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 글에 대해 받은 코멘트를 소개하고 거기에 덧붙이려 합니다. 6개월 전쯤에 쓴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동산 한 가운데 두셨나?-율법과 성령의 법“을 읽으신 분이 보내주신 코멘트입니다. 코멘트가 여러 포인트를 다루고 있어 문답 형식으로 나눠 적습니다.
[저의 생각을 조금 나눠보고 싶어서 코멘트 남깁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지 만지지 말라고는 하지 않으셨는데, 그래서 저는 선악과가 죄가 아니라 “선악과를 먹는 행위가 죄”라는 판단이 듭니다.
요한일서3:4KRV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법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였는데, 요일3:4에 의하면 법을 어기는 것이 불법이고 죄는 곧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선악과가 죄가 아니라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는 행동 즉, 불순종이 죄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왜 하나님은 먹으면 죽는 선악과를 만드셨는가?” “왜 하필 동산 한 가운데 두셨는가?”란 질문을 하면서 선악과 자체가 악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명나무와 선악과는 빛과 어둠처럼 자연의 생성 법칙이었을 뿐입니다. 생명나무가 선하다 한들, 생명나무에서 먹으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먹지 않는다면 영원히 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 먹게 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에서 먹고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고 그룹들과 불타는 칼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으셨습니다(창 3:22-24). 결국 순종이 나를 살리는 것이지 생명나무 자체가 나를 살리는 건 아닙니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선악과 자체가 나를 죽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악과는 말 그대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관점에서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가를 판단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내가 집을 건축한 사람이요 집주인이면 내 필요에 맞게 집을 디자인하고 내 마음대로 가구를 배치합니다. 침실, 거실, 화장실 등등 그 용도에 맞게 씁니다. 그렇지만 내 집도 아니면서 이래라저래라 참견하고 컨트롤 하려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선과 악을 알게 됐습니다. 문제는 그 기준이 자신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뱀이 한 말은 어느 정도의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하나님인 양 자기들 입장에서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판단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날 변기가, 나는 더 이상 용변 보는 일에 쓰이지 않겠으니 이제부터 나를 식기로 쓰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무질서의 혼돈이 일어나게 될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생명나무에서 먹고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애덴동산에서 내보내십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질서가 깨지게 되자 사람과 생물과의 질서도 깨지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대로 지어진 아담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존재로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받았던 존재였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땅도 저주받게 됩니다. 또한 더 이상 생명나무에서 먹는 것이 금해지는 것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여기서 오래전에 조명받은 부분이지만 아직 나누지 않았었던 부분까지 적자면,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신 구절은 영어로 읽으면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thou shalt surely die(KJV).”입니다. 즉, ‘그것을 먹은 날 안에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알다시피 아담은 먹은 즉시 그날 안에 죽지 않았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가 베드로 후서의 유명한 구절을 통해 의문이 해결된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아담은 930년을 살고 죽습니다. 천년에서 70년이 빠진 수명입니다(하나님의 완전수 7과 7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어느 인물도 1000년을 산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하루가 천년과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네가 먹는 그날 안에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아담은 930년을 살고 죽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므두셀라로 969세를 살았습니다.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야고보서 1:14-15 KRV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욕심이 잉태하여서 죄를 낳게 되는 것인데, 아담과 하와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명령에 대적하는 것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죄를 낳기전에 계속 품지(잉태)말고 버렸어야 했습니다. 만지는 것이 불법(죄)이라고 하시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고의가 아닌 우리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질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는 마음이 강하면, 당연히 만지지도 않겠지요. 하나님은 만지지 말라고 명하지 않으셨지만, 우리 스스로 만지지도 않을것입니다. 사탄의 존재와 우리의 연약함을 안다면요. 이것이 곧 절제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은 특히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를 빗대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았습니다.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창 3:6)’인 것입니다. 요한은 이런 “육신의 정욕(먹음직), 안목의 정욕(보암직), 이생의 자랑(지혜롭게 할 만큼)은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고 분명히 적고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온 것을 따라 선악과 나무의 열매가 ‘탐스럽게’ 여겨질 때 ‘욕심’이 잉태된 것이며 그걸 행동으로 옮겨 취한 순간 죄를 낳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죄가 장성한 끝에 사망을 낳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하와가 속았던 것이지 아담은 속지 않았었다(딤전 2:14)’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와는 뱀에게 미혹됐습니다. 그렇지만 아담은 뱀에게 미혹된 게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신 아내에게 순종하기로 선택했습니다. 하와가 함께 있던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자 따라 먹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하지만 하나님보다 선물을 더 위에 둔다면 우상일 뿐입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불순종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하와는 부지중에 죄를 범한 것이고 아담은 알고도 범한 것입니다. 부지중에 지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알고도 지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민15:22-31).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하와만 선악과를 먹고 아담은 먹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 만일 하와만 선악과를 먹었다면 아담이 왕과 같은 제사장이었기에 미혹되어 부지 중에 죄를 지은 아내를 위해 속죄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욥이 3 친구를 위해 속죄했듯이). 그렇지만 아담이 고의로 불순종했던 것이기에 성경은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고 하며 첫 아담과 둘째 아담(예수님)을 비교합니다(증인과 나눔을 의미하는 숫자 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선악과의 의미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로(창2:17KRV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과를 먹는 행위가 곧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게 제 생각인데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에덴동산의 가운데에 두신것은, 우리의 중심인 영 안에 이 둘 중 하나를 둘 수 있고, 우리의 의지(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먹을(주인으로 모심)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수를 받아 먹게 되는 것이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으면 사탄으로부터 사탄의 것을 받아먹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좋은 인사이트이고 동의하기에 덧붙일 게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며칠전에 하나님의 절기에 대해서 궁금해서 검색하다가 글쓴이님의 이 사이트를 발견했는데요.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계시록에서 나팔을 여러번 부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정말 너무나도 궁금했는데, 글쓴이님의 설명(나팔절에 나팔을 33*3+1, 100번을 부는것)을 보고 뭔가 깨닫는게 있었습니다.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유일한 평안이고 생명인데, 하나님을 더 알수 있도록 이렇게 연구하셔서 이런 글을 남겨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교류할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성경 말씀에 대해 명확히 드러난 복음의 진리 이외의 부분중 모호한 부분에 대한 생각과 해석이 다를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아시니 각 사람의 동기를 아시고 분명히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좋은 글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도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이 사이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내게 알게 해주신 것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씨름하고 고민하며 연구했던 구절들을 찾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란 생각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7절기에 대한 부분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유익한 진리이기에 공부한 부분들을 적게 됐습니다. 저 역시 문명의 발달로 큰 혜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니었다면 이렇게 말씀 연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때 인터넷이 발달하고 웹사이트가 개발됐을 때 ‘www’가 ‘666’이라며 짐승의 표라는 설이 돌았었습니다(6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선악과가 죄가 아니라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 것이 죄’라고 코멘트하신 분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인터넷과 웹이 악한 게 아니라 그걸로 무엇을 찾고 무엇을 하느냐가 악함과 선함을 결정합니다. 칼이 강도의 손에 있으면 살인의 도구지만 의사의 손에 있으면 살리는 도구입니다. 문명의 발달로 이렇게 말씀을 찾고 구하는 지체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으니 말입니다.
몇 마디 적고 싶어지는군요.
위 글에서 “만약 아담이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이라고 가정을 하셨습니다. 제가 알기로 아담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고, 하와는 교회를 예표합니다. 물론 아담의 불순종이 잘못된 행동이었기는 하지만, 아담은 분명 하와를 사랑했기에 함께 죽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과연 아담이 어떤 마음으로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먹었는지에 대해 조명할 수 있는 성경구절을 찾지는 못했습니다만, 이것에 대한 제 생각이었습니다.
한편,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고 하와가 범죄를 하였을 때 아담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셨는데, 이러한 구절을 찾을 수 없군요. 아담은 제사장도 아니고 속죄할 수 있는 지위도 아니었습니다. 구약 제사장의 속죄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예표일 뿐, 궁극적으로 죄를 속죄할 수 없었어요. 예수님의 속죄는 아담의 범죄에 따라 전 인류가 범죄하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고요. 결국 아담의 범죄가 없으니 예수님의 십자가도 없었을 것이고, 속죄도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불행한 일이겠지만, 아담만 살고 하와는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될 것이라는 것은 아담이 하와를 보고 내 살 중 살이요 내 뼈 중의 뼈라고 했던 말이 자꾸 걸립니다. 이런 결과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담의 상태, 즉 불순종(하나님보다 아내를 더 사랑했던 것)을 미리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것이겠지요.
짧게 적으려고 하는데, 자꾸 길어지는군요. 또 모든 인간 중에서 천년을 산 인간이 없다고 하셨는데, 있어요. 에녹이 있습니다. 에녹은 죽지 않고 하나님께서 옮기셨어요. 제가 알기로는 에녹은 아직도 죽지 않고 있을 겁니다.
결국 “먹는 날에 죽으리라”라고 하는 말씀은 다른 뜻으로도 조명할 수 있다는 말이 되겠군요. 예수님께서는 자기 친척을 매장하겠다는 사람에게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여기서 죽은 자란 육체가 죽은 자가 아닙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바로 사망이 들어왔다고 되어 있어요. 1천년을 기다려서 사망이 온 것이 아닙니다. 참고로 가인이 아벨이 죽인 것은 천년이 지나지 안을 상황이었어요. 에스겔서에 있는 말씀처럼 범죄하는 영혼마다 죽으리라고 하신 것처럼 분명 인간은 죽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이라고 봅니다. 물론 영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 영이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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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포인트들에 대한 코멘트를 남기셨는데, 일단 제가 가정한 부분에 대해서 추론한 것은 그냥 추론일 뿐이니 그것에 대해 가타부타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포인트인 왜 아담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한 부분은 다음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자라고 하셨다는 것은 땅의 아담이 하늘의 하나님의 모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이시요 대제사장이신 것처럼, 아담도 그런 통치와 영광을 행사하도록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후에는 제사장의 역할이 죄를 속죄하는 제물을 올리는 역할을 주로 하게 되었기 때문에 마치 제사장이라고 하면 죄만 속하는 사람인 줄 오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제사장의 역할은 중보자의 역할이기도 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은 땅의 생물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제사장의 역할도 있었다고 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 3친구들의 죄를 속하는 번제물을 대신 바치도록 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용서해 주지 않습니까? 구약에서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지은 여러가지의 죄를 속죄하는 제물을 갖고 제사장들 및 대제사장 앞으로 나아오게 하셨고 그 제물을 받고 죄를 사하여 주신 내용이 구약의 내용인데, 무슨 근거로 제사장이 하나님께 바치는 번제물이 죄를 속한 적이 없다고 하시는지요. 신약에 와서 짐승의 피로는 속죄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피로 속죄하셨다고 나오는 것은 ‘원죄’에 대한 내용입니다. 구약의 제물로 하나님께서 ‘원죄’를 속죄해주시겠다고 하셨던 적도 없습니다. 단, 나날이 생활하며 짓는 여러 범법들을 속죄하는 데 제물을 가져오라고 하셨던 것이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단 한번 자신의 몸과 피를 드리는 것으로 허다한 죄 뿐만 아니라 ‘원죄’까지 해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이상 제물들을 바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 포인트인 1000년을 더 산 사람이 있다라고 하신 부분은,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1000년을 더 산 사람이 없다고 한 것이지 에녹처럼 하늘로 들림 받은 사람까지 포함해서 한 말은 아닙니다. 에녹만 들림 받았나요? 엘리야도 들림 받았습니다. “먹는 날에 죽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이 육신의 죽음을 얘기한 게 아니라 영적인 죽음만 말씀하셨던 것이라면 아무도 죽지 말았어야겠지만, 그 이후로 인간은 영적으로만 아니라 육적으로도 모두 죽어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무슨 근거로 “먹는 날에 죽으리라”고 한 말씀이 단 영적 죽음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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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댓글에 코멘트를 남깁니다.
제 글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구약의 번제, 모든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구약의 행위가 다 의미가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미리 알려주기 위해 구약의 제사 제도가 형성된 것이죠.
제가 말했던 것은 가장 처음의 근본적인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입니다. 거기에서 사실 불필요한 논의가 되겠지만 “예수님이 없다면”이라는 가정이 파생된 것뿐입니다. 원죄뿐만 아니라 자범죄도 예수님께서 해결했습니다. 자범죄 또한 동물의 제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어요. 동가치성에 위배되기 때문이죠. 사람이 범죄했으므로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원죄든 자범죄든 죄의 댓가는 사망이므로…. 결국 구약의 모든 제물로는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에 불과하지요.
제가 영적인 죽음을 말했다고 해서 육신의 죽음을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먹는 그 날 실현된 죽음이 무엇인지를 말했을 뿐입니다. 또한 죽음에는 영적인 죽음, 육신적인 죽음 외에도 다른 죽음이 있습니다. 영원한 멸망입니다. 모든 인류는 이제 마지막 심판을 위해 몸으로 다시 부활할 것이며, 행위에 따라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즉, 죽음은 하나로 끝나지 않아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출발에서 죽 이어집니다.
또 인간의 수명에 대해서 말하자면, 인간의 수명은 노아의 홍수 후 급격하게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어요. 결국 하나님의 뜻은 육체적인 사망을 1천년으로 유예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아담과 하와의 육체가 바로 죽었다면 창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것이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이 자녀를 낳아 세상에서 번성할 수 있게 하셨고, 이를 통해 여자의 “씨”를 보존하신 것입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럼 왜 에녹과 엘리야는 육체가 죽지 않았느냐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죽겠다고 하셨는데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사실 모든 인류를 위해 죽었다가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녹과 엘리야의 죄값도 감당하셨고, 그들을 위해 대신 죽었습니다. 에녹과 엘리야는 바로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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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고 나니 다시 생각나는 것이 있군요. 몇 마디 덧붙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저와는 몇 가지 부분에서 성경을 보는 관점이 다르신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대화를 나누며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사장과 관련해서입니다. 아담이 특별한 지위를 가졌기 때문에 대사장이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속죄 이후로 모든 인류는, 특히 믿는 성도는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구약에서 모세를 통해 제사장 제도가 탄생한 것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계획 속에 포함되는 것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셨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 백성들이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중보자가 되는 것이죠. 물론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두려움을 인정하셨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본 뜻은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장엄함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산에 오르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할 겁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인류가 보게 하셨고, 종국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에서 거룩하게 변화된 인류와 함께 거하실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봐서 구약의 율법(제사 제도, 제사장 제도 등등)은 예표에 불과하며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그 의미가 크게 상실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겁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정하신 다른 하나의 경륜에 속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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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생각이 다르다고 하시는 지는 알수 없지만, 독자님이 여기에 댓글 다신 내용은 저도 동의하는 내용이기에 특별히 제가 답할 부분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표현의 차이가 있어서 생각이 다르다라는 느낌이 드셨을 수도 있고 또 디테일에서 좀 다를 수는 있겠지만, 큰 맥락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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