌러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10은 어떤 것의 ‘fullness’를 의미하는 완전수입니다(충만을 의미하는 10은 여길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은혜의 수 ‘5’를 곱하게 되면 온전한 은혜, 즉 속량 및 자유를 상징하는 50이 됩니다. 성령은 주님이 부활하신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에 은혜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7년마다 오는 안식년이 7번 지난 다음 해인 50년째는 희년으로, 모든 빚이 탕감되고 포로된 자가 풀려나며 뺏겼던 땅을 되찾게 되는 구원과 자유와 회복의 해입니다. 이에 대한 좋은 예는 에스더 여왕 때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하만이 50 큐빗 교수대에 달려 죽는 장면입니다.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하만은 모르드게를 거기에 매달고 이스라엘을 말살시키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크신 구원으로 이스라엘은 오히려 원수를 갚고 하만과 10 아들은 죽습니다(에 5:14; 7:9).

성경 전체에서 ‘등불’을 찾게 되면 정확히 50번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등불에 대한 좀더 자세한 해석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4장 5절에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 4:5)”고 나오는데 이 ‘켜진 등불’ 즉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령의 법’을 뜻하는 단어가 전체 성경에 50번 등장한다는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과 복된 상태’, 즉 ‘복’을 뜻하는 ‘makarios(마카리오스)’란 단어도 신약에 정확히 50번 나온다는 걸 발견하기도 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이 부분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노아의 방주는 길이가 300큐빗, 넓이가 50큐빗, 높이가 30큐빗이었습니다(창 6:15).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은혜를 구할 때 ‘50명’의 의인부터 시작합니다. 그다음엔 거기서 ‘5’명이 부족한 ‘45’명이래도 멸하시겠냐고 한 후, 40, 30, 20, 10까지 내려갑니다. 그렇게 단 10명의 의인이라도 발견된다면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데 이 경우엔 은혜를 입을 의인의 완전수가 됩니다(창 18장).

이전 글에서도 적었듯이 모세의 성막 뜰은 길이 100큐빗에 넓이 50큐빗입니다. 50과 50의 배수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성막 휘장을 걸 50개의 고리(loops)와 50개의 갈고리(taches)가 나옵니다(출 36:17-18). 이것은 에스겔의 성전에서도 발견되는 진리인데, 에스겔 40장, 42장, 45장을 보게 되면 5와 50의 배수가 성전과 성소의 치수로 곳곳에서 발견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의 값으로 하나님께 서원하여 드릴 때 가장 높은 액수로 책정된 것이 50세겔이었는데, 성인 남성의 20-60살까지 여기 해당합니다(레 27:3). 어떤 사람이 자기 기업인 밭의 얼마를 성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 할 때도 보리 한 호멜지기를 은 50 세겔로 계산하라고 나옵니다(레 27:16). 레위인들의 직무는 평생이지만 성막에서의 시무는 30세에서 50세까지였습니다(민 4장). 아합왕 때 이사벨은 주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게 되는데 이때 오바댜는 100명의 선지자를 숨겨주고 먹일 때 50명씩(by fifty) 숨겨줬습니다(왕상 18). 누가복음 7장 41-42절에서 예수님은 500데나리온의 빚을 탕감받은 자와 50데나리온의 빚을 탕감받은 자 중 누가 더 탕감해준 사람을 사랑하겠느냐란 질문을 하십니다.

이상 50에 대해 다뤘습니다.

Published by tnb4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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