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경에 나오는 ‘ark’에 대해 적으려고 합니다. 영어 성경에서 ‘ark’란 단어는 노아의 ‘방주’, 모세가 담겨 떠내려가던 ‘갈대상자’, 그리고 ‘언약궤(ark of the covenant)’에 쓰입니다. 히브리 원어로 노아의 ‘방주’와 모세가 담겨 있던 ‘갈대상자’는 tebah(תֵּבָה)인데 구약에 28번 나옵니다(노아의 방주 26번, 모세의 갈대상자 2번).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갈대상자에 대한 개연성은 확실합니다. 둘 다 죽음의 물에서 구원 얻습니다. 둘 다 새로운 ‘나라’의 시작을 예고합니다. Tebah(테바)에서 나온 노아의 세 아들은 온 땅에 흩어져서 70개의(야벳 14, 헴 30, 셈 26) 언어와 족속과 나라로 나뉘게 됩니다(창 10:32). 온 세상이 70 민족으로 흩어져 건국되는 동안 셈의 하나님(창 9:26)은 셈의 라인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언약을 맺으시며 자신을 위해 특별/독특한(peculiar) 백성(이스라엘)을 창조하십니다(사 43:1, 45:11). 특이, 특별, 특유, 독특이란 뜻의 ‘peculiar’란 단어는 영어 킹제임스성경에 7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이스라엘에 4번, 왕에 1번, 교회에 2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란 ‘peculiar(독특, 특별)’한 민족과 나라를 만들기 위해 때가 찰 때까지(창 15:13-16) 야곱의 자손 70명을(창 46:27) 에굽 땅에 배양시키십니다(이 부분에 대한 조명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역시 Tebah에서 건짐 받은 모세를 통해 에굽에서 인도해내십니다.
신약에서 스데반은 공회에 불려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증거하다 순교하는데 이때 에굽에 내려간 야곱과 자손들이 75명이었다고 합니다(행 7:14). 창세기 46장에 70명의 이름이 일일이 열거되어 있는데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이 갑자기 75명이라고 하니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큰 미스터리는 없습니다. 스데반은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마치 조선족이나 교포같은)으로 사도행전 6장에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7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힙니다. 그 당시의 디에스포라 유대인들은 주전 2세기경에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Septuagint text로(당연히 이 번역본은 성경에 비하면 권위나 조명에서 비교할 수 없습니다) 회당에서 공부했습니다. Septuagint text와 히브리 성경의 46장 20-27절을 비교해 보면 Septuagint에 다섯 명의 이름이 더 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은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이름만 넣었지만, Septuagint는 므낫세의 아들과 그 손자, 그리고 에브라임의 두 아들과 손자 한 명의 이름까지 열거합니다. Gen 46:20 “And there were sons born to Joseph in the land of Egypt, whom Aseneth, the daughter of Petephres, priest of Heliopolis, bore to him, Manasses and Ephraim. And there were sons born to Manasses, which the Syrian concubine bore to him, Machir. And Machir begot Galaad. And the sons of Ephraim, the brother of Manasses; Sutalaam, and Taam. And the sons of Sutalaam; Edom. (LXX)” 따라서 Septuagint의 창 46:27절은 “…all the souls of the house of Jacob who came with Joseph into Egypt, were seventy-five souls.(LXX)”로 끝맺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특별한 보배요 특별한 백성(출 19:5; 신 14:2; 26:18; 시 135:4)으로 택하셨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 언약을 맺으시며 교회를 특별한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언약궤는 영어로 ‘ark of covenant’인데 히브리 원어로는 ‘aron(אָרוֹן)’입니다. 흥미롭게도 구약에 202번 등장하는 ‘궤’를 뜻하는‘aron(אָרוֹן)’이 언약궤가 아닌 곳에 쓰인 건 두 번밖에 없습니다. 첫 번은 창세기의 마지막 구절인 50장 26절입니다.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여기에서 내 뼈를 가지고 올라갈지니라, 하였더라. 이렇게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료를 넣고 이집트에서 그를 관에 넣었더라(창 50:25-26).” 여기서 ‘관’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가 ‘aron(אָרוֹן)’입니다. 이 사실을 처음 발견했을 때 성경은 참으로 희망과 약속의 책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선함과 영원한 생명으로 시작한 창세기의 기록은 인간의 죄악과 죽음으로 끝맺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을 구원했던 요셉은 죽어 땅에 묻히고 성경 독자들이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노예가 되어 오랜 세월 신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찾아오실 거라는 믿음의 고백 속에 요셉의 뼈는 ‘궤’에 보관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과 믿음의 고백을 담은 궤가 ‘언약궤’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뼈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에굽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상속받습니다. “모세가 요셉의 뼈를 취하니라.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엄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여기에서 내 뼈를 가지고 올라갈지니라, 하였더라(출 13:19)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곧 야곱이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로부터 은 백 개를 주고 산 땅에 묻었더라. 그리고 그것이 요셉 자손의 상속이 되었더라(수 24:3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신약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잠들어 있는 관이 언약궤입니다. 이 부활과 새 상속의 언약은 때가 차면 에스겔의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나 예루살렘 성에 들어갔듯이(겔 37장) 그리스도의 군사로 일어나 하늘의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것입니다(하늘의 도시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런 소망과 희망이 실핏줄처럼 흐르는 책입니다. 사사기의 암흑과도 같은 기록에 이어서 나오는 룻기의 마지막 부분처럼 말입니다. 왕도 없이 제 눈에 옳은 대로 행하며 우상을 섬기고 서로 죽고 죽이는 사사기의 암흑기 속에서도 하나님은 보아스(예수 그리스도)와 이방 여인 룻(교회)을 통해 남편과 자식을 잃고 유업을 상실한 나오미를(이스라엘) 속량 하시고 약속의 핏줄을 이어가십니다. 상실과 실망으로 시작된 룻기는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 4:22)”로 마치며 왕도 없던 시대에 하나님이 택하신 한 왕의 탄생을 알리며 마치는 것입니다.
언약궤에 쓰인 ‘aron’이 다른 곳에 쓰인 두 번째 케이스는 신정정치로 시작한 다윗의 왕국이 다시 우상숭배로 찢기고 부패해가면서도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멸절의 위기를 맞은 후입니다. 유다 왕국은 여호사밧 때 북이스라엘의 가장 타락한 왕인 아합 왕과 통혼합니다. 그러다 아합 왕의 딸이자 유다 왕국의 왕비였던 아달랴가 유다의 왕손들을 모두 죽이며 6년간 통치하는(성경의 6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암흑의 시기를 맞습니다(대하 22). 왕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던 때에 유일하게 요아스(여호아스) 한 명만 누이 여호사브앗에 의해 구출되어 제사장 여호야다가 6년간 성전에 숨깁니다. 그리고 요아스가 7세가 되던 해 아달랴를 처단한 후 왕위에 올립니다. 그 많던 왕손이 모두 죽고 요아스 한 명으로 다시 시작되던 때 여호야다는 자기와 온 백성과 왕 사이에 언약을 맺어 그들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며 온 백성이 아달랴가 섬기던 바알의 집으로 가서 그 집과 제단을 허물고 형상들을 산산조각 내며 바알의 제사장을 죽입니다(대하 23:16-17). 그리고 아달랴가 부신 하나님의 집(성전)을 보수하기 위해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 백성들에게 헌물을 받은 것처럼 궤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집 문 밖에 둡니다. 이에 모든 통치자와 백성이 기뻐하며 성전 보수를 끝마치기까지 돈을 가져다 넣습니다(대하 24:6-10, 왕하 12). 이때 쓰인 ‘궤’가 언약궤에 쓰이는 ‘aron’입니다. 그 당시 백성들이 가져온 돈으로 성전은 원래 상태로 세워지고 견고하게 되어 일을 완전하게 마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은 돈으로 성전에서 쓸 금은 그릇과 숟가락들도 만듭니다(대하 24:11-14, 왕하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