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2장 원어/영어 분석

1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본절에 나오는 수정은 ‘krustallos(크루스탈로스)’이며 영어로는 crystal인데, 본절과 계시록 4장 6절의 보좌 앞에 있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란 표현에 나와서 신약에 딱 두 번 등장합니다. ‘유리 바다’란 표현은 성경에 총 3번 나오는데(하나님의 완전수 3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모두 요한계시록에서만 나옵니다(계 4:6, 본절(2)). 계시록 4장 6절에 의하면 이 ‘수정과도 같은 유리 바다’는 하나님의 보좌(왕좌) 앞에 있는 것이며 4 생물과 24장로들이 있는 곳입니다. 욥기에서 하나님은 천지창조 및 자연의 섭리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욥에게 던지시는데, 그중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말씀을 하십니다.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나왔느냐? 하늘의 서리는 누가 생기게 하였느냐? 물들은 돌로 숨긴 같이 숨겨져 있고 깊음의 표면얼어 있느니라(흠정역:욥 38:29-30). 29 Out of whose womb came the ice? and the hoary frost of heaven, who hath gendered it? 30 The waters are hid as with a stone, and the face of the deep is frozen.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물들 가운데 ‘궁창(공간)’을 두시고 물과 물을 나누셔서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셨으며 이 궁창을 하늘(공기층 및 우주 공간)이라고 부르셨습니다(창 1:6-8). 이후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을 한곳으로 모으셔서 바다라고 부르시고 땅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창 1:9). 그러니까 창세기에 의하면 하늘 위, 즉 우주 공간 저 윗부분에도 물이 있는 것입니다. 수년 전 과학자들이 우주 너머에 엄청난 양의 물을 발견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때, 창세기 1장에 이미 나오는 내용인데 이걸 이제야 발견했다고 떠드는구나 싶었습니다(그 기사에 대한 내용의 링크를 여기 걸어둡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욥기에 의하면 그 물들은 돌로 숨긴 것같이 숨겨져 있고 ‘깊음의 표면’은 얼어 있습니다. ‘깊음의 표면(face of the deep)’이란 표현은 창세기 1장 2절과 욥기 38장 30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엔 ‘(직역) 흑암이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고 되어 있습니다. 즉, 깊음의 표면이 곧 물들의 표면(수면)임을 알 수 있는데, 욥기 38장 30절에도 ‘돌로 숨긴 것 같이 숨겨진 물들과 얼어 있는 깊음의 표면’이 함께 나온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계시록에 나오는 ‘수정 같은 유리 바다와 같은(계 4:6 like a sea of glass like crystal)’ 것은 다름 아닌 창세기 1장 2절과 욥기 38장 30절에 나오는 얼어 있는 깊음의 표면이며 하나님이 계신 3천층과 2천층을 분리하는 수정과 같은 얼음(보석도 돌이라는 의미에서는 욥기의 돌로 숨겨진 물들)인 것입니다. 이 얼음은 수정처럼 투명하고 맑기 때문에 ‘유리 바다와 같다(계 4:6)’란 표현을 듣습니다. 그런데 이 유리 바다는 계시록 15장 2절에 오면 계시록 4장 6절에는 없던 불이 섞여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계 15:2)”  

15장 2절에 ‘불’로 번역된 ‘pur(푸어)’는 ‘성령의 불, 심판의 불, 지옥 불’을 의미하며 신약에 총 74번 나옵니다. 이 단어는 요한계시록에서만 26번 나오는데, 나오는 구절을 모두 읽어보면, ‘하나님의 불’, 특별히 하나님 앞에 있는 제단의 불이며 심판의 불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 4장은 아직 7봉인이 열리기 전이기에 유리 바다에 불이 섞여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5장은 7봉인이 열렸고 7나팔의 심판이 임하는 중이기에 환란 성도들이 서 있는 유리 바다엔 3천층 아래로 쏟아지는 심판의 불이 섞여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년왕국이 끝나갈 무렵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사탄과 함께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바다의 모래 같이 모여든 무리를 태워버릴 것이며 마귀도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이때 하늘에서 내려와 이들을 멸하는 불과 유황은 엘리야 때 바알 선지자들 앞에 내려온 불이나 소돔과 고모라에 비처럼 쏟아졌던 유황과 불의 수준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날에는 하늘이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0-13)”

마치 노아의 홍수 때 물로 온 세상을 덮어 심판하셨듯이 하나님은 인간 역사 7천 년이 찬 후에는 불로 심판하사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버리며 바다마저 불타 없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더 이상 바다가 없는데(계 21:1), 그것은 마지막 때에 있을 불의 심판으로 바다도 삼킴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모든 숨이 있는 육체는 심판받아 사망했지만, 바다에 있는 생물들만큼은 죽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7000년이 차면 불의 심판으로 바다도 불로 멸해질 것이며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게 될 것입니다(계 20:13). 

그리고 이때의 불의 심판으로 바다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던 ‘수정과도 같은 유리 바다’도 녹아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되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본절에 의하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생명수의 강은 길 가운데로 흐르고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12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절에 쓰인 ‘생명나무’는 복수가 아닌 단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그루의 생명나무가 강 좌우로 날 수가 있습니까? 이 부분을 놓고 한동안 고민하다 만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요한계시록을 쓰면서 의문이 풀리게 됐습니다.

본절과 1절을 문자 그래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 그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 흐르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그것의 길 가운데와 이쪽과 저쪽의 강가에 생명나무가 있으니’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수는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와 중간의 길을 끼고 두 갈래로 흐르는데, 그 길 가운데 생명나무가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생명나무는 이쪽과 저쪽의 강가에 닿아 있습니다. 이 개념을 그림으로 표현해 본 것을 여기에 덧붙입니다.    

성경에서 ‘생명나무’는 총 10번 나옵니다(하나님의 완전수 10에 대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생명나무에 대한 내용을 다 읽어보면, 처음 하늘과 땅이 지어졌을 때 ‘동산’ 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나무입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게 되자 하나님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에 그룹들을 두어 차단하시고 이후 세상에서는 사라지게 됩니다(창 2:9, 3:22, 3:24). 생명나무는 잠언에서 4번 나오는데 잠언 3장 13-19절에서는 ‘지혜와 명철’이 곧 생명나무라고 되어 있습니다. 잠언 11장 30절에는 ‘의의 열매가 곧 생명나무’라고 합니다. 잠언 13장 12절에서는 직역하면 ‘바라던(원하던) 것이 오는 게 생명나무’입니다. 잠언 15장 4절에서는 직역하면 ‘치유(치료)하는(marpe) 혀’는 생명나무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생명나무’는 교회들에게 주신 약속이기도 한데(계2:7), 본절과 22장 14절에서 좀 더 분명해집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나오는 맑고 순수한 크리스탈(수정) 같은 생명의 강물과 그것의 길 가운데와 강의 이쪽서부터 저쪽에까지 생명나무가 있는데 매달 그달에 따른 12가지의 열매를 맺고 잎은 민족을 치료(치유)하는데 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새 예루살렘 도성에 들어와 생명나무에서 먹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계 22:14).

개중에는 에스겔서 47장 12절에 등장하는 성전에서 나온 물을 따라 있는 나무들이 ‘생명나무’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구절 어디에도 생명나무란 명칭은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생명나무는 늘 단수였지 복수였던 적이 없습니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나무들은 12달에 맞춰 12개의 열매를 맺는 것도 비슷하고 잎사귀가 약으로 쓰인다는 점도 비슷하지만, 복수입니다. 이 나무들은 주님이 왕들의 왕으로 이 땅에 재림하셔서 성도들과 함께 1000년간 통치할 때 예루살렘에 세워질 성전에 있게 될 나무들입니다. 물론 이 나무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있게 될 ‘생명나무’의 예표인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분이 에스겔서에 나오는 천년왕국에 대한 묘사를 요한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영원 세계의 묘사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에스겔서에는 성전이 있고 죄를 위한 제사가 있습니다(겔 44-46장). 하지만 요한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엔 절기를 세기 위해 주셨던 해와 달도 없고(계 21:23, 21:25, 22:5) 하나님과 어린 양이 예루살렘의 성전이기에 성전도 더이상 없습니다(계 21:22).

3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는 ‘pan(판) katathema(카타떼마) ouk(오욱) estai(에스타이) eti(에티)’, 직역하면, ‘거기에는 저주에 따른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없으며’입니다. 그러니까 3절 전체를 직역하면, ‘거기에는 저주에 따른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없고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안에 있을 것이며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길 것이라’ 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의 얼굴을 볼 것이며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 위에 있을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는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기는 종들의 이마에는 ‘그의 이름’이 있습니다. 계시록 14장에서 어린양과 함께 시온 산 위에 서 있는 십사만 사천 명의 이마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계 14:1). 하지만 ‘어린 양’은 개역개정이 삽입한 단어이고, 원어로는 ‘그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엔 이 부분이 그냥 ‘그의 아버지의 이름’으로만 되어 있는데, 번역이 다른 이유는 번역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번역본엔(킹제임스가 쓴 번역본보다 더 오래된 번역본도 포함) ‘그의 이름’이란 단어도 들어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게 더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본절에 나오는 종들의 이마 위에 ‘그의 이름’이 있는 부분과 14장 1절에 나오는 이스라엘 144,000명의 이마에 ‘그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있는 부분이 연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계 22:3-4).

이 144,000명은 계시록 7장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이때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걸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환란을 통과한 후인 14장에서는 이들의 이마에 ‘그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고 천년왕국이 지난 후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이름이 더 이상 구분되지 않고 하나 된 ‘그의 이름’만이 종들 된 자들의 이마 위에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여기서 ‘왕 노릇’으로 번역한 헬라어는 ‘basileuó(바실류오)’인데, ‘통치하다’란 의미입니다. 즉 그들이 세세대대토록 통치할 것이란 의미입니다.

6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7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6절에서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라고 된 부분은 직역하면 ‘선지자들의 영들의(pneumatōn) 하나님’입니다. 7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하나님의 천사가 전달하는 장면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두루마리로 번역한 ‘biblion(비블리온)’은 파피루스 종이로 둘둘 말린 책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총 34번 쓰였는데 마태복음 19장 7절과 마가복음 10장 4절에서 모세가 너희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주라고 했던 부분과 요한계시록 6장 14절에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려 떠나갔다는 부분에 쓰인 것 외에는 ‘책’으로 번역됐습니다. 요한은 이 책을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명령을 받는데, 이 일곱 교회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입니다.

여기서 ‘지키다’로 번역한 헬라어 ‘téreó(테레오)’는 ‘잘 보호하고, 간직하고, 보초 서듯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능동적인 단어이지 수동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즉, 누군가가 훔쳐 가거나 뺏지 못하도록 적극 지키며 감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8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요한이 감격해서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고 한 경우는 두 번 나옵니다(계 19:10, 본절). 이때마다 그는 ‘나는 너와 네 형제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19장에서는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라고 했고 본절에서는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같이 ” 또는 “함께 “으로 번역한 헬라어는 ‘sundoulos(순둘로스)’이며 영어로는 ‘fellowservants(동료 종들)’입니다. 신약에 총 10번 나오는데(마 18:28, 18:29, 18:31, 18:33, 24:49, 골 1:7, 4:7; 계 5:11, 19:10, 22:9) 사도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구약에서도 모세 및 선지자들을 ‘여호와의 종’으로 표현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fellowservants(동료 종들)’이란 표현이 3번 나오는 데, 지난 2000년간 죽임을 당한 성도들이 ‘동무 종들’의 수가 채워지기까지 기다리는 장면(계 6:11)과 요한이 나팔 및 대접의 심판을 집행하던 7천사 중 한명에게 거듭 절하려고 하자 나는 너와 같은 ‘동무 종’이니 내게 경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하는 부분입니다(계 19:10, 22:9). 즉 하나님 교회의 완전해진 성도들이 마지막 때 심판을 집행하는 7천사들임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에게 나타난 예수님은 오른손에 일곱별을 들고 계시며(계 1:16) 일곱 금 촛대 가운데를 거니시는데(계 1:12-13),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계시록 1장 20절에서 풀어주십니다. 특별히 ‘일곱 별의 비밀’, 즉 ‘일곱 교회의 천사들의(개역개정에 ‘사자’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와 영어로는 ‘angel’입니다) 비밀’이라고 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천사의 몸으로 주님과 영원히 살게 될 것이 곧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주님이 직접 부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두개인들에게도 말씀하신 부분이기도 합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와서는 7형제가 모두 자식 없이 죽는 바람에 그 형제들과 모두 결혼했던 여자가 있다면 부활 후에는 7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고 묻습니다. 이들의 황당한 질문에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29-30절)”

바울 역시 부활의 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것이 ‘비밀’임을 밝힙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47-53)”

본절에 ‘비밀’로 쓰인 헬라어 ‘mustérion(무스테이리온)’은 영어로는 ‘mystery(미스테리)’입니다. 신약에 총 28번 나오는데(28은 4×7 즉, 세상과 하늘의 곱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단어가 쓰인 구절들을 일일이 읽어보면 하나님의 왕국, 부활의 몸 및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해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구절을 읽어보는 것도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마 13:11; 막 4:11; 눅 8:10; 롬 11:25, 16:25; 고전 2:1, 2:7, 4:1, 13:2, 14:2, 15:51; 엡 1:9, 3:3, 3:4, 3:9, 5:32, 6:19; 골 1:26, 1:27, 2:2, 4:3, 살후 2:7; 딤전 3:9, 3:16; 계 1:20).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며(엡 5:25-33) 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몸이기도 한(엡 4:15-16; 엡 5:23) 이 ‘미스테리’는 비유가 아닌 실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가 남편과 아내 관계이면서도 부부이기에 한 몸이 되는 것을 에베소서 5장 23-33절까지 설명하면서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2)”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삼위일체의 하나님만큼 현재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래야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미스테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10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본절에 ‘인봉’은 ‘봉인하다(to seal)’을 의미하는 ‘sphragizó(스프라기조)’입니다. 동사를 알아보기에 앞서 먼저 ‘인’으로 번역하는 명사 ‘sphragis(스프라기스)’, 영어로는 ‘seal’에 대해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sphragis(스프라기스)’는 ‘봉인, 반지에 새긴 인장, 또는 옥새’를 뜻합니다. 주로 밀랍에 찍어 눌러서 공문서나 서찰을 봉하는 데 썼는데 신약에 총 16번 나옵니다(하나님의 아이덴티티 및 사랑을 뜻하는 16에 대한 의미는 요한계시록 1장(2)에 좀 더 적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6개의 구절을 모두 읽어보면 ‘인(봉인)’은 믿음으로 된 의에 대한 징표이며(롬 4:11), 사도의 직분과(고전 9:2) 부활의 약속입니다(딤후 2:19). 이후 13번 나오는 ‘인’에 대한 내용은 모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데(13의 의미는 7에 대한 글에 간략히 있으니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린 주님만이 일곱 인을 떼기 합당하시다는 것과(본절, 계 5:2, 5, 9, 6:1, 3, 5, 7, 9, 12; 8:1), 심판의 때에 해를 당하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신다는 점입니다(계7:2; 9:4).

또한 ‘봉인하다(to seal, to seal up)’란 동사를 의미하는 헬라어 ‘sphragizó(스프라기조)’와 ‘katasphragizó(카타스프라기조)’도 신약에 16번 나옵니다. 관련 구절들을 읽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증거)을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심’을 봉인한 것이며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봉인하신 분입니다(요 3:33, 6:27).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전도로 얻게 된 열매들도 봉인한 것들이며(롬 15:28) 우릴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기름을 부으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심으로 우릴 봉인하셨습니다(고후 1:21-22). 이처럼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믿은 자들은 약속의 성령으로 구속의 날까지 봉인됐으며(엡 1:13, 4:30)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될 것입니다(엡 1:14). 마지막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으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봉인하기까지 4천사들은 땅과 바다를 해치지 못하며,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 14만 4천명이 봉인됩니다(계 7:3-8; 9:4). 주의 천사가 강림하실 때 7우레가 소리 내어 말한 것을 요한이 적으려 하자 그것들을 봉인하고 적지 말라고 하시지만(요 10:4), 계시록에 적힌 다른 예언에 대해서는 때가 가까우니 봉인하지 말라고 본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천년왕국이 시작될 때 하나님은 사단을 무저갱에 던져넣어 잠그고 봉인해서 천년이 다 찰 때까지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십니다(계 20:3).

성경 전체에서 ‘인’ 또는 ‘봉인하다’를 뜻하는 ‘seal, sealed’를 찾게 되면 58구절에 걸쳐 72번 등장합니다. 예전에 성경에서(영어 킹제임스) ‘하나님의 사람(man of God)’을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 표현은 72구절에 걸쳐 77번 등장했었습니다.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주님의 족보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끝나는데, 정확히 77명의 이름이 등장합니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숫자 7에 대한 글에 적어놓았으니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놀라움이 제게는 지치지 않고 성경을 연구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경 전체에서 ‘인’ 또는 ‘봉인하다’가 나오는 구절 중 본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구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때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모두 마치자 장막절을 크게 경축합니다. 이때 백성들은 에스라가 낭독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레위인들은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들에게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7일간의 절기를 지키고 8일째 되던 날에는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엽니다(느 7, 8장). 그런데 그 후 이틀이 지난 24일에(장막절 절기는 유대력으로 7월 15일에서 22일까지인데 양력으로는 주로 9월입니다) 이들은 다시 자발적으로 모여 금식하며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모든 계명을 지키겠다는 언약을 세우고 봉인을 찍는데(느 9장) 이어지는 10장에서는 언약을 봉인한 사람들의 이름이 일일이 열거됩니다.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들 23명, 레위인 17명, 백성의 우두머리들 44명을 포함한 모두 84명의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후 그 일에 참여한 리더들이 언약을 세우고 봉인을 찍는 장면은 예루살렘의 벽이 되는 환란성도들(144,000명의 이스라엘)의 이마를 하나님이 직접 인치시는 것과도 연관이 되는 장면이란 생각이 이제 들어 덧붙입니다. 144,000명이 예루살렘의 벽을 이루는 환란성도들이란 걸 아가서를 통해 깨닫게 된 부분은 계시록 7장, 12장, 그리고 14장에 적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에스더 때 적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이스라엘의 원수 하만은 왕의 명령대로 모든 신하가 자기에게 꿇어 절하는데 모르드게는 꿇지도 절하지도 않는 것에 앙심을 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을 몰살할 계획을 세우고 제비를 뽑아 날짜를 정한 후 왕에게 이들을 모함하고 왕의 반지를 빼어 열두째 달 13일에 그들을 진멸하라는 조서를 지방과 모든 민족에게 봉인해서 보냅니다(에 3:1-14). 그렇지만 하나님의 개입으로 오히려 하만은 죽임을 당하고 왕은 에스더와 모르드게에게 내 명의로 유대인들에게 조서를 쓰고 왕의 반지로 봉인하라고 합니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돌이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스더와 모르드게는 각 민족의 언어와 유대인의 문자와 언어로 조서를 써서 열두째 달 13일 하루 동안 그들이 함께 모여 정당방위로 원수 갚을 수 있게 합니다(에 8:1-13). 이에 열두째 달(아달월) 13일에 유대인들은 각 지방에서 오히려 원수들을 제거했으며 왕궁이 있던 수산성에서만 500명을 죽이고 하만의 10 아들도 죽였으나 재산에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산성만큼은 하만의 10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기 위해 하루 더 원수 갚는 날을 허락해서 14일에도 300명을 더 죽였습니다. 또한 각 지방에서 정당방위로 대적들 7만 5천 명을 도륙했는데 아무도 그들의 재산에는 손대지 않았다고 합니다(에 9:1-16). 이 일을 계기로 유대인들은 매해 아달월 14일과 15일을(에 9:21) 부림절로 지키게 되었는데 현대사에서 이 절기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면 읽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신랑이신 주님은 신부인 교회에게 ‘내 누이, 내 신부는 봉인한(chatham:seal) 샘(아 4:12)’이라고 하시고 신부는 신랑에게 ‘당신의 마음(심장)에(lib·be·ḵā:your heart) 나를 봉인하고(chotham:seal) 당신의 팔에 나를 봉인(chotham:seal)해달라’고 합니다. 또한 이사야서에서 ‘너는 율법을 제자들 가운데 봉인하라’고 하시는데 신약에서만 나오는 ‘제자들(disciples)’이란 단어가 구약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또한 여호와는 반역하는 백성 이스라엘에게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선지자, 지도자들, 그리고 선견자들에게 부어주셔서 그들의 눈이 감겨 모든 계시가 봉인한 책처럼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봉인되었기에 내가 읽을 수 없다고 말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사 29:10-11). 뿐만 아니라 사단 마귀도 한때 온전히 지혜롭고 완전히 아름답다는 완벽한 봉인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겔 28:12). 하나님은 모든 허물이 그치고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어 영원한 의가 드러나기까지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에게 70 이레를 정하시며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는 예언과 환상을 봉인하십니다(단 9:24). 그리고 다니엘에게 주셨던 예언도 마지막 때가 이르기까지 봉인하라고 하십니다(단 12:4, 9).

11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1절에 ‘불의’로 번역한 ‘adikeó(아디케오)’는 특별히 ‘해악을 끼치다’는 의미입니다. 신약에 총 28번 나오며 주로 ‘다치게 하다, 해를 끼치다’란 의미로 쓰였습니다. 11절을 직역하면 ‘해악을 끼치는 자는(불의를 행하는 자는) 계속 해악을 끼치게 하고(계속 불의를 행하게 하고) 더러운 자는 계속 더럽게 두고 의로운 자는 계속 의를 행하게 하고 거룩한 자는 계속 거룩하게 하라’입니다. 마치 바로가 처음엔 자기 마음을 스스로 완악하게 했지만 나중엔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돌이킬 수 없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불의를 행하는 자들과 의를 행하는 자들이, 더러운 자들과 거룩한 자들이 더욱 극명히 나뉘어 그 어떤 여지도 없게 된다는 걸 교회 안에서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속에 감춰진 것들을 드러내사 시험하심으로 의를 행하는 자들에겐 선행을 더하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악행을 더하게 하셔서 상과 벌을 확정 짓고 계심을 직접 체험한 바입니다. 

12절에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에 쓰인 ‘상’은 ‘misthos(미스또스)’인데,일하고 받는 임금 즉, 삯’을 의미합니다. 신약에 총 29번 나오는데, 주로 ‘상급’으로도 번역됐지만 ‘임금, 삯’으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주종의 관계로서 다시 오실 때 상과 벌을 그 종들에게 주실 것을 사복음서에서 비유로 여러 번 설명하셨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의 비유(마 24:45-51)
  2. 열달란트의 비유(마 25:14-40)
  3. 돌아오는 주인과 깨어있는 종의 비유(막 13:34-37; 눅 12:35-40)
  4. 지혜 있는 종과 어리석은 종의 비유(눅 12:42-48)
  5. 열므나의 비유(눅 19:11-27).

13절에 ‘알파와 오메가’란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만 총 4번 나오며(계1:8; 1:11, 21:6, 본절), ‘시작과 마침’으로 번역한 ‘시작과 끝(archē kai telos)’이란 표현은 총 3번 나옵니다(계1:8, 21:6, 본절). 또한 ‘그 처음과 그 마지막(the first and the last)’이란 표현은 계시록에서만 4번 나오는데(계 1:11, 계 1:17, 2:8, 본절), 영어로는 정관사 ‘the’가 ‘시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에 모두 붙지만 헬라어로는 ‘시작과 끝’엔 붙지 않고 ‘처음과 마지막’에만 붙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분석에서 적었듯이, 성경에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이 몇 번 나오는지 찾아보았더니 총 16번이었습니다. 구약에 12번 나왔고 신약엔 정관사가 붙은 ‘그 처음과 그 마지막’이 계시록에만 4번 나옵니다. 구약에 12번 등장하는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은 모두 왕(9번) 또는 하나님 자신을(3번) 수식한 단어였습니다(대상 29:29; 대하 9:29, 12:15, 16:11, 20:34, 25:26, 26:22, 28:26, 35:27; 사 41:4, 44:6, 48:12). 참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이 구약에서는 ‘왕 또는 하나님’에게만 쓰였는데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뜻하는 12번 등장하기 때문입니다(1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쓰였는데, 세상 및 창조물을 뜻하는 4번 등장합니다(4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알다시피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온 한줄기 강은 넷으로 나뉘어 온 땅을 적시며 생물이 번성할 수 있는 물을 공급해 주었습니다(창 2:10).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4 복음서로 나뉘어 영혼육을 살리는 성령의 생수로 이 세상 가운데 흐르고 있습니다.

14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본절에 ‘두루마기’로 번역한 ‘stolé(스톨레이)’는 팔이 있는 긴 옷으로 영어로는 ‘robe’입니다. 성경엔 여러 종류의 다양한 ‘옷’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나오지만 한국어 번역엔 대부분 그냥 ‘옷’으로 뭉뚱그려 번역했습니다. 영어는 그나마 구분해서 번역한다고 했지만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지 않고 뒤섞여 번역한 부분이 꽤 있습니다.

먼저 신약에 ‘stolé(스톨레이)’가 나오는 9구절을 살펴보면, 이 옷은 제사장이나 서기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입었던 옷입니다(막 12:38; 눅 20:46).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당시 무덤 안 우편에 앉아 있던 청년이 입고 있던 ‘흰 옷’이 ‘흰 stolé(robe)’입니다(막 16:5-7). 이 옷은 또한 돌아온 탕자를 기쁘게 맞이하신 아버지가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힌’ 부분에서 나오며(눅 15:22) 본절에 복음과 그리스도의 증거(증언)로 말미암아 죽임 당한 성도들이 받습니다. 그리고 7장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는데, 이들이 입은 옷이 ‘흰 stolé(robe)’입니다(계 7:9, 13, 14).

킹제임스 영어 성경 전체에서 팔이 있는 긴 ‘robe’을 찾게 되면 37번 나오는데 발까지 내려오는 긴 ‘robe’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입었으며(출 28장, 29장, 39장, 대상 15:27), 왕이 입었습니다(삼상 18:4, 24:4, 11; 왕상 22:10, 30; 대하 18:9, 29; 욘 3:6). 또한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입으실 옷이며(사 22:21), 신랑과 신부가 치장하듯이 성도들이 입을 의의 옷입니다(사 61:10).

특히 본절에 ‘두루마기(stolé(robe))’를 ‘빠는’ 자들에서 ‘빨다’는 헬라어로 ‘plunó(플루노)’인데 ‘씻다(washing)’는 뜻이며, 신약에 총 3번 나옵니다. 어부들이 그물을 씻는 장면과(눅 5:2), 큰 환란에서 나온 수많은 무리들이 어린 양의 피로 자신들의 두루마기를 씻어희게 했다는 부분과(계 7:14), 본절입니다. 따라서 본절에 ‘자신들의 두루마기를 씻은 자들은 복이 있다’는 의미는 어린양의 피로 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들에겐 생명나무와 문들을 통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권세가(exousia:권한) 있을 것입니다. 14절은 원어와 비교해 보면, 번역의 뉘앙스가 좀 잘못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들의 두루마기를 씻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생명나무와 문들을 통해 성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그들의 권세라(권한이라)”

15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개’로 번역한 ‘kuón(쿠온)’은 성경에 총 5번 나오는데, 모든 구절들을 읽어보면, ‘개’로 비유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알 수 있습니다(마 7:6; 눅 16:21; 빌 3:2; 벧후 2:22; 본절).

첫째 이들은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 눈에 있는 티는 비판하는 자들이요, 외식하는 자들입니다(마 7:1-6).

둘째, 이들은 행악하는 자들이요 몸을 상하게 하는 자들입니다(빌 3:2)

셋째, 이들은 의의 길을 안 후에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명령에서 돌아선 자들입니다(벧후 2:21-22).

이런 자들은 본절에 의하면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 밖에 있게 될 것입니다.

점술가들은 헬라어로 마법사를 의미하는 ‘pharmakois(파마코이스)’, 영어로는 sorcerer입니다. 그러니까 독약이나 약을 제조하는 마술사를 의미하며 약국을 의미하는 영어 ‘pharmacy’나 제약을 의미하는 ‘pharmaceutical’이 여기서 온 단어입니다.

본절의 ‘음행하는 자들’로 번역된 헬라어 ‘pornos(포르노스)’는 신약에 10번 나오는데, 특별히 ‘간음하는 남자 또는 남창’을 의미합니다(고전 5:9, 10, 11, 6:9; 엡 5:5; 딤전 1:10; 히 12:16, 13:4; 계 21:8, 본절). 이에 비해 ‘음행하는 여자 및 창녀’를 뜻하는 헬라어 ‘porné(포르네이)’는 신약에 총 12번 나옵니다(마 21:31, 32; 눅 15:30; 고전 6:15, 16; 히 11:31; 약 2:25; 계 17:1, 5, 15, 16, 19:2). 헬라어로는 성별이 이처럼 뚜렷이 구분되지만 영어든 한국어든, 번역본에는 남녀 구별이 사라졌습니다. 어찌 됐거나 본절에 나오는 ‘음행하는 자들’은 특별히 소돔과 고모라에 있던 남자들처럼, 같은 남자와 음행하려고 했던 부류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pas(파스) philōn(필론) kai(카이) poiōn(포이온) pseudos(프쑤도스)’, 직역하면 ‘모든 거짓을 사랑하고 만들어 내는 자들’ 입니다. 그러니까 진실이 아닌 거짓을 사랑하기에 늘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16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6절에 ‘사자’는 ‘천사’를 뜻하는 ‘aggelos(앤젤로스)’입니다. 직역하면 ‘나 예수는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기 위해 나의 천사를 교회들에게 보내었나니’입니다. ‘증언하다’로 번역한 ‘martureó(마르투레오)’는 신약에 총 76번 나오며 요한계시록에서는 4번 나옵니다(계 1:2, 본절, 22:18, 20).

주님은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다윗의 뿌리이면서도 자손인 개념은 도로 주님이 ‘시작과 끝’이 되시며,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점을 다윗을 통해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라고 예언합니다. 주님은 영으로는 다윗 왕국의 근원이 되시는 다윗의 ‘주(LORD)’이시며 육으로는 다윗의 씨로 오사(롬 1:3) 다윗의 왕좌를 영원히 이어가실 ‘다윗의 자손’이시기도 합니다. 가브리엘은 처녀 마리아에게 네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1-33)”

‘광명한 새벽 별’을 직역하면 ‘밝게 빛나는(lampros) 이른 아침의(prōinos) 별(astēr)’입니다. 전에도 몇 번 적었지만, 신약에 총 24번 등장하는 별(astēr)은 복수로는 13번, 단수로는 11번 나옵니다. 단수로 쓰였을 때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되어 쓰였으며(마 2:2, 7, 9, 10; 고전 15:41(2); 본절, 계 8:10, 11, 9:1, 22:16), 복수로 쓰였을 때는 주로 천사들(타락한 천사든 좋은 천사든)로 쓰였습니다(마 24:29; 막 13:25; 고전 15:41; 유 1:13; 계 1:16, 20(2), 2:1, 3:1, 6:13, 8:12, 12:1, 4).

예수 그리스도의 ‘새벽 별’ 되심은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민 24:17)’란 구약의 예언에 따른 것이며 신약의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얘기하면서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벧후 1:19)”고 당부하기도 합니다. 특히 고난 당하는 그리스도에 대해 다루는 시편 22편의 제목은 히브리어로 ‘Aijeleth Shahar’인데 ‘이른 아침의(새벽) 별’로 번역하는 유대인들도 있습니다.  

17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육신하셨던 예수님은 초막절(장막절) 절기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그 명절의 끝날 곧 큰 날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었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7-39)”

장막절(초막절)은 유대력 7월 15일에서 22일에 오는 절기로 양력으로는 9월에서 10월입니다. 장막절은 여호와의 7절기 중 유일하게 8일째 되는 날(22일)에 성회가(Shemini Atzeret) 있습니다(이런 장막절 끝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눌러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성육신하셔서 홀로 장막을 치셨던 초림의 예수님은(요 1:14), 장막절 끝날 8일째 되던 날에 생수의 강을 약속하셨는데, 이는 일차적으로 부활 승천하신 후 보내주실 성령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왕 중의 왕으로 재림하셔서 천 년간 통치하고 난 8천 년이 시작되는 때가 오면 비로소 실질적인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게 될 것인데 성령과 신부가 ‘오라,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며 초청합니다. 즉, 천년왕국을 포함한 7000년의 현 창조 사역은 어린 양의 신부 얻기 프로젝트로 8000년째가 되어 열릴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의 영원 세계에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어린양의 신부가 함께할 것입니다. 마치 이삭의 신부를 얻기 위해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찾아 먼 길을 떠났다가 함께 돌아오는 것처럼,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탄생하고 말씀의 물로 씻김 받은 교회를 아들 예수에게로 데려오는 것이 7000년의 완성이며 하나님의 가족이 성부, 성자, 성령, 3에서 신부를 포함한 4로 가는 것이 새 창조된 새 세상의 비밀인 것입니다.

18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을 써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은 2021년 2월 16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요한계시록만큼은 확실치 않은 부분이 꽤 있었고 위 구절들이 가장 큰 부담이었기에 선뜻 내키지 않았었습니다. 이제 2년 반을 넘긴 시점에서야 겨우 시작해서 마치게 됐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부분은 이마에 인을 받는 144,000명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께서 추수하실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의 첫열매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일 먼저 익은 첫열매로 144,000명이 환란 전 휴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옷을 씻은 셀 수 없이 많은 무리는 큰 환란을 통해 탈곡한 후 추수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석했을 때 파생할 수 있는 수많은 이단의 병폐에 차마 그런 쪽으로 더 분석해 보지는 못했고 144,000명이 환란 성도 중에서도 혈통적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분석했습니다. 원래는 내 생각을 갖고 뭔가 분석하는 게 아니라, 어떤 편견도 없이 성경의 말씀을 성경으로 분석하면서 깨닫게 되는 진리와 인사이트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144,000명에 대해서만큼은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는 점을 밝힙니다. 그래서인지 그 부분만큼은 아직 저한테는 뭔가 깔끔하게 떨어지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예수님이 요한에게 적지 말라고 명령하셨던 7 천둥의 소리가 아닐까(계 10:4) 위로하며 그날이 오면 어차피 밝히 알 것이기에 덮어둡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열심을 내어 써봤지만, 턱도 없이 부족할 것으로 생각되고 또 잘못 적은 부분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을 구하며 이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20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20절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란 요한의 고백은 지난 11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주님 오시기만을 기다려 온 저의 고백이기도 하며 주 예수 오실 날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주의 성도의 소망일 것입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21절의 ‘모든 자들’은 그냥 모든 자들’이 아닌 성도를 뜻하는 헬라어 ‘hagiōn(하기온)’입니다. 요한의 기도처럼 그날까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주의 거룩한 성도들에게(hagiōn) 있기를 저도 기도하며 요한계시록 분석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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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2 thoughts on “요한계시록 22장 원어/영어 분석

  1. 할레루야!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달려오셨습니다.
    저희는 따라 가기도 힘든데
    앞서 가시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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