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죽을 때에’로 번역한 헬라어 ‘apothnēskōn(아포뜨네이스콘)’은 정확하게는 ‘죽음이 임박한 상태, 죽어가는 중’이란 뜻입니다. ‘지팡이’로 번역한 헬라어 ‘rhabdos(라브도스)’는 ‘지팡이, 막대기, 권위의 막대, 홀(scepter:왕권을 상징하는 막대)’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놀랍게도 신약에 총 12번 나옵니다(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뜻하는 1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 단어는 그 단어의 뜻과 어울리는 숫자만큼 등장한다는 걸 수없이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발견할 때마다 여전히 놀랍고, 성경은 사람의 머리로는 쓸 수 없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밀한 책이란 생각을 합니다.
또한 본절에 ‘그 지팡이’라고 되어 있어서 마치 지팡이 앞에 정관사 ‘the’가 붙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헬라어 ‘autou(오토)’는 본절에선 ‘그의(of him)’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의지하여’란 단어는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된 것입니다. 그래서 직역은 ‘그의 지팡이 머리맡에서(epi:on to:the akron:uppermost) 경배하였으며’입니다. 이번에 원어로 번역하다가 늘, ‘야곱이 자기 지팡이 머리에 의지해서 요셉에게 경배했다’고 생각했던 문장이, 어쩌면 ‘야곱이 요셉의 지팡이 머리맡에서 요셉에게 경배했다’란 의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지팡이로 쓰인 ‘라브도스’가 왕의 홀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단어가 요한계시록에서 재림의 주님과 주님의 성도들이 철장으로 다스린다고 할 때 쓰입니다(계 2:27, 11:1, 12:5, 19:15).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들을 축복하고 그의 지팡이 머리맡에서 경배하였으며“
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21절에서 ‘죽을 때에’로 번역된 헬라어와 본절의 ‘임종시에’로 번역된 헬라어는 다른 단어입니다. 본절의 ‘teleutōn(텔레우톤)’은 ‘완성하다, 끝마치다, 죽다’란 뜻의 ‘teleutaó(텔레우타오)’란 어원에서 파생했습니다. 신약에 총 13번 나오는데 모두 ‘죽었다’로 번역되며 본절에선 ‘죽었을 때에(when he died)’란 뜻이기에 ‘임종시에’로 번역한 것은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떠날 것을 말하고’에서 ‘말하고’로 번역된 헬라어는 ‘기억나게 하다, 상기시키다, 기억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mnémoneuó(므네이모뉴오)’에서 파생한 ‘emnēmoneusen(엠네이모뉴센)입니다. 또한 ‘명하였으며’로 번역된 헬라어 ‘entellomai(엔텔로마이)’는 ‘명령하다, 지시를 내리다’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나감에 대해 상기시켰고 자기 뼈들에 대해 명령했느니라(지시를 내렸느니라)“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숨겨’로 번역된 헬라어 ‘ekrybē(에크리베이)’는 피동사로 ‘숨겨졌다’입니다. ‘명령’으로 번역된 헬라어 ‘diatagma(디에태그마)’는 ‘법령, 칙령, 포고령’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에 의해(hypo) 석 달 동안 숨겨졌으니 그들이 그 아이가 아름다운 것을 보았으며 왕의 칙령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dioti)”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장성하여’는 ‘장성하게 되어(megas genomenos)’라고 하는 게 문법에 맞습니다. 또한 ‘공주’로 번역된 단어는 ‘딸’을 의미하는 ‘thygatros(띠가트로스)’ 입니다. ‘칭함 받기를’이라고 해도 되는데 ‘legesthai(레게스따이)’는 ‘불려지다, 불리게 되다(to be called)’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맞는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게 되어 바로의 딸의 아들로 불려지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위 구절은 흠정역에 이미 원어와 문법에 맞게 번역이 되었기에 그대로 가져옵니다.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택하였으며”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본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로 되어 있는 부분은 그냥 ‘그리스도의’입니다. ‘수모’로 번역된 헬라어 ‘oneidismos(오나이디스모스)’는 ‘비난, 비방, 욕을 먹다, 매도당하다’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모욕’이란 표현이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상 주심을’로 번역된 헬라어 ‘misthapodosia(미스때포도시아)’는 어떤 일, 혹은 행동에 대한 ‘대가’를 의미하기에 ‘상과 벌’ 모두에 쓰이는 단어로 ‘보상’이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에 3번 나오는데 모두 히브리서에서 등장합니다(부활 및 영적 완전함을 의미하는 3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바라봄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apoblepó(아포블레포)’는 ‘오직 하나를 집중해서 바라보려고 다른 모든 것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을 의미하기에 ‘주시하다’가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이집트의 보화들보다 그리스도의 모욕을 더 큰 재물로 여기며 그 보상에 주시했기 때문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노함’으로 번역된 헬라어 ‘thumos(뚜모스)’는 ‘격노, 격정, 분노’를 뜻합니다. ‘참았으며’로 번역된 헬라어 ‘kartereó(카르테레오)’는 ‘인내하다, 견디다, 참다’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그는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에굽을 떠났으니 그가 보이지 아니하시는 이를 보는 것처럼 인내했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예식을 정하였으니’란 번역은 잘못된 것입니다. 원어로는 ‘pepoiēken(페포이에이켄)’으로 ‘지켰으니’입니다. ‘장자’로 번역된 헬라어 ‘ta(타) prōtotoka(프로토토카)’는 ‘the firstborn’인데, 한국어로 표현하기가 참 애매합니다. 이 단어는 ‘맏이, 맏배’를 모두 포함하는 단어인데, 한국어에는 사람과 동물의 처음 난 것을 모두 포함해서 부를 수 있는 한 단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장자’로 번역해도 되지만, 출애굽 사건에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의 첫배도 죽임을 당했었기에 그냥 ‘첫째’로 표현하는 게 제일 무난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그는 유월절과 피의 뿌림을 지켰으니 이는 그 첫째들을 멸하는 자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육지 같이’라고 해도 되지만 헬라어 ‘xēras(제이라스) gēs(게이스)’는 ‘마른 땅’이란 표현입니다. ‘시험하다가’로 번역된 헬라어 ‘peira(페이라)’는 ‘시험하다, 시도하다’란 뜻으로 쓰이는데 신약에서 본절과 36절에, 딱 두 번 등장합니다(나눔과 증인을 의미하는 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본절에서는 에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시험하다 죽었고 36절에서는 믿음의 사람들이 조롱당하고 옥에 갇히는 시험을 당했으니 이 단어도 2가 갖는 이중적 의미에 맞게 등장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마른 땅을 건너듯 건넜으나 에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본절에서 특이한 점은 주어가 사람이 아닌 여리고 성벽이란 것입니다. ‘도니’로 번역된 헬라어 ‘kyklōthenta(키클로뗀타)’는 ‘둘러싸여진 후(having been encircled)’란 완료형 수동태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여리고의 성벽은 칠 일 동안 둘러싸여진 후에(포위당한 후에) 무너졌느니라“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평안히’로 번역된 헬라어 ‘eiréné(아이레이네이)’는 ‘평화, 화평’이란 의미입니다. 원어에는 ‘meta(메타) eiréné(아이레이네이)’로 되어 있는데 ‘with peace’, 즉 ‘화평으로’란 의미입니다. ‘영접하였으므로’라고 번역된 헬라어 ‘dexamenē(덱사메네이)’는 ‘받아들이다’란 의미입니다. 또한 ‘순종하지 아니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apeithēsasin(애페이떼이사신)’은 신약에 14번 등장하는 ‘불순종하다’란 뜻의 ‘apeitheó(애피떼오)’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원어와 문법에 충실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정탐꾼들을 화평으로 받아들인 창녀 라합은 불순종한 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본절 그대로도 괜찮지만 ‘및’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te(테)’는 ‘both(둘 다)’란 뜻으로 ‘A뿐만 아니라 B’를 의미합니다. 그 부분만 고치고 빠진 접속사를 더하고 또 없는 단어를 빼서 다시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뿐만 아니라 사무엘 그리고 선지자들에 대해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나라들을 이기기도’로 번역된 ‘katēgōnisanto(카테이고니산토) basileias(바실레이아스)’는 ‘왕국들을 정복했다’입니다. ‘행하기도 하며’로 번역된 ‘ergazomai(에르가드토마히)’는 ‘일하다, 거래하다, 행하다’는 뜻으로 특별히 어떤 수고를 동반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받기도 하며’란 표현은 수동적이지만 헬라어 ‘epitugchanó(에피이퉁카노)’는 ‘어떤 목표를 달성하다, 어떤 목적을 이루다, 취득하다, 얻다’란 의미기에 상당히 능동적입니다. 또한 본절에 쓰인 동사들은 모두 단순 과거형입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왕국들을 정복했으며 의를 행했고 약속들을 이뤘으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고“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세력’으로 번역된 헬라어 ‘dunamis(두나미스)’는 ‘능력, 힘, 권력’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 신약에 총 120번 등장합니다. ‘멸하기도 하며’로 번역한 헬라어 ‘sbennumi(스벤누미)’는 ‘끄다, 억누르다, 좌절시키다, 꺾다, 깨트리다’란 의미입니다.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로 번역된 헬라어 문장은 ‘parembolas(파렘볼라스) eklinan(에클리난) allotriōn(알로트리온)’인데 직역하면 ‘외국군대들을 도망치게 했다’입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의 능력을 꺾기도 하며 칼날들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서 용맹하게 되어 외국군대들을 도망치게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받아들이기도 하며’라고 번역한 헬라어 ‘Elabon(엘라본)은 ‘갖다 혹은 받다’란 뜻의 ‘lambanó(람바노)’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얻고자’로 번역한 ‘tugchanó(퉁카노)’는 ‘맞히다, 특히 과녁을 맞히다’란 뜻으로 ‘어떤 것에 도달하다, 얻다’란 의미로 쓰이며 신약에 총 12번 나옵니다.
‘어떤 이들’로 번역된 헬라어 ‘allos(앨로스)’는 ‘다른, 또 다른, 또 하나, 더’란 의미로 특별히 ‘같은 종류의 하나 더’를 의미합니다.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았다’에서 ‘구차히’란 표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된 단어입니다. 헬라어 ‘apolutrósis(아폴루트로시스)’는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성경에서 ‘구원, 구출, 속량’으로 번역하는데 총 10번 나옵니다(하나님의 완전수 10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또한 ‘원하다’로 번역된 ‘prosdechomai(프로스데코마이)’는 ‘기대하다, 바라다, 기다리다, 받아들이다’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인들은 자기들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았을 뿐만 아니라(de) 또 다른 이들은 더 좋은 부활에 도달하기 위해 풀려나기를 바라지 않고 고문당했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또’라고 번역한 ‘de(데)’는 ‘그리고, 이제, 또한, 뿐만 아니라, 그밖에’란 여러 의미로 쓰입니다. 본절엔 ‘그밖에’로 번역하는 게 좋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다른 접속사로 쓴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시련’으로 번역된 헬라어 ‘peira(페이라)’는 ‘시험하다, 시도하다’란 뜻으로 앞선 29절과 본절에 딱 두 번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밖에 또 다른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과 더불어(eti)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위 구절 그대로도 좋습니다. ‘환난’으로 번역한 헬라어 ‘thlibó(뜰리보)’는 ‘억압당하다, 억눌리다, 환난당하다’란 뜻이기에 ‘환난’으로 써도 되고 ‘억압’으로 써도 됩니다.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감당하지 못했다’로 번역한 ‘ouk(욱) axios(엑시오스)’는 ‘아무 가치가 없다’란 의미입니다. ‘광야’로 번역한 헬라어 ‘erémia(에레미아)’는 ‘외딴곳, 광야’란 뜻으로 ‘사막 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땅’으로 쓰이며 신약에 총 4번 나옵니다(세상을 의미하는 숫자 4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에게 세상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 광야와(사막과)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고(떠돌았고)“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본절에 ‘증거’로 번역된 헬라어는 ‘증언하다, 증명하다’란 뜻의 ‘martureó(마르투레오)’라는 어원에서 파생한 ‘martyrēthentes(마르티레이뗀테스)’로 완료형 수동태입니다. 영어로는 ‘obtained a good report(좋은 평가를 얻다), commended(칭찬받다), gained approval(승인/인정받다)로 번역합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은 다 믿음을 통해(dia) 인증을 얻었으나 그 약속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아니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chōris(코리스) hēmōn(히몬)’은 ‘우리가 없이는(without us, apart from us)’입니다. ‘온전함’으로 번역된 헬라어 ‘teleiōthōsin(텔레이오또신)’은 ‘완성하다, 끝내다, 완벽하다, 완전하다’란 의미의 ‘teleioó(텔라이우)’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못하게’로 번역한 것은 너무 적극적으로 막는 느낌인데, ‘mé(메이)’는 ‘않게, 않도록’이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문법과 원어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음이니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되지(완전하게 되지) 않도록 하려 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