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과 하늘들과 영혼육의 관계

  지난번에 올린 “성소에 거하십시오:지성소로 올라가는 5단계“란 글에 대한 질문 그리고 반론이 들어왔기에 소개합니다. 예전에도 썼듯이 제 글에 대한 이런 적극적인 반응을 얻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질문이든 반론이든 저에게는 유익한 것이,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무엇을 미처 설명하지 못했는지, 어디서 오해가 빚어지는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고 더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도 요한계시록을 분석하면서 올렸던 ‘천년 왕국’에 대한 질문을 받았었습니다. 천년왕국의 끝 무렵에 사단의 꾀임으로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 부분에서 우리 교회도(부활의 영의 몸을 입은 왕 같은 제사장들) 그 반란에 가담하는 걸로 이해하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서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우리 “성도들”과는 구분된 땅의 민족을 말한 것입니다. 7년 환란 및 심판의 기간 동안 땅의 모든 민족이 죽는 게 아니라 3분의 1만 죽습니다(계 9:15). 그리고 왕 중의 왕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야 뒤늦게 깨닫고 회개하는 이스라엘 민족은(슥 12:10) 주님과 성도들(영의 몸을 입은 천사들)의 통치를 받게 될 것이며 이 땅에서 제사장 민족 및 왕의 나라가 되어서 천 년 동안 다른 이방 나라들의 우두머리가 될 것입니다(렘 31:7). 그러니까 천년 왕국 때는 창세기 때처럼(노아의 홍수 이전의 세상) 영의 몸을 입은 하늘의 천사들(창세 첫 1000년은 타락한 천사들, 창세 마지막 1000년은(7000년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성도들)과 육의 몸을 입은 땅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이 됩니다. 그런 1000년의 통치 끝에 마귀가 다시 풀려나서 온 땅의 민족들을 미혹하여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지만, 그때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심판이 즉시 집행되고 백보좌의 심판도 펼쳐진 후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의 영원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자세히 적도록 하고 지금은 이 정도로만 설명하겠습니다.

  이제 지난번 글에 대해 받은 첫 번째 질문부터 다루겠습니다. 지금부터의 내용을 이해하시기 위해서는 이전 글을 먼저 읽으셔야 한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진짜 쉽게 잘 되어있네요. 원리는 머리에 그려지는데, 그러니까
1. 십자가에 못박기 2. 회개하기 3. 등잔대 앞에 나가 성령의 인도함으로 기도하기
4. 간구하기 5. 중보하기, 이 순서로 샘플 하나 만들어주시면 안될까요?
제겐 1번이 좀 어렵습니다…무슨 말씀인지 감이 안옵니다.
“나의 반석이시고 나의 구원자되신 하나님 앞이 이 시간 나의 육을 십자가 앞에 못박습니다… (이렇게 시작하고 ) 회개로 들어가면 되나요? …
말씀을 취한다는건 성경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라는 거죠?
간구와 중보는 알겠구요…
너무  초등학생 같은 질문 같지만 그래도 물어보고 정답을 알고 나야 활용하는게 쉬울듯합니다. 원래 기도의 다섯 단계는 보통 다섯 손가락을 비유해서, 1. 찬양과 경배 2. 회개
3. 감사 4. 간구 5. 중보, 보통은 이 순서로 합니다.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보내주신 내용을 읽어보니 제 글을 다 기도로 적용하신 것 같습니다. 기도 이전에 가장 첫 스텝이 ‘자기 부인’이란 것이었습니다. 내 감정대로, 내 자아대로, 나 좋을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걸 부인하는 결단.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아닌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겠다는 다짐. 그리스도를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 외에는 모두 배설물처럼 여기며, 모든 이론과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 그렇게 땅에 있는 지체, 즉 탐욕 정욕 음란 부정한 것들을 날마다 번제단에서 태우고 부인하는 게 먼저이고, 그렇게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때 그다음 물두멍에 이르러 참된 회개를 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후 등잔대, 즉 성령의 조명을 받으며 진설병 즉, 말씀을(성경) 취하고, 분향단 즉 기도를(여기에 말씀하신 기도의 5가지 순서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올리며 중보할 때 비로소 나는 성소에 거하는 사람이 되고, 지성소 즉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살려면(성소로 들어가려면) 먼저 육 즉, 자기가 죽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아 충만한 상태로 자기 욕심대로 구하며 기도하고, 성경도 자기 좋은 구절만 취하고, 색안경을 끼고 성경을 읽으면서 거기에 맞는 구절들은 취하고 아닌 구절들은 버리거나 각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섬기면서 자아 성취하려는 목적으로 마귀에 미혹됐으면서도 그걸 성령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먼저 내가 죽어야 하나님께로 돌이켜(회개의 참된 의미) 성령의 인도함과 조명을 받을 수 있는 것이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으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기도도 할 수 있습니다. 즉, 내 육이 쇠해져야 영이 강건해져서 성령 충만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연민, 이기심, 자기중심적인 사고 그대로 살아가면서, 남은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며 죽이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하나님 노릇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려 하기에 마음에서는 하나님이 먼 사람들, 즉 성막뜰만 밟는 사람들이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예를 들면, 먼저 바깥뜰에 무성히 올라온 독초와 같은 내 죄를 매일 뽑아 버리고, 세상 유혹과 걱정 근심의 가시도 쳐내서 불에 살라 버린 후, 그러느라 더럽혀진 손을 씻고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비로소 말씀을 취하고 기도하며 성령과 교제할 수 있지 그런 독초와 가시덤불이 가득한 상태로서는 하나님과 참된 교제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이 답변에 질문하신 분이 다음과 같이 보내왔습니다.

긴 설명 감사합니다. 이해가 더 확실하게 됐습니다 ♡ 2024년에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것이 욥이 마지막장에 이제까지 주님의 음성을 귀로 들었는데 이제는 주님을 눈으로 본다고… 주님께서 욥한테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라하시고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 친구들을 용서 해주시쟌아요…지성소에 들어가는 기도가 중보 기도였네요~ 모세가 죄지은 백성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고 아브라함도 자기 조카 롯을 위해 기도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구해낸 후에 십일조하고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삭을 주시겠다고 했고… 욥도 자기를 힘들게 했던 동료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그전보다 두배의 축복을 하시고…하나님 나라의 원칙인듯하네요… 기도로 일하시는 하나님, 인내가 많으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복주시기를 누구보다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와 닿습니다…♡

  이제 두 번째로 다룰 반론은 더 복잡하고 성경 지식을 더 많이 요구하는 것이지만 그 안에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지식도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해 자세히 설명해서 좀 더 많은 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반론은 여러 포인트를 다루고 있었기에 이해를 돕기 위해 한가지씩 나눠 다루겠습니다.

“반론 1. 짐승은 혼과 육만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은 약2:26절의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약2:26-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천사의 정체성의 본질은 영이며, 사람의 정체성의 본질은 혼이며, 짐승의 정체성의 본질은 육입니다. 성경은 죄를 지은 아담 이후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 배를 섬기게 된 사람들(육신의 정욕에 굴복한 혼-시119:25;44:25)에 대해 육신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과 같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첫 반론에 대한 저의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과 짐승들의 결정적인 차이는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거할 수 있는가 아닌가입니다. ‘혼(nephesh)’은 생명입니다. 짐승에게도 생명 즉, 혼이 있고 육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생명 즉, 혼과 육신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존재들로 처음부터 짐승들과는 구분되게 지어졌습니다. 짐승은 혼과 육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하면서 그 부분을 야고보서 2장 26절의 말씀-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로 알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 구절의 의미는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육체는 죽은 것처럼(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는 생물은 어차피 인간밖에 없으므로 이 구절은 인간에게 쓰인 것이지 짐승에 대해 말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란 의미입니다.

  또한 ‘천사의 정체성의 본질은 영이며, 사람의 정체성의 본질은 혼이며, 짐승의 정체성의 본질은 육입니다. 성경은 죄를 지은 아담 이후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 배를 섬기게 된 사람들(육신의 정욕에 굴복한 혼-시119:25;44:25)에 대해 육신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과 같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이 부분은 맞습니다. 마치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굳이 구분하자면 영(성령), 혼(생명:성부 하나님), 육(성자 하나님)으로 비유할 수 있지만 결국 한 분인 것처럼, 천사, 사람, 짐승을 영혼육으로 구분하자면 천사는 영, 사람은 혼, 짐승은 육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천사는 영만 있고 사람은 혼만 있어서 몸이 없는 존재는 전혀 아닙니다. 천사에겐 영의 몸이 있고, 사람에겐 사람의 몸이 있듯이 육에 비유될 수 있는 짐승이라고 혼(생명)이 없이 육신만 있는 건 전혀 아닙니다.

  이런 오해의 원인은 딱 하나이지만, 그 하나를 인정하지 않기에 어차피 오해를 풀고 서로 소통할 방법은 없습니다. 바로 원어입니다. 히브리어 ‘nephesh‘는 구약에 총 754번 나오는데, ‘혼(soul), 생명체(living being), 생명(life), 자기 자신(self), 감정(emotion)’ 등으로 번역되며 특히 피에 그 생명이 있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단어를 클릭하면 ‘nephesh‘가 쓰인 754구절을 모두 볼 수 있지만, 그렇게 광범위하게 모두 읽을 것도 없이 창세기의 몇 구절만 보더라도 ‘nephesh‘가 단 사람의 혼을 의미하는 게 아니란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nephesh’는 창세기 1장 20절에 맨 처음 나오며 이어지는 21절, 24절, 30절에서도 등장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물속의 생명체와 하늘을 나는 새들과 땅의 가축 및 짐승들을 일컫는 데 쓰였고 창세기 2장 7절에 와서야 사람에게 쓰입니다. 그 구절 이후로도 지속해서 (짐승이든 사람이든) 생명, 생명체, 감정 등으로 번역되니 직접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반론 2. 첫사람 아담은 생령이 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혼이 되었습니다.(창2:7 고전15:45).”

  두 번째 반론에 대한 저의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인용한 개역개정의 성경 구절에 오역된 부분이 있었나 봅니다. ‘성소에 머무십시오‘란 글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살리는 영(고후 3:6)’, 즉 성령을 주셨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라고 얘기합니다. 즉 아담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에 하나님의 영이 불어넣어지면서 영이 들어간 살아 움직이는 몸이 된 것이라면, 마지막 아담은 영이신 하나님이 스스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육을 죽여 그 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살리는 영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인용했던 성경 구절들을 원어와 일일이 대조하고 확인하진 않았었습니다. 원어를 확인해 본 결과 개역개정의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고전 15:45)”란 부분은 오역이 맞고 ‘살아있는 혼’으로 번역하는 게 맞습니다. 원어에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psychēn zōsan) 되었다”로 되어 있습니다.

“반론 3. 모세의 성막에서 성막뜰/성소/지성소를 육/혼/영으로 매칭해보는 것은 좀 무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성막뜰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으로, 성소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으로, 지성소는 부활하여 셋째하늘에 올라가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특히 성소를 둘째하늘과 매칭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둘째하늘은 마귀들이 거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엡6:12 욥15:15) 하나님께서 둘째 하늘을 만드신 둘째날에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없습니다.(창1:8) 이와 관련하여 사1:11-12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인들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는 것을 말씀하시며 성육신하셔서 대속물로 드려진 주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유대인들이 가져오는 희생물을 헛된 봉헌물이아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임에도 육신에 속한 사람은 많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린도전서가 그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미 혼이 구원받은 사람(벧전1:10 약1:21)입니다.”

  3번째 반론에 대한 답을 적기 전에,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지난 번 글에 넣었던 그림을 가져옵니다.

  먼저 반론하신 분은 “모세의 성막에서 성막뜰/성소/지성소를 육/혼/영으로 매칭해보는 것은 좀 무리가 있고 오히려 성막뜰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으로, 성소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으로, 지성소는 부활하여 셋째하늘에 올라가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라고 하셨는데, 제 포인트도 역시 성막뜰은 육신에 속한 사람이고(거듭나지 못한) 성소로 들어간 사람이어야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는 것이었는데, 메세지 전달이 안 된 모양이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가 3째하늘이라는 건 동의하면서도 성소가 둘째하늘이라는 건 동의가 안된다면서 “둘째하늘은 마귀들이 거하는 곳이요(엡6:12 욥15:15) 하나님께서 둘째 하늘을 만드신 둘째 날에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없기(창1:8)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물 가운데 궁창이 있게 하셔서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시고 그 궁창을 하늘이라고 부르신 둘째 날에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창 1:6-8). 그렇지만, 그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누시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시며, 두 큰 광명체를(해와 달) 만들어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또 별들을 만들어 땅을 비추게 하신 넷째 날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창 1:14-18). 성소는 바로 이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둘째하늘이며 성소에 있는 3가지의 기구도 해와 달과 별들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으로 거듭난 자임에도 육신에 속한 사람은 많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린도전서가 그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미 혼이 구원받은 사람(벧전1:10 약1:21)입니다”라고 했는데, 갓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육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반론하신 분이 얘기한 것처럼 ‘육신에 속한 사람’은 아닙니다. 비록 육적일지는 몰라도 성령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미 혼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건 당연한 얘기입니다.

“반론 4. 또한 지성소를 가나안과 매칭한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셋째하늘은 구원과 관련되지만 가나안은 믿음을 지킨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구원을 받지 못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는 구원은 받았지만 믿음의 행위가 없음으로(민20:12;37:13-14)보상을 빼앗기는 자들의 예표(고전3:15)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유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민20:12;27:13-14). 모세는 예수님을 예표하기도 하지만 불신으로 보상을 빼앗기는 자를 예표하기도 합니다. 사라가 이스라엘의 예표(창23장-24장)이기도 하지만 새 예루살렘/자유로운 자를 예표(갈4:26)하는 것과 같습니다. 솔로몬왕은 화평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도 하나 적그리스도를 예표하기도 합니다. 모세가 구원을 못받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몸은 셋째하늘로 옮겨졌습니다.(유1:9) 광야가 구원 맞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넜잖아요.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전체가 다 죽은 게 아닙니다. 불신으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자들만 죽었습니다.(만14:26-38)”

  네 번째 반론에 대한 저의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는(민 12:3) 소리를 듣고 내 온 집안에 충성된 자라는(민 12:7) 평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중보하며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그들을 이끌고 하나님을 믿고 따랐던 사람인데, 그런 그를 ‘구원은 받았지만 믿음의 행위가 없어서 보상을 빼앗기는 사람의 예표’라고 하는 것엔 무리가 없고, 본인도 보상의 예표라고 한 가나안을 제가 하늘 천국의 예표로 쓴 건 무리가 있다고 하는 것이 와닿지 않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건 율법을 예표 하기 때문입니다.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여호수아가 이끕니다. 그렇지만 모세의 몸은 하나님이 직접 거두셨습니다(유1:9). 그래서 초림의 예수님 때에도 이미 부활의 몸을 입고 엘리야랑 같이 나타나기도 합니다(마 17:3; 막 9:4; 눅 9:30).

이 세상에서 가나안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의 예표였듯이 저 하늘에서는 셋째 하늘입니다. 구원을 얻었지만 아직은 새몸을 입지 못한 상태로 육신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에 번제단에 날마다 내 육신을 먼저 죽여야 한다는 게 제 포인트였습니다. 그리고 거듭나지 않고 교회 마당만 밟는 사람들도 있구요. 저는 에굽은 사망의 몸에서 건짐 받는 것이고 광야는 혼의 영역 즉 내가 성령을 힘입어 성화를 이뤄가야 하는 부분이고, 가나안은 영의 영역 즉 3째 하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넌 게 구원이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가는 건 상급’이라고 하셨는데, 성막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습니다. 이 물두멍을 홍해를 건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개의 물 침례를 거친 후 성소 즉 광야로 들어가는 것이고 말씀하신 대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요. 거기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영의 열매가 있어서 상급을(가나안) 받는 것으로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반론 5. 구약 성도의 구원과 신약 성도의 구원울 나누어야 합니다. *구약 율법 아래 이스라엘의 구원: 몸의 구원(질병, 전쟁 등으로부터) *성육신 이후 신약 교회의 구원: 죄로부터 혼의 구원. 예수님 십자가 속죄 이전의 구약 성도들은 그들의 혼이 셋째 하늘로 가지 못하고 지하 낙원에 있다가 예수님의 대속이 있은 후 예수님과 같이 부활 승천했습니다.”

  다섯 번째 반론에 대한 저의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 성도의 구원과 신약 성도의 구원을 나눠야 한다면서 율법 아래 이스라엘의 구원은 몸의 구원이었고(질병 및 전쟁), 성육신 이후 신약 교회의 구원은 죄로부터 혼의 구원’이라고 하셨는데, 믿음장으로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아벨 및 아브라함과 모세 및 사사들이 다 몸만 구원을 얻었던가요? 그들은 모두 믿음으로 혼의 구원을 얻었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면서 같이 부활했습니다(마 27:52). 신약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부활 및 휴거하여 영의 몸을 입습니다. 하나님의 때에(경륜) 따라 시간은 다르지만 모두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율법의 행위로 혼의 구원을 얻고 몸의 부활을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먼저 잠들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원 사역을 마치시고 부활하시니까 함께 일어난 것이고, 신약 성도들은 아직입니다. 혼의 보증인 예수 그리스도가 아직 오시기 전인 구약 성도들, 즉 이스라엘 선지자들 및 다윗 등등은 다, 믿음으로 땅속 ‘아브라함의 품(눅 16:22)’에 잠들었다가 부활 승천하신 주님에 이끌려 삼천층으로 옮겨졌습니다(엡4:7-9). 신약 성도들은 주님께서 이미 지성소와 성소의 휘장을 찢으신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죽으면 혼은 바로 둘째하늘을 통과하여 셋째하늘로 가지만 몸의 부활은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 일어납니다.

또한 반론을 제기하셨던 분은 “살아서 휴거하는 신약성도의 예표는 에녹입니다(창6:24) 엘리야는 대환란 때 살아서 휴거하는 환란성도의 예표이며 모세는 대환란 때 죽음으로 짐승을 이긴 환란성도들의 부활/승천을 예표합니다.”라고도 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분석하면서 썼듯이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비춰 이 부분을 적자면 에녹은 환란전 휴거하는 성도들을 예표하고, 엘리야는 환란 때 살아서 휴거하는 이스라엘의 144,000명을 예표하며, 모세는 환란을 통과하며 죽음으로 짐승과 짐승의 표를 이기고 부활하는 환란 성도들을 예표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노아는 환란을 통과한 후 육의 몸으로(변화된 영의 몸이 아닌)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땅의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민족을 예표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부활도 한 번, 휴거도 한 번이라고 생각하기에 서로 환란 전이냐 환란 후냐 하면서 다툽니다. 마치 예수님의 12제자들이 부활을 세상 끝 날에 있을 백보좌 심판의 부활로만 이해해서 예수님이 고난당해 죽으시고 장사된 지 3일 만에 부활하실 거라고 말씀하셨을 때 못 알아듣고 예수님을 훈계하다 책망받았듯이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휴거도(에녹, 엘리야), 부활도(모세, 예수님 및 구약성도) 이미 몇 번 일어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반론하신 분은 또한 구약성도와 신약성도의 구원이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신약과 구약의 구원이 다르고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민족의 구원이 다른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며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이지만 사람들이 차별해서 다르게 해석하는 것뿐입니다. 예전엔 이스라엘 민족들이 재림의 주에 대한 구절들만 받아들이고 초림의 고난 당하는 종, 그리스도에 대한 구절들은 무시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엔 이방인들은 없으며 구원은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서 더욱 주님을 핍박했으며 아직도 성경을 읽을 때 모세의 얼굴을 가렸던 천이 벗겨지지 않은 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개중의 신약 성도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말씀으로 차별하고 그들의 구원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구원이 혈통으로 가는 게 아니고 믿음으로 간다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거스르면서 말입니다.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습니다. 민족, 나라, 언어로 갈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성도인가 아닌가의 차이입니다.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경륜입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사역을 마치신 기점으로 먼저 일어났느냐(구약성도) 나중 일어났느냐인(신약성도) 것이고, 또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시점까지 믿었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하늘에 있던 주의 성도들과 땅에 있던 주의 성도들이 심판의 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공중에서 만나게 되는 시점까지는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주를 믿는 자들은 영의 몸을 입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환란 후 땅으로 재림하신 후에(천년왕국 시작점) 비로소 회개하고 믿게 되는 사람들은 그게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천년왕국으로 들어가는 구원은 얻지만 영의 몸을 입는 것은 아닙니다. 단 천년왕국에서 이스라엘은 다른 이방 나라들의 머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경륜)에 따라 나누신 구원의 역사를 바로 나누지 않고 이스라엘, 이방인이라는 인종으로 나누고 있다면 예수님께 책망받았던 바리새인들과 무엇이 다를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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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2 thoughts on “성막과 하늘들과 영혼육의 관계

  1. 샬롬!
    main menu에섯 6번과 7번이 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올라왔습니다.
    이번 올려주신 내용을 천천히 여러번 읽고 소화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함이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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