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장 원어/영어 분석 1(계2:1-16)

“Brass 혹은 bronze는 alloy입니다.  Copper + Zinc = brass , copper + tin = bronze.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다른 금속들은 alloy가 아닙니다.  Gold, silver, iron은 alloy가 아닌 한 가지로만 됐는데, 왜 굳이 bronze 혹은 brass의 alloy를 성전 입구에 세웠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이게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의 연합으로 교회가 세워진다는 의미라고 생각이 됐습니다.  Pure copper는 너무 물렁거려서 힘이 없지만, bronze나 brass는 copper보다 더 세고 녹이 나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민족의 연합도 그런 맥락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번 글이었던 “요한계시록 1장 원어/영어 분석(2)“에 대해 들어온 코멘트입니다. 특별히 계시록 1장 15절에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란 부분을 분석하다가 왜 한국어 성경은 ‘놋쇠(brass)’를 ‘주석(tin)’으로 번역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던 부분을 눈여겨보신 모양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성전 입구에 세웠던 두 개의 놋기둥(보아스와 야긴)도 ‘brass’였으며 이 두 놋기둥은 다름 아닌 15절에 나오는 부활하신 주님의 죄를 심판하실 두 다리를 상징한다고 썼었는데, 그 내용까지 모두 결부시킨 좋은 인사이트인 것 같아 나눕니다. 이런 코멘트를 접할 때마다 그동안의 작업이 결코 헛된 노력은 아니었구나 싶어 위로가 됩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 2장 1-16절까지 다루려고 합니다.

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에베소’는 성경에 총 17번 등장합니다(부활 승리를 의미하는 숫자 17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견해는 갈리는데 ‘바람직하다, 호감이 가다, 갖고 싶을 만하다’를 의미하는 ‘desirable’이라고도 하고 ‘허용되다’를 의미하는 ‘permitted’라고도 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서 ‘사자’는 ‘천사 혹은 메신저’를 뜻하는 ‘aggelos(앵겔로스)’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 총 176번이나 나오는데 대부분 ‘하나님의 메신저인 천사’를 뜻합니다. 오른손의 의미는 구원을 이루시는 능력의 손, 권능의 손을 의미하며 원수를 쳐부수는 승리와 공의의 손이기도 합니다(출 15:6, 15:12; 시 16:11, 17:7, 18:35, 20:6, 21:8, 44:3, 45:4, 60:5, 98:1, 108:6; 사 41:10, 48:13, 62:8).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를 뜻한다고 요한계시록 1장 20절에 그 의미가 이미 해석되어 있습니다.

본절에 ‘편지하라’는 그냥 ‘쓰라’는 의미의 ‘graphó(그라포)’입니다. 그러니까 계시록 1장 11절에 7 교회에 보내는 책(두루마리)에 쓰라는 지시입니다.

본절에 나오는 “촛대”는 구약의 ‘등잔대’와 같은 단어입니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으로는 “candlestick”, 다른 영어버전으로는 “lampstand”라고 하는데 성경 전체에 총 43구절에 걸쳐 53번 등장합니다(출 25:31(2), 25:32(2), 25:33, 25:34, 25:35, 26:35, 30:27, 31:8, 35:14, 37:17(2), 37:18(2), 37:19, 37:20, 39:37, 40:4, 40:24; 레 24:4; 민 3:31, 4:9, 8:2, 8:3, 8:4(2); 왕상 7:49; 왕후 4:10; 대상 28:15(5); 대하 4:7, 4:20, 13:11; 렘 52:19; 단 5:5; 슥 4:2, 4:11; 마 5:15; 막 4:21; 눅 8:16; 눅 11:33; 히 9:2; 계1:12, 1:13, 1:20(2), 2:1, 2:5, 11:4). 모세의 성막에는 7가지의 등불로 뻗어나가는 등잔대가 한 개였습니다(출 25장). 그랬다가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왼쪽에 5개 오른쪽에 5개 모두 10개의 등잔대가(왕상 7:49) 등장합니다(하나님의 완전수 10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등잔대마다 7가지의 등불이 있었으니 70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완전수 7과 7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게 요한계시록에 와서는 교회를 뜻하는 ‘촛대(등잔대)’로 6구절에 걸쳐 총 7번 등장합니다(계1:12, 1:13, 1:20(2), 2:1, 2:5, 11:4). 일곱 가지로 뻗어나가는 등잔대가 일곱이 있으니 49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알다시피 49란 수는 희년으로 이어지는 50과 깊은 연관이 있는 7번의 안식년을 뜻하는 안식의 완전수이기도 합니다(50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숫자까지 들어간 ‘일곱 촛대(등잔대)’란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만 4구절에 걸쳐 5번(은혜의 수 5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등장합니다(계1:12, 1:13, 1:20(2), 2:1).

‘일곱 금 촛대 사이를’이라고 번역했지만 직역은 ‘일곱 금 촛대들(등잔대들) 가운데(mesō)’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인 일곱 등잔대가 둘러서 있는 그 중심에 인자 같은 분이 거닐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출 3:2). 여호와는 시온과 예루살렘 한가운데 계시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로서 그들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고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분입니다(습 3:17). 주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마 18:20)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은 거룩함을 입은 형제요 자녀들인 교회의 중심에서(가운데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며 찬송하시는 분이십니다(히 2:10-13).

더구나 본절에 ‘거닐다’로 번역한 ‘peripateó(페리파테오)’는 신약에 총 96번 나오는데, 유대인들에게는 ‘살아가는 것’과 동일시되는 단어였습니다. 즉 그냥 ‘걷다’는 의미보다는 ‘삶으로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고(예: 믿음으로 걸으라, 정직하게 걸으라 등등) 특별히 ‘완전히 한 바퀴(궤도)를 돌며 걷는 것(walk around in a complete circuit or full circle)’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원형으로 놓여있는 7 교회(7등잔대) 가운데에서 full circle로 걷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천사에게 쓰라. 권능의 손으로 함께 원수를 쳐부시고 구원을 이룰 완전하게(7) 된 교회의 천사들(의로운 성도들)을 붙잡고 일곱 교회 가운데서 full circle(complete circuit)로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로 번역한 부분은 ‘그들의 거짓을 네가 찾아낸(알아낸) 것과’입니다. 본절에서 ‘거짓’으로 번역한 ‘pseudés(프쑤데스)’는 ‘거짓, 가짜, 사이비, 속임수’를 의미하는데 요즘도 ‘pseudo-science(쑤도-싸이언쓰) 즉, 사이비 과학같은 단어에 쓰입니다.

따라서 본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거짓을 찾아낸(알아낸) 것과

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본절의 ‘네가 참고’는 직역하면 ‘네게 있는 인내(hypomonēn echeis:perseverance you have)’입니다. ‘게으르지 아니한 것’은 오역입니다. 원어는 ‘ou(우) kekopiakes(케코피아케스)’ 즉, ‘지치지 않았다’ 입니다.

따라서 원어에 맞게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 네게 있는 인내와 내 이름을 위해 견디며(ebastasas:endure) 지치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처음’으로 번역한 헬라어 ‘prōtēn(프로텐)’은 신약에 정확히 100번 나오는 ‘첫 번째, 으뜸, 먼저, 전에’란 뜻의 ‘prótos(프로토스)’란 어원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처음에(전에) 가졌었던 사랑을 이런저런 영적 전쟁과 풍파에 시달리다가 저버렸기 때문에 책망받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도 이단 추종자들이나, 사이비 교주, 거짓 선지자, 또는 자칭 사도 노릇을 하는 자들이 한 번 나타나 휘젓고 나면 그 후유증으로 사랑이 식고 마음이 독해지는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2절과 3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악한 자들과 거짓 사도들을 시험해서 가려냈고 용납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분열과 다툼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쓴뿌리가 돋아나 시니컬(cynical)해졌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본절의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는 ‘어디에서부터(pothen) 넘어지게 된 건지(쓰러지게 된 건지)를 기억해서(mnēmoneue)’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느 시점에서부터 넘어지게 됐는지를 기억해 내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처음에 했던 일들을 하라(prōta erga poiēson)’입니다.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에서 ‘그 자리’로 번역한 ‘topos(토포스)’는 ‘장소, 곳, 지역, 자리’입니다. 특별히 이 구절은 원어로 직역하면 ‘너의 촛대(등잔대)를 그 지역 밖으로(ek) 옮기겠다’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20절에 의하면 ‘촛대(등잔대)’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알다시피 교회는 하나님이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따로 구별하신 성도들의 집합체입니다. 그런데 집합체로 있을 때 갖는 고유 명사가 있기 마련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경우는 에베소라는 지역에 모인 성도들의 집합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그 지역에서 나가 모두 흩어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초대 교회가 정확히 이 케이스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교회를 향한 대사명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게 되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돼라(행 1:8)”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 무지했던 이들은 예루살렘에만 머무르며 예루살렘의 국가적인 회복만 기다렸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베드로를 따로 불러내셔서 이방인 고넬료의 온 집안을 구원하시는 장면과 성령이 직접 이들에게 강력히 임하는 장면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을 더 이상 구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설득이 됐지만(나중에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까지도) 대부분의 성도는 권위 의식과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복음을 이방인에게로 가져가는 것에 불순종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바울을 부르셔서 이방의 빛으로(행 13:47) 삼으셨고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셔서 그곳에서 사라져 옮겨지게 하십니다. 핍박으로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나오게 된 성도들이 흩어지며 여러 각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자 그제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에베소 교회’란 공동체도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그 지역에서 나와 흩어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어에 맞게 직역하고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에서부터 넘어지게 된 건지(쓰러지게 된 건지)를 기억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했던 일들을 하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가서 네 교회를 그 지역 밖으로 흩어 옮겨지게 하리라

6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본절엔 ‘니골라 당의 행위’가, 15절엔 ‘니골라 당의 교훈’이 나오는데, ‘니골라 당’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이 두 구절에 나옵니다. ‘니골라 당의 행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정의하는 ‘니골라 당(Nikolaitōn:직역하면 니골라인)’의 교훈이 무엇인지가 14-15절에 나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4-15)”

그러니까 성경이 정의하는 ‘니골라 당의 교훈’은 요즘의 ‘종교통합’ 내지는 ‘이단 교주들’의 이단 교리와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기에 그런 것인데, ‘니골라’를 따르는 ‘니골라인’으로 불릴 정도면 요즘 ‘나는 신이다’란 프로그램에 나오는 부류들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발람은 발락에게 돈을 받고 미디안 여자들을 이용해서 이스라엘 남자들을 꾀어 그들이 섬기던 우상에게 절하고 음식을 먹고 그들과 간음하게 했습니다. 요즘도 겉으로는 예수 믿는 교회라고 하는데, 안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다원주의’ 또는 ‘내가 예수다, 내가 신이다’와 같은 거짓 사도(교주)와 거짓 영이 날치는 교회(?)의 특징은 하나님이 아닌 맘몬(돈)을 섬기고 간음을 조장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0년간 사라지지 않고 요즘들어 오히려 더욱 다양해지고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교회를 가장한 이런 이단들이 바로 ‘니골라 당’과 같은 부류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니골라 당(Nikolaitōn)’으로 불리는 무리는 7 집사 중 한 명이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가 이끌던 집단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저는 충분히 타당성 있는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7 집사를 뽑는 구절에서 유독 니골라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하기 때문입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행 6:5)”

안디옥은 이방인의 도시로 이방인의 첫 교회가 생긴 곳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단 한 획, 한 글자도 괜히 있는 책이 아닙니다. 그런데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뽑은 7명의 집사 중 유독 니골라에 대해서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걸 보면 이 인물이 나중에 발람과 같은 ‘니골라 당’의 교주가 됐다고 해도 이상할 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 교회가 이런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또 거짓 사도들을 분별해 내는 수고와 인내를 한 것, 그리고 이런 이단 종파들의 행위를 미워하는 건 칭찬하셨습니다. 다만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랑을 저버리게 된 것에 대해서는 책망하셨습니다. 결국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고전 13:2).

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귀 있는 자’란 표현은 신약에 총 13번 나옵니다(마 11:15, 13:9, 13:43; 막 4:9; 눅 8:8, 14:35; 본절, 계 2:11, 2:17, 2:29, 3:6, 3:13, 3:22). 이 표현이 쓰인 구절들을 보면 모두 주님과 성령이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교회에게(성도에게) 설명하실 때 ‘귀담아들으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13의 의미는 7에 대한 글에 간략히 적어놓았으니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기는’으로 번역된 ‘nikaó(니카오)’는 ‘정복, 승리, 이기다’란 뜻으로 신약에 총 28번 나옵니다(글자를 누르면 28구절을 다 볼 수 있습니다). 7×4이기에 7에 대한 의미와(영적 완전함을 뜻하는 7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4에 대한 의미의(세상 및 창조물을 뜻하는 4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조합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완전함이 깃든 세상’ 정도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28은 ‘영생’을 의미하는 숫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nikaó(니카오)’란 단어는 예수님 및 하나님의 말씀에 엮여서 5번 쓰였고(눅 11:22; 요 16:33; 롬 3:4; 계 5:5, 17:14), 교회(제자 및 성도)에 엮여서는 17번 쓰였으며(요일 2:13, 14; 요일 4:4, 5:4(2), 5:5; 계 2:7, 11, 17, 26, 3:5, 12, 21(2); 12:11, 15:2, 21:7), 악한 것에 엮여서는 6번 쓰였습니다(롬 12:21(2); 계 6:2(2), 계 11:7, 13:7).

늘 경험하는 것이지만, 어느 것 하나 어그러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nikaó(니카오)’란 단어가 말씀 및 예수님 관련해서 은혜와 율법의 수 5번 나오고, 교회(성도) 관련해서는 부활 승리를 의미하는 17번 나오며, 악한 것과 관련해서는 마귀의 수 6번 나오니 말입니다(각 숫자를 누르면 그 숫자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관련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고 또 숫자의 의미와 조합해보면, 교회에게 ‘이긴다’는 의미는 ‘사단 마귀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성도들이 악을 이기고 부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낙원’으로 번역한 ‘paradeisos(파라디소스)’는 ‘동산(garden), 공원(park), 낙원(paradise)’ 등을 의미한다지만 성경에서는 천상에 있는 ‘낙원’을 표현할 때만 쓰인 단어입니다. 영어로는 ‘paradise(파라다이스)’인데 성경에 총 3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동산 혹은 공원’을 의미하는 헬라어는 ‘képos(케포스)’인데 영어로는 ‘garden’이며 이 단어도 성경에 총 5번 나옵니다(눅 13:19; 요 18:1, 18:26, 19:41(2)).

본절과 다른 두 군데의 ‘낙원’ 관련 구절들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이 구절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중 회심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던 강도에게 주셨던 약속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 12:2-4)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낙원’은 하늘의 3천층에 있으며 생명나무도 거기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지난번 글에서도 썼지만, 다시 한번 정리하면, 성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천년 왕국이 끝나고 있을 백보좌 심판의 때까지(계 20장) ‘음부’로 번역한 ‘hadés(헤이디스)’에 대기 상태로 있습니다(마 11:23, 16:18; 눅 10:15, 16:23; 행 2:27, 2:31; 본절, 계 6:8, 20:13, 20:14). 그리고 타락한 천사들과 악령들은 ‘tartaroó(타르타루)’란 어둠의 장소에 심판의 때까지 갇혀있습니다( 벧후 2:4).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로 2000년간 이 땅에서 살다 잠이든 성도들의 혼은 몸의 부활의 때까지(예수님이 재림하시는) 3천층인 하나님의 낙원에서 대기중입니다(눅 23:43; 고후 12:2-4; 계 6:11). 그리고 천년 왕국이 끝난 후에 있을 백보좌 심판에서 모든 죽은자들, 즉 잠자던 자들이 다시 일어나 심판을 받을 것인데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 그리고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 및 사망과 지옥까지(hadés:헤이디스) 모두 불과 유황 못(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모든 불법이 멸하여지는 이 ‘불못(계 20:9-15)’이 바로 ‘게헨나’라고 생각합니다(마 5:22, 5:29, 5:30, 10:28, 18:9, 23:15, 23:33; 막 9:43, 9:45, 9:47; 눅 12:5; 약 3:6).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천국과 지옥(무저갱, 음부, 게헨나)의 차이:영혼은 불멸인가?“란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제목을 누르면 바로 연결됩니다).

‘생명나무’는 성경에 총 10번 나옵니다(하나님의 완전수 10에 대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생명나무에 대한 내용을 다 읽어보면, 처음 하늘과 땅이 지어졌을 때 ‘동산’ 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나무입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게 되자 하나님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에 그룹들을 두어 차단하시고 이후 세상에서는 사라지게 됩니다(창 2:9, 3:22, 3:24). 생명나무는 잠언에서 4번 나오는데 잠언 3장 13-19절에서는 ‘지혜와 명철’이 곧 생명나무라고 되어 있습니다. 잠언 11장 30절에는 ‘의의 열매가 곧 생명나무’라고 합니다. 잠언 13장 12절에서는 직역하면 ‘바라던(원하던) 것이 오는 게 생명나무’입니다. 잠언 15장 4절에서는 직역하면 ‘치유(치료)하는(marpe) 혀’는 생명나무입니다.

본절에서 교회들에게 주어진 ‘생명나무’에 대한 약속은 요한계시록 22장 2절과 22장 14절에서 좀 더 분명해집니다(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22장을 다룰 때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22장은 예전 하늘과 땅도 지나가고 지옥과 사망도 불못에 던져진 이후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전달합니다. 그곳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나오는 맑고 순수한 크리스탈(수정) 같은 생명의 강물이 흐르고 있습니다(계 22:1). 그리고 그것의 길 가운데와 강의 이쪽서부터 저쪽에까지 생명나무가 있는데 매달 그달에 따른 12가지의 열매를 맺고 나무의 잎은 민족을 치료(치유)하는데 쓰입니다(계 22:2).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는 자들에겐 새 예루살렘 도성에 들어와 생명나무에서 먹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계 22:14).

개중에는 에스겔서 47장 12절에 등장하는 성전에서 나온 물을 따라 있는 나무들이 ‘생명나무’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구절 어디에도 생명나무란 명칭은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생명나무는 늘 단수였지 복수였던 적이 없습니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나무들은 12달에 맞춰 12개의 열매를 맺는 것도 비슷하고 잎사귀가 약으로 쓰인다는 점도 비슷하지만, 복수입니다. 이 나무들은 주님이 왕들의 왕으로 이 땅에 재림하셔서 성도들과 함께 1000년간 통치할 때 예루살렘에 세워질 성전에 있게 될 나무들입니다. 물론 이 나무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있게 될 ‘생명나무’의 예표인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분이 에스겔서에 나오는 천년왕국에 대한 묘사를 요한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영원 세계의 묘사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시는데 에스겔에는 성전이 있고 죄를 위한 제사가 있습니다(겔 44-46장). 하지만 요한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엔 절기를 세기 위해 주셨던 해와 달도 없고(계 21:23, 21:25, 22:5) 하나님과 어린 양이 예루살렘의 성전이기에 성전도 없습니다(계 21:22).

따라서 7절의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왕국(나라)에 대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들으라 사단 마귀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악을 이기고 부활 승리한 자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지혜와 명철과 의의 열매를 주어 너희가 바라던 바를(소망을) 이루리라

8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서머나’는 요한계시록에 두 번 등장하며 뜻은 “몰약”입니다(증인 및 증거를 의미하는 2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몰약(myrrh)”이란 단어도 전체 성경에 16번 나오는데 나오는 구절들을 읽어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이 깊은 단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본절에 ‘편지하라’는 그냥 ‘쓰라’는 의미의 ‘graphó(그라포)’입니다. 그러니까 계시록 1장 11절에 7 교회에 보내는 책(두루마리)에 쓰라는 지시입니다.

본절에 ‘처음이며 마지막이요’라고 된 부분은 직역하면 ‘그 처음과 그 마지막’인데 정관사 ‘ho(the)’까지 붙은 표현은 계시록에서만 4번 나오고(본절, 계 1:17, 2:8, 22:13) 정관사까지 붙진 않았지만 그냥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은 성경에 총 16번나옵니다. 구약에 12번 나왔고 신약엔 정관사가 붙은 ‘그 처음과 그 마지막’이 계시록에만 4번 나옵니다. 구약에 12번 등장하는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은 모두 왕(9번) 또는 하나님 자신을(3번) 수식한 단어였습니다(대상 29:29; 대하 9:29, 12:15, 16:11, 20:34, 25:26, 26:22, 28:26, 35:27; 사 41:4, 44:6, 48:12). 참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이 구약에서는 ‘왕 또는 하나님’에게만 쓰였는데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뜻하는 12번 등장하기 때문입니다(1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쓰였는데, 세상 및 창조물을 뜻하는 4번 등장하니 말입니다(4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알다시피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온 한줄기 강은 넷으로 나뉘어 온 땅을 적시며 생물이 번성할 수 있는 물을 공급해 주었습니다(창 2:10).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4 복음서로 나뉘어 영혼육을 살리는 성령의 생수로 이 세상 가운데 흐르고 있습니다(이 부분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계시록1장(2)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절에 ‘죽었다가 살아나신’의 정확한 뜻은 ‘(전에는) 죽었었지만 (지금은) 살아있고 (아직도) 살아있다’란 진행형인데, 정확하게 ‘was dead and is alive’란 표현으로 쓰인 경우는 성경 전체에 3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부활 및 영적 완전함을 의미하는 3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2번, 본절에 1번 쓰이는데(눅 15:24, 32; 본절), 여기에 ‘was dead and am alive(계 1:18)’란 1인칭 표현도 결국은 같은 의미니까 포함한다고 하면 총 4번입니다. 따라서 ‘(전에는) 죽었었지만 (지금은) 살아있고 (아직도) 살아있다’는 표현은 돌아온 탕자인 둘째 아들에게 두 번, 부활하신 예수님께 두 번 쓰인 게 됩니다(증인 및 증거를 뜻하는 2에 대한 숫자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에 대한 실례는 총 10번 나옵니다(사르밧 과부의 아들, 수넴성 여인의 아들, 엘리사의 뼈에 닿은 어떤 이스라엘 사람, 나인성 과부의 아들, 야이로의 딸, 나사로, 예수님,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같이 일어났던 성도들, 다비다라고 하는 도르가, 유드고). 그런데 이때마다 쓰였던 표현이 조금씩 다르며 ‘was dead and is alive’란 표현으로는 쓰이지 않습니다. 직접 킹제임스 영어 성경으로 해당 구절들을 모두 찾아보셔서 차이점을 보시기 바랍니다(왕상 17:22-24; 왕하 4:34-37; 왕하 13:20-21; 눅 7:15-16, 8:54-55; 요 11:43-44; 마 28:6-7; 막 16:6-11; 눅 24:5-7; 요 20장; 행 9:40-41; 20:9-12).

따라서 8절의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천사에게 쓰라 이 세상의 처음이며 이 세상의 마지막이요 전에는 죽었지만 지금은 살아있고 아직도 살아있는 이가 이르시되

9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환난’으로 쓰인 헬라어 ‘thlipsis(뜰립시스)’는 영어로는 ‘tribulation’인데 총 45번 쓰입니다(마 13:21, 24:9, 24:21, 24:29; 막 4:17, 13:19, 13:24; 요 16:21, 16:33; 행 7:10, 7:11, 11:19, 14:22, 20:23; 롬 2:9, 5:3(2), 8:35, 12:12; 고전 7:28; 고후 1:4(2), 1:8, 2:4, 4:17, 6:4, 7:4, 8:2, 8:13; 엡 3:13; 빌 1:17, 4:14; 골 1:24; 살전 1:6, 3:3, 3:7; 살후 1:4, 1:6; 히 10:33; 약 1:27; 계 1:9, 2:9, 2:10, 2:22, 7:14). 즉, ‘물리적 또는 정신적 압력이 가해져서 벗어날 길 없이 갇혀 고통받는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인데, 특히 ‘tribulation’은 곡식을 탈곡할 때 소나 말이 곡식을 밟으며 위로 지나가도록 끄는 날카로운 쇠나 돌이 박힌 널빤지를 의미하는 ‘tribulum’에서 온 단어입니다(이미지를 보고 싶으시면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궁핍’으로 번역한 헬라어 ‘ptócheia(프토카이아)’는 신약에 총 3번 나오는데 모두 현실에서는 핍박으로 인해 곤궁하며 결핍된 상태이지만 사실은 부자이며 부요한 사람들이란 의미로 쓰였습니다(고전 8:2, 9; 본절). ‘비방’으로 쓰인 단어는 ‘비방 및 모독’ 특히 ‘신성모독’으로 쓰이는 ‘blasphémia(블레스페이메아)’인데 신약에 총 18번 나옵니다. 이 ‘blasphémia(블레스페이메아)’란 단어의 의미는 좋은 것을 좋다고 얘기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얘기하는데 더디고 내키지 않아 하는 상태를 뜻하며 더 나아가서 좋은 것을 나쁘다고 하고 나쁜 것을 좋다고 하는 악함을 뜻합니다.

본절에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고 하는 부분은 로마서 2장 28-29절과 연관되는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kruptos:감춰진, 가리워진)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회당’은 유대인들이 집회로 모이던 곳이지만 신약의 교회에도 딱 한 번 쓰입니다. “만일 너희 회당에(synagōgēn)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약 2:2)” 개역개정은 원어에 충실하게 ‘회당’으로 번역했지만 ‘집회’로 번역한 성경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9절의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부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표면적 유대인들의 좋은 걸 나쁘다고 하고 나쁜 걸 좋다고 하는 악함을 알거니와 실상은 마음에 할례를 받은 감춰진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생명의 관(stephanon tēs zōēs)’은 신약에 두 번 등장합니다(약 1:12, 본절). 야고보서와 본절에 보면 시험을(peirasmos) 인내하는 사람은 ‘생명의 관’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관’으로 번역한 헬라어 ‘stephanos(스테파노스)’는 ‘머리에 쓰는 둥그런 관’을 의미하며 총 18번 나옵니다. 성경엔 영적인 7개의 관이 나오는데, 영광(영화)의 관(잠4:9, 16:31; 사 28:5, 62:3, 렘 13:18, 벧전 5:4), 교만의 관(사 28:1, 28:3), 썩지 않는 관(고전 9:25-26), 기쁨의 관(살전 2:19), 의의 관(딤후 4:8), 생명의 관(약 1:12; 계 2:10), 그리고 바울은 복음으로 얻은 형제들을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빌 4:1)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10절의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네가 받게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너희 몇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영원한 생명, 첫째 부활의 복을 주리라(20:6)

11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본절에 처음 등장하는 “둘째 사망”이란 표현은 계시록에서만 4번 나옵니다.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면 ‘둘째 사망’은 마지막 심판 때에 불못에 던져져서 영원히 죽는 것을 말합니다. 본절 외에 나머지 3구절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6)”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 20:14)”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여기서 한 가지 부연설명하자면, 첫째 사망은 원죄로 누구나 죽어야 하는 자연적인 사망이라면 둘째 사망은 불못(풀무불에 비유되는 불지옥)에 던져지는 영원한 사망을 뜻합니다. 또한 첫째 부활이 의와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이라면 둘째 부활은 둘째 사망으로 가기위해 일어나는 부끄러움과 수치의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11절의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왕국(나라)에 대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단 마귀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악을 이기고 부활 승리하는 자들에게는 첫째 부활의 복이 있나니 영원한 불못의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12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버가모’는 요한계시록에서만 두 번 등장하는데 ‘결혼으로 하나 되다’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편지하라’는 그냥 ‘쓰라’는 의미의 ‘graphó(그라포)’입니다. 그러니까 계시록 1장 11절에 7 교회에 보내는 책(두루마리)에 쓰라는 지시입니다.

‘좌우에 날선 검’이란 의미는 ‘칼의 양면이 날카롭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칼은 칼등이 있고 칼날이 있지만 양면이 다 날이 선 칼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내 입에서 나가는 순간, 내게도 향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설교할 때나 말씀을 묵상할 때 남에게 주는 말씀으로 생각하며 준비할 수 있겠지만 그 말씀은 나를 먼저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는 걸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distomos(디스토모스)’란 단어는 신약에 총 3번 나오지만(자세한 내용은 요한계시록1장(2)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좌우에 날선 검(양면이 날선 검)’이란 표현 자체는 전체 성경에서 총 5번 나옵니다(율법 및 은혜의 수 5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관련 구절들을 모두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 149:6; 잠 5:6; 히 4:12; 본절; 계 2:12).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양면이 날선 칼:two edged sword)이 있도다 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시 149:6-9)”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양면이 날선 칼:two edged sword)이 날카로우며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잠 5:3-5)”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양면이 날선 칼:two edged sword)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양면이 날선 칼:two edged sword)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계 1:16)”

따라서 12절의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천사에게 쓰라 뭇 나라와 민족들을 벌하며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 양면이 날카로운 검을 가진 이가 모든 성도에게 영광이 있게 하리니, 이르시되”

13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권좌’로 번역한 헬라어는 ‘왕좌’를 뜻하는 ‘thronos(뜨로노스)’입니다. 신약에 총 63번 나오는데 주로 하나님의 보좌(왕좌) 또는 12제자나 24장로, 혹은 왕의 왕좌로 쓰이는데 사탄에게는 본절에서 처음 쓰입니다. 본절에서 순교자로 언급된 안디바에 대해서는 이곳 외에는 등장하지 않으며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번역했는데 직역은 ‘나의(mou) 믿음을(pistin) 부인(부정)하지 않았다(ērnēsō)’입니다.

따라서 13절을 직역해서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네가 어디 사는지 내가 아노니,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또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았고 내 충성된 나의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했던 때에도(시기에도) 내 믿음을 부인(부정)하지 않았도다”

14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두어 가지’라기보다는 ‘몇 가지(oliga)’입니다. 14절과 15절에 보면 알 수 있듯이 ‘발람의 교훈’은 도로 ‘니골라 당의 교훈’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이런 니골라 당의 행위(발람의 행위)를 미워하였기에 칭찬받았었다면, 버가모는 니골라 당의 교훈(발람의 교훈)을 갖고 있기에 책망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의 ‘종교통합’ 내지는 ‘이단 교주들’의 이단 교리를 갖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15절에 보면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리를 믿고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니골라’를 따르는 ‘니골라인’들은 요즘 ‘나는 신이다’란 프로그램에 나오는 이단 교주와 추종자들처럼 맘몬(돈)을 섬기며 간음을 조장하는 이상한 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며 제 3성경이라고 불리는 몰몬경을 공부한다는 몰몬도 여기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이 ‘니골라 당(Nikolaitōn)’으로 불리는 무리는 7 집사 중 한 명이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따르던 무리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저는 충분히 타당성 있는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7 집사를 뽑는 구절에서 유독 니골라에 대해 수식어가 붙기 때문입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행 6:5)”

안디옥은 이방인의 도시로 이방인의 첫 교회가 생긴 곳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단 한 획, 한 글자도 괜히 있는 책이 아닙니다. 그런데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뽑은 7명의 집사 중 유독 니골라에 대해서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이라고 부연 설명하는 것을 보면 이 인물이 나중에 발람과 같은 ‘니골라 당’의 교주가 됐다고 해도 이상할 건 전혀 없습니다.

16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본절에 ‘회개’로 쓰인 헬라어는 ‘metanoeó(메타노에오)’입니다. 그냥 후회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내는 것으로 속사람이 바뀌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을 의미하며 신약에 총 34번 나옵니다(좀 더 자세한 내용은 ‘회개, 후회, 돌아옴의 차이‘에 적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입의 검’이란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만 4번 나옵니다(계 1:16, 본절, 19:15, 19:21). 계시록 19장에 등장하는 두 구절을 읽어 보면 좀 더 자세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계 19:15)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계 19:21)

따라서 16절의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만국을 치며 철장으로 다스릴 예리한 검으로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듯이 그들을 죽여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부르게 하리라

즉, 버가모 지역에 있던 교회는 그 어떤 교회보다도 거짓 형제, 거짓 사도(교주)들이 판치던 교회로 빛의 천사로 가장한 사단의 추종자들이 있던 교회인 것입니다. 오죽하면 13절에서 ‘사탄이 사는 곳’ 그리고 ‘사탄의 권좌(왕좌)’가 있는 곳, 즉 그 권력의 중심부라고 하셨을까요? ‘나는 신이다’에 나오는 교주들의 자칭 교회가 실은 사단의 소굴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에 주님은 위와 같은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이들에게 주십니다. 그렇지만 이 안에서도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따르던 몇 성도들과 교회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17절에 나오는데 그 구절부터는 다음 편에 다루겠습니다.

Published by tnb4word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gloryb2mylord@gmail.com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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