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본절에 ‘이상한’으로 번역된 ‘thaumastos(또마스토스)’는 ‘놀라운, 신기한, 경이로운’이란 의미의 형용사로 특별히 벅찬 감동을 동반한 감탄사입니다. 따라서 안 좋은 뉘앙스를 풍기는 ‘이상한’으로 번역한 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영어로는 ‘wonderful, marvelous’로 번역하는데, 같은 원어가 쓰인 3절엔 또 ‘크고 놀라우시도다‘로 바로 번역했습니다. ‘이적’으로 번역한 헬라어 ‘sémeion(세이미온)’은 ‘표적, 징표, 기적, 징조’ 등을 의미하며 영어로는 사인(sign)입니다. 신약에 총 77번 나오는데, 어떤 것을 입증하고 확증하기 위해 주는 기적적인 증표로 쓰입니다.
요한이 하늘에 나타난 또 다른 이적을 크고 놀랍게 여긴 것은 7천사가 7재앙을 가졌는데, 하나님의 진노를 끝마칠(완성할) 마지막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본절에 ‘재앙’으로 번역된 ‘plégé(플레이게이)’는 신약에 22번 나오는데, 주로 ‘타격, 상처, 매질’로 번역하며 ‘재앙’으로 번역한 건 10번입니다. 요한계시록의 7봉인과 7나팔과 7대접 재앙(타격)은 여호수아서에서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번씩 나팔을 불며 7번 돌되 마지막 7일엔 나팔을 불며 7번 돌고 크게 외치는 것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7봉인 안에 7나팔의 심판이 펼쳐지고 7번째 나팔 안에 있는 7대접 재앙(타격)으로 세상의 왕국은 무너지게 됩니다.
2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유리 바다’란 표현은 성경에 총 3번 나오는데(하나님의 완전수 3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모두 요한계시록에서만 나옵니다(계 4:6, 본절(2)). 계시록 4장 6절에 의하면 이 ‘수정과도 같은 유리 바다’는 하나님의 보좌(왕좌) 앞에 있는 것이며 4 생물과 24장로들이 있는 곳입니다. 욥기에서 하나님은 천지창조 및 자연의 섭리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욥에게 던지시는데, 그중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말씀을 하십니다.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나왔느냐? 하늘의 흰 서리는 누가 생기게 하였느냐? 물들은 돌로 숨긴 것 같이 숨겨져 있고 깊음의 표면은 얼어 있느니라(흠정역:욥 38:29-30). 29 Out of whose womb came the ice? and the hoary frost of heaven, who hath gendered it? 30 The waters are hid as with a stone, and the face of the deep is frozen.“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물들 가운데 ‘궁창(공간)’을 두시고 물과 물을 나누셔서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셨으며 이 궁창을 하늘(공기층 및 우주 공간)이라고 부르셨습니다(창 1:6-8). 이후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을 한곳으로 모으셔서 바다라고 부르시고 땅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창 1:9). 그러니까 창세기에 의하면 하늘 위, 즉 우주 공간 저 윗부분에도 물이 있는 것입니다. 수년 전 과학자들이 우주 너머에 엄청난 양의 물을 발견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때, 창세기 1장에 이미 나오는 내용인데 이걸 이제야 발견했다고 떠드는구나 싶었습니다(그 기사에 대한 내용의 링크를 여기 걸어둡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욥기에 의하면 그 물들은 돌로 숨긴 것같이 숨겨져 있고 ‘깊음의 표면’은 얼어 있습니다. ‘깊음의 표면(face of the deep)’이란 표현은 창세기 1장 2절과 욥기 38장 30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엔 ‘(직역) 흑암이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고 되어 있습니다. 즉, 깊음의 표면이 곧 물들의 표면(수면)임을 알 수 있는데, 욥기 38장 30절에도 ‘돌로 숨긴 것 같이 숨겨진 물들과 얼어 있는 깊음의 표면’이 함께 나온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계시록에 나오는 ‘수정 같은 유리 바다와 같은(계 4:6 like a sea of glass like crystal)’ 것은 다름 아닌 창세기 1장 2절과 욥기 38장 30절에 나오는 얼어 있는 깊음의 표면이며 하나님이 계신 3천층과 2천층을 분리하는 수정과 같은 얼음(보석도 돌이라는 의미에서는 욥기의 돌로 숨겨진 물들)인 것입니다. 이 얼음은 수정처럼 투명하고 맑기 때문에 ‘유리 바다와 같다(계 4:6)’란 표현을 듣습니다.
그런데 본절의 유리 바다에는 계시록 4장 6절에는 없던 불이 섞여 있습니다. 본절의 ‘불’로 번역된 ‘pur(푸어)’는 ‘성령의 불, 심판의 불, 지옥 불’을 의미하며 신약에 총 74번 나옵니다. 이 단어는 요한계시록에서만 26번 나오는데, 나오는 구절을 모두 읽어보면, ‘하나님의 불’, 특별히 하나님 앞에 있는 제단의 불이며 심판의 불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 4장은 아직 7봉인이 열리기 전이기에 유리 바다에 불이 섞여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5장은 7봉인이 열렸고 7나팔의 심판이 임하는 중이기에 환란 성도들이 서 있는 유리 바다엔 3천층 아래로 쏟아지는 심판의 불이 섞여 있습니다.
2절에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벗어난’은 개역개정이 삽입한 것이고, 원어에는 그냥 ‘이긴 자들’입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로 되어 있는 부분도, ‘유리 바다 가에 서서’가 아니라 그냥 ‘유리 바다에 서서’입니다. 이들이 갖고 찬양하는 악기는 14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뤘던 ‘수금’ 즉 ‘십현금’입니다(이 악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요한 계시록 14장 분석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14장에 나온 144000명이 부른 ‘새 노래’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들 외에는 능히 배울 자가 없다고 기록합니다. 그렇지만 15장에 나오는 환란 성도들이 부른 노래는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란 출애굽기 15장에서 이스라엘은 무사히 홍해를 건너고, 그들을 쫓아오던 에굽 군대는 수장된 후, 그 크신 구원을 찬양한 노래입니다. 그리고 어린 양의 노래는 이어지는 3절과 4절에 그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구절에서 노래의 내용 부분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위 찬양의 내용은 주로 시편의 내용들을 상기시키는 내용입니다(시 22:23-26, 86:8-9, 111:2, 119:142, 139:14, 145:17).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다윗이 부른 시편 노래가 어린 양의 노래와 닮아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5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환란 성도들까지 모두 모인 후에는 하늘에 ‘증거(증언) 장막의 성전(temple of the tabernacle of the testimony)’이 열렸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장막은 지난번에도 적었듯이 ‘성막’입니다. 모세의 때에는 성막이 있었고 솔로몬 이후로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모세의 성막이 성전으로 불렸던 몇 안 되는 경우도 있고(삼상 1:9, 3:3; 시 5:7), 거꾸로 성전이 성막으로 불렸던 경우도 있습니다(렘 10:20; 애 2:6). 그러나 ‘증거 성막의 성전‘이란 표현처럼 성막과 성전이 같이 쓰인 경우는 본절이 유일합니다. 아마도 구약 성도(성막)와 신약 성도(성전)가 모두 하늘에 모여 거룩한 집합체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편 성막이 ‘증거(증언)의 성막(tabernacle of testimony)’으로 불린 경우는 성경에 총 5번 나옵니다(은혜와 율법의 수 5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다섯 구절들을 모두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맨 처음 성막이 ‘증거(증언)의 성막’으로 불린 구절은(출 38:21) 성막이 완성된 후 성막을 짓는 데 필요한 각 재료(금, 은, 놋)에 들었던 비용과 회중에서 걷은 헌금을 계수하면서 입니다(출 38:21-31).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나오는 구절은 애굽 땅에서 나온 지 둘째 해 둘째 달 첫날이 됐을 때, 이스라엘 회중에서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모든 남자를 각 지파별로 계수하고 난 후입니다(민 1:50, 53). 이때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계수에 들지 않았고 대신 요셉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로 나뉘어 계수됩니다. 계수된 이스라엘은 진영별로 성막 주위에 진을 쳤으며 레위인들은 증거(증언)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의 회중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게 했습니다(민 1:1-53). 네 번째로 나오는 구절은(민 10:11)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이 되어 구름이 증거(증언)의 성막에서 떠오르자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를 출발해 가나안을 향해 바란 광야로 가는 장면입니다(민 10:1-12). 그리고 다섯 번째로 나오는 구절은 본절이며, 신약에서는 유일하게 나오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본절에서 하늘에 증거의 성막이 열렸다는 의미는 이제 모든 성도들이 주님께로 모여 계수되었고 하나님의 군대로 진을 쳤으며 세상을 심판하러 내려올 채비를 마쳤다는 것입니다.
6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이제 하나님의 의로 완전하게 된 7교회의 7천사가 7재앙을 들고 성전에서 나옵니다. 본절에 나오는 7천사들이 7교회의 천사들이라는 사실은 이들이 입고 있는 세마포 옷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본절에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이란 표현은 의역이고 직역은 ‘정결하고(katharos) 빛나는(lampros) 세마포 옷’입니다. 이와 같은 표현이 요한 계시록 19장 8절에 나오는데, 이 옷은 어린 양의 아내가 입은 옷이며 성도들의 의(또는 의로운 행위)를 상징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lampros) 깨끗한(katharos:정결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의:dikaióma)이로다 하더라(계 19:7-8)”
이들은 세마포 옷 위에 ‘금띠’를 띠었는데, ‘금띠’는 성경을 통틀어 두 번 밖에 나오지 않으며, 한 번은 본절에서 신부인 교회가, 한 번은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착용하셨습니다(증언 및 증인을 뜻하는 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계 1:13)”
‘가슴에 금띠를 띠고’에서 ‘띠’로 번역된 ‘zóné(조네이)’는 ‘허리띠’ 즉 ‘belt’를 의미하며 신약에 총 8번 나옵니다(8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허리띠는 우리의 옷을 단정히 잡아주고 성실히 일할 수 있도록 동여매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왕으로 오실 우리 주님은 공의와 성실로 허리를 동여매는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신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1-5)”
7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8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본절의 ‘대접’은 ‘phialé(피알레이)’인데, 얕고 납작한 대접을 말합니다. 이 단어는 요한계시록에서만 12번 나오는데 모두 재앙을 담고 있습니다(계 5:8, 15:7, 16:1, 2, 3, 4, 8, 10, 12, 17, 17:1, 21:9).
이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서 7천사가 7재앙을 다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서 성막이나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장면은 본절을 포함해 성경에 총 3번 나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막과 그 안에 들어가는 모든 기구를 완성한 모세는 출애굽 한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고 모든 기구를 성막 안에 들여놓습니다. 그러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여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출 40:34-35).
이후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식을 성대히 치르며 노래하는 레위 사람들이 찬송할 때도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해서 제사장들이 그 구름 때문에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며(대하 5:13-14)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함으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했습니다(대하 7:1-2).
본절에서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가 모두 모여 하늘에 ‘증거의 성막의 성전’이 완성되고 세워지게 되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 능히 들어갈 자가 없게 됩니다. 성경엔 그리스도의 성도가 함께 성전으로,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지고 있다는 구절도(고전 3:9; 엡 2:21, 22) 3번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하나님의 건축물:God’s building)이니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9-11)“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하나님의 건축물:God’s building)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builded together) 가느니라(엡 2:20-22)”
개역개정에 ‘하나님의 집’ 또는 ‘하나님의 건물’로 번역된 ‘God’s building‘은 ‘oikodomé(오이코도메)’인데 신약에 총 18번 나옵니다(단어를 클릭하면 이 단어가 등장하는 모든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구절을 읽어보면, 물리적인 ‘하나님의 성전 건축물‘을 의미하든가 ‘교회의 몸을 세운다’는 의미로 쓰였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성막이 완공되어 세워졌을 때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가득 찼었고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졌을 때도 여호와의 영광의 구름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본절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의 연기가 가득해서 들어가지 못합니다. 본절에서 ‘연기’로 쓰인 헬라어는 ‘kapnos(카프노스)’인데, 신약에 총 13번 나오며 계시록에서만 12번 나옵니다. 계시록 아닌 부분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사도행전 구절은 사도 베드로가 요엘서를 인용해서 다음같이 말하는 장면입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이적들을 보이며 아래로 땅에서는 표적들을 보이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행 2:19).“
이 구절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가져오실 심판과 구원에 대한 것인데, ‘하늘에서는 이적들을 보이며’에서 이적들은 terata(테라타)’로 신약에 11번 나오고 영어로는 ‘wonders’입니다. 또 ‘땅에서는 표적들을 보이리니’에서 ‘표적’은 이미 몇 번 다룬 사인(sign)을 의미하는 ‘sémeion(세이미온)’입니다. 즉, 이 구절은 요한계시록 후반부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펼쳐질 ‘피와 불과 연기’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 ‘연기(kapnos)’가 쓰인 요한계시록의 12구절을 보면 분향단에서 올라오는 연기(성도들의 기도)로 묘사된 계시록 8장 4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심판에 의한 불의 연기로 묘사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도 결국 원수를 갚아달라는 신원의 기도이니 분향단에서 올라온 연기조차도 심판의 의미를 담고 있긴 합니다. 따라서 본절의 ‘증거 성막의 성전’이 구름이 아닌 연기로 가득했던 이유는 바벨론과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오랜 예언이 비로소 성취되는 순간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 즉 구원과 심판의 역사가 성취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국 방문중 왼쪽눈 주위에 대상포진이 나서 씨름하다 왔습니다.
늦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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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고생하셨군요. 소식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육간에 강건하시고 속히 나으시길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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