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4장 원어/영어 분석 연구

히브리서 4장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두려워할지니’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은 ‘phobeó(포베오)’로 ‘공포스럽다, 두렵다, 놀라 떨다’인데, 우리가 잘 아는 포비아(phobia)가 여기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남아 있을지라도’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은 ‘kataleipó(카탈리포)’로 ‘떠나다, 저버리다, 포기하다, 놔두다, 남기다’란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 총 24번 나오는데, 항상 ‘포기하다, 떠나다, 저버리다’ 등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라고 된 번역은(영어 포함) 잘못된 번역입니다.

또한 ‘이르지 못할’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 ‘hustereó(후스터레오)’는 ‘뒤처지다, 부족하다, 모자라다, 열등하다’ 등의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16번 쓰이는 단어인데 꽤 유명한 구절들에 등장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그 모든 계명을 내가 어려서부터 지켰으니 내게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나이까(마 19:20, 막 10:21)’라며 당당히 묻던 단어이며, 로마서에서 ‘모든 사람이 범죄했으되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fallen short of the glory)’에 쓰인 단어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원어에 충실히 번역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으로 들어가는 약속을 저버림으로(떠나므로) 혹여 너희 중 누구라도 부족하게 여겨질까(뒤처질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보다는 ‘우리도 그들처럼 복음을 선포 받았었지만’로 번역하는 게 원어에 더 가깝습니다.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에서 ‘결부’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 ‘sugkerannumi(숭커라누미)’는, ‘함께 섞다, 동의하다, 화합하다’란 뜻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우리도 그들처럼 복음을 선포 받았었지만 그 말씀이 그것을 들은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했던 것은 들은 자들의 믿음과 함께 섞이지(화합하지) 못한 탓이라.‘입니다.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위 번역도 괜찮습니다. 좀 더 원어에 맞게 쓴다면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이미 믿은 우리는 그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 내가 노하여 맹세했던 것처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나, 세상이 창조되던 때부터 그 일들은 이뤄졌느니라.”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위 번역도 괜찮습니다. 좀 더 원어에 맞게 쓴다면, “그분께서 제칠일에 관하여 어딘가에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자신의 모든 일에서 안식하셨다, 하셨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위 번역도 괜찮습니다. 좀 더 원어에 맞게 쓴다면, “다시 이 대목에서,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apoleipetai) 있거니와”는 썩 잘된 번역까지는 아닙니다. 그리고 개역개정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로 번역된 헬라어 ‘apeitheia(앱파이띠아)’는, 특별히 의도적으로 믿지 않으려 하고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어느 번역본이냐에 따라 ‘불신’ 혹은 ‘불순종’으로 번역합니다.

그리고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라고 번역된 헬라어 ‘ouk(~하지 않다) eisēlthon(들어갔었다)’은 ‘들어가지 않았었다’로 번역하는 것이 원어에 맞습니다.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안식) 들어갈 어떤 자들이 남아있게 된 것이며, 먼저 복음을 받았던 자들은 불순종(불신)함으로 들어가지 않았었던 것이니라

위 구절에서 우리는 자유의지와 예정론에 대한 지혜를 조명받습니다. 4절과 5절엔 반복해서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6절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불신(불순종)함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나옵니다. 즉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관점에서는 ‘들어오지 못했던 것’이고 사람들의 자유의지적 관점에서는 ‘의지적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 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예정은 이처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서 동전의 앞면이냐 뒷면이냐 정도는 구분하겠지만 그렇다고 나뉠 수는 없으며 결국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자유의지’와 ‘예정’에 대한 신학적 다툼은 불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위의 번역은 마치 다윗이 주체인 것처럼 번역되었습니다. 하지만 원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다윗의 시편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것이니까 위 번역처럼 해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본에는 유추할 필요도 없이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한국어 성경에 다윗의 ‘글’로 번역된 헬라어 ‘legōn(레곤)’은 신약에 179번 나오는데, 모두 ‘말하다, 말씀하다’로 번역합니다. 또한 다윗의 이름 앞에 붙은 ‘en‘이란 전치사는 ‘~안에, ~통해’란 뜻으로 ‘en Dauid legōn(엔 다위드 레곤)’은 ‘다윗 안에서 말씀하시는’ 혹은 ‘다윗을 통해 말씀하시는’이 됩니다. 모든 영어 성경은 이 부분을 ‘saying in David‘ 혹은 ‘spoke through David‘으로 번역했으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이와 비슷한 예가 히브리서 1장 1절과 2절에 나오니 히브리 1장 원어 연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윗글을 원본에 맞춰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분께서 다윗 안에서(다윗을 통해) 말씀하시며 어떤 날을 오늘이라 지정하시나니 이는 곧, 오늘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 하고 말씀하신 바와 같도다.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위 번역도 괜찮습니다. 좀 더 원어에 맞는 번역은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분께서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입니다.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 구절에서 쓰인 ‘안식’은 다른 구절에서 쓰인 ‘안식’과는 다른 단어입니다. 히브리서의 다른 구절들에 쓰인 안식은 ‘쉬었다, 멈추다’란 의미의 헬라어 ‘Katapausis(카타포시스)’ 혹은 ‘katapauó(카타파우오)’에서 파생된 단어들인 것에 반면 이 구절에 쓰인 헬라어는 ‘sabbatismos(싸바티스모스)’로 신약에 딱 한 번 나옵니다. 즉 ‘안식일의 쉼‘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안식일의 쉼은 하나님께서 6일 창조 후 7일째 안식하셨던 것처럼, 성경 인류의 6천년 역사 이후에 오는 천년 간의 안식, 즉 7천년 시작과 함께 있을 천년왕국을 뜻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천년왕국의 시작과 함께 사단은 무저갱의 갇히게 되고 재림하신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 땅 가운데 세워집니다. 그 천년의 통치 끝에 사단이 잠시 풀려나 온 나라와 민족을 미혹하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완전히 멸하고 마귀는 불과 유황못에 던져집니다. 그후에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서 보내는 영원세계가 펼쳐지게 된다는 내용이 요한계시록 20장과 21장의 내용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원어에 맡게 번역하면 ‘그런즉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일의 쉼이 남아 있도다‘입니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위 번역도 괜찮습니다. 좀 더 원어에 맞게 한다면 ‘그분의 안식에 이미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에서 그러하시듯이, 자기 일들로부터 안식을 얻느니라’입니다.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위 번역대로도 괜찮습니다. 여기서 ‘순종하지 아니하는’으로 번역된 ‘apeitheias(애피띠아스)’는 6절에 설명했듯이, 의도적으로 일부러 불신하거나 불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 구절은 꽤 유명한 구절인데, 번역이 좀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좌우에 날선(distomos)’이라고 된 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마치 칼날이 왼쪽, 오른쪽으로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양면이 날선’이라고 해야지 원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칼엔 칼등이 있고 칼날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양쪽 면이 다 날카롭다는 것입니다.

이 ‘distomos(디스토모스)’란 단어는 신약에 딱 3번 나오는데, 이 구절 외에 나머지 두 번은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에 대한 묘사로 쓰입니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계 1:16)”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계 2:12)”

요한복음 1장 1절과 14절에서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서술하며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요한복음과 계시록을 비추어 볼 때 히브리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이다’는 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좌우에 날선 검 =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말씀은 한쪽만 날카로운 일반 검이 아닌 양쪽이 다 ‘tomos(토모쓰)’ 즉 예리한데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이 나눌 수 있는 것을 양쪽으로 나누기 때문입니다.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에서 ‘찔러’의 헬라어 어원은 ‘diikneomai(디익네오마이)’로 ‘관통하다, 통과하다, 찌르다’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쪼갠다’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은 ‘merismos(메리스모스)’로 ‘분리하다, 나누다’란 뜻입니다. 또한 ‘활력’으로 번역된 헬라어 ‘energēs(에너게이스)’에서 ‘에너지’가 파생된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과 뜻’이라고 된 부분도 더 맞는 번역은 ‘마음의 생각과 의도(ennoiōn)’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골수와 관절까지 관통해서 우리의 생각과 의도가 무엇인지 다 나눠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판단’은 ‘심판’이랑 같은 단어입니다.

따라서 위 구절을 원어에 맞게 번역한다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활력(운동력) 있고 양쪽 면이 어느 칼보다도 날카롭고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 관통해 나누기까지 하며 생각들과 마음의 의도들을 심판(판단) 있느니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의도를 남에게 감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자신을 속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우리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꿰뚫고 있다니, 심판주로 오실 주님 앞에 떨리는 구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를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그 어떤 창조물도 그분 앞에는 감춰질 수(aphanés) 없다’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발가벗겨지고(gumnos) 오픈(tetrachēlismena)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tetrachēlismena(테트랙케이리스메나)’의 어원인 ‘trachélizó(트렉케이릿쪼)’는 ‘목덜미를 잡힌 상태, 널브러진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로 죄수를 참수하기 위해 목을 뒤로 젖힌 상태를 나타내기도 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위 구절을 원어에 맞춰 번역하면, ‘그 어떤 창조물도 그분 앞에 감춰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de) 우리의 보고(logos)를 받으실 분의 눈 앞에 모든 것이(만물이) 발가벗겨지고 드러나느니라‘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남의 눈을 속이며 애써 포장하고 나 자신에게도 위장하며 있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눈 앞에서 벗겨지고 그 실체가 드러난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14절이 주는 위로와 평안은 12-13절의 적나라한 의미가 온전히 전달된 후에야 더 깊이 느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위 구절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승천하신’으로 번역된 것을 원어 그대로 옮긴다면, ‘저 하늘들을(tous ouranous) 통과하신(dielēlythota)’이 맞습니다. 그리고 ‘믿는 도리’로 번역된 헬라어 ‘homologias(호모로기아스)’는 히브리 3장 원어연구에도 적었듯이, 신앙고백입니다. 좀 더 바로 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렇기에(oun) 저 하늘들을 통과하신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에게 있으니 우리의 신앙 고백들을 굳게 붙들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위 구절은 그대로 좋습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위 번역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원어에 좀 더 맞는 번역은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을 얻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하려(찾으려:heurōmen) 은혜의 보좌(왕좌)로 담대히 나아갈지니라”

*** 알림 글 *** 고등학교부터 미국서 교육받았지만, 작문은 영어보다 한국어가 편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교육받았기에 영어가 수월합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은 성경을 연구하게 하셨고 성령으로 조명해주셨습니다. 지난 몇 년간 90개의 글을 올리며 내심 안타까웠던 것은 한국어 성경이 원어나 영어와 비교했을 때 상당 부분 오역되어 있거나 뜻이 불분명하게 번역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내 글을 쓰기 보다 그런 단어와 구절들을 원어 중심으로 풀어 올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천적/후천적으로 주신 달란트를 가장 잘 쓰는 방법은 원어나 영어로 된 성경 구절들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올리는 작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문 구절과 함께 연결 구절도 덧붙이고 직접 원어와 뜻을 볼수 있도록 링크를 걸어놓겠습니다(파란색 단어들을 누르시면 됩니다). 원어사전은 스트롱스입니다. 누구든 필요하시면 자유로이 인용하시길 바랍니다. 우선 히브리서로 시작하나 성경의 특정 부분, 또는 구절의 원어/영어 분석을 원하시면 코멘트나 이메일 주시길 바랍니다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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