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 글에 대해 받은 코멘트를 소개하고 거기에 덧붙이려 합니다. 6개월 전쯤에 쓴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동산 한 가운데 두셨나?-율법과 성령의 법“을 읽으신 분이 보내주신 코멘트입니다. 코멘트가 여러 포인트를 다루고 있어 문답 형식으로 나눠 적습니다.
[저의 생각을 조금 나눠보고 싶어서 코멘트 남깁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지 만지지 말라고는 하지 않으셨는데, 그래서 저는 선악과가 죄가 아니라 “선악과를 먹는 행위가 죄”라는 판단이 듭니다.
요한일서3:4KRV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법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였는데, 요일3:4에 의하면 법을 어기는 것이 불법이고 죄는 곧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선악과가 죄가 아니라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는 행동 즉, 불순종이 죄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왜 하나님은 먹으면 죽는 선악과를 만드셨는가?” “왜 하필 동산 한 가운데 두셨는가?”란 질문을 하면서 선악과 자체가 악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명나무와 선악과는 빛과 어둠처럼 자연의 생성 법칙이었을 뿐입니다. 생명나무가 선하다 한들, 생명나무에서 먹으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먹지 않는다면 영원히 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 먹게 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에서 먹고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고 그룹들과 불타는 칼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으셨습니다(창 3:22-24). 결국 순종이 나를 살리는 것이지 생명나무 자체가 나를 살리는 건 아닙니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선악과 자체가 나를 죽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악과는 말 그대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관점에서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가를 판단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내가 집을 건축한 사람이요 집주인이면 내 필요에 맞게 집을 디자인하고 내 마음대로 가구를 배치합니다. 침실, 거실, 화장실 등등 그 용도에 맞게 씁니다. 그렇지만 내 집도 아니면서 이래라저래라 참견하고 컨트롤 하려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선과 악을 알게 됐습니다. 문제는 그 기준이 자신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뱀이 한 말은 어느 정도의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하나님인 양 자기들 입장에서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판단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날 변기가, 나는 더 이상 용변 보는 일에 쓰이지 않겠으니 이제부터 나를 식기로 쓰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무질서의 혼돈이 일어나게 될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생명나무에서 먹고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애덴동산에서 내보내십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질서가 깨지게 되자 사람과 생물과의 질서도 깨지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대로 지어진 아담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존재로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받았던 존재였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땅도 저주받게 됩니다. 또한 더 이상 생명나무에서 먹는 것이 금해지는 것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여기서 오래전에 조명받은 부분이지만 아직 나누지 않았었던 부분까지 적자면,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신 구절은 영어로 읽으면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thou shalt surely die(KJV).”입니다. 즉, ‘그것을 먹은 날 안에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알다시피 아담은 먹은 즉시 그날 안에 죽지 않았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가 베드로 후서의 유명한 구절을 통해 의문이 해결된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아담은 930년을 살고 죽습니다. 천년에서 70년이 빠진 수명입니다(하나님의 완전수 7과 7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어느 인물도 1000년을 산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하루가 천년과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네가 먹는 그날 안에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아담은 930년을 살고 죽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므두셀라로 969세를 살았습니다.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야고보서 1:14-15 KRV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욕심이 잉태하여서 죄를 낳게 되는 것인데, 아담과 하와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명령에 대적하는 것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죄를 낳기전에 계속 품지(잉태)말고 버렸어야 했습니다. 만지는 것이 불법(죄)이라고 하시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고의가 아닌 우리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질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는 마음이 강하면, 당연히 만지지도 않겠지요. 하나님은 만지지 말라고 명하지 않으셨지만, 우리 스스로 만지지도 않을것입니다. 사탄의 존재와 우리의 연약함을 안다면요. 이것이 곧 절제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은 특히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를 빗대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았습니다.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창 3:6)’인 것입니다. 요한은 이런 “육신의 정욕(먹음직), 안목의 정욕(보암직), 이생의 자랑(지혜롭게 할 만큼)은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고 분명히 적고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온 것을 따라 선악과 나무의 열매가 ‘탐스럽게’ 여겨질 때 ‘욕심’이 잉태된 것이며 그걸 행동으로 옮겨 취한 순간 죄를 낳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죄가 장성한 끝에 사망을 낳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하와가 속았던 것이지 아담은 속지 않았었다(딤전 2:14)’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와는 뱀에게 미혹됐습니다. 그렇지만 아담은 뱀에게 미혹된 게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신 아내에게 순종하기로 선택했습니다. 하와가 함께 있던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자 따라 먹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하지만 하나님보다 선물을 더 위에 둔다면 우상일 뿐입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불순종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하와는 부지중에 죄를 범한 것이고 아담은 알고도 범한 것입니다. 부지중에 지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알고도 지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민15:22-31).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하와만 선악과를 먹고 아담은 먹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 만일 하와만 선악과를 먹었다면 아담이 왕과 같은 제사장이었기에 미혹되어 부지 중에 죄를 지은 아내를 위해 속죄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욥이 3 친구를 위해 속죄했듯이). 그렇지만 아담이 고의로 불순종했던 것이기에 성경은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고 하며 첫 아담과 둘째 아담(예수님)을 비교합니다(증인과 나눔을 의미하는 숫자 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선악과의 의미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로(창2:17KRV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과를 먹는 행위가 곧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게 제 생각인데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에덴동산의 가운데에 두신것은, 우리의 중심인 영 안에 이 둘 중 하나를 둘 수 있고, 우리의 의지(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먹을(주인으로 모심)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수를 받아 먹게 되는 것이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으면 사탄으로부터 사탄의 것을 받아먹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좋은 인사이트이고 동의하기에 덧붙일 게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며칠전에 하나님의 절기에 대해서 궁금해서 검색하다가 글쓴이님의 이 사이트를 발견했는데요.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계시록에서 나팔을 여러번 부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정말 너무나도 궁금했는데, 글쓴이님의 설명(나팔절에 나팔을 33*3+1, 100번을 부는것)을 보고 뭔가 깨닫는게 있었습니다.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유일한 평안이고 생명인데, 하나님을 더 알수 있도록 이렇게 연구하셔서 이런 글을 남겨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교류할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성경 말씀에 대해 명확히 드러난 복음의 진리 이외의 부분중 모호한 부분에 대한 생각과 해석이 다를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아시니 각 사람의 동기를 아시고 분명히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좋은 글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도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이 사이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내게 알게 해주신 것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씨름하고 고민하며 연구했던 구절들을 찾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란 생각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7절기에 대한 부분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유익한 진리이기에 공부한 부분들을 적게 됐습니다. 저 역시 문명의 발달로 큰 혜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니었다면 이렇게 말씀 연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때 인터넷이 발달하고 웹사이트가 개발됐을 때 ‘www’가 ‘666’이라며 짐승의 표라는 설이 돌았었습니다(6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선악과가 죄가 아니라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 것이 죄’라고 코멘트하신 분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인터넷과 웹이 악한 게 아니라 그걸로 무엇을 찾고 무엇을 하느냐가 악함과 선함을 결정합니다. 칼이 강도의 손에 있으면 살인의 도구지만 의사의 손에 있으면 살리는 도구입니다. 문명의 발달로 이렇게 말씀을 찾고 구하는 지체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