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에 쓴 것처럼 사람의 먹거리는 아담이 범죄한 후에, 노아의 홍수 후에, 모세의 율법 후에, 그리고 예수님 승천 이후로 4번에 걸친 변화를 겪어 지금은 다시 노아의 때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다 먹을 수 있습니다. 단 피째 먹는 것은 금하셨는데 그 이유는 피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먹을 것이 될 것이요, 푸른 채소와 같이 내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었노라. 그러나 너희는 고기를 그것의 생명과 함께 곧 그것의 피와 함께 먹지 말지니라(창 9:3-4).”
또한 피는 특별히 속죄를 위한 용도로 주신 것이었기에 먹는 걸 금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집 사람이나 너희 가운데 머무는 타국인 중에 누구든지 어떤 피를 먹으면 내가 피를 먹는 그 혼을 대적하여 내 얼굴을 들고 그를 그의 백성 가운데서 끊으리니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니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 뿌려 너희 혼을 위해 속죄하게 하였나니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하느니라(레17:10-11)”
그런데 신약에 와서 철저한 율법주의였던 유대인들에게 내 피를 마시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얼마나 불경스럽고 기괴했을지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내 살은 참으로 양식이요 내 피는 참으로 음료이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느니라(요 6:53-56).”
육체의 생명이 있는 피는 혼을 속죄하기에 먹으면 안 됐었는데 주님의 피는 바로 그 이유로 먹어야 합니다. 주님의 피에는 생명이 있고 주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영원히 속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이런 충격적인 발언은 실족 거리가 되어 많은 ‘제자들’을 떠나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이 그것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스스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이 너희를 실족하게 하느냐?…그때부터 그분의 제자들 중의 많은 사람이 돌아가고 다시는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 6:61, 66).” 배불리 먹고 병 고침 받으려고 따라다닌 군중들도 아니고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 받던 많은 제자들이 실족해서 떠나게 된 구절은 흥미롭게도 요 6:66입니다(6이 갖는 의미는 ‘여길‘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범한 죄를 속죄받기 위해 맺게 된 피의 언약은 구약에선 정결한 짐승의 피로, 신약에선 흠 없는 하나님의 완전한 피로 속량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헌신을 의미하는 3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성경엔 ‘피 언약’이 과연 몇 구절이나 나올까 궁금해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영어 킹제임스로 ‘피 언약’을 찾게 되면 ‘Blood covenant(6번-출 24:8; 겔 44:7; 슥 9:11; 히 10:29, 12:24, 13:20)’와 ‘Blood testament(6번-마 26:28, 막 14:24, 눅 22:20, 고전 11:25, 히 9:18, 9:20)’로 나뉘어 나옵니다. 하지만 신약에 ‘covenant’나 ‘testament’로 번역된 헬라어는 모두 언약 혹은 유언/증언을 뜻하는 ‘디아데케(diathéké, διαθήκη)’입니다. 언약은 언약인데, 죽음을 근거로 하는 언약, 즉 유언이자 증언을 뜻하기도 하는 총괄적인 단어가 한국어에는 없습니다. 그 이유로 흠정역은 ‘상속 언약’이란 표현을 만들었습니다. 언약은 언약이되 죽음을 전제로 한 언약이란 의미를 포함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디아데케는 신약에서만 33번나오는 단어로 구약의 언약(covenant)을 일컬을 때도 쓰이고 신약의 언약(testament)을 일컬을 때도 쓰입니다(디아데케가 쓰인 구절들:마 26:28; 막14:24; 눅 1:72, 22:20; 행 3:25, 7:8; 롬 9:4, 11:27; 고전 11:25; 고후 3:6, 3:14; 갈 3:15, 3:17, 4:24; 엡 2:12; 히 7:22, 8:6, 8:8, 8:9(2번), 8:10, 9:4, 9:15(2번)). 그렇기에 ‘피 언약’은 성경 전체에 총 12구절 나오는 것이 됩니다. 12는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뜻하는 숫자이며(1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숫자 33은 ‘언약 또는 약속’을 뜻합니다(33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언약을 뜻하는 헬라어 ‘디아데케(diathéké, διαθήκη)’가 도로 언약(약속)의 뜻을 갖고 있는 ’33’번 성경에 등장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성경의 어떤 단어에 의문이 생기거나 성경이 정의하는 참뜻을 알고 싶을 때 그 단어가 들어간 모든 구절을 뽑아 읽는 작업을 자주 합니다. 그럴 때마다 함께 알게 되는 구절의 ‘숫자’는 성경이 얼마나 정교하며 한 치 오차도 없이 정확한지 매번 놀라움을 줍니다. 어쩌면 피로 맺은 언약에 대한 내용이 성경에 총 12(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번 나온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피로 죄와 세상권세를 이기셨고 부활하심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얻으셨습니다(골 2:15; 히 2:14; 마 28:18). 그렇기에 예수님의 승천은 속죄 사역의 완성이며 통치 사역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과 통치의 완성은 주들의 주요 왕들의 왕으로서의 ‘다시 오심’, 즉 영원한 통치자로서의 재림입니다.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계 1:5) 이들이 어린 양과 전쟁을 하려니와 어린 양께서 그들을 이기시리니 그분은 주들의 주시요 왕들의 왕이시며 또 그분과 함께 있는 자들은 부르심을 받고 선정된 신실한 자들이니라, 하더라(계 17:14). 그분께는 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 왕들의 왕, 주들의 주라고 기록된 한 이름이 있느니라(계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