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동산 한 가운데 두셨나? – 율법과 성령의 법

제 글에 대한 코멘트를 받는 경우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2018년 여름에 쓴 (제 첫 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에덴 동산 한 가운데 두셨는가?“란 글에 대한 코멘트를 받고 감사했습니다. 요즘엔, 성경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고, 자신이 믿는 바를 성경으로 논증하며 풀어내는 사람을 만나는 건 더욱 드문 일이기 때문입니다. 코멘트를 보내주신 분의 의견에 동의를 하는가 안 하는가를 떠나서, 이렇게 말씀을 탐구하고 성경을 들어 증명할 수 있는 분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습니다. 다음은 그분이 보내신 코멘트입니다. 자기소개 부분은 뺐습니다.

“위의 글은 잘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동산 한 가운데 선악과를 두셨는가? 라는 질문에 성경적으로 답변을 제공하려고 노력하신 마음이 참으로 귀한것 같습니다. 몇가지 제 생각을 나누려 합니다. 먼저 본문 글 가운데  하와가 동산 중앙 나무를 언급할때 생명 나무를 (의도적으로) 빼고 또 먹지만 말라고 한 하나님 말씀을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더해 마치 만지기만 해도 죽는다고  하와가 의도적으로 상황을 왜곡했다는 해석을 하셨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는 감추고 숨은 불만은 드러내 마귀에게 빌미를 줍니다.”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동상 중앙에 선악과를 두고 먹지 말라고 하셔서 죄의 빌미를 주셨는가? 라는 질문에 잘못을 하나님으로 부터 하와로 이전 시키려는 노력의 결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성경적으로 또 복음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선악과를 따먹기 전 하와가 이미 불만, 의심, 왜곡, 거짓말이란 죄를 지었다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정확하게 죄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불순종 함으로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로마서 5:12)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로마서 5:19)

아담(과 하와) 가 선악과를 먹어 불순종 하기 전에는 세상에 죄는 없었습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기 전부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불만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왜곡하고 거짓말을 할수 있는 상태 였다면 로마서 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복음도 거짓이 됩니다. 첫 번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 이미 죄가 마음에 들어온 상태라면 거룩한 하나님과 에덴 동산에서 함께 거닐며 교제할 수 없습니다. 

둘째 하와가 선악과 이전에 이미 죄를 지었다면 로마서 5장 말씀과 또 그리스도의 구속도 거짓말이 됩니다. 죄가 아담이 범죄 하기 전에 세상에 들어 왔다면 죄의 해결도 둘째 아담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다른방법으로 먼저 해결할수 있는것 입니다. 오직 죄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세상에 들어온 것이고 동일하게 죄의 해결은 둘째 아담 되신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온 세상에 예수님을 믿는자들에게 사하심을 받게 되는 것 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전 하와는 뱀의 질문에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직하게 답변한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죄에 대하여 요구 하시는 하나님의 standard  이십니다. 죄에 (선악과) 대하여 만지고 가지고 놀아도 되지만 먹지만 말라라고 요구하시는것이 아니라 철저한 분리와 순종을 요구 하시는것 입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2)

우리가 죄에 대하여 가까지 가고 만지지만 선만 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성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그래서 복음과 반되대는 초등학문에 대하여서도”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골로새서 2:21) 라고 말씀 하신 것 입니다.

위의 해석은 “왜 하나님께서 굳이 동산 한 가운데 선악과를 두셔서 인간이 범죄하게 하였는가?” 라는 하나님의 도덕을 challenge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하려고 하는 가운데 나온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동산 한 가운데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두는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라는 전제에 동의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동산 한 가운데 있는 선악과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와 은혜, 주권을 상징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세상의 모든 생물들을 정복하고 다스릴 권세를 주셨습니다.

또한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자유롭게 먹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무제한에 가까운 자유과 권세 가운데 동산 한 가운데 있는 선악과는 하나님의 질서와 은혜와 주권을 상징하는것 입니다. Boundary 가 없는 자유는 곧 무질서와 혼돈을 가져다 줍니다.  한계가 없는 권력은 교만과 타락으로 이어질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가질수 있는 세상에서는 감사가 없습니다. 선악과는 모든 것이 자유로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정해 주신 boundary  안에서 자유라는 질서를 제공해 줍니다. 선악과는 모든 권력이 주어진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인간 위에 계시다는 주권을 인정하게 해 줍니다. 선악과는 모든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해 줍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때 진정한 참 자유와 권세와 질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영원히 축복 가운데 살수 있는 것 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에 중요한 장치 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볼수 있는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것입니다. 제 의견에 대한 질문이나 코멘트도 자유롭게 나누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글에 대한 저의 답변은 다음과 같이 보냈습니다. 밑줄 친 부분은 보냈던 답글에 미처 포함 못 했던 부분을 덧붙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에덴 동산 한 가운데 두셨는가?“를 먼저 읽어보시고 싶은 분은 여길 누르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저의 글에 관심 가져주시고 이렇게 정성껏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은 하와가 동산 중앙 나무를 언급할 때 생명 나무를 의도적으로 빼고, 또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에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더한 것, 하와에게 숨은 불만이 있었다는 것을 ‘죄’로 해석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세상은 죄가 없는 세상이기에 불만, 의식, 왜곡, 거짓말이 있을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정확하게 죄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불순종 함으로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라고 써주셨는데, 제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그렇다면 ‘불순종’은 죄일까요 아닐까요 라는 것입니다. 만약 불만을 갖는 것이 죄라면 불순종하는 것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무죄하다고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는 세상인데 아담은 어떻게 불순종하는 죄를 지을 수 있었을까요?

예전에 이런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는데 하나님은 왜 다른 사람들이 가인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시고 오히려 보호해 주셨을까? 성경은 분명 살인한 자는 죽이라고 되어 있는데, 왜 가인에겐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그 질문은 오랜 탐구 끝에 답을 얻었었습니다. 가인이 살인하던 당시에는 살인에 대한 법이 없었습니다. 처음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전에 있었던 법은 딱 하나. “선악과는 먹지 말라”였습니다. 그 법만 어기지 않는다면 ‘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유일한 법을 어기는 행위는 ‘선악과를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후 가인이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가인을 벌하지 않으십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법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노아의 홍수 이후, 살인에 대한 법을 주십니다.

창세기 9장 4-6절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노아의 홍수 이후로는 살인하는 사람은 법을 어겼기에 죗값으로 죽어야 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길에서 스피드 사고가 너무 나는 겁니다. 그래서 일정 스피드를 넘기면 안 된다는 표지판이 생깁니다. 그 표지판이 생기기 전에 그 스피드 이상으로 다녔던 차량들은 죄가 없습니다. 왜냐면 그런 법이 없었고 그래서 어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스피드 판이 생기고 난 후 어긴다면, 죄가 되고, 잡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고 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이는 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추리하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들이 불만을 가질 수 없는 존재라면 자유의지나 사고를 가진 존재가 아닌 로봇이었겠지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든지 그당시엔 죄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세의 율법에 비추어 보면 죽어야 하는 사람들인데 아무 벌도 받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 육신의 시조가 되는 유다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야곱은 두 아내를 두는데, 하다못해 친자매들입니다. 레위기와 신명기에 보면, 이런 행동들은 하나님이 절대 하지 말라고 금하시는 행동이며 돌로 쳐 죽여야 하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돌에 맞아 죽기는커녕 믿음의 조상들이 됩니다. 앞에서도 적었듯이, 아직 그런 법이 생기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아주 간단한 법을 어김으로 죄가 성립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담의 때에 유일한 ‘죄’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어기고 먹는 것이었고,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 죄가 성립된 것입니다. 그 후 살인하지 말라는 법이 하나 더 생겼고, 그 이후로는 우리도 알다시피 모세가 율법을 받는데, 다양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금하십니다.

그리고 신약에 넘어와서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으로 눈에 보이는 행동이 아닌 마음으로 짓는 죄까지 금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의 서신서들을 보면, 마음으로 짓는 모든 것들, 탐욕, 불만, 시기, 질투 등등을 모두 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시점의 시각으로 보면 목사님의 말처럼 하와가 품은 마음은 죄가 되고,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여겨지시겠지만, 그때는 전혀 죄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유일하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만이 죄가 됩니다. 생각해 보면 엄청난 자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원이겠지요. 지금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순종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새로운 법이 생겼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생명나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 믿으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습니다.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어 죽었던 것에서 먹으라는 생명나무를 먹으면 사는 것입니다. 또한 처음 법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 8:1)”입니다.

그리고 하와는 들은 대로 말한 것이라는 목사님의 추론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면, 2장 16절에서 17절에 그렇게 쓰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긴 분명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만 되어 있지 “만지기만 해도 정녕 네가 죽으리라”고 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부풀려서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 네가 죽을까 하노라”하셨다고 한 것은 반쪽짜리 사실임으로 거짓말입니다. 그 틈을 거짓의 아비인 사단이 바로 틈타고 들어와 “결코 네가 죽지 않으리라!”고 맞장구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단도 하나님께 할 말이 있습니다. 난 하와가 하나님께서 만지기만 해도 죽는다고 하셨다길래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을 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적힌 그대로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게 되면 괴변이 되고 거짓의 아비에게 빌미를 주어 죄를 낳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에 적힌 말씀이라고 다 같은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인지, 아닌지를 두고 분별하고 나누어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적힌 그대로 읽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되어 있는 부분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믿는 자의 자세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않으려고 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고 좋은 것입니다. 유혹에 약한 인생들이니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셨기에 난 근처에도 안 간다고 하는 거랑 하나님이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하셨다고 하는 거랑은 분명 다릅니다. 더구나 성경은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는 것을 초등학문에 비유하고 있으며 “이는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골 2:21-22). 이제 이런 것에서 벗어나 참된 진리와 복음인 성령의 법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목사님이 쓰신 “위의 해석은 “왜 하나님께서 굳이 동산 한 가운데 선악과를 두셔서 인간이 범죄하게 하였는가?” 라는 하나님의 도덕을 challenge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하려고 하는 가운데 나온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동산 한 가운데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두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라는 전제에 동의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동산 한 가운데 있는 선악과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신 부분이 의아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의미로 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와 은혜, 주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쓰셨는데, 저야말로 ‘주권’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썼었기에 동의하면서도, 왜 제 글은 그런 시각이 아니라고 생각하셨는지 의아했습니다. 제 글의 다음 부분을 다시 한번 읽어봐 주시길 바라고 긴 글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또 코멘트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동산 중앙에 생명 나무와 선악과나무를 두신 걸까요? 그 이유는 생명 나무와 선악과는 말씀하신 것처럼 생명과 사망을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빛과 어둠처럼 자연의 생성 법칙이었기에 생명 나무에서는 먹고 영원히 살라, 그러나 선악과는 네가 죽게 될 터이니 먹지 말라고 단순한 ‘팩트’를 일러주신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진리이신(팩트)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게 생명이요, 불신하고 따르지 않는 게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우리 몸은 원래 영원히 살게 만들어졌는데 죄가 들어와 죽게 된 거라고 흔히 듣던 말도 반쪽 사실이므로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지어졌던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죽도록 지어진 존재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만들어진 모든 만물에겐 중력의 법칙처럼 벗어날 수 없는 법칙입니다. 단, 선택의 여지 없이 그리되는 세상 만물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들은 자기 의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만 명령하신 게 아니라 생명 나무에서 먹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좇아 생명 나무에서 먹으면 영원히 사는 거였고 먹지 않으면 죽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먹지 않았어도 생명 나무에서 먹지 않으면 그들은 결국 죽게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단지 선악과를 따먹는 것만으로 죽는 거였으면 아담과 하와를 생명 나무에서 먹고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동산에서 쫓아낼 이유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첫 조상은 말씀하셨던 이 두 가지의 명령을 모두 순종해야 살 수 있었던 것이지 그중 한 가지만 지킨다고 살 수 있었던 존재가 아니었고 한 가지만 이행하는 건 불순종이었습니다. 즉, 생명 나무와 선악과에 관한 명령은 ‘and’이지 ‘or’가 아니었던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생명 나무에선 먹고 선악과는 먹지 말면 영원히 살 수 있었던 것이고 둘 중 한 가지만 이행하는 건 불순종(죄)이며 죽게 되는 거였습니다.

성경은 죄의 결과가 사망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중간 과정까지 말하면 죄를 범하여 생명 나무가 금해짐으로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법을 따를 수도 있고 안 따를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속이려 오는 마귀에 대해 아셨고 또 속을 것도 아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라고 그 나무들을 주셨던 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명기에서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내 말씀을 읽고 가르치고 지키라면서,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신 11:26-28)”고 하십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늘 생명을, 복을 택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약하고 어리석은 존재기에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게 된 것이고, 그것조차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의 어린양으로 준비해주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죄가 되어 사망하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우리가 그분에게로 와 먹으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생명 나무가 되셨습니다. ”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