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물(offering), 제물(oblation), 희생 제물(sacrifice)의 차이

지난번 글에 쓴 것처럼 영어 성경의 ‘stranger(거류민)’, ‘sojourner(나그네)’, ‘pilgrim(순례자)’은 독특한 의미가 있음에도 한국어 성경은 대부분 ‘나그네’로 혼용해서 번역합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offering(헌물)’, ‘oblation(제물)’, 그리고 ‘sacrifice(희생 제물)’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이 세 가지 의미에 해당하는 독특한 원어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한국어 성경뿐만 아니라 영어 성경도 혼용해서 번역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영어 성경이나 한국어 성경에 ‘제물’, ‘제사’, ‘헌물’, ‘예물’, ‘봉헌’, ‘희생물’등 ‘상호교환’ 되어 번역된 히브리 원어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minchah(מִנְחָה)” – ‘민카’는 영어 성경의 ‘offering’과 한국어 성경에 ‘헌물’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선물, 헌물, 공물이란 폭넓은 의미로 쓰이고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Minchah’가 처음 쓰인 곳은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헌물을 갖고 나오는 장면입니다(창 4:3-5). 사람과 사람 사이에 쓰인 첫 경우는 에서에게 야곱이 화해의 의미로 선물들을 보내는 장면이며(창 32:13-33:10), 공물의 의미로 쓰인 첫 경우는 에후가 모압 왕에게 공물을 바치는 척하며 암살하는 장면입니다(삿 3:15). 이런 경우들을 제외하고 ‘minchah(민카)’는 여호와께 드리는 헌물을 뜻하며 그중에서도 특별히 곡식 헌물(소제)를 지칭합니다. 소제를 뜻하는 민카가 주께 드리는 ‘헌물’의 폭넓은 의미로 대치되기도 하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이든 누구든 자원해서 화목제와(화평 헌물) 감사 헌물로 하나님께 ‘민카(소제)’를 드릴 수 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그도 아니면 마치 ‘밥’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분명 ‘밥’은 곡식을 의미하고 ‘반찬’은 또 반찬대로 의미하는 것이 분명해서 따로 불릴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밥’이란 의미 안에 ‘반찬’까지 포함 될 때가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qorban(קָרְבָּן)” – ‘코르반’은 특별히 하나님의 제단(altar) 앞으로 가져 나오는 헌물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제단(altar)이 처음 쓰인 사람은 노아입니다. 홍수 후 새 세상으로 나온 노아는 주께 첫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과 날짐승 중에서 취해 번제물을 드렸습니다(창 8:20). ‘qorban’은 특별히 제사 때(레위기의 5대 제사: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제물의 한 부분 혹은 전체를 번제단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에 영어 성경의 ‘oblation’과 한국어 성경의 ‘제물’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qorban’을 영어로는 ‘offering’, 한국어로는 그냥 총괄적인 의미의 ‘헌물’로 많이 번역했습니다. ‘qorban’은 위에 나오는 Minchah 일수도 있고 밑에 나오는 Zebach 일수도 있습니다(레 1-5장).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법이 상세히 나오는 레위기에(40번) 처음 등장해서 민수기(38번), 느헤미야(2번), 그리고 에스겔(2번)에 나옵니다. 이 중 느헤미야에(느 10:34, 13:31) 나오는 구절들을 보면 제단에 쓸 나무도 ‘qorban(코르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주님은 “너희들은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부모에게 ‘저로 인해 당신께 유익이 될만한 게 무엇이 됐든 그건 코르반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책임 면제가 된다면서 더는 그 부모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막 7:11-12 직역)”고 바리새인들과 율법 학자들을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qorban(코르반)’이 특히 제사(예배)로 하나님의 제단 앞에 가져오는 제물이란 걸 생각할 때 이 구절은 마 5장 23-24절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네가 네 헌물을 제단으로 가져오다가 거기서 네 형제가 너와 불목하는 일이 있음을 기억하거든 네 헌물을 제단 앞에 두고 네 길로 가서 먼저 네 형제와 화해하고 그 뒤에 와서 네 헌물을 드리라(마 5:23-24 직역).” 하나님은 우리가 형제들과 불목하고 부모를 외면하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제물 올리는 걸 전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야를 통해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사악한 결박들을 풀어주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며 학대당한 자를 놓아주고 멍에를 꺾는 일이며 주린 자들에게 네 양식을 나눠주고 가난한 자들을 네 집에 들이며 벌거벗은 자를 입히고 네 살붙이를 피해 숨지 않는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사 58:6-7). 이처럼 주님은 하나님을 핑계로 혈육에게 할 도리를 하지 않는 사람과 형식적인 예배 형식만 중시해서 위선을 부추긴 바리새인과 율법 학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zabach/zebach(זֶבַח)” – ‘자바흐(동사)/지바흐(명사)’는 헌물 중에서도 특별히 가축의 피와 죽음이 따르는 ‘희생 제물’을 뜻합니다. 모든 ‘희생 제물’은 헌물이요 제물이지만 모든 헌물이나 제물이 ‘희생 제물’은 아닙니다. 헌물과 희생 제물에 대한 재밌는 비유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닭이랑 돼지랑 길을 가다가, ‘아침으로 계란이랑 햄을 서브합니다. 모든 수입은 기부합니다’란 팻말을 보게 됩니다. 그러자 닭이 “우리도 뭔가 도와야 할 것 같지 않소?”라고 돼지에게 묻자, 돼지는 “당신에겐 헌물이지만 나에겐 희생 제물이요”라고 합니다. 이처럼 ‘zabach/zebach’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 중 나의 모든 것, 즉 생명을 드리는 가장 큰 희생을 동반합니다. 한국어 성경엔 ‘zabach/zebach’도 다른 단어들과 혼동되게 번역됐지만 그나마 영어 성경은 ‘zabach/zebach’만큼은 ‘sacrifice/s’로 비교적 일관성 있게 번역했습니다.

‘zebach(sacrifice)’는 레위기 1-2장엔 나오지 않다가 화평 헌물을 다루는 3장에 이르러서야 나옵니다. “만일 그의 제물이(oblation) 화평 헌물의(peace offering) 희생 제물(sacrifice)이거든, 만일 그가 소 떼에서 드리는 것이면, 수컷이든 암컷이든 흠 없는 것으로 주 앞에 드릴 것이니(레 3:1 직역).” 레위기 3장 1절은 offering(헌물), oblation(제물), sacrifice(희생 제물)가 모두 쓰인 구절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3 단어가 갖는 미묘한 차이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레위기 3장은 화평 헌물의 흠 없는 희생 제물을 소 떼나(레 3:1), 양과 염소떼(레 3:6, 12)에서 드리는 방법을 나열하는데 이는 ‘우리의 화평이신’ 주님을(엡 2:14) 떠올리게 합니다. 주님은 우릴 사랑하사 우릴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헌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엡 5: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닌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점 없는 그리스도의 피로 단 한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릴 영원히 속량하셨습니다(히 9:12-14). 십자가로 그 원수 되게 하는 것을 죽이사 친히 하나님과 화해하게 해주셨기에(엡 2:16)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길(service) 수 있게 됐습니다(히 9:14).

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우리는 ‘service(섬김)’라고도 하며 ‘worship(경배)’이라고도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의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 한 살아 있는 희생 제물로(sacrifice) 드리는 것, 이것이 합당한 섬김(service), 즉 예배입니다(롬 12:1). 이것만 해도 예배에 임하는 나의 마음과 삶을 돌아보게 되는데 최근엔 ‘worship’이란 단어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려고 모리아 산으로 향하던 아브라함에게 처음 쓰였음을 발견하고 가슴이 먹먹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청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무르라. 나와 아이는 저기에 가서 worship하고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는(창 22:5).”

아브라함 이전에도 성경엔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헌물을 드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찾은 기록이 나옵니다. 하지만 ‘worship’은 아브라함이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며 믿음으로 나아갔던 경배의 자리,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린 순간에 쓰였습니다. 그렇기에 ‘worship’은 우릴 위해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믿음으로 따라가는(벧전 2:21) 자리 , 그분의 형상대로 빚어지는(롬 8:29) 경배의 시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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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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