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7절기:유월절과 예수님

유월절에 대한 오해를 다룬 지난 글에 이어 오늘은 유월절에 담긴 그리스도의 의미를 유대 풍습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7월이었던 니산월을 출애굽 사건을 계기로 1월로 바꾸신 이유는(출 12:1-2) 유월절이 영적인 새로운 시작임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죄 사함을 받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운 시작, 새로운 관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피로 씻김 받은 이들은 새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누립니다.

이스라엘은 니산 10일에 한 집당 자기 가족을 위해 어린양 한 마리를 취해야 했습니다. 식구 수가 한 마리 양을 먹기에 너무 적으면 각자 먹을 양을 계산해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나눕니다(출 12:3-4). 이처럼 주님은 니산 10일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그 피의 은혜는 온 집을 구원하기에 족할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복음을 전해 함께 새 생명의 기쁨을 누릴 만큼 풍성합니다(하나님의 완전수 10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 양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이어야 했던 것처럼(출 12:5), 죄로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을 사한 것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입니다(벧전 1:19).

유월절 어린양은 14일까지 간직했다가 그날 저녁에 잡습니다(출 12:6). Edward Chumney에 의하면 유월절 절기 때 대제사장은 니산 14일 아침 9시, 유월절에 쓰일 어린양을 번제단에 묶으며 오후 3시에 죽인다고 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유월절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묶이셨고(막 15:25)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셨다는 것은 놀랍기만 합니다(마 27:45-46, 50). 또한 유대인들은 유월절 절기를 셀 때 양의 목에 자기 가족의 이름을 걸어서 성전으로 가져갔다고 합니다. 제사장들이 그날 많은 양을 잡아야 했기에 누구 것인지 미리 표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요 19:19)’이란 글씨를 히브리어,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로 써 붙입니다. Michael Norten에 의하면 히브리어 타이틀인 “Y’shua HaNatzri V’Melech HaYehudim” 4단어의 앞글자만 따면 ‘YHVH’, 즉 여호와(야훼)의 이름이 된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희생될 양에게 자기 가족의 이름을 달듯이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자기 가족의 이름을 ‘하나님의 어린양이신(요 1:29)’ 예수께 다신 것입니다.

쓴 나물과 무교병을 곁들인 유월절 양은 10명에서 20명까지 모여 남김없이 모두 섭취해야 했으며 그다음 날까지 남은 것이 있다면 불태워야 했습니다(출 12:8-10). 양을 남김없이 모두 먹던가 아니면 태워서라도 모두 없애야 하는 것은 유월절 절기에만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우릴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남김없이 모두 주셨으며 온전히 속량하셨습니다. 쓴 나물의 일차적 의미는 에굽 땅에서 노예로 고생하던 시절을 기억하란 것이지만 우리 역시 예수님의 피로 구원 얻기 전에는 마귀에 종 노릇하며 고생했습니다. 또한, 쓴 나물은 주님께서 우릴 위해 당하신 고난을 나타내며 무교병은 그리스도의 죄 없는 몸을 나타냅니다. 그 피를 마시고 몸을 먹은 우리 또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누룩 없는 새 덩어리이기에 오직 순수하고 진실하게 걸어야 합니다(고전 5:7-8). 

유월절 양은 특히 날거나 삶아 먹으면 안 되고 통째로 불에 구워 먹어야 했습니다(출 12:9-10). 여기서 날것으로(raw) 먹지 말라는 부분의 정확한 히브리 의미는 ‘덜 익힌 데 없이’입니다. 즉 유월절 양은 물에 삶아서도 안 되며 완전히 불에 익혀 먹어야 했고 뼈 한 곳도 꺽지 말아야 했습니다(출 12:46). 이처럼 주님은 우릴 위해 뼈를 꺾지 않은 온전한 번제물로 십자가에 바쳐지셨습니다(요 19:36). 실제로 두 개의 막대기가 평행과 수직으로 끼워진 채 불 위에서 구워지는 양의 모습을 보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절로 떠오른다고 합니다. 이처럼 주님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불을(말 3:1-5; 4:1-3, 마 3:12) 우릴 위해 온전히 담당하셨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진노가 그대로 남게 됩니다(요 3:36). 왜냐면 불같은 하나님의 말씀(렘 23:29)은 그 말씀을 거역하는 이들을 나무처럼 태우기 때문입니다(렘 5:14).

이스라엘이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짚은 채 서둘러 양을 먹고 에굽을 떠났듯이(출 12:11) 우리도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복음이 준비한 화평으로 신을 신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짚은 채 그리스도와의 새 여정을 떠나야 합니다. 이들이 죽음에서 구원을 얻은 것이 이들의 어떠함이 아닌 양의 피에 달렸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어떠함이 아닌 주 보혈로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유월절 만찬에서 제자들과 포도주를 나누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고 하셨습니다. 유월절 만찬엔 통상 4개의 잔을 나눈다고 합니다.  첫번째 잔은 축복의 잔(눅 22:17; 고전 10:16)으로 불리며, 두 번째 잔은 진노의 잔(또는 찬양의 잔)으로 불리는데 이집트에 임했던 재앙들을 말하며 마시지 않고 쏟아버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해 붓는 것이라’고 하신 잔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던 진노의 잔이며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릴 위해 주님 홀로 마신 잔입니다(눅 22:42-44). 셋째 잔은 구원의 축복 혹은 속량의 잔으로 잔에 넘치도록 채운다고 합니다(시 116:13). 그리고 넷째 잔은 왕국 잔(마 26:28-29; 눅 22:18,20)으로 예수님이 아버지의 왕국에서 제자들과 새롭게 마시겠다고 하셨던 잔입니다(마 26:29).

이후 주님과 제자들은 찬송 하나를 부른 뒤 올리브 산으로 갑니다(마 26:30). 유대인들은 절기 때 (특히 유월절과 장막절에) 시편 113-118편에 있는 ‘Hallel(찬양)’을 부릅니다. 이중 특별히 시편 115-118편은 메시아적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시편 116:13절에 보면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lift up)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구원’은 ‘예수’입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듯이 우릴 위해 들리셨습니다(요 3:14). 내가 예수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만일 그날 부르신 찬송 하나가 116편이었다면 116:13-19절을 부르셨을 때 제자들은 미처 몰랐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시 116:13-19).”

또한 시편 118편 21절에 보면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앞에서도 나눴듯이 히브리어로 ‘구원’은 ‘예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결박과 고통을 보시고 응답하셔서 우리의 예수가 되셨습니다. 이어지는 시편 118편 구절들을 읽어보면 역시 놀랍기만 합니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18:21-29).”

예수님은 모든 이스라엘이 양을 잡고 목청껏 위와 같은 찬송을 부를 때 그들이 부르는 단어 하나하나를 성취하시며 고난 당하셨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다시 오실 때에도 성경에 적힌 모든 재림 구절들을 성취하시며 임하실 것입니다.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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