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장 원어/영어 분석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이란 표현은 성경에 총 4번 나옵니다(세상 및 창조물을 의미하는 4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관련구절들은 중요한 내용이기에 좀 길더라도 가져오면 다음과 같으니 내용을 먼저 찬찬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사 65:17-25)”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 당할 자가 많으리니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에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 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사 66:15-24)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6-13)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위 구절들은 천년왕국의 시작과 끝, 그리고 영원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은 창조 이후(인간 창조) 6000년이 되는 시점입니다. 앞으로 올 마지막 천년인 천년왕국 때에는 창세기 때의 첫 1000년처럼 생명이 연장되고 뱀은 흙을 먹고 모든 짐승은 풀을 먹을 것입니다. 뱀이 흙을 먹게 될 것이란 저주는 창세기 3장에서 예언된 말씀이지만 그 예언의 성취로 뱀이 정말 흙을 먹게 되는 것은 천년왕국 때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지금의 뱀들은 흙을 먹지는 않습니다). 또한 태초의 에덴동산이 그랬듯이, 영적 존재들과 사람들이 더불어 살 것이며 주 예수그리스도와 교회가 땅을 통치하게 됩니다. 이후 천년이 거의 다 찰 무렵에 사탄이 반란을 일으켜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모여든 무리가 바닷가의 모래와 같을 것이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모두 불사를 것입니다(계 20:7-10). 베드로후서의 기록처럼 예전의 세상은 물로 멸망당했지만 지금의 하늘과 땅은 동일한 말씀으로 불로 심판하기 위해 보존되어 있습니다. 천년 왕국이 끝나는 7천 년이 되었을 때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모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이지만 우리는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더 이상 바다가 없는데, 그것은 마지막 때에 있을 불의 심판으로 바다도 삼킴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모든 숨이 있는 육체는 심판받아 사망했지만, 바다에 있는 생물들만큼은 죽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7000년이 차면 불의 심판으로 바다도 불로 멸해질 것이며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게 될 것입니다(계 20:13).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은 성경에 총 4번 등장하지만, ‘새 예루살렘’에 대한 약속만큼은 요한계시록에서 유일하게 나오며 본절과 빌라델피아 교회에 대한 약속에 등장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7-12)”

전에도 적었듯이, ‘곡과 마곡’이란 표현은 곡이란 통치자와 마곡이란 나라를 일컫는 것으로 왕과 나라가 동일시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 즉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런데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가 영원히 거할 새 예루살렘도 2절에 보면 신랑을 위해 단장한 신부에 비유되며 신부와 동일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은 천년왕국(7일째, 7000년-하루가 천년)의 시작과 함께 일어나고 있지만, ‘새 예루살렘’까지 완성되는 시기는 7000년이 다 찬 8000년이 되는 시작점입니다. 8이란 숫자는 새로운 시작, 거듭남, 새 창조를 의미하는 숫자이기에 8000년의 시작점이 영원 세계를 여는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의 완성을 열기에 매우 적합합니다. 5절에서도 하나님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8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3절에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라고 되어 있는 부분은 전에도 얘기했듯이 ‘성막’을 뜻하는 ‘skēnē(스케네)’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의 몸을 성전이라고(고전 6:19) 하며 살아 있는 돌들로서 함께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있다(벧전 2:5)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3장 6절에 ‘하늘에 거하는 자들’이 곧 ‘하나님의 성막’으로 불리는 걸 볼 수 있습니다(and the tabernacle of Him those in heaven dwelling(영어 직역, 헬라어 원본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함께 세워졌기(엡 2:22)” 때문입니다.

계시록 7장 9-15절에 보면 6번째 봉인이 열린 후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능히 셀수 없이 많은 무리들이 큰 환란에서 나와 하늘의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영광을 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게 되며 쳔년왕국 동안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며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성막(개역개정은 장막으로 번역)’을 치십니다. 이 헬라어 ‘skénoó(스케누)’는 성경에 총 5번 나오는데, ‘장막 또는 성막’이란 명사 ’skéné(스케네)’에서 온 동사입니다. 따라서 영어 성경은 ‘거하다(dwell)’로 번역했습니다(요 1:14; 계 7:15, 12:12, 13:6, 21:3). 이 ‘skénoó(스케누)’가 쓰인 5구절은 하나님의 임재를 단계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말씀이신 예수님은 육신이 되어 ‘땅’ 가운데 홀로 스케누(성막치다, 거하다)하셨습니다(요 1:14). 두 번째 단계에서는 승천하신 ‘하늘’에서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성도들 가운데 스케누(성막치다, 거하다)하십니다(본절). 이에 하늘에서 마귀는 쫓겨나고 하늘에 스케누(성막치다, 거하다)한 자들은 즐거워할 것이지만 땅과 바다에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계 12:12). 42달 동안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받은 짐승은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고 그의 이름과 그의 성막(스케네) 곧 하늘에 스케누(성막치다, 거하다)한 자들을 비방합니다(계 13:6). 이후 천년왕국이 지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때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세 번째 단계에서 주님은 신부인 성도들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만국 백성과 함게 스케누(성막, 거하다)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란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부활 및 휴거해서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진 성도들, 즉 하나님의 천사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게 될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부활도 영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7형제가 차례대로 죽어 그들 모두와 순차적으로 결혼하게 된 한 여자가 부활의 때에는 과연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는 황당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막 12:24-25)”

즉, 첫째 부활에 동참해서 예수님과 함께 땅으로 재림하게 되는 지난 6000년간의 성도들은 천사의 몸을 입고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1000년간 통치하게 됩니다. 이후 천년왕국 끝에 있게 되는 사탄의 반란으로 하나님을 대적했던 무리는 불의 심판을 받게 되고 천년왕국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게 될 것인데, 천사의 몸은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하는 데(산채로 옮겨진 에녹, 엘리야 및 휴거하게 되는 특정 세대의 신약 성도들 외에는), 천년 왕국에서 영원 세계로 넘어올 백성들은 죽은 적이 없기에 부활할 일도 없이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4-26절에 보면 땅의 왕들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갖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이들의 몸도 지금 부패한 죄 가운데 태어난 사람들의 몸과는 다른 완전한 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몸이 어떠하든, 6000년을 마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재림하는 성도들의 몸과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울이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제도 있으니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의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 15:40-41)’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 및 새 예루살렘까지 사람들과 함께 거하는 영원 세계에서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해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않으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6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6절에 나오는 ‘알파와 오메가’란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만 총 4번 나옵니다(계1:8; 1:11, 본절, 22:13). 그리고 ‘처음과 마지막’ 즉, ‘시작과 끝(archē kai telos)’이란 표현은 총 3번 나옵니다(계1:8, 21:6, 22:13).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의 시작이며 새 창조의 마무리니다. 본문의 약속은 특히 새 예루살렘 성, 곧 교회인 신부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이기는 자’에게 상속으로 주실 ‘생명수 샘물’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는 표현은 3절에 나오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란 표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표현으로 ‘이기는 자(계 2:7, 11, 17, 2:26, 3:5, 12, 21, 본절)’는 시온이 낳은 한 사내아이(계 12:1-5)가 상징하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도 천사가 된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창 6:2, 4; 욥 1:6, 2:1, 38:7; 요 1:12; 롬 8:14, 19; 빌 2:15; 요일 3:1, 2).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에 대한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면, 창세기에서는 사람들의 딸들을 취하는 일로 하나님을 진노케 했었고, 욥기에서는 천지창조 때 기뻐 외쳤으며 여호와 앞에 주기적으로 정해진 날에 나타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 즉, 천사들이 되리라고 하셨으며(요 1:12) 로마서에서는 하나님의 영에 인도함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모든 피조물이 이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또한 주를 믿는 성도들은 흠이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세상의 빛들로 나타날 것이며(빌 2:15)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된 것이되 세상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이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지만 주님이 나타나실 때 이들도 주님과 같이 될 것이며 그분의 참모습 그대로 보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요일 3장 1-2).

이들이 상속으로 받게 될 생명수 샘물은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하고 큰 환란에서 나오는 능히 셀 수 없이 많은 무리에게(환란 성도들) 약속하신 것이기도 하며(계 7:9-15),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서 살게 될 모든 사람에게 약속하시는 것입니다(계 22장).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셨으며 나는 생명의 빵이요,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자는 절대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절대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마 5:6; 요 6:35).

하나님은 이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본절에 나오는 ‘생명수(water of life:hudór tēs zóé’)’란 표현은 총 4번 나옵니다(요 4:14; 계 21:6, 22:1, 17). 한국어로는 같은 ‘생명수’이지만 영어와 헬라어로는 표현이 약간 다른 ‘living water(zaó hudór)’란 표현은 성경에 8번 나와서(아 4:15; 렘 2:13, 17:13, 슥 14:8, 요 4:10, 11, 7:38, 계 7:17) 총 12번이 되는 셈입니다(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의미하는 1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아가서에서 신랑은 신부에게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라고 합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생수의 샘인 나를 버렸다고 탄식하십니다(렘 2:13, 17:13). 스가랴는 마지막 때에 있을 일들을 다루면서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앞 바다로 절반은 뒤 바다로 흐를 것이며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럴 것이라고 합니다(슥 14:8). 또한 여호와께서 온 땅을 다스리는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한 주만 계시며 그분의 이름도 하나만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슥 14:9).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생수를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라고 하셨으며 유대인들에게도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요 4:10, 11, 14, 7:38). 그리고 주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계 21:6)”고 약속하셨고 계시록 마지막 장인 22장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이 있고(계 22:1), 성령과 신부가 오라고 하면서 듣는 자, 목마른 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고 초대합니다(계 22:17).

8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8절은 앞에 나오는 사람들과 반대되는 영원히 불못에 던져질 둘째 사망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본절의 ‘두려워하는 자들’에서 ‘자들’은 삽입된 단어이고 원어는 그냥 ‘두려워하고’입니다. ‘두려워하다’로 번역한 ‘deilos(다일로스)’는 ‘비겁한, 두려워하는’이란 뜻인데 이 단어가 쓰인 다른 구절들을 살펴보면 특별히 ‘믿음이 없거나, 적은 데서 오는 비겁함 내지는 두려움인 걸 알 수 있으며(마 8:26; 막 4:40), 본절에서도 뒤에 따라오는 ‘믿지 아니하며’가 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흉악한 자들’로 번역한 헬라어 ‘ebdelygmenois(엡델리그메노이스)’는 ‘가증스러워진(having become abominable)’이란 의미이며 역시 뒤에 따라오는 ‘살인자’들을 수식하는 단어입니다.

‘음행하는 자들’로 번역한 ‘pornois(포르노이스)’는 ‘pornos(포르노스)’에서 파생한 단어인데 신약에 10번 나옵니다(하나님의 완전 수 10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간음하는 남자 또는 남창’을 의미하며(고전 5:9, 10, 11, 6:9; 엡 5:5; 딤전 1:10; 히 12:16, 13:4; 계 21:8, 본절) ‘음행하는 여자 및 창녀’를 뜻하는 헬라어 ‘porné(포르네이)’는 신약에 총 12번 나옵니다(마 21:31, 32; 눅 15:30; 고전 6:15, 16; 히 11:31; 약 2:25; 계 17:1, 5, 15, 16, 19:2). 헬라어로는 이처럼 성별이 뚜렷이 구분이 되어 있지만 영어든 한국어든, 번역본으로는 남녀 구별이 사라졌습니다. 어찌 됐거나 본절에 나오는 ‘음행하는 자들’은 특별히 소돔과 고모라에 있던 남자면서 같은 남자와 음행하려고 했던 부류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점술가’로 번역된 헬라어는 마법사를 의미하는 ‘pharmakois(파마코이스)’, 영어로는 sorcerer입니다. 그러니까 독약이나 약을 제조하는 마술사를 의미하며 약국을 의미하는 영어 ‘pharmacy’나 제약을 의미하는 ‘pharmaceutical’이 여기서 온 단어입니다. 그리고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에서 거짓말로 쓰인 헬라어 ‘pseudés(프쑤데스)’는 성경에 총 3번 나오는데 특별히 거짓 증언하는 것을 말하며(행 6:13), 거짓 사도들처럼 사이비 교주들을 의미합니다(계 2:2). 이처럼 ‘pseudés(프쑤데스)’는 ‘거짓, 가짜, 사이비, 속임수’를 의미하는데 요즘도 ‘pseudo-science(쑤도-싸이언쓰) 즉, 사이비 과학 같은 단어에 쓰입니다. 이런 자들이 자신들에게 걸맞는 거짓 선지자와 짐승, 그리고 거짓의 아비인 사탄이 있는 불못으로 던져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바벨론의 멸망을 요한에게 보여준 천사도 7대접의 심판을 가진 천사였고(계 17:1)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보여주는 천사도 마지막 재앙을 가득 담은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입니다. 이 천사는 성령으로 요한을 거대하고 높은 산으로 데려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줍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곡과 마곡’은 곡이란 통치자와 마곡이란 나라를 일컫는 것으로 왕과 나라가 동일시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 즉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런데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가 영원히 거할 새 예루살렘도 신랑을 위해 단장한 신부에 비유되며 신부와 동일시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즉 신령한 집으로 함께 세워졌기(엡 2:22; 벧전 2:5)”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 영원히 거할 처소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투명합니다. ‘벽옥’은 ‘iaspis(제스피스)’로 영어로는 ‘jasper’입니다. 반투명한 값지고 귀한 보석인데 전체 성경에 총 7번 등장합니다(하나님의 완전 수 7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Jasper stone이 등장하는 7구절들을 읽어보면 제사장의 흉패에 물린 보석 중 하나였고(출 28:20, 39:13), 두로 왕에 비유된 사단 마귀를 장식했던 보석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겔 28:13). 또한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출현과 연관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한 성 예루사렘의 빛이며(계 21:11), 새 예루살렘의 벽이 Jasper stone(벽옥)으로 되어 있고(계 21:18), 12 기초석 중 첫 번째 기초석 역시 Jasper stone(벽옥)입니다(계 21:19). ‘벽옥’이 어떤 보석인가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여러 색이 얼룩진 보석으로 붉은색, 노란색, 고동색 또는 초록색이며 아주 희귀하게 파란색을 띠기도 한다고 합니다. 가장 흔한 색은 철의 함유량이 많아 붉은색이라고 합니다.

본절에 나오는 ‘수정 같이 맑더라’로 번역된 헬라어는 krustallizó(크루스탈리드조)인데 신약에 딱 한 번 나옵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 두 번 등장하는 ‘krustallos(크루스탈로스)’에서 파생했으며 영어로는 crystal입니다(계 4:6, 22:1). 보좌 앞에 있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수정과 같은 생명수의 강입니다.

이 성에는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스라엘 자손 12지파의 이름들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12 기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 양의 12사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이처럼 새 예루살렘은 구약과 신약의 모든 성도로 구성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5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17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본절에서 ‘갈대’로 번역한 헬라어 ‘Kalamos(칼라모스)’는 신약에 12번 나오는데(마 11:7, 12:20, 27:29, 30, 48; 막 15:19, 36; 눅 7:24; 요3 1:13; 계 11:1, 21:15, 16), 성경 전체에서 ‘갈대(reed)’를 찾게 되면 총 44번 나옵니다. 이 44구절을 읽다 보면 의외의 정보를 얻게 되는데, 첫째, 갈대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갈대는 이스라엘(왕상 14:15), 그리고 에굽에(왕하 18:21; 사36:6; 겔 29:6) 비유됐습니다. 하나님은 특히 에굽을 ‘상한 갈대 지팡이’라고 하십니다. 즉 사람의 눈에는 철통같아 보이는 에굽이란 나라의 통치권은 하나님 앞에서는 상한 갈대 지팡이처럼 덧없고 부질없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의 조상들에게 주신 좋은 땅에서 뽑아 그들을 너머로 흩으시리니 그들이 아세라 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음이니라(왕상 14:15)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왕하 18:21)”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사 36:6)”

애굽의 모든 주민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하였느니라(겔 29:6-7)”

둘째, 줄자처럼 하나님의 성전과 유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 도성을 재는데 사용됩니다(겔 40:3, 5(3), 6(2), 7(3), 8, 41:8, 42:16(3), 17(2), 18(2), 19(2), 20, 45:1, 48:8; 계 11:1, 21:15, 16).

나를 데리시고 거기에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가지고 문에 있더니(겔 40:3)”

에스겔 40장 3절에 나오는 ‘측량하는 장대’로 번역한 단어가 ‘measuring reed’인데, 본절과 같은 단어이며 히브리어로 ‘qaneh(콰네)’입니다. 구약에 총 62번 나오는 단어로 ‘줄기, 갈대’를 의미하며 특히 성소에 있는 금 등잔대의 7줄기에 쓰인 중요한 단어입니다(단어를 누르시면 그 단어가 등장하는 모든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측량하는 갈대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도성에 있는 성전 벽부터 성전 모든 구석구석을 재게 하십니다(겔 40장, 41장, 42장). 또한 기업으로 받을 땅에서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구별해서 재도록 하시는데(겔 45:1), 이 땅은 성소가 있을 곳이며 성소에서 수종 드는 제사장들의 집과 레위 사람들 그리고 왕이 거주할 도성입니다(겔 45장). 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은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 또는 ‘막대 같은 갈대’로 천년왕국 때 있을 성전을 재게 하시고, 천년왕국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했을 때에는 새 예루살렘 도성을 ‘측량하는 갈대(measuring reed)로 재게 하십니다(계 11:1, 21:15, 16).

이 성은 네모반듯하며 길이와 너비가 같습니다. 즉, 정사각형 모양의 Cube(큐브) 형태입니다. 그 성의 한 면은 12,000 스다디온인데 약 2,200킬로미터가 됩니다. 이 글을 쓰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몇 킬로미터인가 찾아보니 320킬로미터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크기인지 대충 감이 오지만, 그럼 미국 동부에 있는 보스턴에서 서부에 있는 LA까지는 몇 킬로미터인가 찾아보니 4170킬로미터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은 미국의 반이 좀 넘는 크기인 셈입니다.

또한 규빗으로는 144규빗인데, 노아의 홍수 때 지은 방주의 규격은 300 규빗, 50 규빗, 30 규빗(창 6:15)으로, 총 450,000 규빗의 공간이었습니다. 노아의 가족과 수많은 짐승을 심판의 물에서 보호해 주고 구원해 준 이 공간은 은혜의 수 5의 5승에 144를 곱한 숫자입니다(55 X 144 = 450,000).

성경에서 ‘144(hundred forty four)’를 찾아보게 되면 총 5번 나옵니다. 신약에서는 4번 모두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며(계 7:4, 14:1, 3, 21:17), 구약에서는 사단이 일으킨 시험으로 엄청난 환란을 통과하고 승리하게 되는 욥에게 유일하게 한번 쓰입니다(욥 42:16). 욥이 환란을 겪은 후에도 140년을 더 살고 4대째까지 자손들을 보았다는 부분입니다. “After this lived Job an hundred and forty years, and saw his sons, and his sons’ sons, even four generations(욥 42:16). 신약에 나오는 ‘144(hundred forty four)’는 마지막 때에 인침을 받는 144,000명에 관한 3 구절에서 나오고 나머지 한번은 본절의 새 예루살렘의 성벽을 잰 수입니다.

18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18절에 보면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는 부분이 있는데, 수년 전 디스커버리 체널을 보다가 100퍼센트 순도인 금은 투명하다는 내용을 듣고 요한계시록을 떠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얼마나 성경 기록이 진실이며 사실인가를 생각했던 순간입니다. 예루살렘의 기초석인 12개의 보석은 대제사장이 매는 흉패에 물린 12개의 보석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이 보석들과 대제사장의 흉패에 물린 보석들을 일일이 대조해 봤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사장의 흉패에 물린 보석들은 히브리어로 쓰였고,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은 헬라어로 쓰인 데다가, 각 단어가 의미하는 보석이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아서 번역가들이 조금씩 다른 보석으로 번역했기 때문에 정확한 매치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21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이 성의 열두 문은 열두 개의 진주로 되어 있는데 한 문이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성의 길도 ‘맑은 유리’와 같은 정금입니다. 헬라어로는 ‘diaugazo(디아우가드조)’, 훤히 비치다, 밝게 빛나다, 투명하다는 의미입니다. 천년왕국 때만 해도 성전이 있고, 예수님과 함께 땅으로 재림한 성도들이 성전에서 주를 섬기지만, 영원 세계가 시작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성전이 더 이상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성전이기 때문이며 그 성엔 해나 달도 비칠 필요가 없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등불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등불’로 쓰인 ‘luchnos(루크노스)’는 특별히 ‘램프’를 의미하는데, 나오는 14구절을 모두 살펴보면 예수님과 교회를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마 5:15, 6:22; 막 4:21; 눅 8:16, 11:33, 34, 36, 12:35; 요 5:35; 벧후 1:19).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성령의 7 등불은 한국어나 영어로는 같지만 원어로는 다른 ‘lampas(람파스)’입니다. 이 단어는 9번 나오는데, 신랑을 맞이하러 나간 10 처녀가 들고 있던 등불이며 요한계시록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7 등불에 쓰이는데, ‘횃불(torch)’을 의미합니다.

이 두 단어를 특별히 구분 짓지 않고 영어나 한국어는 모두 ‘등불(lamp)’로 번역했다는 게 아쉽습니다. 성경은 어떤 단어 하나도 그냥 적은 게 없기 때문입니다. ‘램프’인 ‘luchnos(루크노스)’가 쓰인 구절들과 ‘횃불’인 ‘lampas(람파스)’가 쓰인 구절들을 읽어보면, 왜 램프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비유가 됐고, 횃불은 성령에 비유가 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램프는 불을 유리와 같은 통에 넣은 것이라면 횃불은 그냥 불만 있습니다. 즉, 몸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유리통이 있는 램프에 비유됐다면 영이신 성령은 횃불에 비유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23절에서 해와 달이 비칠 필요가 없어진 부분을 좀 더 설명하기 위해 잠시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에 대한 주요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는데, 첫째 날의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1-5절)”

천지창조의 내용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땅은 이미 있었지만,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의 물 가운데 덮여있는 상태로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를 운행하십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 1절의 천지 창조는 혼돈과 암흑의 물 밑에 있던 땅을 재정비하고 궁창,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공간을 만드신 부분부터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과학자들이 지구의 나이를 계산해 보면 수십억 년 됐다고 하면서 성경이 창조 이후 인간 역사를 6000년이라고 하기에 틀렸다고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을 유심히 읽어보면, 땅을 창조한 기록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땅은 이미 있었고 물과 물을 나눠 궁창, 즉 하늘을 만드시는 장면부터 펼쳐진다는 사실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다 즉 비어있는 가운데 흑암의 물 밑에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빛을 부르십니다. 이에 빛이 생성되자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어 첫째 날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가지 또 기억해야 할 점은 해와 달과 별은 넷째 날이 되어서야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째, 여기서 나오는 빛과 어둠은 해와 달과 별이 주는 빛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우리가 생각하는 해를 기준으로 한 저녁과 아침의 하루 개념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시 90:2-4)”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천년이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입니다. 원어로는 ‘밤의 한 시각(ashmoreth)’입니다. 또한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벧후 3:8)”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날(day)’ 하면 하루, 즉 24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날’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Yom(욤)’은 복수형입니다. 히브리어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하루’를 의미하는 ‘날’에 대한 개념이 없이 항상 복수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 ‘첫째 날’은 실은 ‘첫 번째 날들’이란 의미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하루’는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을 넷째 날에 창조하시면서 천년이 하루와 같은 하나님의 ‘날들’을 인간의 ‘하루’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마치 에스겔에게 유다와 이스라엘의 죄를 담당하게 하실 때 1년을 하루로 쳐서 상징적으로 짊어지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일곱 기간의 날들’로 구분되어 행해진 창조 역사를 우리가 아는 해와 달을 기준으로 한 7일로 상징하게 하셔서 7일째 되는 날엔 안식일을 지킬 것을 지정해 주신 것입니다(출 20장).

그렇다면 아직 해와 달과 별이 만들어지기 전에 있던 첫째 날의 이 빛은 무엇입니까? 이것 역시 신약에서 조명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1-5)”

요한이 여기서 얘기하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고 지은 것이 하나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된 것이 없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고 증거합니다. 이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고 요한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첫째 날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통해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 사역이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날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십니다. 이 궁창은 넷째 날의 기사를 읽어보면 다름 아닌 우주 공간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의하면 우주 저 끝에도 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십 년 전에서야 실제로 과학자들은 우주 끝에 있는 많은 양의 물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성경엔 이미 적혀 있었던 사실입니다.

이어 셋째 날엔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을 한 곳에 모이게 하시고 뭍이 드러나게 하셔서 물을 바다라고 부르시고 뭍을 땅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땅에는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셋째 날이기에 아직 해와 달과 별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땅에서 이런저런 종류의 풀과 채소와 나무가 날 수 있었다는 것은, 창세기 1장 3절에 나온 빛으로 땅은 이미 충분한 생명을 공급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새 예루살렘에 해나 달의 비침이 필요치 않았다는 것은, 창세 때처럼 돌아간 상태란 걸 알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치던 그 상태로 돌아간 것입니다.

24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이에 만국이 그 빛, 즉 하나님과 어린 양이 주시는 생명의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며 땅의 왕들은 자기 영광을 갖고 새 예루살렘 성을 들어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곳엔 더 이상 밤이 없기에  늘 낮이고 늘 문을 열어놓은 상태로 둡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속된 것’, 즉 ‘koinos(코이노스)’한 것은 결코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데, ‘koinos(코이노스)’는 ‘부정하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레위기에 나오는 정결법을 기준으로 ‘정하다’ ‘부정하다’를 나눌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또한 가증한 일과 거짓말하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는데, 이 두 가지 단어는 앞에 8절에서 설명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갑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이란 표현은 성경에 두 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본절과 요한계시록 13장 8절인데 다음과 같습니다(증언 및 증인을 의미하는 숫자 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 13:8)”

     누구든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은 짐승에게 미혹되어 경배하며 둘째 사망인 불못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천년 왕국이 지나고 영원 세계가 펼쳐지기 전에 있을 백보좌의 심판이 시작되는 기록을 보면, 보좌 앞에 책들이 펼쳐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펼쳐져 있는데 곧 ‘생명책’입니다(계 20:11-12). 따라서 이 ‘생명책’은 다름 아닌 ‘어린양의 생명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책들과는 ‘다른 책’이 ‘어린 양의 생명책’일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릴 대신해서 죽임당한 어린양의 피에 생명이 있으며 죄는 오직 피로만 속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레 17:11). 그 책엔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신 새 언약의 피를 마시고 생명을 얻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으니 ‘생명책’이라 불리는 게 타당합니다(마 26:28; 막 14:24; 눅 22:20; 요 6:53-54).

마지막 때에 땅에서 대환란을 통과하면서 예수님이 그들이 기다리던 그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이스라엘 백성과 천년왕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땅의 남은 민족들 및 그 기간에 태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은 비록 영의 몸은(천사) 아닐지언정, 영생을 얻어 생명나무에서 먹으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7 thoughts on “요한계시록 21장 원어/영어 분석

  1. 감사합니다.
    케냐에서 농아를 섬기시는 선교사님이 지난주 오셔서 화요일까지
    계십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말씀을 올려주셔서
    읽으면서 맘이 평안해지고 위로가 됩니다. 제가 금요일에 교회에서
    바울의 서신서 강의를 합니다. 맘에 부담이 큽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사도행전을
    했고 오는 금요일에 2차 하면 그 담주는 남편 장로님이 요한계시록 강의를 합니다.
    2시간에 숲을 보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엄청 씨름 하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전체를 성도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Like

    1. 분석을 하는 저도 힘들고 괴로우면서도 꽉찬 약속의 소망에 위로와 평안을 얻고 새 힘을 얻습니다.
      주 안에 있는 영혼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약속하는 요한계시록만한 소망과 위로가 있을까 싶습니다.
      혹시 언제부터 이 블로그의 글을 읽기 시작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글을 올리기 시작한 초기에는 지금처럼 여러 나라에서 읽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미국을 제외하고 의외로 호주에서 꽤 읽기에 궁금해했던 적이 있습니다.
      두 분 모두, 말씀 사역을 하고 계시는군요. 참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장로님도 이곳 블로그의 글을 읽고 계시는지요? 하시고자 하시는 계시록 강의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얼마든지 자유로이 인용하시기를 바랍니다.

      Like

      1. 새 술은 새 부대에의 참된 의미를 찾다가 발견하고 제가 원하는 답을 듣게 된 지난 6월 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장로님은 제가 공부한 내용을 함께 공유하며 공부합니다. 요한계시록을 오래동안 공부하였습니다. (최진숙 목사님책과 web site, 그리고 저희는 요한계시록에 관한 책을 모조리 다 사서 읽었읍니다. 감사하게도 주님이 분별의 지혜,은혜를 허락하셔서 시간 낭비 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를 참고하면서요 올려주신 계시록이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꾸준히 공부합니다 저희가 어성경 전문강사 과정을 수료해서 어성경을 강의 하는데 한 부분을 담당합니다. 어성경은 숲을 보는 과정입니다. 이번 장로님 순서가 요한계시록 부분이라 기도하며 준비중입니다. 감사합니다.

        Like

      2. 아 그러셨군요. ‘새 술은 새 부대에의 참된 의미’란 글은 이 블로그를 시작한 2018년 여름에 기록한 초기 글 중 하나입니다. 다른 글들보다 이상하리만큼 그 글은 처음부터 빠르게 많이 확산되며 읽혀지게 되었고 아직도 이 블로그 넘버 원입니다. 이 글 외에 가장 많이 읽힌 글 몇개를 순서대로 소개해 드리니 시간 되실 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래도 성경을 공부하던 중 의문을 갖고 오래 씨름하며 탐구했던 내용이나 특별한 성령의 조명으로 깨닫게 된 내용들이 호응을 얻는 것 같습니다. 영혼육 3분설에 대하여, 요한복음의 7 I AM, 7 기적, 7증인, 맹세와 서원의 차이, 대대로 이스라엘의 종이 된 기브온의 역전, 소금의 언약,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시거나 바꾸신 이름들, 로고스와 레마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기회가 닿는대로 넘버 시리즈를 올리고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읽힌 숫자는 12, 8, 11, 5, 33등이네요. 숫자 시리즈는 늘 ‘God of Numbers:8이란 숫자의 의미’와 같은 제목으로 해당 숫자만 바꿔서 올립니다.

        요한계시록을 다룬 모든 책을 읽으셨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저는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나 책을 거의 읽지 않는 편입니다. 가끔 어떤 분의 설교를 듣고 판단해달라고 보내오시는 분들이 있어 듣는 경우가 있고, 성경공부 인도차 몇가지 책을(주로 영어) 읽어본 것 외에는 없습니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전에는 성경을 정독하고 원어 분석을 하느라 그랬고 지금은 설교 및 성경공부 인도하는데 드는 시간만으로도 상당하기에 그렇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다루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성경을 정말 깊이 연구하고 성령의 조명이 있다해도 제대로 해석할까 말까한 요한계시록을 서슴없이 강의도 잘 하고 책도 잘 쓰는 분들을 보며 참 대단한 용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2년전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써야한다는 걸 알려주셨고 그렇게 2년을 미루다가 결국 올해서야 순종해서 쓰게 됐습니다. 강권사님의 코멘트를 읽으며 쓰게 하신 이유의 한 조각을 발견합니다.
        이렇게 큰 사모함으로 말씀을 찾고 구하신 그 열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귀하셨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분별의 지혜를 주셨다고 하셨는데, 주 안에 있는 성도들에겐 성령이 함께 하시기에 당연히 영 분별의 은사를 주십니다. 어떤 것이 참되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영이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세워져가는 두분에 대해서도 기억날때마다 기도하겠습니다.

        Like

      3. 감사하게도 올리신 모든 글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읽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귀한 섬김으로 말씀을 풀어주시고 이해하고 깨닫도록 안내해 주셔서 계속 용기와 기대를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안에서 평안하십시요.

        Like

      4. 언제든, 또 성경 어느 것에 대해서든 질문이나 궁금하시거나 또는 나누고 싶은 인사이트가 있다면 이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을 만난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닌데…하나님이 직접 만날 기회를 주신다면, 더 보여드리고 성경에 대해 알려드릴 것이 있지만…그렇지 않다해도, 곧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Like

      5. 저희는 내년 3월에 한국에 갈 예정입니다.
        이렇게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향을 향해 걷는 길에 귀한 분을 알게 하셔서
        외롭지 않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같은 곳을 향해 걷는 걸음이 복입니다.

        Liked by 1 person

Leave a reply to 강정희 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