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7절기:속죄절과 대제사장 예수

오늘은 여호와의 7절기 중 6번째 절기인 속죄절(Yom Kippur)에 대해 적으려고 합니다. 속죄절은 지난 일 년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덮어지기를 기도하는, 이스라엘의 절기 중 ‘가장 거룩한 날(holiest day)’입니다. 생각해보면, 일 년에 단 한 번 오직 이날 대제사장이 가장 거룩한 곳, 즉 지성소(holy of the holies)에 들어갈 수 있으니 ‘가장 거룩한 날’로 여겨지는 게 당연한 것 같습니다. 지난번 글에 적었듯이 나팔절인 Tishri 1일부터 속죄절인 Tishri 10일까지의 10일은 ‘경외의 날들(Days of Awe)’로 불리며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며 기도하는 기간입니다(하나님의 완전수 1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이날, 이스라엘 민족의 지난 일 년간의 죄가 희생제물의 피로 덮어지고 속죄됩니다. 하나님은 이날은 거룩한 집회(성회)로 모이고 혼을 괴롭게 하며 오직 불로 예비한 헌물을 드리되 그 어떤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이날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않거나 어떤 일을 한다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며 멸절시키리라 경고하십니다. 또한 이것은 대대로 영원한 법규가 될 것이며  9일 저녁부터 다음 날 저녁까지 이 안식일을 기념하라고도 하십니다(레 23:26-32).

이런 ‘속죄절(Feast of Atonement)’에 대한 자세한 규례는 아론의 두 아들이 저지른 범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7절기’를 다루는 레 23장보다 앞선 레 16장에 먼저 나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쪽 법궤 위 속죄소(긍휼의 자리)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긍휼의 자리) 위에 나타남이니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어린 숫소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 16:1-10)”

염소 한 마리는 ‘여호와의 것’으로 삼고 한 마리는 ‘아사셀의 것’으로 삼는 부분이 궁금해서 예전에 더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개역개정에 음역 된 ‘아사셀(עֲזָאזֵל)’이란 히브리어는 광야(사막)에 있는 영, 즉 마귀의 이름으로 ‘완전히 없애다’란 뜻이 있습니다. 번역본마다 (영어 번역본 포함) 히브리어를 그냥 둔 성경이 있고 의역한 성경이 있어 ‘아사셀’에 대한 부분은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처음 알게 됐을 때 바울이 말한 알쏭달쏭했던 구절이 이해됐었습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전 5:5).” 이 구절엔 속죄절의 두 염소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두 염소를 통해 아사셀의 것으로 비록 육은 멸해져도 여호와의 것으로 영은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미리 알려주셨던 것입니다(분리 및 증인을 의미하는 숫자 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속죄일에는 제비를 뽑아 ‘여호와의 것’으로 뽑힌 염소는 죄 헌물로 올리고 ‘아사셀의 것’으로 뽑힌 나머지 염소는 산채로 두었다가 광야로 보냈습니다.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그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살아 있는 염소를 드리되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법을 자기 위에 짊어지고 접근하기 어려운(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레 16:15-22).”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죄를 속죄키 위해 ‘여호와의 것’으로 뽑힌 첫 번째 염소의 피로 지성소를 씻었는데(cleansed), 유대 전승에 의하면 다른 제사장들은 성소 밖에서 침묵 가운데 대제사장이 돌아오길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직무를 마치고 나온 대제사장은 그들 앞에서 ‘다 마쳤다’고 알렸답니다. 이후 대제사장은 두 번째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죄를 자백하고 미리 지정된 사람에게 이스라엘의 죄가 전가된 염소를 끌고 가게 합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의 죄를 뒤집어쓰고 광야로 내쫓기는 두 번째 염소는 영어로 ‘scapegoat(남의 잘못을 뒤집어쓰는 희생양)’으로 불립니다. 이러한 속죄절의 두 마리 염소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첫 번째 염소처럼 하나님 자신의 피로 우리 모두의 죄를 속죄하셨고(히 9:7-14) 두 번째 염소처럼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셔서 완전히 없애셨으며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 가서 사단에게 시험받으셨지만 승리하셨습니다(요 1:29; 마 4:1-11).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물론 성경적 사실은 전혀 아니니 그냥 재미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탈무드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매해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내보내면서 성전문에 붉은 실을 매어뒀는데 염소가 광야로 떠난 후에 이 실이 기적적으로 희게 변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들은 붉은 실이 희게 변한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 헌물을 열납하고 용서하셨음을 알았습니다. 이런 믿음은 아마도 이사야서 1장 18절에 근거한 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그런데 탈무드와 바벨론 탈무드의 기록들에 보면 두 번째 성전이 70 AD에 무너지기 40년 전부터 성전의 서쪽 불은 밤마다 꺼졌으며 붉은 실은 더는 희게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숫자 4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을 때 ‘여호와의 것’은 오른손 쪽에 나오지 않고 항상 왼손 쪽에 나왔으며 성전문을 밤에 닫았어도 아침에 보면 늘 문이 열려있었다고 적혀있습니다(탈무드 기록 링크를 걸어둡니다).

이 기록이 픽션이든 사실이든 AD 30에서 AD 70까지 하나님께서 더는 속죄절의 헌물을 받지 않으셨다는 기록이 유대인들이 즐겨 읽는 탈무드에 엄연히 나오는데도 예수님과 아직도 연관 짓지 못한다는 게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지막이자 완전한 희생제물이었기에 더이상의 희생제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또 그분께서는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들의 피를 가지고 거룩한 곳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신을 드려야 할 필요가 없으시니 그랬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창세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라.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그분께서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느니라(히 9:25-26).” 뿐만 아니라 서쪽 불이 밤이면 계속 꺼지고 성인 25명 정도가 닫아야 하는 22미터가 넘는 성전문이 저절로 다시 열리는 일이  계속 벌어졌는데도 이들의 마음은 무디어져서 눈으로 보아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 백성의 마음은 무디어지고 그들의 귀는 듣기에 둔하며 그들은 눈을 감았나니 이것은 언제라도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마 13:15)”.

또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히 4:14-16) 숫소나 염소의 피가 아닌(히 10:4) 하나님 자신의 피로 십자가 선상에서 우리 죄를 덮으시고 ‘다 이루었다’를 선포하셨습니다(요 19:28-30). 원래 대제사장의 거룩한 의복은 파란색 바탕에 금실과 홍실과 청실과 자색실과 베 실(흰색)로 수 놓고 12개의 보석을 단 흉패를 착용한 화려한 의상입니다(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의미하는 1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재료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으로 금실은 예수님의 신성을, 청실은 하늘로부터 오셨음을, 자색은 왕권을, 홍실은 속죄의 피를, 그리고 베 실은 거룩함과 순결(무죄하심)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속죄일에는 평상시 직무 할 때 입는 의복이 아닌 세마포(아마포)로 된 흰 의복만을 착용합니다(레 16:4). 이 세마포는 성도의 의를 나타내고(계 19:8) 순결과 겸손한 마음을 상징하며 예언적인 요소도 담고 있습니다. 이날 대제사장의 흰옷은 희생제물들의 피로 붉게 물들 수밖에 없는데 이는 흰옷을 입은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시는 주님의 피로 물든 옷을 떠오르게 합니다. “또 그분께서 피에 담근 옷을 입으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리느니라. 하늘에 있던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고운 세마포(아마포)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분을 따르더라(계 19:13-14).”

지난번 글에도 썼듯이 모세가 십계명이 적힌 두 번째 돌판을 갖고 산에서 다시 내려온 날은 Tishri 10일 즉, 속죄일입니다. 모세가 처음 산에서 십계명을 갖고 내려왔을 때는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죄 가운데 있었고 두 번째 돌판을 갖고 다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은 빛났으며 성막의 설계도를 받아 짓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을 예표 하는 것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동에서부터 서까지 그 영광을 볼 것이며  모세가 성막을 세웠듯이 주님은 천 년 동안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들과 함께 통치하실 것입니다(계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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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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