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이란 수는 어떤 것의 ‘fullness(충만, 완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담고 있는 창세기 1장엔 ‘God said’란 문구가 10번 나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God said:하나님이 말씀하시다’란 문구가 창조 사역 개요를 담고 있는 1장에 10번 나온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마치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란 구절이 히브리어 7단어, 영어 10단어로 구성된 것처럼 말입니다. 7이 하나님, 특히 영의 완전수라면 10은 충만함을 의미하는 숫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이 쓰인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모두 각각의 알파벳에 고유의 수가 정해져 있어 숫자로도 환산될 수 있는 언어입니다. 이처럼 말씀과 숫자를 공부하다 보면, 성경은 결코 사람이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란 게 확연해집니다.
‘10’에 대한 이런 개념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 곳곳에서도 보이는 진리입니다. 사람은 각 손과 발에 5개의 손(발)가락이 있고 두 손(발)에 10개의 손(발)가락으로 완전합니다. 숫자는 0-10까지 한 세트를 이루고 10이 되었을 때 다시 1부터 돌아가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끝(충만함)이 이르고 심판이 이르렀던 노아는 아담의 10대손입니다. 이집트에 내려진 10개의 재앙이 심판의 충만함을 나타낸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5계명씩 두 판에 나뉘어 십계명으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성소도 10개의 휘장, 10개의 기둥, 10개의 받침(sockets)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출 26, 27장). 민수기 14장 22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나를 10번이나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10은 시험, 불순종, 반역의 충만함으로 쓰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성경 전체에서 유월절을 지킨 기록은 꽉 찬 ‘10’번 나옵니다. 수천 년간 수십 명의 사람이 쓴 성경이 성령의 감동에 의한 하나님이 쓰신 것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유월절 절기를 지킨 내용이 나오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애굽 할 때(출 12장), 광야에서(민 9장), 가나안 땅에 입성해서(수 5장), 히스기야 때(대하 30장), 요시아 때(대하 35장),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 여러 방해와 어려움 끝에 성전 짓기를 마쳤을 때(스 6장), 예수님이 12살이셨을 때(눅 2장), 4복음서에 기록된 3번의 다른 유월절에 대한 기록(요 2장, 요 6장, 마 26장). 온 세상 죄를 짊어지고 속죄하신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유월절을 ‘온전히’ 성취하시고 마치셨음을 드러내는 놀라운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니산월 14일이 되는 유월절에 쓰일 어린양을 취하는 날은 그달 10일째 되는 날입니다(출12:3).
여기서 예리한 분들은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도 베드로와 바울에 연관돼서 유월절 절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하실 것 같습니다. 성경을 찾아보면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려고 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오순절’로 되어 있고 베드로가 감옥에 갇힐 때는 ‘무교절’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에서 과하게 떡과 잔을 나누어 핀잔을 줄 땐 ‘성만찬:communion’이란 단어를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특별히 ‘유월절’을 지켰다고 나온 기록은 4복음서를 마지막으로 성경 전체에 10번으로 끝납니다.
이처럼 왕국에 대한 것도-그것이 하나님의 왕국이든 세상의 왕국이든-그 온전함(충만함)을 나타내는데 10이란 수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창조원리이기에 세상에서도 모든 나라와 민족을 뜻할 때 ‘열국’, ‘열방’으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통치하게 될 왕국은 다니엘서에 10개의 발가락과(단 2장) 10개의 뿔로 표현되는데(단 7장) 요한계시록에서도 7개의 머리를 가진 짐승(용)의 뿔 10개로 표현됩니다(계 12, 13, 17장).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하나님의 왕국에 관해 설명하시는데 총 10개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십니다(마 13, 22, 25장).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려고 신랑 오기를 기다리던 처녀들에 대한 비유에서도 비록 5명만 들어갔다 해도 10명의 처녀가 나옵니다. 누가복음에서 잃어버린 은 1개를 찾는 여자의 10드라크마나 왕위를 받기 위해 먼 나라로 떠난 귀인이 10명의 종에게 나눠주는 은 10 므나에 대한 비유도(눅15, 19장) 마찬가지 개념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10가지 종류의 불의한 자들이 나옵니다. 음행하는 자, 우상숭배 하는 자, 간음하는 자, 탐색하는 자, 남색 하는 자, 도적,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입니다. 이 경우엔 불의의 충만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로마서 8장 38-39절엔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릴 끊을 수 없는 10가지의 권세나 능력이 등장합니다. 사망, 생명, 천사, 권세자들, 현재 일, 장래 일, 능력, 높음, 깊음, 다른 어떤 피조물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열거된 10개의 권세가 도리어 그 어떤 것도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 사랑의 충만함과 완전함을 드러내는 장치로 쓰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상 ‘fullness(충만, 완전)’을 나타내는 10에 대해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