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에 적었듯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이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을 때는 머리 둘 곳 없이 지내셨습니다(마 8:20).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된(고전 15:20) 주님의 생활 방식은 그리스도에 속한 우리(고전 15:23)의 생활 방식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거류민들이요(Strangers) 순례자들인(Pilgrims) 너희는 혼을 대적해 싸우는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라고 간청(벧전 2:11 직역)”합니다. 다윗은 시편을 지어 “주의 법규들이 내 순례의 집 안에서(in the house of my pilgrimage) 내 노래들이 되었나이다(시 119:54 직역)”고 부릅니다.

영어 킹제임스에 198번 나오는 ‘Stranger’는 한국어 성경에 ‘나그네’, ‘낯선 자’, ‘이방인’, ‘외국인’ 등으로 번역됩니다. ‘stranger’는 타국인(외국인)을 뜻하기에 ‘거류민(외국인으로 타국에 거하는)’으로 번역해야 참 의미 전달이 될 텐데 아쉽게도 대부분 ‘나그네’로 번역했습니다. ‘나그네’는 자국민이 아니란 의미까지 포함된 건 아니기에 저자의 의도를 희석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처럼 우리는 세상에 속한 게 아니며(요 17:16) 우리의 시민권은(politeuma:연방정부, 시민권)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빌 3:20). 성경엔 나그네에 맞는 ‘sojourner’, 즉 어떤 곳에 잠깐씩 머무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도 10번 나옵니다. 또한 종교적 의미인 ‘순례자(pilgrim)’ 혹은 ‘순례(pilgrimage)’는 5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3가지 독특한 단어들을 한국어 성경은 모두 혼용해서 쓴 점이 아쉽습니다.

성경에서 ‘stranger’와 ‘sojourner’가 처음 쓰인 사람은 아브라함이며 ‘pilgrimage’가 처음 쓰인 사람은 야곱입니다(창 47:9).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는 시험을 통과한 직후 맞게 된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 아브라함은, “나는 너희 가운데 거류민이요 나그네이니, 너희 가운데 내 죽은 자를 내 눈앞에서 거둬 묻을 매장지를 소유케 해달라(직역)”고 헷족속에게 부탁합니다. “I am a stranger and a sojourner with you: give me a possession of a burying place with you, that I may bury my dead out of my sight(창 23:4).”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와 네 후손이 거류민인(wherein thou art a stranger)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네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8 직역)”고 약속하셨건만 생전에 그가 얻은 땅은 가족들을 묻을 장지가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고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했지만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받아들이며 땅에선 거류민이고 순례자임을(strangers and pilgrims) 고백합니다(히 11:13).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거하기를 타국에 있듯이 하며(By faith he sojourned in the land of promise, as in a strange country)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인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이 짓고 만드신 한 도시를 바랐기 때문입니다(히 11:9, 16). 이는 몸의 속량을(redemption) 기다리는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롬 8:23) 우리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장막에서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집으로 옷 입어(고후 5:2-4)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기 위함입니다(고전 15:53). 땅에 있는 이 장막 집이 해체되면 손으로 짓지 않은 하나님의 건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고후 5:1).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지며(고전 15:54)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는(고후 5:4) 일을 위해 하나님은 우릴 다듬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고후 5:5). 따라서 우리는 살아 있는 돌들로서 신령한 집으로 지어지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으실만한 신령한 희생 제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됐습니다(벧전 2:5). 우릴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지낼 처소를 아버지의 집에 예비하러 가셨기 때문입니다(요 14:2-3).

이처럼 우리가 입게 될 새 몸인 하나님의 집은 성전이며 교회입니다. 여호수아 때 이방인인 기드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house of God)’에서 물 깃고 나무 패는 자들이 됐습니다(수 9:23). 다윗은 이스라엘 땅에 있는 거류민들(strangers:이방인들)에게 명령해서 ‘하나님의 집’을 지을 돌들을 다듬게 했습니다(대상 22: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 아달랴가 통치하는 동안 ‘하나님의 집’에 6년간 숨겨진 후 7년이 되던 해에 왕위에 오릅니다(대하 22:12-23:1). 고레스 왕은 땅의 온 왕국을 내게 주신 주(여호와) 하나님이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자신을 위한 집을 짓도록 명령하셨으니 주(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돌아가라고 선포합니다(대하 36:23). 바울은 디모데에게 “만일 내가 오랫동안 지체하게 되면 네가 ‘하나님의 집’, 즉 진리의 기둥과 터전인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알 수 있게끔” 이것들을 쓴다고 합니다(딤전 3:14-15 직역). 베드로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해야만 하는 때가 왔으니 만일 그것의 첫 시작이 우리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은 자들에게 이를 그 끝은 과연 어떻겠냐고(벧전 4:17) 묻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고 반문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냐(고후 6:16)”고 묻습니다.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니 그들 가운데서 나와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6-17)”고도 당부합니다. 그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부수리니(destroy),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고 너희가 곧 그 성전(고전 3:17 직역)’이라고 합니다. 주님도 ‘이 성전을 부수라(destroy). 3일 안에 내가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요 2:19 직역)’고 하셨는데 이는 성전인 자기 몸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요 2:21). 주님은 빌라델피아 교회에게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으니 나도 너를 지켜 온 세상에 임해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해주겠다’고 하십니다(계 3:10). 또한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다시는 나가지 아니할 것(계 3:12)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또 내가 그 위에(epi)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하고 나의 새 이름을 기록하리니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계 3:12-13).”라고도 하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도시인 새 예루살렘은 재림하신 예수님의 땅에서의 1000년 통치가 끝난 후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하는 도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태초에 만드신 땅의 기초와 하늘들은 모두 옷처럼 낡아질 것이요 없어질 것이며 하나님은 그것들을 옷처럼 접어 바꾸실 것이라고 합니다(히 1:10-12).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진 후(계 20:14) 임하는 이 도시는 믿음의 선진들이 찾고 있던 더 좋은 본향이며 곧 하늘의 본향입니다(히 11:14-16). 새 예루살렘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이며(계 21:9-10)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진 후에(계 21:1)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이 예비한 채 하늘에서 내려옵니다(계 21:2). 전능하신 주(여호와) 하나님과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성전이며 광체이시기에 그 안엔 성전이 없고 해와 달도 필요치 않으며 밤도 없습니다(계 21:22-25). 거기에는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과 어린양의 왕좌가 그 안에 있어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얼굴을 볼 것이고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 위에(epi) 있어 영원무궁토록 통치할 것입니다(계 22:3-4 직역).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 22:16-21 흠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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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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